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어반자스토어
낚시가 거의 끝나갈 무렵,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조과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선상 토론이었다.
반에 두 마리를 추가한 나는 총 세 마리를 잡았다.
그것들은 전부 나눔에 보태기로 했다.
고동우는 자신이 잡은 두 마리 중에서 작은 놈을 먹방용으로 내놓았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결과.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잡은 괴물 문어를 나눔에 쾌척하기로 했다. 물론 그중에 제일 큰 다리통 하나는 기념품으로 챙기겠다고 했다.
시간은 어느덧 낚시 종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충분히 잡았다고 판단한 나는 약간 일찍 낚싯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무심코 옆자리 사내 쪽으로 눈길을 보냈더니 그의 전동릴에서 물방울이 흩어지고 있었다.
소음도 거의 없는 좋은 물건이라 작동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휴우~”
속칭 ‘들어뽕’.
사내는 혼자서 조용히 작은 문어 한 마리를 들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방생 기준을 넘을 정도의 크기였다.
다행이군.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겠구나, 나는 내심 안도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삡! 삐이!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V호를 찾으신 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번의 부저 소리와 함께 선장의 안내 마지막 멘트가 울려 퍼졌다. 그때 내 등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거…….”
뒤를 돌아보니 명품족 사내였다.
그가 방금 잡은 문어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무슨 일일인가 싶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반자에서는 나눔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보잘것없지만 이것도 보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저는 AON TV 보는 사람입니다.”
“아……. 굳이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넣어 두세요.”
뜻밖의 일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부탁입니다.”
“빈손으로 가시지 말고 챙겨 가세요.”
“어차피 아까 그 봉돌이 아니었으면 구경도 못 했을 문어였습니다. 그냥 놓고 가겠습니다.”
“어어…….”
사내는 말없이 내 아이스박스에 문어를 밀어 넣고는 얼른 돌아가 버렸다.
“별일이네. 저 친구가 뭐 켕기는 거라도 있나?”
“구피 님도 참…….”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비싼 장비들을 정성스럽게 마른 수건으로 문지르며 자리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정말 빈손으로 돌아가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오늘은 다른 것을 얻어 가니까 만족합니다.”
그의 말뜻이 뭔지 몰라 잠깐 어리둥절했다.
문어 대신 가자미를 한 마리 건졌다는 말은 아니겠고.
사내가 비시식 웃으며 긴 얘기를 꺼냈다.
“낚시는 혼자서만 하는 게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물고기와 나 둘만의 치열한 싸움이라고 말입니다. 제일 좋은 장비와 채비를 쓰는 이유도 이길 확률을 어쨌든 높여 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럭 님이 낚시하는 걸 보니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슬쩍 넘겨짚어 보았다.
“그렇습니다. 꼭 값비싼 장비가 아니더라도 상황에 맞게 채비 운용만 잘하면 좋은 조과를 낼 수도 있죠. 또 말을 꺼내기 그렇습니다만 그 LED 에기는…….”
“제 얘기는 그게 아닙니다.”
“그럼……?”
내가 잘못 넘겨짚었나?
사내가 입가에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낚시가 꼭 혼자서만 하는 게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사내는 내가 고동우와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독려하던 낚시를, 더 나아가 배 안의 손님들과 응원의 마음을 나누던 모습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가 자존심을 버리고 봉돌을 얻으려 했던 것도 문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고 싶어서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어렵게 잡은 문어를 선뜻 내놓은 이유도.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어반자TV,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무뚝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내다.
그는 자신의 할 말만 끝내고 휙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대화였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오늘 어떤 요리를 선보일까 재잘대는 사심희와 대왕문어를 잡았다고 아이와 통화를 나누는 고동우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이 새삼 정겹게 다가온 이유는 사내가 남긴 말 때문이리라.
혼자가 아니라 함께해서 즐거운 낚시.
사내의 말을 곱씹고 있을 때, 어느덧 공현진항이 가까워져 있었다.
* * *
출조점에 문어를 몽땅 맡겼다.
자숙 문어 상태로 삶아 가져갈 생각이었다.
문어가 푹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동우는 으슥한 구석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아침에 제안 말이야. 아내에게 허락받았다.”
“정말입니까?”
“오늘 멀티싱커의 가공할 위력을 봤는데도 안 한다면 그게 사람이냐? 틀림없이 대박이 날 거라고 아내한테 우겼지 뭐냐. 헤헤.”
휴우.
결심을 굳힌 것은 다행이나, 대박을 운운하니 은근히 부담감도 없지 않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당장 제가 낚시점 주인을 만나 보죠. 아니면 같이 가 보시는 건 어때요?”
“오늘은 안 될까?”
“너무 성급해하지 마세요. 일단 구피 님은 대출이 얼마나 가능한지부터 파악해 놓으셔야죠.”
“아! 그렇지. 그럼 나는 내일 아침 은행부터 다녀오마. 낚시점은 돈이 되면 함께 가는 걸로 하고.”
“좋습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사심희가 눈을 깜빡거렸다.
“두 분, 무슨 얘기죠? 낚시점은 뭐고 대출은 또 뭐죠?”
“미안하지만 그런 게 있어.”
아직은 확정된 게 아니다.
마지막 관문인 은행 대출 여부가 남아 있으니까.
아주머니는 부탁드린 대로 푹 삶은 문어를 1킬로그램 단위로 손질까지 해 주셨다.
고작 4마리에서 무려 35조각으로 탈바꿈했다.
“내가 잡은 괴물 문어가 절반인 거 알지?”
“아이고, 방송을 보면 다 알게 될 거예요.”
고동우와 무거운 박스를 함께 들고 인근의 택배 서비스 업체를 찾았다. 일일이 35명의 주소를 적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선착순 이벤트에 당첨된 시청자들의 식탁에 조만간 굵직한 문어 다리가 올려져 있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상경 길에 올랐다.
보람이는 홀로 아지트를 지키고 있었다.
“도라에몽! 좀 놀면서 일해라.”
“구피 님이 괴물을 잡으셨다면서요? 어디 좀 봐요.”
“다리 한 짝만 가져왔는데 한번 볼래? 이건 우리 애들 먹일 거니까 넘보지는 마라.”
신이 난 고동우가 팔뚝만큼 두꺼운 문어의 다리통을 꺼내어 보람이의 앞에서 흔들었다.
“히야. 다리만 봐도 엄청나네요. 구피 님이 이런 걸 잡다니 신기하다…….”
우리는 간단하게 문어 초회를 만들어 먹었다.
고동우에게 첫수의 기쁨을 안겨 주었던 문어 한 마리는 네 사람의 배를 채우고도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보람이에게 신제품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도라에몽! 상품을 하나 더 출시해야 되겠더라.”
“……하나 더?”
“야광과 홀로그램을 반씩 새겨 넣은 제품.”
“그건 왜?”
“장난이 아니었거든. 우연히 반씩 섞어서 써 봤는데, 그게 아니었으면 오늘 문어도 없었어. 제품명은 짝짝이로 하면 어떨까 싶고.”
보람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품명으로는 촌스러워. ‘멀티싱커 믹스’로 하겠어.”
오우. 라이트, 홀로그램에 이어 믹스까지.
좋은 이름을 척척 떠올리는 걸 보면 어디 작명 학원이라도 다녔나 보다.
아지트를 나서면서, 나는 보람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 그리고……. 어쩌면 우리 제품의 첫 오프라인 매장이 생길 수도 있겠어.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오프라인?”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동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마지막 남은 문어 초회를 먹어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 * *
다음 날 오후.
나는 아지트의 계단을 올랐다. 고동우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분당의 낚시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고동우는 은행에 대출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동우는 무심한 척 손을 흔들었지만,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린 눈치였다.
“낚시점에는 잘 다녀왔냐?”
“구피 님도 은행 상담 하고 오신 거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얼마…….”
“거기 일은…….”
약속이나 한 듯이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마음이 급했다. 제일 먼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은 고동우가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동우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고작 5천만 원이네. 융자 가능 금액이. 기존 대출도 있고, 한도도 줄었다나 뭐라나. 그 정도로 일단 시작부터 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왔다.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낚시점 주인은 1억 원을 부르던데요. 일시에 재고를 정리할 수 있는 대가로 10%를 더 깎아 준 금액이었고요. 자투리 금액도 깔끔하게 치고…….”
“……1억 원?”
고동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아지트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을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건가.
어반자TV의 자금 상황이 풀린지 고작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베타를 끌어안고 이제 마음껏 맛있는 간식을 사 주겠다고 약속한 일이 사흘 전이었다.
돈이야 이럴 때 쓰려고 버는 거겠지…….
실망감에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고동우를 바라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현금 서비스’라는 단어가 떠다니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접을 수야 없는 노릇.
나는 작심하고 플랜B를 꺼내 들었다.
“구피 님, 이렇게 하시죠.”
“…….”
“제가 자금의 절반을 투자할게요. 물론 가게 운영은 구피 님이 전적으로 알아서 하시는 걸로 하고요.”
“……네게 그런 큰돈이 있어?”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왠지 너한테 폐를 끼치는 것 같구나.”
“투자라니까요. 구피 님의 크게 키워 주실 거라 믿어요. 아무 말씀 마시고 내일 가서 계약합시다.”
빌려 드릴까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대출이 많은 고동우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싶지 않아, 상환 부담이 없도록 투자라는 명분을 택했다.
아지트를 나와 황선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5천만 원으로 계약하고, 잔금은 3개월 동안 매월 분할 지급해도 되겠냐는 내 제안을 그는 흔쾌히 받아 주었다.
3개월 동안 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겠구나…….
대략의 월 정산액의 추이를 감안하면, 그 기간이면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시식 웃음이 나왔다.
투자의 계절인가? 언젠가 뿌린 만큼 거둘 날이 오겠지.
자산은 날로 불어나는데 호주머니는 텅 비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 * *
다음 날.
나는 고동우를 동반하여 낚시점에서 물품 인수 계약을 마치고, 서현역의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투자의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면서 고동우는 법인 형태를 고집했다.
수개월 동안 벌써 세 번째 회사를 설립하러 왔다는 나를 알아보고, 법무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우여곡절 끝에 설립된 세 번째 회사는 ‘어반자스토어’라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