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조어도(釣魚圖)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림 앞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 속에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다.
돌출된 기암 절벽 아래에서 한 사내가 왼손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단순한 구성의 동양화였다.
내 관심을 끈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장재준 영감의 들려준 짧은 얘기였다.
물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전설의 낚시꾼.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거나, 알에서 태어났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예전의 나였다면 그냥 한 귀로 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 자신이 전설 같은 능력을 갖게 된 이상, 남다른 호기심을 품은 것은 당연했다.
“우럭 님도 그림 좋아하나 보네. 아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더니. 그만 막잔 털고 일어납시다. 내일 가게 오픈하려면 얼른 치우고 자야 합니다.”
고동우가 뒤에서 뭐라고 말했지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나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장재준 영감에게 물었다.
“캡틴 님! 아까 이 그림이 뭐라고 하셨죠?”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허허. 조어도(釣魚圖)라는 그림입니다. 진품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걸려 있으니까 당연히 모조품이고요.”
나는 몸을 돌려 재차 물었다.
“그림의 배경이 어딘지 혹시 아세요?”
“글쎄요. 아마도 상상 속의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만.”
“……그렇군요. 누가 그린 그림인지 알면 장소를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현진’이라는 낙관만 찍혀 있을 뿐 화가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답디다. 그 화가가 남긴 그림도 그거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그림에 대해 꼬치꼬치 물은 것은 나와의 연결 고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일견 이렇다 할 연결 고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고개를 내민 호기심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아까 무슨 전설을 말씀하시던데,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혹시 기억하세요?”
“아, 물속을 본다는 거 말입니까? 그게…… 누구였더라? 경남 진해에서 근무할 때였던 것 같은데.”
“해군에 계실 때 부대에서 들었다는 말씀이군요.”
“부하였던가, 군무원이었던가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묻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건가? 고작 그림 하나 때문에.
장재준 영감에 의아한 눈길에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럭 님이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요. 물속을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허황된 욕망과 상상이 지어낸 얘기지요. 허허.”
“……그러게요.”
사실은 허황한 얘기의 주인공이 여기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동우가 일어나 빈 접시를 치우고 있었다. 술자리를 정리하겠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구피 님이 내일 걱정이 태산인 것 같네요. 하하.”
“아이고, 결전을 앞둔 사람을 두고 우리가 쓸데없는 소릴……. 그만 일어납시다. 허허.”
우리는 막잔을 털고 일어섰다.
“내일 또 와 볼게요.”
“그래. 손님이 한 명이라도 올는지 좀 걱정이다.”
“아이고, 없으면 나라도 사겠습니다. 하하.”
나는 고동우와 인사를 나누고 아지트를 나섰다.
2층을 떠나는 순간, 나는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조어도라고 했던가……?
보면 볼수록 묘하게 눈길을 끄는 그림이었다.
* * *
은은한 달빛 아래.
해안 벼랑 끝이었다. 내가 휘두른 5미터의 장대가 바람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른다.
“잡았다!”
흔한 표현처럼 담그면 나오는 상황이었다.
자정이 넘었지만, 시간 개념도 망각한 채 나는 살림망에 물고기를 던져 넣느라 분주했다.
살림망 안에는 수십여 마리의 은백색 감성돔들이 서로 엉켜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주변에서 짐승이 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겁먹은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니 원숭이 얼굴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괴괴한 정적이 흐르는 뒤편의 숲은 고요 그 자체였다.
다시 낚시에 집중하던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피라냐 떼처럼 반응하던 감성돔의 입질이 거짓말처럼 갑자기 끊어진 것이다. 야광찌에서 새어 나오는 녹색 불빛이 고요한 수면 위에서 미동도 없다.
조류가 바뀐 건가?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군.
이미 잡을 만큼 잡았다고 판단한 나는 채비를 회수하려 릴을 감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검푸른 밤바다 속에 뿌옇게 발광하는 생명체가 몸통을 드러내고 있었다.
“헉!”
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에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불빛은 점점 더 커지고 밝아져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바다 밑바닥의 이름 모를 해조류까지 선명할 정도로.
물속에 무언가가 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그만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상한 물체가 수면 위로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돌고래였다.
작은 돌고래 한 마리가 눈 부신 빛을 뿜으며 갯바위 바로 아래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처음에 내 심장을 엄습한 감정은 공포였다.
그러다가 공포는 서서히 황홀함으로 변해 갔다. 형형색색의 빛으로 변해 가는 돌고래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 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팟!
거짓말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조심조심 갯바위 아래로 두어 걸음 내려가던 중 갑자기 불빛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망친 걸까?
고개를 내밀어 갯바위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삼켰다. 어두컴컴한 물속에서 허연 형체가 성큼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인 줄 알았다. 너무 무서워 도망치려다 다시 돌아보니 턱밑에 삐죽하게 튀어나온 수염이 눈에 띄었다.
“이보게…….”
사내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저승사자처럼 음산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니, 그와 반대로 인자함이 묻어 나오는 음성이었다.
물속에서 나온 사람치고는 물기 하나 없이 말끔한 옷차림이었다. 마치 조선 시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한복 저고리를 입은 그의 모습이 조금 신기해 보였다.
“여기서 뭘 잡고 있었나?”
“가, 감성돔을 낚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대답을 더듬었다.
나와 초면인 사내는 처음부터 말이 짧았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거슬리지는 않았다.
“많이 잡았는가?”
“네. 그런데 갑자기 입질이 뜸해져서 그만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아마 나 때문에 죄다 도망간 모양이군. 그럼 내가 도와줄까?”
“어, 어떻게요?”
“감성돔을 떼로 불러들일 비법을 알려 주지.”
“네에? 정말로요?”
미친 소리 같았지만, 귀가 솔깃했다.
사내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 귀에 입을 대고 바람을 불어 넣듯 속삭이기 시작했다.
“야~~~ 옹!”
엥? 이게 무슨…….
너무나 황당한 소리였다. 야옹이라니. 적잖이 실망하여 다시 물어보려던 찰나.
무언가가 내 얼굴을 툭 치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흐릿한 시야에 베타의 뾰로통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아. 꿈이었구나.
침대에서 떼어 낸 내 등줄기에 서늘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다.
더구나 현실과 구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생생했다.
“야~~ 웅!”
“알았다. 알았어.”
이번에는 베타가 내 어깨에 올라, 또다시 앞발로 얼굴을 똑똑 두들겼다. 아침밥을 챙겨 달라는 몸짓이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해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적당한 재료가 있을까, 냉장고 문을 열려던 나는 순간적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후우~~
어젯밤 장재준 영감에게서 들었던 얘기에 지나치게 몰입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내가 우습다고 느껴졌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돌고래가 사람으로 둔갑하여 나와 대화까지 하다니. 심지어 꿈에서 낚시를 하던 장소와 사내의 모습은 조어도와 똑 닮아 있었다.
물속을 투시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재된 욕망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지어낸 우스갯소리를 굳이 나 자신과 무리하게 연관을 지으려 하다니…….
정신을 차리자.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으면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니, 텅텅 비어 있었다.
역시 해장은 라면이지.
나는 후닥닥 베타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 주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후루룩 면발을 흡입하면서, 나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왜 아무 연락이 없는 거지?
벌써 10시. 가게를 오픈하고 한 시간이나 지난 시각이었다. 손님이 한 명이라도 왔다면 호들갑을 떨면서 당장 전화를 걸어왔을 위인이다.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허겁지겁 면발을 흡입해 버렸다. 그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자마자 고동우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이상하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쩐지 불길하다…….
고동우는 전화 하나는 꼬박꼬박 잘 받는 사람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도, 휴대폰에서 손을 떼지 않던 그가 아닌가.
좌절 모드에 빠져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을 그의 모습이 언뜻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침부터 낚시점에 누가 온다고. 구피 님은 다 좋은데 약간 성급한 게 문제라니까.
나는 설거짓거리도 내버려 둔 채 집을 나섰다.
얼른 가서 울상을 짓고 있을 그에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벼르면서.
어쩌면 내 가설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차를 달리면서 문득 떠오른 걱정이었다. 애초에 멀티싱커가 킬링 아이템이 되어 주리라는 생각이 헛된 기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오프라인에서도 큰 수요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거기서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에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규모가 클 것이라는 가정부터가 말이다.
비관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급기야 봉돌 하나 사겠다고 멀리서 찾아와 줄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지트에 가까워질수록 내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큰길에서 빠져나와 아지트가 위치한 후미진 도로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어! 그래도 손님이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건물 앞에 늘 주차를 하던 곳이었다. 열 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꽉 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건물 뒤편으로 차를 돌려 보았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대의 차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허어. 참 이상한 노릇일세.
나는 건너편 공영 주차장까지 가서 주차를 마치고 낚시점으로 걸어와야 했다.
손님이 왔으면 왔다고 하든가. 괜한 걱정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낚시점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매대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고동우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거의 우는 목소리로 외쳤다.
“우럭 님! 마침 잘 왔다. 거기 쇼핑 바구니 좀 정리해 줄 수 있어?”
“어떻게 된 거예요? 전화도 안 받으시고.”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치네. 정신을 차릴 수 있어야지. 지금도 내 정신이 아니야. 아! 네네. 금방 찾아 드리겠습니다.”
어느 손님이 손짓을 보내 왔는지, 고동우는 휘리릭 매대 쪽으로 달려갔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손님은 나를 알아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머쓱하게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휴우. 다행이다.
연신 머리를 긁적거리는 어설픈 낚시점 주인을 바라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동우의 낚시점이 문을 연 개업 첫날.
문전성시라고 할 만한 북새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좋은 출발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