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짝짝이
배가 출발하기 전에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로드는 손에 익은 우럭대를 가져왔다. 전동릴은 가져오지 않았다. 진득한 손맛을 위해 낡은 수동 장구통릴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곁눈질을 해 보니 명품족 사내의 최신형 장비가 눈에 확 들어왔다.
웬만해서는 구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장비들이다.
고개를 돌리려다 이번에는 그의 낚싯줄에 매달려 있는 채비가 시선을 끌었다.
빨간색 스커트가 달린 기성 채비까지는 알겠는데 은색, 금색으로 번뜩이는 에기들이 다섯 개나 매달려 있었다.
그중의 두 개는 어두운 물속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LED가 발광하는 고가의 에기였다.
허어. 낚시에 투자를 많이 하시는 분이군. 밑걸림 한 번이면 몇만 원씩 수장되겠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벌겋게 녹슨 내 장비를 보니 다소 위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뭡니까?”
멀티싱커 야광 제품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사내가 관심을 보였다.
“아…… 멀티싱커라고 들어 보셨나요? 야광 제품인데 하나 써 보시겠어요?”
“아닙니다. 저도 야광 봉돌은 충분히 가져왔습니다.”
“아, 그래요.”
야광 봉돌이야 수없이 많은 제품이 나와 있다. 하지만 이건 무게 조절 봉돌이란 말이다. 사내는 아직 멀티싱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도 없는 눈치였다.
배는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저기가 어제 제가 올라갔던 봉우리예요. 이야! 바다에서 보니까 또 새롭네요.”
“사시미 님이 정말 저기까지 올라간 거야?”
왼쪽으로 보이는 설악산을 손가락질하며 사심희와 고동우가 감탄을 연발했다. 사심희는 벌써부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설악산의 전경을 찍어 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북쪽 수역으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꾸르릉 소리는 내며 배가 멈췄다.
“여기서만 어제 열 마리가 나왔어요. 다들 열심히 해 보세요.”
키가 작은 V호 선장.
인상이 좋은 그가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낚시의 시작을 알렸다.
동은 텄지만 아직은 어두운 시각.
나는 멀티싱커 야광 봉돌을 연결해 40호로 시작하기로 했다.
멀티싱커 옆에는 싸구려 일반 에기 두 개를 추가했다. 바늘이 달린 멀티싱커를 포함하면 세 개가 되는 형태였다.
굳이 밋밋한 에기를 준비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제품의 효과를 정확히 테스트하기 위해 다른 변수들을 제거하려는 목적이었다.
삐이!
한 번의 부저 소리와 동시에 내 채비가 허연 물방울을 일으키며 하강했다.
물살이 빠르군.
40호 봉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조류였다. 나는 곧바로 채비를 올리고 10호 봉돌을 추가했다.
즉석에서 무게 조절이 용이한 멀티싱커.
하나 ‘봉돌’로서 멀티싱커 본연의 장점은 이미 검증된바, 오늘 테스트의 목적은 아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신제품의 테스트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에기 한 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가.
다른 하나는 야광과 홀로그램 표면이 대상어를 유인하는 효과가 충분히 있는가.
첫 번째 기준은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시작과 동시에 고동우가 배에서 첫 번째 문어를 끌어 올린 것이 그 증거였다. 사실 나도 그가 첫수를 잡는 장면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확히 멀티싱커 바늘에 걸렸네. 도라에몽이 바늘 하나는 잘 만들었단 말이야.”
활짝 웃으며 중얼거리던 고동우는 곧 선장의 한마디에 시무룩해졌다.
“600그램 미달입니다. 방생하세요.”
대왕문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돌문어만 한 사이즈.
8월 말인지라 아직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어린 문어였던 것이다.
고동우는 아쉬운 눈빛으로 잡은 문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다 바다에 휙 빠뜨렸다. 흔하디흔한 농담을 던지면서.
“빨리 가서 부모님 모시고 오거라.”
비록 기준 무게에 미치지 못하는 문어였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이제 유인 효과를 점검할 차례.
멀티싱커의 야광 효과는 다른 야광 제품과 견주어 뒤떨어지지만 않아도 성공이다.
따라서 나와 고동우가 잡은 마릿수가 다른 조사들에 비해 뒤처지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후욱 휘파람을 물속으로 불어 넣으며 문어들의 행동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때마침 발밑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문어 한 마리가 몸통을 부풀리며 갑자기 다가온 미끼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지! 움직인다!
문어가 기다란 촉수를 늘어뜨리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이 노리고 있는 대상물은 내 채비가 아니었다.
스르르.
놈은 LED 불빛을 발광하는 내 옆의 에기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역시 비싼 값을 하는 건가.
옆자리 사내를 흘깃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갑자기 문어가 움직임을 멈췄다.
처음에는 나도 무슨 일인가 했다. 가만히 관찰한 결과, LED 불빛이 원인인 것 같았다.
지나치게 강렬한 불빛이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문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을지 몰라도, 가까이 다가간 문어에게 그것은 점점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했을 것이다.
쯧쯧.
나는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 뭐라고 조언을 해 주기에는 섣부른 느낌이 있었다.
그게 싫으면 나한테라도 좀 와라.
나는 문어의 행동을 계속 주시했다. 문어가 LED를 피해 내 쪽으로 돌아서기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면서.
온다!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문어가 한 발짝씩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낚싯대 끝을 가볍게 세 번 흔들고 가만히 내려놓았다. 문어를 유인하기 위한 액션이었다.
꾸물꾸물.
은은한 야광 불빛에 이끌려 문어는 어느새 내 채비의 10센티미터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경계심을 풀고 살포시 내려앉게 될 녀석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다.
어라?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말았다. 문어는 내 채비를 지나쳐 곧장 고동우의 채비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한 반전이었다.
“왔어!”
고동우는 두 번째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문어의 몸통이 그의 채비에 올라타기 무섭게, 그의 낚싯대 끝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히야. 이거 오늘 날을 제대로 잡았군. 문어가 또 걸렸어.”
“축하합니다. 구피 님 날이네요.”
“손맛 죽인다. 이번에는 방생 사이즈가 아냐.”
나도 알고 있다. 2킬로그램은 족히 될 법한 문어다.
“아싸! 아까 그 문애가 부모님이 아니고 형님을 불러왔구나. 크하하.”
‘문애’는 갓 태어난 문어 새끼를 부르는 낚시꾼의 농담.
묵직한 손맛을 만끽한 고동우의 입이 귀에 걸쳤다. 그때 문득 그의 채비에서 뭔가 특이한 점이 느껴졌다.
“야광만 끼운 게 아니네요?”
“앗! 내 정신 좀 보게.”
고동우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또한 나처럼 50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20호 두 개와 10호짜리 한 개. 그런데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20호 두 개는 야광이고, 맨 아래의 10호는 홀로그램으로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아이고, 구피 님. 봉돌이랑 양말이랑 세트네요.”
“내 정신 좀 보게. 시작부터 서둘렀더만. 하하.”
평소에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고 다니는 고동우.
그가 봉돌 또한 별생각 없이 대충 끼운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겠지? 날도 밝았으니 이참에 홀로그램으로 교체해야겠다.”
연거푸 두 마리의 손맛을 본 뒤라 고동우는 잔뜩 신이 났다. 그는 씩 웃으며 모든 봉돌을 홀로그램으로 교체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입질도 받지 못한 나도 홀로그램 봉돌로 바꿔 달았다. 옆자리의 사내가 이번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슬쩍 물어보았다.
“하나 써 보실래요? 오늘 낚시가 좋아서 홀로그램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저도 비슷한 걸 가져왔습니다.”
사내는 이번에도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거나, 아니면 비싼 채비를 더 믿는 유형 같았다.
낚시를 시작하고 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선상 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고동우의 첫수 이후로 문어 얼굴을 본 사람은 없었다.
이쯤 되면 제일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은 바로 선장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제만 해도……. 다들 채비 걷으세요. 이동합니다.”
새로운 포인트로 이동을 하는 사이 뱃전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대왕문어의 꿈을 안고 멀리서 온 낚시꾼들의 속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잠시 뒤 배가 멈추자마자 사람들은 기계처럼 벌떡 일어섰다.
“어째 오늘은 입질도 없는 거여~~”
“여기서도 안 나오면 거의 절망인데.”
아직은 초반이라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동해의 시원한 바람은 좋았지만, 고기가 나오지 않으니 피로가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시원한 한 방이 절실한 시점.
그때 꽤 큼직한 문어 한 마리가 옆자리 사내의 발치로 다가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문어가 옆 조사의 요란한 불빛을 피해 달아나고 말았다.
옆에서 열심히 채비를 흔들어 대던 나의 노력도 허사였다. 문어는 많이 놀랐는지 배의 진행 방향과는 정반대로 자취를 감춰다.
안 되겠군.
그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라도 뭐라고 말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저어, 문어들이 LED 불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에기를 다른 걸로 교체해 보심이…….”
“그럴 리가요. 선장이 문제예요. 문어가 없는 곳만 골라서 뺑뺑 돌고 있잖아요.”
“……그렇진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
더 강하게 말했다가는 오해만 발생할 분위기.
하는 수 없이 나도 입을 닫아 버렸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관찰한 바로는 선장의 포인트 선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간간이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문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활성도였다.
전날 동네잔치를 벌이며 포식을 했는지, 문어들은 화려한 미끼의 유혹에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에이, 설마…….
감감무소식이 이어질 때면 낚시꾼의 머리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기 마련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은 고동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그는 첫수의 흥분을 뒤로하고 힘없이 낚싯대를 휘젓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인데.
나는 휘리릭 채비를 회수하고 멀티싱커를 해체했다. 모두 세 조각의 홀로그램 봉돌. 나는 가운데 부분만 야광 제품으로 교체했다.
“뭐냐? 나한테는 짝짝이 양말 신는다고 뭐라 하더니만.”
“그냥 한번 시도해 보는 거예요. 시험 삼아서.”
홀로그램과 야광의 믹스 형태.
그나마 오늘 유일한 문어를 낚아 올렸던 방식이 아니던가. 큰 기대는 없었다. 하도 나오지 않으니까 미친 척하고 해 보려는 심산이었다.
물고기의 마음은 알 길이 없다.
빨간색 방울토마토를 끼워 개우럭을 잡았다는 사람도 있고, 라면 스프를 미끼에 뿌렸더니 매우 잘 물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은 적 있었다.
광어 낚시에 쓰는 웜이나, 에기들만 해도 그렇다.
펄색, 빨간색, 고추장 무늬, 호랑이 무늬 등등 현실의 바다에는 없는 형형색색의 색깔과 형태에 물고기가 반응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궁금하면 물고기에게 물어보시든가.’
이 미끼를 과연 물고기가 물어 줄까 궁금할 때, 낚시꾼들이 흔히 던지는 농담이다.
봉돌이면서 동시에 미끼 겸용인 멀티싱커 신제품.
야광과 홀로그램을 짝짝이로 연결한 그것을, 나는 바다에 툭 떨궜다.
대왕문어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