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37화 (37/130)

[제37화] 콜라보

충주에서 돌아와 며칠이 지난 뒤였다.

7월 중하순인데도 대낮에 밖에 나가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폭염이 극성이었다.

휴가를 다녀온 사심희가 아지트에 왔다고 하여 베타와 냉큼 달려왔다.

저건 누구 거지?

전에는 보지 못했던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멤버들 전원이 2층에 모여 있었다. 문가에서 서성이는 사심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 사시미 님! 제주도는 좀 어땠어?”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이 제주도인 거 같아요.”

“캡틴 님도 오셨군요. 몸은 좀……. 헉!”

다음으로 장재준 영감에게 눈길을 돌리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사심희가 제주도에서 사 왔다는 감귤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초콜릿이 아니라 그의 앞에 놓여 있는 헬멧이었다. 밖에 있던 오토바이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캡틴 님. 오토바이 타고 오셨어요?”

“그렇습니다. 허허.”

“승용차는 어떻게 하시고요?”

“그거야 집에 잘 모셔 놓았죠. 사실은 지금 일하다가 잠깐 왔습니다. 허허허.”

오토바이를 타고 일을 하신다면?

문득 지난번에 장재준 영감이 알바를 시작하셨다는 고동우의 말이 생각났다.

“그럼……?”

“그렇습니다. 라이더 일을 시작했습니다.”

“……라이더요?”

다른 멤버들을 둘러보았더니, 그들의 눈동자에는 벌써 걱정이 그득했다.

“소싯적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지요.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나름 재미도 있고, 용돈벌이도 됩니다. 뉴스에서 떠드는 것처럼 떼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변신이었다.

마치 라이더의 전성시대인 것처럼 연일 인터넷 신문에 떠들어 대고는 있지만, 사고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오는 게 현실이었다.

걱정스러워하는 멤버들의 얼굴을 의식했는지 장재준 영감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이고, 걱정할 거 없다니까요. 그냥 소일거리 삼아 점심 저녁 때 잠깐씩 하는 거예요. 힘들지 않게 한 시간에 서너 건만 뜁니다. 사실은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하기 싫은 날은 눈치 보지 않고 쉬어도 되고 말입니다. 허허.”

“…….”

“낚시하고 싶은 날에는 언제라도 제쳐 두고 올 수 있으니 이런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허허허.”

나름 고심했던 모양이다.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찾고, 낚시와 병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일을 찾았다는 말에 오히려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꺼냈다.

“캡틴 님. 원하신다면 우리 어반자TV나 보람이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드릴 수 있어요. 둘 다 아직 시작이지만 캡틴 님을 모실 정도는 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장재준 영감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말투는 사뭇 단호했다.

“그런 얘기 또 하면 내 일을 무시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내게는 소중한 직업입니다. 허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초콜릿이나 듭시다. 사시미 님이 아주 맛있는 걸 사 오셨네요.”

어설픈 호의를 보였다가 혼나고야 말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장재준 영감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고동우가 약간 무거워진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농담을 들고 나섰다. 너무 다행이었다.

“캡틴 님!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벌리면 나도 좀 해야겠어요. 이놈의 수족관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허허.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흥! 혼자서만 버시겠다? 이거 오토바이 못 타는 사람 서러워 살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사시미 님 휴가 다녀온 얘기나 좀 들어 볼까?”

고동우의 익살에 사람들의 시선은 사심희에게로 쏠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한동안 장재준 영감의 헬멧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장재준 영감의 변신에 대한 멤버들의 우려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나는 그가 새로 시작한 일에서 조금이나마 허전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대화 말미에 장재준 영감은 보람이에게 멀티싱커 사업에 대해 물었다.

“도라에몽 님은 요즘 어떠세요? 일은 잘되고 있나요?”

“네. 덕분에.”

보람이는 늘 그랬듯이 짧게 대답했다.

“자세히 좀 얘기해 보세요. 궁금해서 그럽니다.”

“사실은 만드는 족족 팔리고 있어서 고민이에요.”

“그래요? 허허. 행복한 고민이겠군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죠?”

“외주로만 하다 보니 물량 관리가 힘들어서요.”

“오호라. 그렇겠군요.”

“돈이 더 생기면 자체 제작을 해야 하지 싶어요.”

“그런 날이 곧 올 겁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장재준 영감의 덕담처럼 나는 그런 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출시 초반임에도 한 주에 2천 세트꼴로 팔리는 멀티싱커.

2천만 원이 3천2백만 원으로 둔갑하는 믿지 못할 일들이 매주 벌어지고 있었다.

장재준 영감은 다른 걱정이 없는지도 물었다.

“그것 말고 다른 문제는 없는 거지요?”

“당장의 문제는 아니지만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멀티싱커 단일 품목으로 과연 언제까지 끌어갈 수 있는지 걱정이에요.”

“걱정을 안고 사시네요. 멀티싱커도 아직 안정되지 않았잖습니까. 그건 천천히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허허.”

장재준 영감은 웃어넘겼지만, 나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그냥 꼼꼼하고 손재주만 많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기특하고 대단해 보였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는 자세.

부단한 혁신이야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경영자의 덕목이 아니던가.

이러다가 보람이 덕분에 부자 되는 거 아냐?

참 별 걱정을 다 하게 만드는 녀석이다.

* * *

밖에는 8월의 무더위를 씻어 내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느긋하게 쉬면서 어반자TV의 최근 편을 감상 중이었다.

지난 7월 말에 다녀온 농어 편이었다.

올려놓은 지 일주일도 채 못 되었는데, 조회 수는 이미 1백만 회를 넘어 있었다.

한여름의 폭염을 맞으며 감행한 출조였다.

땀이 빗줄기처럼 흘러내려 다녀오고 나서 몸무게가 5킬로나 빠진 농어 출조는 인근의 평택항에서 출발했다.

생새우 미끼를 사용한 외수질 낚시에서 나는 7마리의 커다란 농어를 잡았고, 그중 6마리를 소중한 독자들과 나눔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날 이후로 가뜩이나 거무스름한 내 얼굴은 완전히 새카맣게 변했다.

사심희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크림을 바르고 그늘에서 촬영을 했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미안한 마음에 먹방을 쉬려고 했지만. 그녀는 굳이 그날 저녁에 멤버들을 모아 놓고 지중해풍 농어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와인을 곁들여 사심희가 만들어 준 요리를 음미하는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동영상은 끝났다.

이제 그럼 댓글들을 정독해 볼까나?

일일이 답글을 달아 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최소한 읽어 보기는 한다는 원칙을 세워 두었다.

“야~~~ 웅!”

스크롤바를 내리며 하나씩 읽어 내려가던 그때 식사를 마친 베타가 슬그머니 내 무릎 위에 올라왔다.

“베타야. 가만있어. 여긴 캣 타워가 아니거든.”

값비싼 죽방 멸치에 한번 맛을 들이더니, 이제는 그리 싫어하던 고양이용 참치 캔도 곧잘 먹는다.

염분이 있는 멸치를 많이 먹여서는 안 된다는 어느 지인분의 충고에 따라, 나는 멸치를 갈아 만든 가루를 소량만 사료에 뿌려 먹이곤 했다.

기특한 녀석.

다리를 오므리고 가만히 있었더니 베타는 어느새 무릎 위에서 골골거리며 잠이 들었다.

베타가 화들짝 놀라며 내 무릎에서 떨어진 것은 내가 요상한 댓글을 발견하고 다리에 힘을 빼 버린 순간이었다.

“왜~~~~~ 용!”

짜증을 내며 캣 타워로 도망친 베타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댓글의 작성자는 ‘AON’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었다.

―AON: 우럭 님 안녕하세요?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뭐지? 제안이라고?

어쩐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댓글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이메일을 열어 보았다.

그리 장문의 편지는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원도 삼척에 사는 AON이라고 합니다. 강원도의 자연을 사랑하는 바다 사나이로서 정중히 도전장을 보내 드리오니 수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010―5XX6―1XX3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로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별 시덥잖은 사람도 다 있군. 도전장을 보낸다고? 낚시 대결이라고 벌이자는 건가?

편지의 문체로 보아 매우 정중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도전장’이라는 문구가 어딘지 마음에 걸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나는 간단하게 회신문을 작성했다.

‘제안은 감사드리나, 의미 없는 대결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발신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벌러덩 누운 나는 다시 일어났다. 밖에는 빗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곧 태풍이 올려온다는 소식에 당분간은 낚시도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집에만 있자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군.

혹시나 고동우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보람이가 와있다고 했다.

나는 베타를 집에 두고 홀로 길을 나섰다. 보람이가 새로 출시한 신제품 소식도 들어 볼 겸 빗속을 뚫고 마실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AON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우럭 님! 마침 잘 왔다. 댓글 확인했냐?”

나를 보자마자 보람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무슨 댓글?”

“AON!”

“봤어. 그런데 그 사람이 뭐?”

“제안 메일 보냈다고 써 놓았던데. 수락했지?”

“아니. 거절 메일 보내고 오는 길인데…….”

“아아.”

보람이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그걸 거절하다니. 굴러 들어온 복을 걷어찬 거야.”

“AON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유튜버라면서 AON도 몰라? 낚시 채널에서는 3위권 안에 드는 거물이잖아.”

“난 그냥 도전장이라고 하길래…….”

솔직히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방송은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굳이 다른 유튜버의 방송을 살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보람이는 내 코앞에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이것 좀 봐라. 웬만한 유튜버들이 앞다투어 콜라보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구독자 수가 50만이 넘는다니까.”

콜라보 요청이었구나!

최초의 콜라보 요청을 다짜고짜 거절했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최소한 무슨 의도인지 물어는 봤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 보람이에게 AON에 대해 물어본 이유였다.

“AON? 발음하기도 어렵네. 무슨 낚시 하는 사람인데?”

“빅게임! 지깅 낚시 분야에서는 웬만한 프로 조사들 뺨치는 실력자야. 배울 게 많은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거야.”

“…….”

빅게임, 대물 낚시.

2년 전 대구 지깅 낚시를 경험하긴 했지만 빅게임이라 할 수는 없다.

미터급 방어나 부시리를 낚는 프로 조사들은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다.

“다시 연락해 봐. 무조건 하겠다고. 어반자TV에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보람이가 채근했지만, 그래도 망설여졌다.

잠시 후 내가 못 이기는 척 휴대폰에서 메일을 열어 본 이유는 작은 의문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AON은 왜 내게 콜라보 제안을 보냈을까?

날고 기는 강호의 고수들이 넘쳐날 텐데. 왜 별로 이름도 없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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