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44화 (44/130)

[제44화] 오프라인

“방금……. 낚시점을 정리한다고 하셨죠?”

“네. 갑자기 미안해요. 그동안 단골로 오셨는데.”

“그럼 혹시 낚시점을 인수한다는 사람은 없던가요?”

“어유. 누가 인수를 하겠어요. 한 달 뒤면 여기 임대차 계약이 끝나거든요. 그때까지 50% 세일로 재고 정리가 되어야 할 텐데.”

“아…….”

황선태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그득했다.

“건물 주인이 직접 여기서 장사를 한다나 봐요. 듣기로는 가구점이라던가?”

“그럼 매대나 선반이나 그런 것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황선태가 장난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하하. 설마 우럭 님이 낚시점 운영에 관심 있으신 건 아니죠?”

“아, 그건 아닙니다.”

“폐기 처분 해야죠 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제발 가져가면 좋겠어요.”

“그렇군요……. 여기 계산 다 된 거죠?”

후닥닥 낚시점을 빠져나가는 내 등 뒤로 황선태의 해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우럭 님! 필요한 거 찜해 놓고 가세요! 세일 시작하면 없어질지도 몰라요.”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럴 여유는 없었다.

고동우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겠다.

물고기를 키우기보다는 잡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내. 그렇다면 물고기를 잡는 도구를 다루는 일이 딱이다.

비록 이런저런 이유로 수족관은 망했다지만, 입담이 좋아 장사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역시 돈이 문제다.

그에게 전화를 걸까 휴대폰을 꺼내 들고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당장 애들 학원비도 없어 건물마저 팔아야 하는 그에게 물품들을 구입할 돈이 있을까? 아무리 반값 처분이라고는 하지만 어림잡아 수천만 원은 들어갈 텐데.

에잇. 이놈의 오지랖이라니.

나는 꺼냈던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나처럼 단신도 아니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섣부른 얘기를 꺼낼 수는 없다.

신중해야 한다.

나는 일단 집으로 향했다.

조만간 낚시를 가서 차근히 얘기를 꺼내 볼 참이었다. 그때까지 좋은 그림이 떠오르면 좋겠다만.

* * *

이틀 후.

나는 또 심야의 도로를 달려 아지트에 도착했다. 고동우는 큰길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변함없이 자신의 몸보다 큰 허름한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심지어 낚시 장화는 고사하고 슬리퍼를 끌고 나오다니.

“구피 님 양말이…….”

“이런! 급하게 나오느라 또 짝짝이로 신었군. 헤헷.”

고동우는 한쪽에는 검은색, 다른 쪽에는 회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처음이 아니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얼른 가자! 오늘 대왕문어들 다 죽었어!”

“네. 그럼 달려 보겠습니다.”

“오늘 무조건 10킬로 오버짜리로 하나 잡고 온다.”

“좋은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그런 거 다 헛소리야.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거지.”

하루 전날 대왕문어를 잡으러 간다는 예고편을 올려 두었다.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나눔 요청 메일들이 쇄도했다. 사유를 불문하고 선착순으로 대상자를 정하겠다는 안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선착순으로 한 거냐?”

“그냥요. 이벤트라고나 할까요.”

AON과의 낚시 이후로 자신감이 부쩍 커졌다지만, 대왕문어는 아직 잡아 보지 못한 미지의 대상어.

솔직히 주변에서 하도 꽝이 많다고 하여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이벤트였다.

빈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은 마당에 공연히 사람들의 기대감만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굳이 다른 핑계를 대자면, 사연과 상관없이 나눔을 행하는 변화 또한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내 마음을 알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동우가 염장을 지른다.

“배에서 절반은 꽝이라던데, 부담을 덜려고 그런 거 아냐?”

“아이고. 구피 님과 제가 두 명 아닙니까? 확률적으로도 둘이서 한 마리는 잡지 않겠어요?”

“이거 어깨가 무겁구만. 괜히 따라온 거 아닌가 싶어. 큭큭.”

고동우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내분이 나와 만났다는 것을 아직 말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는 걸까?

평소와 똑같이 잇몸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약간의 애잔함이 느껴졌다.

“사시미 님은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숙소 주소를 받았어요. 가다가 태우면 됩니다. 그보다 구피 님께 드릴 말씀이…….”

단둘이 있을 때 얘기를 꺼내는 게 좋겠다.

은근슬쩍 말꼬리를 흐리자, 고동우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곁눈질했다.

“뭔데 그리 뜸을 들이나?”

“사실은 엊그제 형수님을 뵈었어요.”

차 안에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고동우의 작은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금 더 버텨 보자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미안하다. 융자가 있어 팔아도 얼마 안 남겠지만 그거라도 팔긴 팔아야 할 상황은 맞아.”

“수족관 문 닫으면 다른 계획은 있나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지금도 열심히 궁리를…….”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 대책이 없다는 의미였다.

길게 끌 것도 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낚시점 해 보고 싶다고 하셨죠?”

“낚시점? 그것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야.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더라고.”

“마침 좋은 매물이 나와서 알려 드리는 거예요. 원가보다 싸게 물건을 들여 놓을 수 있는 기회예요.”

“원가보다 싸게?”

나는 잠깐 길가에 차를 멈췄다.

그리고 분당 낚시점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죄다 말해 주었다. 옮겨 갈 수 있는 모든 기물들도 공짜라는 설명과 함께.

눈을 번득이며 솔깃해하던 고동우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깃한 얘기는 맞는데……. 결국 돈이 없어.”

“건물에 융자금이 있다고 하셨죠? 추가 대출이 가능할 수도 있잖아요.”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 건물 팔고 대출금 갚고 남은 돈을 쓰려는 거니까. 그렇지만 아내가 허락해 줄지는 미지수야. 지금도 대출 이자만 해도 장난 아니거든.”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거기까지 가능하다면 다음 단계를 논의해 보게요.”

“다음 단계? 그게 뭔데?”

생계의 위기를 맞은 40대 가장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줄 능력은 내게 없다.

다만 그가 원하는 길이라면 곁에서 도와줄 수는 있다. 내가 말한 다음 단계는 그를 위해 고심한 방안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낚시점을 하신다면 아이템 하나를 넣어 드릴까 합니다.”

“아이템?”

“뭐겠어요. 멀티싱커죠.”

“…….”

고동우가 말없이 눈을 깜빡였다.

원가 이슈 때문에 오프라인 낚시점에 입점시키지 못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고동우와 서로 마진을 반씩 양보한다면 시도해 봄직한 일이다.

고동우의 눈이 커지는가 싶더니 이번에도 힘없이 말꼬리를 흐렸다.

“고마운 제안이긴 한데…….”

“솔직히 멀티싱커 사려고 멀리서 손님들이 오진 않겠죠. 그렇지만 인근의 낚시꾼들은 다소나마 유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생각도 그럴 것 같기는 해. 다만…….”

“지금 결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형수님과 충분히 상의하시고 알려 주세요.”

멀티싱커 오프라인 공급권.

누구보다도 제품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고동우다. 그라면 내 제안이 크든 적든 낚시점 운영의 차별화 포인트임을 모를 리 없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어쩐지 미적지근하다.

“그래 생각해 보마.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구나.”

“고맙긴요. 저에게도 필요해서 제안드린 거예요.”

오프라인 판매처는 나에게도 필요하다.

낚시꾼들 중에는 온라인을 아직 낯설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고, 굳이 오프라인에서만 물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많다.

오프라인은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잘만 성사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윈윈이 아니겠는가.

“그래. 잠깐 눈 좀 붙이마.”

“네 그러세요.”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고동우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뒤척이는 그를 곁눈질하던 순간, 나는 그가 주저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 명의 자녀를 둔 가장의 무거운 어깨.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심지어 추가로 빚까지 얻어 가면서.

그에게는 인생을 건 모험일 수도 있다.

수족관을 열겠다며 직장도 팽개친 전력을 보유한 그였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새로운 일을 벌일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의 선택만이 남았다.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는 그의 결정을 나는 묵묵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어떻게 잘 찾아오셨네요?”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내리는 콘도 정문 앞이었다.

사심희는 커다란 등짐을 지고 운전석을 향해 밝게 웃고 있었다.

“설악산 정상까지 오른 거야?”

“그럼요. 산에만 있었더니 바다가 얼마나 그립던지. 빨리 가요. 구피 님은 잠드셨나 봐요.”

“방금 전에 잠든 것 같아. 얼른 타.”

눈을 붙이겠다는 핑계로 미래를 고민하는 줄 알았더니, 고동우는 정말로 깊이 잠들어 있었다. 드르렁 코까지 골면서.

사심희는 고동우가 깰까 조심스레 뒷좌석의 문을 닫았다. 그러나 목적지인 공현진항까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어쩌고저쩌고, 계곡물이 시원해서 어쩌고저쩌고. 그녀가 쉴 새 없이 자랑을 늘어놓는 통에 고동우가 귀를 만지작거리며 깨어났다.

“어어, 사시미 님 언제 탔어?”

“어머. 깨워서 죄송해요. 며칠 만인데도 너무 반가워요.”

“……그래. 나도. 꿈에서 괴물 문어와 열심히 싸우고 있었는데 웬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구만.”

“헤헤. 그래서 괴물은 잡았나요?”

“잡기는. 잡아먹힐 뻔했어. 사시미 님 덕분에 살아난 거야.”

중대한 의사 결정을 앞에 둔 상황에서 문어 꿈을 꾸다니. 낙천적인 성격 하나만은 참으로 연구 대상이다.

잠꼬대처럼 웅얼거리는 고동우의 농담에 한바탕 웃으며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 북단에 있는 공현진항.

재작년에 겨울 가자미 낚시로 한 번 왔던 곳이다. 선착장 뒤편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리는 근처의 출조점에 들어섰다.

“저어, 혹시 우럭 님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만…….”

고급스러운 여름 낚시복 차림의 사내였다.

“최근에 그 콜라보 방송 너무 잘 봤습니다.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어반자TV의 시청자인가?

구독자가 날로 늘어 가고 있어, 조만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내심 기대하고는 있었다.

“아아. 우리 어반자 시청자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반갑게 웃음 짓는 나와 대조적으로, 상대방은 무표정해 보였다. 그는 사무적인 말투로 짧은 인사를 남기더니 휙 사라졌다.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또.”

“하아, 네. 파이팅하세요.”

천성이 무뚝뚝한 사내구먼.

어반자의 팬이 아니면서 콜라보 방송을 보았다면 AON의 팬일 수도…….

사내가 승선 명부를 끄적거리고 먼저 나가자마자 고동우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 사람 들고 있는 낚싯대 봤어? 전동릴만 해도 5백만 원이 넘을걸? 우리나라에서는 팔지도 않아. 장비발이 장난이 아니구만.”

“진정한 조사는 장비를 탓하지 않죠. 우리에게는 멀티싱커가 있잖아요. 안 그래요?”

“……글쎄다. 난 저런 전동릴만 있으면 오늘 장원을 차지할 텐데.”

출항 시각인 7시가 가까울 무렵 우리는 배에 올랐다.

추첨을 통해 얻은 자리는 우현 맨 앞쪽의 1, 2, 3번이었다. 고동우를 1번에 배치하고 나는 약간 떨어진 3번을 차지했다. 2번은 당연히 사심희의 빈자리였다.

“또 만났군요. 잘 부탁합니다.”

“아, 4번이세요?”

아까 명품으로 도배했던 그 사내였다.

이번에도 살갑게 물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물고 먼바다를 응시했다.

“히야! 저 낚싯대는 최소 백만 원 넘는 거야. 오늘 저 친구 사고 좀 치겠는데?”

고동우가 눈으로 그를 가리키며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문득 고동우의 허름한 삼선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삐져나온 짝짝이 양말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양말이라도 좀 제대로 신고 오시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옆자리 사내의 번쩍거리는 장비와 옷차림을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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