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AON
“어떻게 된 거야?”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더니 사심희의 입꼬리가 귀에 걸쳐 있었다.
“내가 잡았어요. 이거 봐요. 크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바늘 공포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녀가 이렇게나 빨리 낚싯대를 잡게 될 줄은 몰랐다.
보람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심심하다고 해서 낚싯대를 줬더니 곧바로 사고를 칠 줄이야. 나보다 훨씬 잘하시네. 헤헤.”
점심 타이밍에 때맞춰 벌어진 사건에 어이가 없었다.
“하하하. 사시미 님도 이젠 낚시꾼의 반열에 들어섰군. 빨리 우럭 무침 해 먹자.”
“한 마리를 누구 코에 붙여요? 일단 컵라면이나 먹자고요. 우럭 회무침은 좀 기다리시고.”
한 술 더 뜨는 사심희.
컵라면 한 사발씩 얼른 비우고 나는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선장이 지나가다가 좌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파핑대를 들고 있는 내게 의아한 눈길을 보냈다. 그곳도 빗속에서.
“이야호! 또 걸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심희의 들뜬 목소리.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연습에 몰두하다 돌아오니, 사심희가 의기양양하게 살림망을 들어 올렸다.
“세 마리! 어때요? 이만하면 서당 개 흉내는 낸 거겠죠?”
하아.
서당개 정도가 아니다. 우천 속에서 세 마리나 건져 내다니. 그녀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보람이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낚싯대를 접고 있었다.
빗속에서 먹는 우럭 회무침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나는 마지막 한 조각을 냉큼 집어 먹으며 사심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고 봐. 오늘 밤 아마도 천장에 찌가 나타날 거야.”
“정말요? 손맛이 이런 건지 처음 알았어요. 호홋.”
그녀의 무용담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되었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쫑알대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나도 한때 저랬던 적이 있었지…….
룸 미러로 들여다본 그녀의 상기된 얼굴에서 오래전 내가 처음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 * *
고대하던 콜라보의 무대가 열리는 날.
나는 사심희와 함께 영동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새벽 1시에 출발하여 그녀를 픽업하고 목적지까지의 도착 예정 시각은 오전 5시였다.
“오늘 느낌은 어때요?”
“그냥. 다른 때와 똑같아. 한판 즐기면 그만이지.”
사심희의 말에 그렇게 대꾸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작은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던 감정이었다.
과연 내가 AON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장르의 낚시에 도전하고, 다른 유명 유튜버로에게 한 수 배우겠다며 마음을 비웠었다.
그런 내 생각을 다소 흔들리게 만든 계기는 출발 전에 도착한 한 통의 이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몇 번이고 망설이다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경기도 여주에 사는 모 고등학교의 축구부 코치입니다. 늦지 않았다면 이번 출조에서 잡은 물고기를 제게 보내 주실 수 없을까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립니다. 물론 AON와의 승부에서 이긴다면 말입니다.’
나눔 요청이 전혀 없어, 시원섭섭하던 차에 날아든 유일한 신청 메일이었다.
“근데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네요. 승부에는 연연하지 않는다더니만.”
“아니라니까. 좌대에서 벼락치기로 연습하는 거 봤잖아. 그렇게 해서 어떻게 그런 고수를 이기겠어. 완전히 깨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게 또 둘러댔지만, 옆에서 눈을 가늘게 뜨는 모습이 사심희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휴우.
그냥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큰 걸로 딱 한 마리만 잡아도 성공이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머리가 복잡할 때는 비우는 게 상책.
나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어 헛된 승부욕을 털어 버리려 애를 썼다.
“조금 자 둬. 낮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알았어요.”
그녀가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중에 또다시 축구 코치가 보낸 메일의 후반부가 떠올랐다.
‘시골 학교라 변변한 지원도 없이 시작한 축구부였습니다. 최근 경기도 내 대회에서 초반 탈락하고, 결국 축구부를 해체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상황입니다. 저 또한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하는 마당에 아이들을 위해 조촐한 해단식을 마련해 주고 싶습니다. 사재를 털어 학생들에게 삽겹살이라도 사 주고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럭 님이 잡으신 생선으로 마지막 만찬을 할 수만 있다면 얘들에게는 더욱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한때는 저도 낚시를 좋아했고, 우럭 님의 방송으로 눈동냥만 하고 있었습니다. 부담은 갖지 마시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학생들과의 마지막 식사.
부족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내가 이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내가 또……. 부담은 털어 내자. 무조건 즐기는 거다.
나눔은 분명 좋은 일이나, 그 자체가 낚시의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모르게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삼척 임원항에 도착했을 때는 희뿌옇게 날이 밝아 있었다.
“우럭 님이시군요!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여러 번의 통화로 귀에 익은 목소리.
방송 화면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큰 키에 약간 위축되었다.
“AON 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이분은…….”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멀뚱히 서 있는 사심희를 가리켰다.
“아이고, 그 요리 잘하시는 분이시군요. 화면보다 훨씬 미인이십니다. 그리고 여긴 제 방송을 도와주는 친구들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죠.”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답게 AON은 두 명의 스태프를 거느리고 있었다. 한 명은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는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전용 보트를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멋진 보트군요.”
“장만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하하.”
내가 선착장에 정박 중인 노란색 보트를 가리키자 AON은 자랑스럽게 잇몸을 드러냈다.
“그럼 일단 승선하시죠. 다행히 오늘은 간만에 좋은 날씨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겠습니다.”
“그러게요. 제대로 날을 잡은 것 같군요. 비도 딱 그치고.”
나긋한 목소리와 정중한 태도.
AON은 신사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배로 안내했다. 보트라기에는 꽤 규모가 큰 최신형 낚시 전용선이었다.
“왕돌초는 가 보셨습니까?”
“……예전에 좀…….”
“부시리 낚시는 처음이 아니시죠?”
“……네. 몇 번 해 보기는…….”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처음이라고 말하면 초장부터 얕잡아 볼 것 같아, 나는 대강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들은 풍월이 있어 아는 체를 했다.
“12해리 낚시 금지법 때문에 예전처럼 왕돌초 중심부에서는 낚시를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쉽지만 왕돌초 언저리에서 할 수밖에요. 그러나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우리 베테랑 선장이 최고의 포인트로 안내해 줄 테니까요.”
왕돌초 언저리고 뭐고 별로 상관할 바는 아니다.
1차 목표는 인생 최대어를 낚는 것이다. 다른 생각은 일단 접어 두자.
배는 출발했다.
갑판에 털썩 앉아 있는 나를 AON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오늘도 나눔 요청이 있었습니까?”
“그럼요. 하지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우리 독자님들도 다들 마음을 비우고 있을 겁니다.”
“무슨 겸손의 말씀을……. 아무튼 최고로 멋진 승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많이 배우고 가겠습니다.”
그 뒤로도 나는 AON가 술술 풀어내는 낚시 경험과 방송 에피소드에 귀를 기울였다. 대화 도중에 나는 그의 낚시에 대한 시각이 매우 뚜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AON은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방송을 하는 이유가 자신이 최고의 낚시꾼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서슴없이 밝혔다. 돈은 그냥 결과로 따라오는 것일 뿐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낚시.
다소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지만, 그나마 목적이 모호하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오늘 몇 킬로 정도 잡으실 것 같습니까?”
대화 말미에 그가 불쑥 물어보는 바람에 순간 머뭇거렸다. 마릿수도 아니고 무게를 물어보다니. 아무리 오늘 승부의 기준이 무게라지만 독특한 표현이었다.
“글세요. AON 님이 잡은 무게보다 딱 1킬로만 더 잡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농담으로 응수하고 말았다. 그때 AON의 입가에 번진 야릇한 미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벌써 다 왔군요. 그럼 오늘 건투를 빕니다.”
“파이팅입니다!”
꾸르릉~~
전속력으로 달리던 배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면서 몸이 선수 쪽으로 쏠렸다. 첫 포인트에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제법 먼 길을 달려오는 동안에 물돌이 시간이 지나고 본격적인 밀물이 진행되면서 조류의 흐름이 빨라져 있었다.
“저것 좀 보세요!”
AON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다 위로 갈매기 떼가 유영하고 있었다. 물 위로는 허옇게 보일링(포식자에게 쫓긴 작은 베이트 피쉬들이 수면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현상)이 진행 중이었다.
대상어들이 수면 근처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AON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같이 온 선장에게 외쳤다.
“보일링 왼쪽 편으로 배를 대고 흘려 줘. 거기가 부시리들이 지나다니는 물골이야.”
“알았어.”
“유속은 지금 1.8노트 정도가 맞지?”
“정확해.”
AON은 왕돌초 근처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짧은 대화는 그의 오랜 경험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AON은 당연히 파핑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실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유려한 동작.
그는 크롬 색깔의 펜슬이 장착된 채비를 멀리 안착시키고 곧바로 액션을 시작했다.
저킹(Jerking)과 트위칭(Twitching).
AON의 테크닉은 실로 예술의 경지였다. 릴을 감으면서도 현란하게 낚싯대를 상하좌우로 흔들어 대니, 그의 펜슬은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보였다.
“뭐해요? 구경 왔어요?”
사심희가 뒤에서 뭐라고 할 때까지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낚싯대를 집어 들었을 때, AON의 앙칼진 외침이 들려왔다.
“히트!”
휘파람을 불어 볼 새도 없이 벌어진 순식간의 일이었다.
AON이 낚싯대를 움켜쥐고 두어 번 위로 흔들어 후킹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힘찬 릴링을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그의 채비가 위치해 있을 수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살을 가르며 대형 생명체가 바늘은 물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나직이 휘파람을 불어 확인해 보니 7짜 정도의 물고기였다.
시작부터 맥이 빠졌지만 나는 계속 휘파람을 발산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파핑대를 내려놓았다.
바닥에도 물고기가 뭉쳐 있었다. 게다가 수면에 떠 있는 놈들보다 훨씬 큰 놈들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지깅대를 꺼내 들었다. 힘차게 물고기를 끌어당기던 AON이 보내는 의아한 눈길이 느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갈치 모양의 메탈지그를 매달아 주르륵 줄을 풀었다.
텅 빈 바다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가상 훈련.
과연 효과가 있을까?
있다!
미끼를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쳐들고 비상하는 물고기.
무리 중에서 대장 격으로 보이는 대어였다.
툭! 투둑!
바늘이 놈의 위턱에 정확히 박히는 순간, 나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강한 전류를 느꼈다.
누가 그랬더라? 빅게임 대상어들의 몸부림은 ‘손맛’이 아니라 ‘몸맛’을 느끼게 해 준다고.
그렇다면 그동안 방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해 온 체력 단련은 효과가 있을까?
크흐윽. ……없다!
손목이 아니라 허리와 허벅지가 아려 온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을 하지 않았던 탓이다.
총알처럼 이리저리 달려 나가는 놈에 이끌려 몸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희열의 순간.
생애 최초의 몸맛을 즐기기 위해 나는 파이팅 벨트에 낚싯대의 손잡이를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