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46화 (46/130)

[제46화] 크라켄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까부터 근처의 바닥에 딱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던 문어였다.

내 채비를 발견한 놈이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스르르.

웅크리고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놀라운 크기였다. 녀석이 기다란 다리를 뻗고 내 채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계심이 많은 놈이었다.

촉수 하나로 내 미끼를 툭 건드리는 순간 목덜미가 뻣뻣해진 느낌이었다.

드디어 걸렸구나!

놈이 경계를 풀고 나비처럼 사뿐히 미끼에 내려앉았다.

바로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낚싯대를 힘차게 치켜들었다. 육중하고 끈적한,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손맛이었다.

“통발에 걸린 것 아니냐?”

“문어 맞아요?”

고동우와 사심희는 아직 문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반나절 동안 소식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들에게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바닥에서 띄우자마자 다리를 쫙 펼친 문어의 저항 때문이었다.

전동릴 대신 수동릴을 택한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문어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스릴이 넘치는 릴링이었다.

다행히 멀티싱커의 날카로운 바늘이 문어의 입에 깊이 박혀 있어, 놓칠 것 같다는 염려는 하지 않았다.

“문어가 맞나 보다! 그렇다면 아주 엄청난 놈이야!”

아래로 처박혀 간혹 꿈틀거리는 초릿대를 주시하며 고동우가 외쳤다. 나는 그를 향해 씩 한번 웃고는 다시 사투를 이어 갔다.

선장의 행동은 민첩했다.

붉은 대왕문어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무섭게 그는 갈고리로 낚아챘다. 그리고 육중한 그것을 갑판 위에 털썩 내려놓았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8킬로는 되겠다. 본전 제대로 찾으셨네요. 하하.”

“드디어 문어가 나왔구나.”

주변의 손님들에게서 축하 세례가 날아들었다.

문어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던 그들에게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다만 옆자리의 사내는 말없이 문어를 곁눈질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방금 건져 낸 대왕문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숨을 구멍이라도 찾는지 뱃전을 기어 다니는 그것을 가리키며 선장이 외쳤다.

“두 손으로 들어 올리세요. 다리를 쫙 벌리고. 조황 사진 찍어야죠.”

배 안에서 누구보다도 마음을 졸였을 선장이었다. 흔쾌히 그를 위해 사진 촬영에 임했다.

그런데 너무 크다.

생애 첫 대왕문어를 번쩍 들고 포즈를 취했더니, 문어에 가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선장도, 그 옆의 사심희도 보이지 않았다.

“이불처럼 덮고 자도 되겠수다.”

잇몸을 만개한 선장이 던진 농담이었다.

한바탕 흥분을 뒤로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잠깐만요! 제게 괜찮은 봉돌이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하나씩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불필요한 선심은 아니었다.

한 번의 결과로 완벽한 성공을 말할 수는 없다.

정말로 짝짝이 봉돌에게서 탁월한 유인 효과가 있었던 걸까?

나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서 유사한 반응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짝짝이 멀티싱커를 받은 다른 조사들도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아니면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모든 사람들이 멀티싱커를 가져가지는 않았다.

봉돌 하나가 조과를 좌지우지할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내 옆자리 사내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마지못해 지랄발광 LED 에기는 떼어 냈지만, 멀티싱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배 안에 다시 활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히트다! 히트!”

반대쪽에서 튀어나온 누군가의 호들갑스러운 외침이었다.

돌아보니 방금 전에 짝짝이 봉돌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던 낚시꾼이었다.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가.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하며 미소 짓던 그때였다. 휘파람으로 물속을 탐색하던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엄청난 문어가 나타났다.

어느 틈에 다가와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까 내가 잡았던 문어보다 두 배에 가까운 무시무시한 크기의 문어가 고동우의 채비를 덮치고 있었다.

‘꿈에서 괴물 문어와 열심히 싸우고 있었는데…….’

아침에 고동우가 잠꼬대처럼 웅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고동우의 옆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공중을 맴도는 갈매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구피 님! 왔어요!”

마음이 급해져 가만둘 수가 없었다.

고동우는 화들짝 놀라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기계적이고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끄응! 이게…… 뭐지? 문어는 아닌 것 같아…….”

“빨리 띄우세요. 최대치로 올려요. 안 그러면…….”

문어가 바닥에 딱 달라붙으면 웬만한 힘으로는 제압할 수 없다.

위이잉~ 끼리릭~

고동우의 전동릴이 신음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줄을 회수하고는 있었다. 물속을 보니 문어가 바닥을 탈출하여 두둥실 떠올랐다. 인단 안심이다.

“이거……. 도대체 뭐냐? 올라오긴 하는 것 같은데……. 폐어구가 아닐까?”

뭐기는. 간밤에 보았다던 괴물 문어지.

꿈은 반대라더니 고동우는 예지몽을 꾼 모양이다.

“이게 문어라면 정말 엄청난 건데.”

증층까지 올라오자 고동우는 슬슬 자신이 괴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어어? 꼼짝도 안 해. 다 올라왔는데…….”

정말로 거의 다 올라왔던 문어였다.

고동우의 전동릴이 작동을 멈췄다. 곧 엄청난 괴물을 구경하려던 나로서도 어리둥절했다.

“수동으로 한번 당겨 보세요!”

“아, 알았어.”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낚싯줄의 팽팽한 텐션으로 미루어, 문어가 도망친 것 같지는 않다.

수중에 장애물이 있을 리는 없고. 설마 뒤편의 조사와 서로 줄이 엉킨 것은 아닐까?

배의 뒤쪽으로 달려가 둘러보았더니 모두들 평온한 모습.

다른 조사와 엉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뭔가 집히는 게 있어 얼른 돌아왔더니, 어느새 달려온 선장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어가 배 밑창에 달라붙은 거요. 간혹 이런 일이 있기는 한데. 쯧쯧쯧.”

“안 돼요. 정말 큰 놈이란 말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그냥 채비를 끊고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거요.”

경험에서 나온 선장의 말에 고동우는 울상을 지었다.

잠시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선장이 갈고리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큰 기대는 하지 마쇼. 시도라도 해 보려는 거니까.”

“네네. 그럼요.”

선장은 긴 갈고리를 물속에 넣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선장의 뒤에 붙어 힘을 보태려 나섰다.

티잉!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앞에서 힘을 쓰던 선장이 갈고리를 든 채로 벌러덩 넘어졌다. 나 또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이고! 이거 안 되겠소. 사람 열 명이 붙어도 못 당할 거요. 이것 좀 보쇼.”

선장이 내민 갈고리 끝에 문어의 빨판이 걸려 있었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빨판을 보고 고동우는 더 크게 절망했다.

나는 고동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선장님은 일 보세요. 저희가 알아서 해 보겠습니다.”

“문어가 다시 도망칠 때를 기다려 보든가요. 하지만 그게 되나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선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선실로 돌아갔다.

고동우는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낚싯대를 툭툭 거칠게 들어 올렸다. 반쯤 포기한 얼굴이었다.

나는 난간에 몸을 굽히고 배의 밑창 쪽을 살펴보았다.

“으으음.”

놀라운 광경에 내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이었다.

배의 옆면에 어른 팔뚝만 한 다리통이 삐져나와 있었다. 몸통의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괴물의 일부분이었다.

“구피 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채비를 끊지는 못하겠다. 빨판을 보니까 더 그래.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문어야.

“그럼 선장님 말씀처럼 가만히 놔둬 보세요. 자꾸 자극하지 말고요.”

“나도 알지만 언제 도망갈 줄 모르니까 불안해서 그래.”

“가만히 계셔 보세요. 제가…….”

더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계속 지켜보겠노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문어는 언젠가는 잠잠해진 틈을 타서 탈출을 시도할 것이다.

줄이 느슨한 상태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문어는 바늘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문어가 움직일 때에 맞춰 세게 챔질을 해야만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결국 내가 문어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는 수밖에.

이것 참. 신경 쓰여서 낚시를 할 수가 없네.

나는 손에 쥔 낚싯대보다, 배의 밑창을 경계하느라 분주해졌다.

“왔구나! 어디 갔다가 이제 왔노.”

“이크! 나도 걸었다! 크하하.”

배의 이곳저곳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짝짝이 멀티싱커가 엄청난 효과를 선보이고 있었다.

구피 님이 위대한 발견을 하신 게 틀림없군.

피시식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내 손에 들고 있던 낚싯대에 육중한 느낌이 전해 왔다.

엉겁결에 나를 찾아온 두 번째 문어.

느낌상으로 첫수와 유사한 무게였다.

엉겁결에 걸린 문어가 챔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배의 밑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수동릴을 감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이때…….

거의 중층까지 문어를 끌어 올렸을 때였다. 심장이 출렁 내려앉았다.

배의 아래쪽에 걸쳐 있던 괴물의 촉수가 갑자기 스르르 움직인 것이다.

나는 릴링을 멈췄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 있던 고동우에게 외쳤다.

“구피 님! 놈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낚싯줄이 팽팽해진 것 같아요.”

“정말이냐?”

실제로는 거치대에 올려진 그의 낚싯대나 낚싯줄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고동우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기다리세요. 늘어진 줄만 살짝 회수하시고요”

괴물도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추진력을 쌓으려는지 잔뜩 몸을 웅크리던 놈이 힘차게 다리를 뻗어 탈출하려던 찰나.

“지금입니다! 챔질!”

내 신호에 맞춰 고동우는 힘차게 낚싯대를 들어 올리고, 곧바로 릴을 감기 시작했다.

괴물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할 겨를도 없이 다시 자신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선장이 달려와 수면 위에 떠오른 거대한 생명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곧 정신을 차린 그는 갈고리를 쥐고 녀석의 몸통을 낚아챘다.

“어이쿠!”

무시무시하게 큰 대왕문어였다.

갑판을 가득 덮은 놈의 위용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떤 사람은 구경하려고 달려왔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무서워서 근처에도 못 가겠어요. 기념 촬영이고 뭐고 난 못 하겠어요.”

“알았수다. 이걸 놓쳤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여하간 대단들 하쇼.”

선장이 바닥에 놓인 문어에게 카메라를 들이민 순간,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이미지가 있었다.

크라켄.

북유럽 차가운 바다에 출몰했다는 전설의 문어(오징어라는 설도 있으나 어차피 전설 속의 생명체일 뿐이다).

상어도 꿀꺽 삼킨다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형상이었다.

“근자에 보기 드문 대왕문어네요. 손님이 오늘 장원이 확실할 거요. 허허허.”

오랜 경력의 선장도 이런 대물은 오랜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대왕문어의 최대 무게는 71kg. 우리나라 동해에서도 15kg 정도면 몹시 큰 편에 속한다.

그런데 고동우가 잡은 문어는 20kg에 육박하는 괴물급이었으니…….

배 안을 뒤엎었던 한차례의 흥분이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선장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손님, 조금 전에 문어를 올리는 것 같던데…….”

“하하. 올리다가 떨궜나 봐요.”

“에이, 조심 좀 하시지. 그 귀한 문어를. 쯧쯧.”

거의 다 올리긴 했었다.

괴물 문어 때문에 손을 놓고 있던 중에 도망친 것이다. 운도 참 좋은 놈이지.

“내 평생에 이런 대어를 잡다니. 이게 정말 짝짝이 멀티싱커 때문일까?”

기나긴 기다림 끝에 인생 물고기를 잡은 고동우.

나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선장이 갈고리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보람이에게 칭찬을 해 주어야겠어.”

“칭찬은 구피 님이 받으셔야죠. 평소에 양말을 그렇게 신고 다녔을 때부터 천재라고 생각했다니까요.”

“솔직히 나야 아무 생각 없이 해 본 거였어.”

“위대한 발견은 원래 우연한 실수에서 탄생하는 법이죠. 하하.”

신제품의 테스트는 완벽한 대성공이었다.

“저도 하나만 써 봐도 될까요?”

“저도요. 그거참 신기할세.”

아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멀티싱커를 원하며 손을 내밀던 그때였다.

“저어, 남은 봉돌 있으면 저도 하나만…….”

옆자리의 명품족 사내였다.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손에 짝짝이 봉돌을 하나 건네주었다.

“건방진 녀석 같던데, 거절하지 그랬어?”

“쉿! 듣겠어요.”

“천성이 혼자 잘난 독불장군일 거야. 난 저런 녀석들 싫더라.”

“남의 성격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거 아닙니다.”

고동우도 하루 종일 그의 뻣뻣한 태도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성격의 차이일 뿐.

조과가 아주 형편없는 날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아쉬워야 또 오게 되는 것이 낚시라고.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비밀의 능력을 얻기 전, 직접 겪은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낚시를 와서 한 마리도 건지지 못했을 때의 허탈함. 그 기분은 아쉬움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라는 것을.

같은 취미를 가진 낚시꾼으로서, 나는 명품족 사내가 한 마리라도 손맛을 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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