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아름다운 승부
마지막 기회다.
수직으로 하강하는 메탈지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정확히 두 마리였다.
크기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쌍둥이처럼 생긴 부시리였다. 그래도 왼쪽에 있는 것이 그나마 튼실해 보여, 나는 살짝 AON에게서 떨어진 쪽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왼쪽 부시리의 눈동자에서 번쩍 섬광이 일었다. 빠르게 하강 중인 내 미끼를 발견한 모양이다.
됐다!
나는 잠시 줄 풀림을 멈추고 놈의 반응을 살폈다. 미끼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부시리가 서서히 부상을 시작했다.
덜컥!
한 번의 약한 입질.
인내심을 갖고 조금 기다렸더니 경계심을 푼 녀석이 큰 입을 벌리고 달려든다. 그리고 낚싯대를 강타한 강한 전류.
콰악!
걸렸다. 긴장감이 극도에 달한 그 순간에도 나는 오른쪽 편의 AON의 미끼에도 다른 부시리 한 마리가 달려드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결과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두 남자의 사투가 한참 동안 이어지고.
“갑니다요!”
선장이 먼저 달려간 곳은 AON의 자리였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그가 먼저 물고기를 끌어냈다.
“이야! 14킬로는 되겠네.”
선장의 말에 힐끔 쳐다보니 내 육안으로 오늘의 최대어였다. AON도 완전히 지쳤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올라옵니다!”
이번에는 나의 차례였다.
곧바로 달려온 선장은 수면에 떠오른 물고기를 발견하고 할 말을 잊은 듯했다.
“빵이 완전히 돼지네, 돼지…….”
내가 봐도 그랬다.
뜰채에 넣기에도 버거운 크기였다. 웬만한 돼지만큼 통통한 부시리가 뱃전으로 올라오자 AON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심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이긴 것 같은데요…….”
“아직 몰라. 정확히 재 봐야 돼.”
“요리사인 내 감각을 무시하는 건가요? 척 보면 얼마나 나가는지 안다구요. 마지막 물고기에서 역전이에요.”
과연 그럴까?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계측이 시작되었다. 선장이 먼저 AON이 잡은 다섯 마리를 저울에 올려놓았다.
“49킬로!”
선장은 굳이 나와 AON에게 디지털 눈금을 보여 주며 크게 외쳤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선장이 네 마리의 대물들을 저울에 올려놓는 순간, 내 목젖이 크게 출렁거렸다.
저울의 수치를 확인한 선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고기들을 휘저으며 계측을 반복했다. 그때 나는 사심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50킬로! 정확히 1킬로 차입니다.”
“이야……….”
사심희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려 하다가 눈치가 보였는지 슬쩍 내렸다. 반사적으로 나는 AON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AON.
그런데 그의 표정에서 이상한 변화가 보였다. 아까부터 굳어 있던 그의 얼굴 근육이 오히려 활짝 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억지로 지어낸 얼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패배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입꼬리만 올라간 것이 아니라, 눈동자가 은은하게 웃고 있었다.
AON이 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졌지만 잘 싸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또한 많이 배웠습니다. 무게가 아니라 마릿수로 룰을 정했다면 내가 진 경기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무게로 하자고 우긴 사람은 나였습니다. 하하.”
물론 AON에게도 첫 패배는 적잖은 충격이었으리라.
그러나 AON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의 신사다운 태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리와 방어들을 아이스박스로 옮기고 있을 때 AON이 뒤에서 말했다.
“제 것도 몽땅 가져가셔야죠.”
“그래도…….”
막상 그렇게 하려니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축구부 학생들이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잡은 네 마리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지키셔야죠.”
“그럼…….”
그의 말대로 다섯 마리를 추가하니, 대장 쿨러가 꽉 차서 뚜껑이 잘 닫히지 않았다.
배는 천천히 아침에 출발했던 임원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옆으로 나란히 앉은 나와 AON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어 혹시…….”
“사실은…….”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어색한 침묵을 깼다.
AON도 내게도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나 보다.
AON이 빙긋 웃으며 내게 손바닥을 보였다.
“먼저 말해 보세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뭡니까?”
“왜 저를 콜라보 상대로 선택했습니까? 별로 유명한 조사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에게서 콜라보 제안 메일을 받았을 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AON은 날고 기는 유튜버는 물론 심지어 프로 조사들과 겨뤄 승리를 일궈낸 인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풋내기 유튜버에 불과한 나를 선택한 일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 결과가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나보다 강한 상대만 상대해 왔으니까요.”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볼까요? 사실은 제안을 보낼 때부터 내가 질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그의 표정과 말투로 미루어 지어낸 얘기 같지는 않지만…….
“우럭 님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군요.”
“사실 저는 조력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냥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제가 패배한 이유가.”
어리둥절해하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AON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 첫 캐스팅을 하면서 정말로 질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럭 님의 눈빛을 보고서 말입니다.”
“제 눈빛이라면…….”
“그렇습니다. 즐기는 사람은 당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내가 처음 빅게임을 시작할 당시의 그 눈빛이었습니다.”
“…….”
불현듯 오늘 낚시 도중에 간간이 나를 지켜보던 그의 시선이 떠올랐다.
사실은 오늘 빅게임이 처음이었다고 말할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생애 첫 패배를 기록한 그에게 어쩐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빅게임이 처음이셨죠?”
갑작스러운 AON의 말에 심장이 뜨악했다.
“……네. 알고 계셨군요.”
“캐스팅이나 액션 모두 어설프더군요. 처음에 저도 놀랐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익혀 나가는 모습에 다시 놀랐고 말입니다.”
“부끄럽네요. 사실 나름 연습을 많이 하고 왔는데…….”
AON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에게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는 표정이었다.
“오늘 우럭 님이 두 마리를 잡은 직후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는 질 수도 있겠구나, 가 아니라 패배를 직감했습니다.”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AON은 계속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눈빛이 바뀌어 있더군요. 처음엔 즐기더니 이번에는 승부욕이 발동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맞습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니 AON의 말이 정확했다.
두 번째 물고기에게서 완벽한 몸맛을 즐긴 뒤로 내 머리에는 얼굴도 모르는 축구부 소년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늘 승부를 즐기며 낚시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눈빛이었습니다. 내 승부욕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럭 님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AON의 말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얘기였다.
나는 애써 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부시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감생심 이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게 되었고요.”
“저와는 차원이 다른 손맛을 추구하는 분이 틀림없더군요. 예상은 했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제가 왜 콜라보 제안을 드렸는지 답이 되었나요?”
“…….”
나보다 앞서가는 유튜버로서, 그리고 선배 낚시꾼으로서 AON의 말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나와 시청자를 즐겁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눔을 통해 의미를 더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한 방향성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의 낚시 실력을 일취월장하게 해 주고 있었다니…….
“비록 졌지만 저 또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All or Nothing’을 부르짖던 놈이 지고도 얻은 게 있다니 좀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하.”
“다행이군요. 그게 뭐였습니까?”
“뭔가 제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럭 님이 제 고민에 대한 답을 주신 것 같네요. 1키로의 승부를 내 주고 그걸 얻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하아.”
뭔가 깨달음이 있었다는 말인데 더 묻지는 않기로 했다.
항구가 가까워졌다.
그때 문득 아까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던 일이 기억났다.
“그런데 아까 저에게 하려던 말이 있지 않았나요?”
“언제요?”
“동시에 서로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요?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묻겠습니다. 사실은 그동안 우럭 님의 방송을 모조리 시청해 보았습니다. 약간 의아한 구석이 있더군요.”
“……의아하다니요?”
그 순간 가만히 있을 걸,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 것 같아, 마른침을 꼴깍 삼켜야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보일링이 있는 곳으로 캐스팅을 시도했습니다.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눈에 빤히 보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우럭 님은 반대로 보이지 않는 물속을 공략하더군요. 마치 물고기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아, 그거요…….”
“솔직히 처음에는 의심을 했습니다. 어딘가에 수중 카메라를 감춰 놓았는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하.”
적당히 둘러댈 얘깃거리를 찾느라 머리가 빙빙 돌아갔다. 관찰력이 남다른 그에게 섣부른 핑계를 꺼냈다가는 더욱 큰 의심을 살 것만 같았다.
“사실은 아직 캐스팅이 서툴러서 그랬습니다. 시작부터 어설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하하하.”
“네에?”
“……하하…….”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냥 동물적인 감각이 뛰어나다고만 이해하겠습니다.”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알아서 넘어가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배는 어느덧 항구에 도착했다.
묵직한 아이스박스를 부둣가에 올려놓고 나는 AON과 악수를 나눴다.
“오늘 방송분이 어반자TV에도 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마 저를 이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다들 몰려갈 겁니다.”
“저희 어반자의 독자님들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죠.”
아름다운 승부였다.
게임의 룰이 나에게 약간 유리했을 뿐 서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출조였다. 무엇보다 나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내게는 천만다행이었다.
오늘도 한 편의 멋진 낚시를 마쳤다는 뿌듯함에 젖어 차량의 문을 더듬거리고 있을 때였다. 사심희가 얼른 달려와 손잡이를 낚아챘다.
“오늘 진이 빠졌을 텐데 운전은 내가 할게요.”
“고마워, 사실은 곧장 뻗을 것 같아. 그럼 평창 휴게소까지만 부탁할게.”
“곧장 집으로 가는 거죠?”
“가다가 잠깐 여주에 들러 부시리를 전달하고 싶은데…….”
“아! 이번에는 여주인가요? 동선도 참 좋네. 가다가 잠깐 들르면 되겠네요.”
우리는 귀경을 서둘렀다.
영동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축구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몹시 놀란 그의 목소리로 미루어 나의 승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정말입니까? 지금요? 오늘 저녁에 당장 아이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겠군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감격에 겨워 살짝 떨리는 그의 음성을 뒤로하고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몸맛을 즐긴 여파로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