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42화 (42/130)

[제42화] 신제품

삼척에 다녀온 다음 날.

나는 아지트에서 멤버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전날 잡았던 부시리 중에서 남긴 한 마리로 늦은 먹방을 촬영 중이었다.

“부시리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인 줄 몰랐습니다. 전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거든요. 허허.”

사심희가 뚝딱 만들어 낸 생선가스를 오물거리며 장재준 영감이 흥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훨씬 밝아져 있었다.

라이더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고 난 뒤의 변화였다. 그는 먹방이 있다는 말에 점심 배달을 빠지고 곧장 아지트로 달려왔다.

“남은 것 좀 없냐? 난 벌써 다 먹었다.”

언제나 식욕이 왕성한 보람이는 자신의 빈 접시를 아쉬워하다가 내 것을 힐끔거렸다. 요즈음 일에만 몰두한 그는 통통하던 볼살이 쏙 빠졌다.

“내 거 좀 남았다. 이거나 먹어라.”

“정말요? 감사, 감사.”

고동우는 어쩐 일인지 입맛이 없어 보였다.

보람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음식을 자신의 접시로 옮겼다.

“야~~~ 웅!”

잘 식힌 한 조각을 내가 던져 주자 베타도 냉큼 달려들었다. 녀석은 이제 폭풍 성장 중이다. 정체성을 상실한 예전의 모습이 가끔은 그리울 때도 있지만…….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네요.”

그리고 사심희.

그녀는 맛있게 접시를 비운 멤버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바로 전날 여주에서 예정에 없던 신공을 선보였다.

대물 부시리 해체 쇼를 선보이며 축구부 학생들의 환호를 독차지한 것이다.

짬을 내어 내일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그녀는 식사 도중에도 간간이 콧노래를 불렀다.

모두들 아무런 걱정이 없는 일상의 모습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고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고동우가 물었다.

“뭐가 좋아서 아까부터 계속 실실거리시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시원한 커피를 사겠습니다. 아메리카노? 라떼?”

호기롭게 후식을 사겠다는 내 말에 모두들 쾌재를 불렀다.

“어제 대승을 거두고 온 기념인가요? 허허허.”

“난 아이스라떼! 날씨도 후덥지근한데 잘됐네요.”

“돈 벌더니 철이 들었구나. 동생이 시원하게 쏘겠다는데 나야 땡큐지. 난 아이스아메리카노!”

멤버들의 주문을 받아 휴대폰 앱으로 배달을 시켰다.

내가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이유는 AON과의 멋진 낚시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날 밤 8월의 정산금이 들어왔다.

놀라운 액수였다.

천만 원이 넘는 금액…….

지난밤 나는 베타를 번쩍 들고 방 안에서 한참을 뛰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지난 달 인출했던 현금 서비스를 모두 조기 상환했고, 아지트 임대료며 사심희의 월급까지 송금을 마쳤다.

그래도 아직 통장에 남은 돈은 수백만 원.

투자로 인한 일시적 마이너스 상황에 벗어난 것이다. 이제 완전한 현금 흐름상의 흑자 단계로 진입했다는 시그널이었다.

퇴사를 하고 불과 넉 달 만에 이뤄 낸 기적.

이번 달의 수입으로 환산하면 억대의 연봉. 예전에는 나와 상관없는 일로만 여겨 왔던 사건이었다.

좋아하는 일로 그저 밥벌이만 하면 좋겠다던 나의 바람은 이제 한 단계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피싱 어벤저스 멤버들…….

내가 달려온 길의 주변에는 항상 이들이 있었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명쾌한 조언을 건네주고, 함께 먼 낚시터까지 동행해 주어 나는 외롭지 않았다. 특히 그동안 사심희가 선보인 환상의 요리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사심희가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반짝였다.

“커피에 달달한 케이크도 함께 있으면…….”

“좋지! 케이크도 추가! 생크림 어때?”

“저야 좋지요.”

자금 압박에서 벗어난 상황에 그깟 케이크 정도야.

“그래. 어제 부시리 낚시는 어땠습니까? 자세히 좀 듣고 싶네요.”

장재준 영감이 이쑤시개를 만지작거리며 불쑥 물었다.

아직 방송 업로드 전이어서 멤버들 모두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손맛이었어요. 파스값깨나 나갈 것 같아요.”

“허허. 나도 선상 낚시를 많이 해 봤지만 빅게임은 아직입니다. 기회가 되면 나도 가르쳐 주면 좋겠네요.”

“에이, 제가 캡틴 님을 가르치다니. 무슨 그런…….”

“아닙니다. 사실 우럭 님에게는 천부적인 재질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시도하는 장르에서도 고수와 겨뤄 손색이 없는 걸 보면 말입니다.”

민망해서 손사래를 치는 사이 사심희가 끼어들었다.

“쉬워 보이던데요? 담그면 물고 늘어지던데. 사실 저도 촬영만 아니었으면 금방 잡겠더라고요.”

그녀의 뚱딴지같은 말에 장재준 영감이 휘둥그레 눈을 치켜떴다.

“사시미 님이 낚시를 합니까?”

아직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나서기도 전에 보람이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은 저보다 잘 잡아요. 지난번에 좌대에서 우럭을 세 마리나…….”

“경사가 났군요. 사시미 님이 드디어 피싱 어벤저스의 진정한 멤버가 되었네요. 허허.”

모두들 한담을 나누던 와중에 아까부터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고동우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것 좀 봐.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어제 방송도 아직 안 올라왔는데, 구독자 수가 폭증했어!”

“정말요?”

나도 모르고 있던 일이었다.

고동우의 휴대폰을 건네받은 나는 두 눈을 깜빡거렸다. 정말이었다. 구독자 수는 물론 과거 방송분의 조회 수까지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야! 정말 모를 일이네. 이러다가 정말 낚시 채널 일등 찍는 거 아냐?”

“왜 아니겠습니까?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겁니다. 허허.”

뭔가 집히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유튜브를 열어 뭔가를 검색해 보았다.

AON TV.

역시나 전날의 부시리 대결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졌잘싸’라는 썸네일이 달린 영상을 클릭하고, 모두들 볼 수 있도록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동안 내가 살펴본 바로 AON TV는 어반자보다 짧은 20분 분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30분으로 평소보다 길게 편집되어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은 AON의 낚시 장면과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나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낚시를 마친 뒤에 AON과 나는 대화가 흘러나오는 대목에서 잠깐 민망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오늘 승부에 대한 저의 짧은 소회를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멤버들 모두 숨을 죽이고 AON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우럭 님과의 콜라보를 통해 크게 배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의 낚시에 담겨진 따뜻한 손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무작정 남의 흉내를 내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저는 고수들과의 대결을 AON 룰에 따라 이어 갈 것입니다.’

그것은 나도 바라던 바였다.

승자 독식이라는 AON 방송의 슬로건은 내게도 흥미로웠다.

‘다만 작은 변화를 하나 추가할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마릿수를 기준으로 일정액을 적립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바다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낚시꾼을 향한 AON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반자TV에도 큰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AON이 내게 언급했던 새로운 변화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멤버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연발했다.

“햐아! 정말로 콜라보 방송의 좋은 선례가 되겠구나. 누가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승자였네.”

“훈훈한 장면이군요. 내 마음까지 흐뭇해집니다. 허허.”

“오오! AON 님도 멋진 분이네요.”

어반자TV의 구독자 폭증세는 AON의 마지막 멘트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AON을 처음으로 이긴 듣보잡이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을 테고, 도대체 어떤 방송인지 호기심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커피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죠? 주문한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모두들 AON 방송에 빠져 있는 사이, 사심희가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때마침 밖에서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음이 들려왔다.

갑자기 장재준 영감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왔나 보네요. 제가 다녀오리다.”

“캡틴 님. 그냥 계셔도 됩니다. 2층으로 요청해 놓았거든요.”

“라이더는 시간이 돈이잖아요. 배달 일을 하다 보니까 동병상련이 생기나 봅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올라갈 때 누가 나와 있으면 그렇게 고맙더군요. 허허.”

그러자 듣고 있던 보람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럼 제가 나갔다가 올게요. 어차피 차에 가지러 갈 것도 있고요.”

후닥닥 아래층으로 달려간 보람이는 잠시 후 싱글벙글 웃으며 돌아왔다.

그는 한 손에 디저트 꾸러미를, 다른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보람이가 쭈뼛거리며 내 앞에 무엇인가를 내려놓은 것은 커피를 다 마신 직후였다.

“그게 뭐냐?”

“그냥 한번 만들어 봤어.”

그냥 평범한 에기 바늘이었다.

2단으로 우산처럼 펼쳐진 바늘이 예사롭지 않게 번뜩인다는 점만 빼고는.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끝부분이 수나사로 가공되어 있었다.

“그걸 기존 멀티싱커 아래쪽에 연결시켜 보려고. 어차피 거기에 암나사가 있으니까.”

보람이가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작년에 보람이가 주꾸미 낚시를 할 때 집에서 만들어 온 자작 에기가 있었다. 봉돌과 에기가 일체형이었던 그 물건은 나름 효과가 좋았다.

“신제품이구나!”

“맞아. 곧 9월이면 주꾸미 시즌이잖아. 그걸 아예 상품으로 만들어 출시하면 어떨까 해서.”

대단한 녀석이다.

멀티싱커를 출시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상품성의 여부를 떠나 그의 부단한 노력에 마음의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그게 전부가 아니야.”

보람이는 씩 웃으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두 개의 케이스를 꺼냈다.

각각 서로 다르게 표면 처리가 된 봉돌이었다.

하나는 야광 코팅으로, 다른 하나는 홀로그램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주꾸미나 갑오징어 같은 두족류는 야광이나 홀로그램에 현혹되기 마련이지. 너도 알잖아?”

“……그렇지.”

그냥 바늘만 연결시키려는 게 아니었다. 보람이는 아연도금 외에도 다른 연관 제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시중에는 이미 수많은 야광 봉돌이 나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멀티싱커에 적용되고, 바늘만 연결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두족류를 타깃으로 두 종류의 세트 상품을 추가로 내 볼 생각이야. 이름은 가칭 ‘멀티싱커 라이트’와 ‘멀티싱커 홀로그램’이라고 지었어.”

내 생각을 말해 줄 틈도 없었다.

어느샌가 고동우가 내 손에 들려있는 신제품을 낚아챘다.

“홀로그램 문양이 딱 주꾸미가 달려들게 생겼구만. 바늘도 국산인가 보네? 엄청 예리하게 갈아 놓은 걸 보면.”

보람이가 겸연쩍어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냥 한번 만들어 본 거예요.”

“야! 이거 무조건 된다. 값비싼 에기를 따로 살 필요도 없겠어. 하아 참. 주꾸미들 큰일 났네.”

고동우의 칭찬에 고무된 보람이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네 생각은 어때?”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내가 쓰고 싶다면 다른 낚시꾼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다행이다.”

요즘에는 고가의 특수 에기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물론 봉돌 일체형이 그것들과 겨루어 더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지만 최소한 효과가 덜하지만 않다면 틀림없이 시도해 볼 만한 아이템이다.

신제품의 용도가 두족류라는 점도 나를 흥분시켰다.

9월부터 시작하는 주꾸미 낚시는 5월부터 예약을 받을 정도로 매우 대중적인 낚시다.

주꾸미와 갑오징어, 심지어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면…….

생각에 잠겨 있던 내게 보람이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와 물었다.

“부탁이 있어.”

“뭐냐? 말만 해라.”

“멀티싱커 특허 출원을 좀 도와주면 좋겠어. 솔직히 단순한 제품이라 남들이 모방하기 쉽거든. 벌써 해 놓았어야 하는데 늦은 건 아닌지 걱정이야.”

“…….”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발명 특허는 아니겠지만, 실용신안이라면 가능할 거야. 나는 그런 쪽에는 영 젬병이라. 근데 왜 웃고 있냐?”

“출원은 벌써 해 놓았지. 실용신안에 상표권은 물론이고 해외 특허까지. 나도 내 할 일은 한다.”

보람이가 멀티싱커 사업을 수락한 직후였다.

나는 판교역 부근의 변리사 사무실을 찾아갔었다. 변리사는 오히려 해외 특허까지 출원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도 해 주었다.

“진즉 말하지 그랬어? 괜히 걱정하고 있었잖아.”

“하하. 당연히 알 줄 알았지. 미안하다.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다. 만들기도 바쁠 텐데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다니. 다시 봐야겠는데?”

혁신도 모자라 리스크 관리까지.

처음에는 그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도리어 내가 그의 덕을 단단히 보게 될 것 같다.

“그런데. 하나 더 있어.”

“뭐가?”

보람이는 또다시 비닐봉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알라딘의 요술 램프인 줄 알겠다.

보람이의 신제품 시연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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