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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49화 (49/130)

[제49화] 조카

“와아아! 저 배예요?”

무창포 항구의 구름다리 근처였다.

보트의 주인에게서 키를 받고 돌아왔더니 준서가 선착장 위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어서 타자. 조심해서. 사시미 님이 좀 도와줄래?”

“우리는 걱정 말고 짐이나 잘 챙겨요.”

새벽부터 수많은 낚싯배들이 빠져나갔을 항구는 예상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원래는 크고 안전한 낚싯배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준서가 학교를 쉬는 주말에는 빈자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낚시이다 보니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역시 보트 면허를 취득한 것은 신의 한 수였어.

차선책으로 선택한 보트 낚시였지만, 은근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부터 출항을 서두를 필요도 없고, 돌아오는 시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니.

특히 멤버들과 함께했던 남해 돌문어 낚시에서처럼 주꾸미가 바글바글한 포인트만 찾게 된다면, 준서의 목표 마릿수에도 적당히 근접할 것 같았다.

아무리 10살 아이라지만 담갔다가 3초만 세고 올리면 주꾸미가 달려 있을 테니까.

“준서야. 배낚시는 해 봤어?”

“아니요.”

“원장 할아버지랑 평택항에서 낚시했다고 안 했어?”

“방파제였어요. 배에서 하는 낚시는 오늘이 처음이에요.”

“좋아. 상관없어. 낚시 요령은 일단 포인트에 도착해서 알려 주마.”

보트는 큰 무리 없이 항구를 빠져나갔다.

“와아! 우럭 아저씨 배 운전 잘하신다.”

“뭘…….”

실제로 내 운전 실력이 부쩍 늘어 있는 건 분명했다.

방파제를 빠져나온 보트는 미리 파악해 둔 위치로 빠르게 달려갔다.

무창포항을 기준으로 약간 북서쪽 방향이었다.

배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주꾸미가 많을 거라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와아! 저기 무슨 일 났나 봐요.”

“어디? 헤엑!”

“임진왜란인가요?”

20여 분을 달리던 도중이었다.

준서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금어기가 끝나고 첫 주말이다 보니 낚싯배들이 몰려 있을 거라 예상은 했다. 더구나 물때도 주꾸미 낚시에 최적인 조금 물때……. 그런데 이건 많아도 너무 많다.

수십여 척의 낚싯배들이 빽빽이 흘러가며 바다를 꽉 메우고 있었다.

준서의 말처럼 이른바 무창포 해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적진의 포화를 뚫고 돌진하는 장수처럼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보트를 몰아 밀집한 선단 외곽으로 다가갔다.

“이제 낚시 시작하는 거죠?”

“미안하지만 다른 데로 가야겠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몇 번의 운행 경험을 쌓았다지만 아직은 초보 면허다. 서로 닿을락 말락 다른 배들과 근접한 거리에서 낚시를 하려다간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일단은 작전상 후퇴.

보트는 전쟁터를 빠져나와 정처 없는 항해를 시작했다.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는 것을 사심희가 눈치챈 모양이다.

“혹시 아는 포인트 있어요?”

“그냥 한적한 곳으로 가 보려고. 주꾸미야 바닥에 지천으로 깔렸을 텐데. 뭘.”

또다시 을지로 길모퉁이에 서 있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난 좌절하지 않았다. 고성능 어탐기로도 포착하지 못하는 주꾸미를 직접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열심히 바닥을 살피며 보트를 몰고 있을 때 준서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아저씨도 기분 좋으신가 봐요. 계속 휘파람을 부시는 걸 보니. 저도 휘파람 같이 불래요.”

“그러자. 바다에 나오니까 너도 좋지?”

“네. 그럼요.”

준서는 입술을 모아 어설프나마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억지로 웃으면서도 나는 주변의 바닥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꾸르릉!

미끄러지듯 배가 멈추자 사심희가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해전을 치르는 배들이 손톱처럼 작게 보이는 한적한 포인트였다. 보트를 멈춘 나는 허리를 숙여 물속을 살피다가 준서를 돌아보았다.

“이제 낚시해 보자.”

“이야! 신난다!”

나는 준비해 온 1.3미터 길이의 짤막한 낚싯대를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선물이다.”

“정말요? 근데 무슨 선물요?”

“……응. 개학 선물. 3학년 2학기라며?”

“……고맙습니다. 나중에 꼭 갚을게요.”

꼬치꼬치 묻는 준서에게 대충 둘러대고, 가느다란 1호 합사를 감아 놓은 베이트릴(수직 하강에 용이한 형태의 릴)을 연결해 주려 할 때였다.

“아저씨! 제가 한번 해 볼게요.”

“놔둬라. 이건 삼촌이…….”

“삼촌이라고요?”

“삼촌이나 아저씨나 비슷한 거야. 아니면 그냥 편한 대로 불러도 돼.”

“네. 삼촌! 그래도 채비는 제가 직접 연결해 보고 싶은데…….”

고집이 센 아이다.

준서는 진지한 얼굴로 손잡이에 릴을 장착했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낚싯대의 가이드로 낚싯줄을 줄줄이 연결시켰다.

그냥 고기나 잡고 즐기려는 아이가 아니로구나. 기본기부터 익히고 싶어 하다니…….

훌륭한 낚시꾼이 되겠다는 준서의 꿈이 허황된 말만은 아닌 것 같다고 어렴풋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옳지! 잘했다.”

“헤헤. 에기는 필요 없다고 하셨죠? 삼촌!”

“하하하.”

삼촌…….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얼굴에 저절로 삼촌 미소가 그려졌다.

나는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외동으로 커 왔다,

멀리 사시는 작은아버지가 있다지만, 거의 왕래가 없을뿐더러 아직 출가한 사촌 형제들도 없다.

외가 쪽은 더욱 심해서 엄마는 말 그대로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삼촌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봉돌과 일체형이다. 이걸 써라.”

“이거 본 적이 있어요. 지난번에 삼촌이 대왕문어를 잡았을 때요.”

눈썰미도 좋군. 방송에서 유심히 봐 뒀던 모양이다.

준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야광과 홀로그램이 반씩 그려진 멀티싱커 믹스를 매만졌다.

물살이 잠잠한 시각이라 10호 봉돌로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 매듭법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도와주려 할 때였다.

“우선 핀도래에 낚싯줄을 연결하고…….”

“이리 주세요.”

놀라웠다.

준서는 꽤 빠른 손놀림으로 낚싯줄에 핀도래(핀 모양의 작은 금속성 연결 고리)를 연결하고, 핀에 멀티싱커를 꽂으며 씩 웃었다.

“집에서 심심할 때마다 여러 가지 매듭을 연습해 보거든요.”

한창 장난감을 갖고 놀 나이에 매듭법이 놀이라니.

준서의 영특함에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사심희가 외쳤다.

“오프닝 멘트 하셔야죠.”

“오늘은 별다른 멘트 없이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그럼 멀티싱커 홍보 멘트라도…….”

“그건 그냥 자막으로 처리할게.”

“알겠어요.”

준서와 난간에 나란히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거무스름한 펄 바닥에는 듬성듬성 주꾸미가 기어 다니며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낚싯배들이 운집해 있는 장소보다는 개체수가 적을 테지만 그럭저럭 손맛은 볼 것 같아서 멈춰 선 위치였다.

“주꾸미는 무조건 바닥에 깔려 있어. 그러니까 봉돌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파악하는 게 제일 먼저 할 일이야. 그런 걸 바닥을 읽는다고 말하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준서는 릴의 레버를 젖혔다. 주르륵 줄이 풀려 나가다가 헐렁해지자, 그는 릴의 손잡이를 한 바퀴 돌렸다.

“오호! 베이트릴을 사용해 본 거야?”

“아뇨. 이것도 동영상으로 미리 공부하고 왔어요. 정말로 한 바퀴 감으니까 멈추는구나. 히힛.”

공부는 못한다더니 낚시 예습은 제대로 하고 왔구나.

“이렇게 봉돌을 바닥에 대고 살짝살짝 들어 보는 거야. 약간 무게감이 달라졌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내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낚싯대 끝을 까딱거리던 준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릴을 감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게 잡은 건가요?”

“챔질도 없이 그렇게 올리면 놓칠 수…….”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준서가 올린 채비 끝을 보고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야! 주꾸미다!”

머리가 연필 지우개만 한 작은 주꾸미였다.

갓 태어난 주꾸미가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멀티싱커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왔다.

이렇게 작은 주꾸미를…….

깃털이나 다름없는 미세한 무게를 정말로 파악했을까?

에이, 운이 좋았겠지.

개체수가 많았던 수년 전에는 채비를 내렸다가 10초를 세고 올리면 주꾸미가 매달려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이렇게 작은 건 보내 줘야 한단다. 더 크면 오라고.”

“……아아. ……그럼 그렇게 할게요.”

준서가 처음으로 어린이다운 모습을 보인 순간이었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주꾸미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바다에 퐁당 내려놓았다.

“잘했어. 그럼 어느 정도는 터득한 것 같으니까. 이제부터는 네 맘대로 한번 해 봐라.”

“네. 헤헤.”

이제는 내 차례인가.

지난 일 년 동안 나도 이때를 몹시 기다렸다. 이유는 단 하나. 주꾸미 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년생으로 봄에 알을 품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봄 주꾸미를 선호한다. 반면에 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로서는 가을 주꾸미가 더 좋다.

물론 봄에는 주꾸미를 낚시로 잡기 대단히 어렵다.

산란을 위해 몸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어, 봄은 소라껍데기 어구를 깔아 놓은 어부들의 계절이다.

어디 한번 볼까?

나도 준서와 똑같은 멀티싱커 믹스 10호를 사용했다. 바닥에 봉돌이 닿자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주꾸미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역시 이번에도…….

대왕문어처럼 두족류에 속한 주꾸미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 줄이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는 거침없이 낚싯대를 쭈욱 들어 올렸다. 짜릿한 진동은 아니지만, 앙증맞고 기분 좋은 손맛.

주꾸미에서 무슨 손맛이냐고 말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10호 안팎의 매우 가벼운 봉돌과 예민한 낚싯대를 사용하는 터라 주꾸미가 올라타면 확연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올라오는 도중 주꾸미가 다리를 쫙 펴고 저항이라도 한다면. 낚싯대가 움찔 고개를 처박는 게 주꾸미 낚시의 묘미다.

“왔다! 두 마리다!”

내가 자랑스럽게 외치던 순간이었다.

곁에 있던 준서가 어느새 주꾸미 한 마리를 들고 사심희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친다더니…….

우연이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준서의 활약은 계속되었다.

내가 연거푸 두 마리를 올렸다 싶으면, 녀석은 거의 한 번꼴로 주꾸미를 들어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정작 놀라게 한 것은 그에게서 초심자의 흔한 행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대개 무게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빈 채비만 올리는 경우가 많다. 초심자일수록 특히 채비를 수면까지 올려 주꾸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채비를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아이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실수로 헛챔질을 하고 두어 바퀴 릴을 감다가도, 곧 주꾸미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주르륵 채비를 도로 내리는 게 아닌가.

손끝 감각이 예사롭지 않은 녀석이다.

그제야 나는 직감했다. 어쩌면 이 아이야말로 천부적인 낚시꾼의 자질을 타고났을지 모른다고.

“너무 재밌어요.”

“장하다. 그러다가 정말로 백 마리 잡겠다. 하하.”

모자라면 보태 주려던 내 생각은 기우였다,

그리 좋은 포인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스박스 안에는 빠르게 주꾸미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하아. 손목이 아파서 좀 쉬어야 되겠어요.”

“그래. 무리하면 안 된다.”

준서는 손목을 흔들면서 구석 자리에 털썩 앉았다.

잠시 후 가만히 쉬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가 나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삼촌! 주꾸미가 죽어 가고 있어요.”

“어차피 집에 도착할 때면 거의 그렇게 된단다.”

“안 돼요. 물을 갈아 줘야겠어요.”

“알았다. 내가 해 줄게.”

잠시 낚싯대를 접고, 나는 준서의 아이스박스를 들여다보았다. 굳이 자신이 잡은 것만 가져가겠다고 들고 온 피크닉용 박스였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넣어 둔 페트병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주꾸미들은 대략 삼십 마리 정도였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씨알이 작아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잡은 것 같았는데도 양이 적어 보였다.

나는 시커먼 먹물을 따라 내고 보트 구석에 놓인 두레박으로 새 바닷물을 채워 넣었다.

다소의 활기를 찾은 주꾸미들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던 준서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좀 더 쉬지 그러냐?”

“너무 재미있어서요. 그리고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잖아요.”

아이는 말이 마치기 무섭게 릴을 감아올렸다.

“잡았어요! 이번에는 두 마리예요.”

“오우! 드디어 쌍걸이네. 씨알도 죽인다.”

“쌍걸이? 와아! 나도 쌍걸이예요. 삼촌!”

준서의 들뜬 목소리가 고요한 바다 위에 메아리쳤다.

그때 나는 반짝거리는 아이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아이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천진난만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눈동자였다.

심지어 낚시꾼의 덕목이라 할 적당한 집요함마저…….

하루 종일 뭔가 가르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어린아이에게서 내가 배운다.

눈처럼 순수한 낚시에 대한 애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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