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52화 (52/130)

[제52화] 용감한 어부

휘리릭! 폴짝!

휘리릭! 터억!

아지트에는 나와 베타 단둘이었다.

나는 사심희가 베타에게 선물한 장난감으로 한창 놀이에 빠져 있었다.

일명 고양이 낚싯대.

당연히 바늘은 없다. 꿩의 꼬리털처럼 생긴 채비를 흔들 때마다, 베타는 점프를 하거나 잽싸게 달려가 낚아채려 한다.

“더 빨리! 이번에는 이쪽이닷!”

“그렇지! 하하하. 드디어 잡았구나.”

나 혼자 떠드는 소리가 아지트 안에 울려 퍼졌다.

잡으려는 낚시만 하다가, 피하는 낚시를 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아, 슬슬 지친다.

한참을 놀았더니 약간 시들해졌다.

맺고 끊는 법을 알 리 없는 베타가 낚싯대를 발로 치며 나를 올려다보았지만 나는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루 종일 아지트 안에는 멤버들의 발길이 전혀 없었다. 한가로운 사람은 나뿐인가 보다.

장재준 영감은 지금쯤 저녁 배달 준비를 위해 헬멧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라이더 일을 시작한 뒤로 그의 혈색이 크게 달라졌다.

‘3층 이하는 운동 삼아 그냥 계단으로 걸어 다닙니다. 허허.’

존경스러운 분이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그는 뚝심 있게 자신의 일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사심희는 지금쯤 부산의 외삼촌 댁에 있을 것이다.

이틀 전에 외가 쪽 친척들과 경주 등지를 둘러보고 오겠다며 떠났다. 출조가 잡히면 언제든지 알려 달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로운 영혼.

미국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의 레스토랑 일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틈만 나면 각지를 돌아다니기 바빴다.

보람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예전에 다니다가 망했던 수원 공장을 좋은 조건으로 임차했다. 그의 손때가 묻은 중고 설비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있을 것이다.

원래 그런 성품인 줄은 알았지만 보람이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불러 모아 진용을 갖췄다.

‘너도 공장에 한번 와서 둘러봐야 하지 않겠어?’

보람이의 그런 요청이 있었지만, 나는 적당한 핑계로 거절했다.

공장은 어디까지나 보람이의 고유 영역.

투자자랍시고 찾아가 봐야 딱히 보탬이 될 일도 없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여하튼 어반자팩토리는 이제 어엿한 중소기업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고, 멀티싱커와 관련 변형 제품들의 매출은 날로 늘어만 갔다.

최근에 내가 보람이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월급은 제대로 챙겨 가고 있는 거냐?’

‘먹고살 정도는 가져가고 있으니까 걱정 마. 조금 더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계속 투자가 필요해.’

초기 자본금이 워낙 적은 탓에, 아직은 돈을 버는 족족 늘어난 발주금으로 나가거나, 설비에 재투자되는 상황이다.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이야. 적당히 하면서 즐기기도 해야지.’

‘회사 키우는 게 제일 재미있는데 어떡하냐. 내 즐거움을 빼앗으려고 하지 마라.’

점점 일 중독에 빠지는 것 같아 충고를 했는데, 일이 제일 즐겁다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창문을 확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지막으로 고동우.

요 며칠 동안 고동우야말로 멤버들 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되었다.

아지트 앞은 이제 주차를 기대하기 어려운 장소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건너편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낚시점으로 향해 사뿐히 걸어오는 네댓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직원이라도 한 명 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개장발이 언제까지 갈 줄 알고 사람을 쓰냐. 나중 정 힘들어지면 그렇게 하겠지만.’

반우스갯소리로 고동우에게 얘기해 보았더니, 손님들의 발걸음이 언제 줄어들까 걱정이 앞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예상이 적중했다.

어반자스토어를 찾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인근의 하남, 구리, 성남 등지에서 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낚시점을 나서는 그들이 쥔 봉투에는 여지없이 멀티싱커가 포함되어 있었다.

“베타야. 집에 가서 TV나 때리자.”

“야~~ 옹.”

다들 바빠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덕분에 아지트가 썰렁해져 조금은 서글프다.

베타를 번쩍 안아서 백팩 안으로 막 밀어 넣으려던 때였다. 갑자기 휴대폰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황선태?!

낚시점 물품 처리 과정에서 많은 편의를 봐준 고마운 청년. 그렇지 않아도 밥이라도 사 줘야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황 프로! 어쩐 일로 내게 전화를 주셨나?”

그와 낚시점 일로 몇 번을 만나게 되면서, 그에게 편히 말을 건네는 사이가 되었다.

“형님. 잘 지내시죠? 고동우 사장님은 잘하고 계신가요?”

“아주 좋아. 황 프로 덕분에 너무 바빠진 게 탈이지만 말이야.”

“오오. 다행이네요.”

“괜찮으면 오늘 저녁 한 끼 할까? 내가 거하게 한번 쏠게.”

“감사하지만 나중으로 미뤄야겠어요.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거든요.”

하긴.

출연하고 있는 두 프로그램이 모두 반응이 좋으니 늘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그럼 나중에 편할 때 연락 줘.”

“네. 형님. 그보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뭔데?”

‘좋은 소식’이라는 말은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한다.

간혹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실없는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아는 황선태는 그렇게 싱거운 사람은 아니다.

“‘용감한 어부’ 아시죠? 급하게 촬영에 투입시킬 사람을 찾고 있어서 제가 형님을 추천했습니다. 하하.”

용감한 어부.

낚시를 소재로 한 방송 중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낚시꾼이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연예인들의 유쾌한 낚시 장면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받았던 ‘용감한 어부’는 시즌에 시즌을 거듭하면서 약간 주춤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인기는 여전하다.

“추천을 했다니 무슨 말이야?”

“그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백정철 형님과 제가 잘 아는 사이거든요. 개인 사정으로 다음 촬영을 못 하시는 상황인가 봐요.”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연락이…….”

“저보고 출연해 달라는데 저는 그날 일정이 있어서요. 그래서 형님을 강하게 추천했죠.”

대충 알 것 같았다.

쉽게 말해서 땜빵이란 얘긴데 오히려 더 솔깃하다.

그 순간 아버지가 예전에 하시던 말씀이 귓가를 맴돌았다.

‘진짜 TV에는 안 나오는 거냐?’

유튜브를 진짜 TV가 아니라고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짓던 아버지였다.

얼떨떨하다. 텔레비전에 내가?

비현실적인 얘기에 잠깐 멍해졌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그럼 내가 하겠다고만 하면 출연할 수 있는 건가?”

“제가 알기론 그래요. 많이 급한 모양이던데요.”

당장에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두 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멤버들도 모두 바쁘지만 나의 본업은 낚시가 아니던가.

내 구미를 당긴 것은 기뻐하실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번 출연도 아니고 단 한 번이라는 조건이 오히려 맘에 들었다. 외도가 지속되면 곤란하다. 더구나 어반자TV의 인지도를 크게 올릴 수 있는 기회임에 틀림없다.

“하고 싶어. 그런데 정말 내가 출연해도 되는지 아직도 어리둥절하네.”

“형님 정도면 훌륭하죠. 그럼 일단 수락하신 걸로 알고, 그쪽에 전달하겠습니다.”

“어, 그래. 너무 고맙다.”

전화를 끊자마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용감한 어부에 내가 나오게 되었다니.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릴까?

하지만 아직은 모른다. 김칫국을 들이켜고 싶지는 않다.

출연이 최종 확정되고 나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거다.

황선태에게서 두 번째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베타를 등에 메고 공영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새 또 전화를…….

“황 프로?”

“네. 형님. 지금 어디세요?”

“아지트, 아니 사무실 근처. 하남이야.”

“아! 그리 멀지는 않군요. 잘됐어요. 지금 잠실 쪽으로 바로 가실 수 있죠?”

“왜?”

“담당 피디가 지금 거기 있다네요. 형님이 수락하셨다고 전했더니 피디가 당장 만나기를 원한대요.”

“지금?”

너무 갑작스럽다. 화들짝 놀란 눈으로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황 프로. 지금은 좀. 옷차림이 엉망이야.”

“옷이 뭐 어때서요?”

“추리닝 입고 있어.”

나는 집에서 잠옷으로 겸용하고 있는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더구나 등에는 베타까지 업고 있는 상태다.

“무슨 면접인가요? 이미 출연은 확정이에요. 저녁 식사 자리니까 편하게 얼굴도장만 찍고 오시면 된다고요.”

“사실은 고양이도 있어. 집에 잠깐 가서 옷도 갈아입고, 고양이도 놓고 가면 안 될까?”

“어휴. 형님도 참. 초면에 사람들 기다리게 하면 실례죠. 고양이는 제가 알아볼게요. 식당에 데리고 들어가도 되는지, 정 안된다면 근처에 맡길 만한 데가 있는지.”

“하하. 이건 참 난감하구만.”

“식당 위치는 곧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어쩔 수 없었다.

3분도 못 되어 황선태의 문자가 날아왔다.

‘○○한우. 잠실역 4번 출구 근처. 고양이는 조심해서 방으로 데려가도록 조치했음. 지금 출연진들과 함께 있다고 함. 즐거운 시간 되세요^^’

문자를 확인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갈수록 태산이다. 피디와 단둘이 만나는 줄 알았더니 설상가상으로 출연진까지.

에라. 나도 모르겠다.

나는 엉겁결에 허둥지둥 차를 출발시켰다.

근데 출연진이라면…….

붙박이로 나오는 중견 배우 이덕호는 알겠고, 버럭 개그의 창시자인 이몽규도 알겠는데. 아! 어쩌면 잘생긴 탤런트 이태권도 있겠구나.

그러고 보니 무슨 낚시를 가는지도 들은 게 없네.

내가 많이 해 본 낚시면 좋을 텐데. 이를테면 우럭 낚시라든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달리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저기구나!

○○한우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나는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베타야. 긴장되냐?”

“야~~~ 옹!”

솔직히 바짝 긴장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식당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맡아 보는 소고기 냄새를 즐기는지 베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킁킁거렸다.

드르륵~

식당에서 일하는 분의 뒤를 따라가자 그녀가 친절하게도 미닫이문을 열어 주었다.

“이야! 드디어 오셨구만. 고기가 딱 익자마자 들어오는 걸 보니 먹을 복이 많은 친구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목소리가 큰 이몽규였다. 실내에는 모두 일곱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이덕호는 화면과 똑같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겼고, 이태권도 말없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먹방에 자주 나오는 개그맨 김진성은 벌써 고기를 우물거리며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친구는 누구였더라?

요즘은 TV에서 보기 어려운 오래전 아이돌 그룹 래퍼의 심드렁한 눈빛도 슬쩍 비쳤다.

아! 백정철 프로님도…….

낚시의 명인이라 불리는 그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반겼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은 이름 모를 사내는 추리닝 바람으로 나타난 내 모습에 얼굴을 돌려 키득거렸다.

갑자기 날아든 수많은 시선들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잠시 후 나는 미세하게 떨려오는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또박또박 이름을 밝혔다.

“어반자TV의 강유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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