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잔치
“이게 정말 우리가 잡은 거라 이거지?”
낚시가 끝나고,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본 아버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요. 거의 백 마리는 되겠어요. 절반은 아버지가 잡으셨어요.”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겠구나. 용식이 애비 놈도 이걸 보면 이제 나를 무시하지 못할 거다.”
“그럼요. 하하하.”
사실 아버지가 잡으신 백조기는 20마리 남짓이었다.
정신없이 낚시를 하신 뒤라 자신이 몇 마리를 잡았는지도 모르시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나 많이 잡다니. 하하하하.”
“대단하십니다.”
아버지가 크게 웃으셨다.
내 기억으로는 세 번째로 보게 된 그의 웃음이었다. 내가 회사에 합격했을 때보다 더 크게 웃으시는 바람에 약간 서운할 정도였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아들이랑 낚시를 하니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구나. 하하하.”
“다음에 또 모실게요.”
기뻐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나는 곧바로 차에 올랐다.
흥분이 식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피곤도 잊고 창밖을 구경하고 계셨다. 문득 그를 만나면 물어보려던 질문이 떠올랐다.
“아버지. 혹시 제가 어릴 적에 남해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나요?”
“남해? 남해 어디?”
“경남 남해군이라는 곳이요.”
“에이. 그 근처도 간 적 없었다. 식당 일에 매어서 그렇게 멀리 갈 수도 없었고.”
아버지의 진중한 표정으로 미루어 정말인 것 같았다.
“근데 그건 왜 묻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야. 바닷가가 다 그렇고 그런 풍경이지 뭐.
대강 넘겨버리며 나는 액셀을 세게 밟았다. 저녁 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엄마! 저희 왔어요.”
“어흠! 다녀왔수다.”
엄마는 식당에서 이번에도 파리를 쫓고 계시다가 우리를 맞았다. 내가 바닥에 쿵 묵직한 아이스박스를 내려놓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잡긴 잡았나 보네.”
“그럼요. 이것 좀 보세요.”
박스 안을 들여다본 엄마는 깜짝 놀라며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생선을. 게다가 손질까지. 도대체 누가 잡았냐?”
“누구긴 누구겠소? 절반은 내가 잡았고…….”
“유록이가 다 잡았겠지요. 당신이 무슨…….”
“어허.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유록아 네가 말 좀 해 봐라.”
아버지는 억울하다는 투로 내 어깨를 툭 쳤다.
“정말이에요 엄마. 아버지가 많이 잡으셨어요.”
“세상에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구나. 그나저나 빨리 마을 회관으로 가자. 사람들 목 빠지게 기다리겠다.”
엄마는 미리 준비해 두신 밑반찬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식당을 나섰다. 나도 얼른 아이스박스를 챙겨 들고 엄마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한참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준 그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많이들 기다리셨습니다.”
아버지가 개선장군처럼 들이닥친 마을 회관에는 30명 남짓한 사람들이 눈을 말똥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적한 산골 마을이다 보니, 주민들이 거의 다 모인 거나 다름없었다. 내게도 낯이 익은 그들은 부모님 식당의 단골손님이었다.
“유록이 왔구나.”
“어디 얼굴 좀 보자. 아이고, 서울 가서 살더니 얼굴이 약간 하얘졌다. 쬐깐했을 때부터 얼굴이 새까매서 연탄장수 아들이라고 불렀었는데.”
마을 어르신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리는 바람에 나는 쑥쓰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어르신들.”
“서울에서 무슨 회사를 차렸다고 하더니만. 그럼 사장이냐? 테레비에도 나온다고 네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네네. 어르신. 하하.”
아버지를 따라 구석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보니 죄다 노인들뿐이었고, 누군가의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할머니를 보채고 있었다.
“유록아! 나 알긋냐?”
“그럼요. 용식이 아버님 아니십니까?”
“그래. 네 얘기 많이 들었다.”
“용식이는 잘 지내나요?”
“그럼. 요즘엔 충주 시내에 나가서 카센타 일 배우고 있다.”
부지런히 백조기를 굽기 시작한 엄마를 가리키며 용식이 아버지가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저거 정말로 네 아버지가 잡은 거 맞어?”
“그럼요. 거의 다 우리 아버지가 잡으셨어요.”
“흠흠…….”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그의 면전에 아버지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접때 붕어 새끼 너댓 마리 잡았다고 유세를 떨더만. 오늘 백조기 맛이나 실컷 보고 어여 가.”
“…….”
지글지글 프라이팬에서 백조기가 신음 소리를 내자, 곧이어 고소한 냄새가 회관을 가득 메웠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엄마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정겨운 저녁 식사였다.
유일한 어린 아이도 할머니가 발라 주신 살덩이를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카메라 너머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요리의 주인공은 사심희가 아닌 엄마였다.
비록 모양새는 약간 덜할지 모르겠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있는 식사였다.
* * *
마을 회관에서 돌아온 시각은 밤 9시경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짐을 챙기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던 참이었다.
“왜? 가려고?”
“네. 가서 방송 작업도 해야 하고, 또 고양이도 걱정이 돼서요.”
“아서라. 지금 날이 이렇게 어두운데. 푹 자고 내일 일찍 가면 안 되겠냐?”
“그렇지만…….”
엄마의 아쉬운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 자주 오는 것도 아닌데 하룻밤 묵고 가라는 그녀의 말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보람이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그에게 잠깐만 우리집에 들러 베타가 잘 있는지 확인을 부탁하기로 했다.
“도라에몽? 혹시 지금 어디냐?”
“지금 사무실이야. 간만에 야근 중이다.”
보람이는 아지트를 사무실이라고 부른다. 그가 맡고 있는 어반자팩토리의 법인 소재지도 아지트로 해 놓았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다.
“잘됐다. 너 집에 가는 길에 우리집에 좀 들러 줄래? 베타 밥 좀 확인해 줬으면 좋겠다. 급식기가 비어 있으면 좀 보충해 주고. 현관문 비밀번호는 알지?”
“응. 알았어. 근데 오늘 안 오냐?”
“충주에서 하룻밤 자고 가게 됐어.”
“오케이. 걱정 말고 내일 조심해서 올라와라.”
귀를 쫑긋하고 듣고 계시던 엄마는 마음을 놓은 눈치다.
“네 방 치워 놓았으니 어서 올라가 쉬어라.”
“아녜요. 좀 놀다가 갈게요.”
아버지는 벌써부터 아랫목에 누워 TV를 켜 놓으셨다.
엄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도중, TV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중견 남자 배우가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진짜로 우연히 만난 건지, 아니면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TV에 푹 빠져 계셨다.
마침 중견 배우가 찾아간 장소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나는 아까 아버지에게 물어봤던 질문을 엄마에게 불쑥 물어보았다.
“엄마. 혹시 우리 옛날에 저런 바닷가에 놀러 간 적 있었죠?”
“글쎄다. 식당 일이 바빴지만, 강릉에 한 번 놀러 간 적은 있었지.”
“그래요? 그게 언젠데요?”
“네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였나? 정확히는 모르겠다만.”
“강릉이었어요? 남해가 아니고요?”
“에이, 그렇게 멀리 간 적은 없었지.”
아버지와 똑같은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도중 이번에는 더욱 근본적인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내 머릿속에서 작은 혹을 발견한 직후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엄마. 그럼 우리 조상님 중에 바닷가에 사시던 분이 계시진 않았나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
“그냥 궁금해서요.”
“나야 잘 모르지. 아버지에게 물어봐라.”
고개를 돌려보니, 아버지는 우리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느샌가 몸을 일으켜 앉은 아버지가 딱 잘라 말했다.
“없다. 네 조상들은 대대로 여기 충주를 벗어나지 않았어. 우린 유서 깊은 충주 강씨다. 전국에 400가구 정도밖에 안 되는 귀한 성씨가 아니냐.”
“아니면 낚시를 하시던 분도 안 계셨나요?”
이어진 내 질문에 아버지는 정색을 했다.
“당연히 없었지. 대대로 선비 집안이라고 안 하더냐. 낚시의 ‘낚’ 자도 모르고 살아온 가문이다. 나야 세상이 바뀐 덕에 너랑 낚시를 다녀왔다만, 우리 조상님들은 그런 잡술을 하는 분들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내가 틀렸나 보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바다나 낚시에 관련된 전설이 있지는 않을까, 하던 의문은 헛된 것이었다.
충주는 내륙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바다와의 관련성은 전혀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내 능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유전이 아니라면 그냥 돌연변이라는 말인가.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갑자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셨다.
“담배 좀 피우고 오리다.”
기분이 상하신 건가? 내가 말을 잘못한 거라도 있었을까?
잠시 후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내게 말했다.
“어여 네 방에 가서 쉬어라. 내일 일찍 올라가야 할 텐데. 오늘 네 덕분에 손맛 제대로 봤다. 고맙다.”
“예. 아버지. 부러진 낚싯대는 나중에 다시 사 드릴게요.”
“아니야. 바다 구경은 한 번으로 족하다. 담부턴 붕어 낚시나 다닐란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에 나는 침대에 누워 길게 다리를 폈다.
그날 밤.
불 꺼진 다락방 안에서 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12시간을 꼬박 운전과 낚시로 보낸 뒤였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부모님의 가녀린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두 분의 대화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쩐지 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이 또렷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정말로 유록이가 낚시를 잘하던가요?”
“……아주 잘합디다. 마음 씀씀이도 어찌나 좋던지.”
“세상에 우리 유록이에게 그런 재주가…….”
“피는 못 속인다고 하지 않소.”
비몽사몽간에도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피는 못 속인다……?
얼핏 들으면 막장 드라마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사였다. 전형적으로 출생의 비밀을 연상케 하는.
이런……. 내가 무슨 생각을.
헛웃음이 나왔다. 출생의 비밀이라니. 요즘 부쩍 베타와 함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던 탓이다.
그럼 무슨 의미였을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곧 아까 아버지가 정색을 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에이. 아버지도 참.
대대로 선비 집안이었다는 충주 강씨 집안.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살아오신 아버지는 늘 조상들이 충주 인근에서 줄줄이 지방 관리를 역임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셨다.
그래서 선비 집안에 낚시꾼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하지 않소.’
아버지의 말은 필시 가까운 조상 중에 출중한 낚시꾼이 있었다는 방증이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엄마가 밥상을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맛있는 아침상을 물리고 나는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다.
“백조기가 그렇게 먹고도 남아서 좀 싸 놓았다. 네가 좋아하는 밑반찬도 좀 챙겨 넣었고.”
“고마워요. 엄마. 근데 오징어채 무침도 넣으셨나요?”
엄마가 건네준 묵직한 가방을 뒤적거리던 순간, 간밤의 기억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