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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35화 (35/130)

[제35화] 황제 낚시

“빨리 가자. 늦겠다.”

“아이고, 아버지. 아직 일러요. 집에서 충분히 쉬다가 밤 한 시쯤에 출발하시면 돼요.”

“……알았다.”

아버지가 재촉하시는 통에 괜히 일찍 왔다 싶었다. 엄마는 벌써 이불에 누워 한숨을 쉬고 계셨다.

아버지는 어반자TV에 나올 거라는 생각에, 머리도 곱게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어차피 더워서 모자를 써야 하는데.

“이게 네가 사 온 낚싯대라 이거지? 릴이 좀 이상하게 생겼구나.”

“베이트릴이라고 선상에서 내림 낚시 할 때 쓰는 거예요.”

“내림 낚시?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하아……. 찌 없이 그냥 물속에 내리고 하는 낚시요.”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으신 모양이다. 웃음을 참으며 친절하게 설명하는 동안, 오늘 낚시가 조금은 험난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얼마 전에 사셨다는 낚싯대는 어디 있어요?”

“아, 그거? 그건 창고에 잘 보관해 놓았다.”

“용식이 아버지하고 어딜 다녀오셨는데요?”

“붕어 낚시. 멀리 가진 않았다.”

“좀 잡으셨어요?”

“…….”

선뜻 말을 하지 못하시는 걸로 보아, 고전을 면치 못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혀를 차며 대신 설명해 주었다.

“두 양반이 밤을 꼴딱 새우면서 달랑 한 마리 잡고 왔다더라. 그것도 용식이 아버지가 잡지 않았으면……. 쯧쯧쯧.”

“이 사람이! 많이 잡았는데 거기서 끓여 먹고 왔다고 하지 않았소?”

“그걸 누가 믿어요?”

솔직히 나도 못 믿을 얘기였다.

아버지의 눈빛으로 보아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것으로 보였다. 엄마의 푸념은 계속되었다.

“낚시 가서 용식이 아버지랑 대판 싸우고 오셨나 보더라. 맨날 붙어 다니다가 그날 이후로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걸 보니.”

깜짝 놀라 내가 물었다.

“아버지 정말이에요?”

“애한테 별소리를 다 하네.”

굳이 부인하지는 않는 걸로 미루어 사실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민망해하시는 것 같아 이유는 묻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남았다니 잠깐 TV나 보자.”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아버지는 TV를 켰다.

곧바로 케이블 낚시 방송이 나오는 걸 보니, 아마도 요즘 낚시에 빠지긴 빠지셨나 보다.

“아! 저 친구 나오는구나. 어제 봤는데 재방송인가 보다.”

어딘지 낯이 익은 사람이다 했더니 황선태가 나오는 방송이었다. 나는 그를 가리키며 알은체를 했다.

“제가 잘 아는 프로 낚시꾼이에요.”

“그래? 말도 잘하고 고기도 참 잘 잡더라.”

“TV에 나오니까 부러우세요?”

“…….”

아무 말씀 없는 걸 보니까 그런가 보다.

아버지는 유튜브보다는 공중파나 케이블을 진정한 방송으로 여기는 눈치다.

“이제 슬슬 나가실까요?”

“좋다.”

한참 동안 TV를 켜 놓았더니 잠을 못 주무시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아직도 이르지만 조금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조심하거라. 당신도 잘 다녀와요. 유록이 일하는 데 불편하게 하지 말고.”

“내가 뭘 불편하게 한다고……. 100마리 잡아 올 테니 마을 회관에서 준비나 잘하고 기다려요.”

“100마리는 무슨……. 물고기한테 잡아먹히지나 마세요.”

“어허, 첫 출정식에 돼지머리를 올려 주지는 못할망정…….”

두 분의 만담에 웃음을 참으며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충남 대천항. 가급적 충주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으로 정해 놓았다.

“아버지. 눈 좀 붙이세요. 안 그러면 고생하실 거예요.”

“알았다. 그런데…….”

어쩐지 아버지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그 이쁜 처자는 왜 같이 오지 않은 거냐? 방송에서 요리 만들던 그 색시 말이다.”

“아……. 휴가 중이에요.”

“아쉽구나.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만나면 이것저것 좀 물어보려고 했다만.”

“아유.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냥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사심희가 휴가를 떠나서 참 다행이다. 같이 왔으면 민망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아버지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운전 중에 가끔씩 아버지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환갑을 넘기시고 칠순에 가까운 나이의 아버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늘그막에 나를 얻으셨다.

40이 되어 얻은 귀한 아들.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은 나를 강씨 집안의 귀남이라 부르곤 했다.

아버지는 평생을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살아 오셨다.

한학을 가르치는 집안 내력을 따라 젊었을 때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한문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마저도 곧 배우는 학생이 줄어들어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그 후로는 엄마의 식당을 돕는다고 나섰지만, 곧 시들시들해져 가끔씩 바쁠 때나 얼굴을 내미는 정도였다.

마을 일에 이런저런 참견을 일삼다가 일 년간 이장으로 일했던 것이 아버지가 내세우는 경력의 전부였다.

아들을 격려한답시고 알게 된 낚시.

술만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다른 일에 열정을 보이는 일은 처음이라, 나는 반가울 따름이었다.

시작할 때 큰 재미를 좀 보셔야 할 텐데.

담그면 한두 마리는 올라오는 백조기 낚시인지라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도 재작년 경에 처음 도전했다가, 50마리를 잡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 온 거냐?”

“예. 아버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채비나 사러 가시죠.”

“좋다.”

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마치 와 봤던 사람처럼 앞장서서 걸었다. 이른 새벽임에도 출조점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승선 명부를 작성하고, 채비로 쓸 2단 편대 채비를 사 들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미끼인 청갯지렁이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음…… 미끼로 지렁이를 쓰는 거냐?”

“예. 넉넉하게 세 통만 사려고요.”

“…….”

갑자기 입을 꾹 닫은 아버지.

이때만 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최근 용식이 아버지와 다툰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배에 올라 나란히 낚시를 시작하려던 무렵이었다.

“아버지, 지렁이는 이렇게 끼우시면 됩니다.”

우리가 탄 배에는 손님이 반쯤밖에 없어, 다소 여유로운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적당한 위치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굵직한 지렁이 한 마리를 손에 쥐었다.

아버지에게 시범을 보일 참이었다. 바늘에 지렁이의 입부터 끼우고, 손톱으로 꾹 눌러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더니 어쩐지 표정이 수상쩍었다.

“다른 미끼는 없냐? 떡밥이라든가.”

“떡밥요? 그건 붕어 낚시에서나 쓰는 거죠.”

“그럼…… 네가 끼워 주면 안 되겠냐?”

“네에?”

“사실은 붕어 낚시 가서 용식이 애비한테 해 달라고 했더니 그놈이…….”

“그래서요?”

“처음에 몇 번 해 주더니 나중엔 짜증을 내더구나. 그래서 떡밥을 써 보려다가 그곳도 시원찮아 그냥 접어 버렸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평생을 샌님으로 살아오신 아버지. 단 한 번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살아오신 그였다. 그렇지만 시골에 사시는 분이 지렁이를 무서워하실 줄은 몰랐다.

“알겠어요. 제가 해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음. 고맙구나.”

말로만 듣던 황제 낚시의 시작이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차피 아버지를 위한 날인지라 흔쾌히 도와드리기로 했다. 그게 뭐 대수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거 줄은 어떻게 푸는 거냐?”

“아랫부분을 이렇게 누르시면 돼요. 스톱하시려면 릴을 한 바퀴 감으시면 되고요.”

“오호라. 편하구나.”

“이렇게 쭉 내리시다가 바닥에 닿았다 싶으면 한두 바퀴 감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베이트릴은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도 부랴부랴 채비를 내리면서 보니 아버지의 낚싯대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버지! 잡으신 거 같은데요?”

“뭐라고? 정말이냐?”

이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약간 심하기는 하지만 처음이니까 입질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허겁지겁 낚싯줄을 감아올리는 아버지.

너무 세게 감은 나머지 수면 위로 물고기가 휙 뛰어올라 아버지의 코앞에서 대롱거렸다.

“으아악!”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기뻐할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닌가.

“축하합니다. 아버지. 거봐요. 제가 틀림없이 손맛을 볼 거라고 말했…….”

“아이고오~~ 이것 좀…….”

허공에 매달려 푸드덕거리는 백조기를 무서워하는 아버지. 그 순간 나는 낚시를 즐기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리 주세요.”

나는 채비에서 백조기를 떼어 내고 다시 미끼를 갈아 주었다. 아버지는 그제야 안도하며 자신의 첫 조과물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래도 한 마리는 잡았구나.”

“……네.”

“근데 네 표정이 왜 그러냐?”

“너무 기뻐서 그래요.”

마음을 비웠다. 조금만 도와 드리면 익숙해지실 테고 그럼 나도 낚시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황제 낚시는 계속되었다.

다시 미끼를 끼워 드리고, 아버지가 낚시를 하는 동안에는 잡아 놓은 생선의 비늘과 내장을 제거했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굉음이 들려온 것은 손질된 백조기에 굵은 왕소금을 뿌려 아이스박스에 고이 모셔 놓고 일어서려던 찰나였다.

빠직!

낚싯대가 부러질 때 나는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그가 허망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마치 금방 산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린 아이처럼.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큰 놈이 걸린 것 같아서 잡아당겼더니 그만 이렇게 되더구나.”

초릿대의 중간 부분이 부러져 있었다. 아버지께 선물로 사 드린 새 낚싯대였다. 너무나 당황하여 울상을 짓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내 낚싯대를 그에게 내밀었다.

“괜찮아요. 이걸로 쓰세요.”

“미안해서 어쩌냐. 아니다. 난 그만할란다. 괜히 와서 네게 짐만 되는구나. 이것도 네 직업인데.”

“아니에요. 일단 이걸로 쓰세요. 저는 선장한테 하나 빌려서 쓰면 돼요.”

“그래도…….”

주저하시는 아버지에게 억지로 낚싯대를 맡기고 나는 선실로 냉큼 달려갔다.

“선장님! 혹시 낚싯대 남는 거 있습니까?”

“함께 오신 분이 부러뜨리는 거, 나도 봤슈. 미안해서 어쩌쥬? 하필이면 어제 죄다 정비하려고 빼 놓아서 지금 없는디. 다른 손님들에게 부탁해 보시겠슈?”

“……네. 고맙습니다.”

선실을 나와 다른 손님들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간혹 아버지와 같은 불상사에 대비하여 예비 낚싯대를 가져오는 낚시꾼이 있다.

그렇지만…….

아무도 없었다. 재빠르게 그들의 낚싯짐을 스캔해 보았지만 예비대를 가져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온 내게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낚싯대 못 구했지? 잔말 말고 네가 해라. 나는 구경만 해도 좋으니까.”

위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충주 동네 마을 회관에서 조기 반찬을 기다리고 있을 주민들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그려졌다. 계속 아버지에게 맡긴다면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내가 낚싯대를 잡는다면 최소한 백 마리는 잡을 수 있다. 주변에서 쉬지 않고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지 않은가.

아니다.

어차피 아버지가 낚시를 즐기시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아버지가 잡아야 동네 사람들에게도 어깨를 펴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젓가락질 한 번에 백조기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네가 하라니까 그러는구나.”

머뭇거리는 나를 보시며 아버지는 낚싯줄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주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도 낚시를 즐기고 나도 마릿수를 보탤 수 있는 차선의 방법.

“아버지 아까 그 부러진 낚싯대 어디 두셨어요?”

“가방에 챙겨 넣었는데 왜?”

“저는 그걸로 할 거예요.”

“아서라. 부러진 낚싯대로 무슨 낚시를 하겠다고. 내가 그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나는 말없이 가방을 뒤져 낚싯대를 꺼냈다. 그리고 2단 초릿대를 아예 제거하고 손잡이와 릴만 남은 장비에 채비를 고쳐 맸다.

“요즘 낚시는 이렇게도 해요. 손의 감각을 살리려고 일부러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얼른 채비를 던지고, 손가락에 낚싯줄을 걸면서 나는 그렇게 우겼다.

변형된 손낚시.

내가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다. 곧바로 발밑을 노닐던 백조기 두 마리를 한꺼번에 걸어 올리자 아버지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허어, 그렇게도 한다 이거지? 그럼 알았다. 나도 열심히 잡아 보마.”

처음으로 겪는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낚시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미끼를 갈아 드리고, 그가 잡은 물고기를 떼어 주고, 틈틈이 나도 고기를 잡고, 잡은 생선을 손질하고 또 염장하여 보관하고. 헉헉.

하지만 마음만큼은 하나도 바쁘지 않았다.

마음껏 황제 낚시를 만끽하고 계신 아버지에게, 나는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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