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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인생 역전-34화 (34/130)

[제34화] 100마리

부랴부랴 아지트로 달려온 시각은 오후 두 시경이었다.

한산한 오후의 실내에는 보람이 혼자였다.

“도대체 주문이 얼마나 들어온 거냐?”

“벌써 이백 개를 넘겼어. 아침에 너한테 전화할 때만 해도 백 개 정도였는데.”

갑작스러운 주문에 보람이는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일단은 재고부터 확인해 봐야 한다.

“지금 당장 보낼 수 있는 물건이 몇 개지?”

“대략 오백 세트. 샘플 남은 거 하고, 선주문했던 2천 세트 중에서 일부가 들어와 있거든.”

“돈은 어떻게 했어?”

“선금 30%는 내 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잔금은 아직……. 게다가 지금 주문 들어오는 걸로 봐서는 2천 세트 정도 추가 발주를 해야 할 것 같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초기 주문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보람이의 고민은 자금 문제였으리라. 나는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나가자.”

“어디 가려고?”

“자본금 증자하러 안 갈 거야?”

적당한 타이밍에 들어온 목돈.

보람이는 이미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2천만 원을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내 호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람이와 분당 서현역 법무사 사무실에 들렀다가 나왔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남해에서 정신없이 올라오느라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도 못했다.

“저녁 먹고 갈래?”

“아냐. 난 밀린 주문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빨리 가서 추가 발주도 해야 하고.”

“알았다. 고생해라. 당분간 매출이 들어오는 족족 발주하는 데 써야 할 거다.”

“행복한 고민이지 뭐냐. 그럼 난 간다.”

홀로 남은 나는 근처의 순댓국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반자팩토리의 자본금은 어반자TV를 모회사로 처리했다. 보람이와 2천만 원씩 자본금을 정리하고 나니, 법인통장 잔고는 완전히 바닥을 보였다.

아뿔싸!

순댓국을 먹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아지트 임대료와 사심희의 월급을 깜빡했다는 것을.

쳇! 하는 수 없지.

한 달 치 생활비를 포함해서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무차입 경영의 신화는 깨졌지만 상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회사는 흑자인데 투자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 현금 흐름상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다음 달의 정산금으로 자금 상황은 곧 회복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멀티싱커가 힘찬 비상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당분간 외식은 줄여야겠어.

한 달 동안 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분은 날아오를 것 같았다.

* * *

며칠 후.

나는 아지트에 놀러 온 사심희에게 작은 봉투를 건넸다.

“이거 넣어 둬.”

“이건 뭐지요?”

“휴가비.”

“네에? 며칠 전에 월급도 받았는데.”

“우리 어반자의 하나뿐인 직원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얼마 안 되니까 지금 열어 보지는 마.”

일시적인 차입 경영 상황이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고 싶었다. 월급은 그리 넉넉하게 주고 있지 못하지만, 다만 얼마라도 직원의 복리 후생을 위해 쓰고 싶었다.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쐐기를 박았다.

“우리 어반자의 복리 후생 제도를 무시하면 곤란해. 여름휴가 기간은 알아서 필요한 만큼 다녀오고.”

“지금도 거의 쉬는 날이 더 많은데…….”

“어허. 그래도 공식적인 휴가는 다르지.”

“그럼 알겠어요. 사실은 제주도에 한 번 다녀오고는 싶었거든요. 근데 다음 출조는 언제인데요?”

“이번에는 함께 가 주기로 한 사람이 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회사를 만들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자유로운 출퇴근과 보고서가 없는 회사가 어반자의 원칙이다.

더구나 사심희는 존재 자체로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재가 아닌가.

“누굴까? 또 누구 방송 애청자 중에서 동출 요청이 있었나 보죠?”

“응. 대충 비슷해.”

사심희가 궁금해했지만 나는 대충 둘러댔다.

어차피 나중에 휴가에서 돌아와 방송을 보면 알게 되겠지.

휴가를 떠난다는 그녀를 보내고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틀 후 동출하게 된 사람에게 필요한 사항을 알려 주려는 전화였다.

상대방은 신호음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오. 유록이냐?”

“네. 아버지. 전화를 왜 그렇게 늦게 받으세요.”

“식당에 간만에 손님이 많아져서 바쁘다. 근데 왜?”

“낼모레 제가 모시러 간다고요.”

“대충 몇 시?”

“넉넉하게 밤 12시에 모시러 갈게요.”

“알았다. 조심해서 온나.”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들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버지와 함께 바다낚시를 가게 되다니.

정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림이다.

“우럭 님. 여기서 소리가 나나 확인 좀 해 줘.”

아래층에 있던 고동우가 올라와 작은 부저를 식탁에 올려놓고 다시 쪼르르 내려갔다.

띠리리리, 띠리리리링~

쓰레기차가 후진할 때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 소리와 함께 고동우가 또 올라왔다.

“소리 들었지?”

“네. 근데 이게 뭐예요?”

“마나님한테 혼났어. 가게 손님은 신경도 안 쓰고 여기서 노닥거리기만 한다고. 누가 가게 문을 열면 자동으로 알려 주는 장치야. 이젠 가뭄에 콩 나듯이 오는 손님들 문제는 해결이다. 하하.”

“아이고, 구피 님도 참.”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저 부저가 자주 울려 고동우가 바빠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아까부터 궁금해하던 것을 그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캡틴 님은 오늘도 안 보이시네요?”

“또 집에서 골골거리시는 모양이야.”

“편찮으시다는 건가요? 저번에도 몸살로 고생하셨는데.”

“휴우~~”

고동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몸이 아니라 마음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더라.”

“마음…… 이라뇨?”

“내가 보기엔 삶의 지향점이 없다는 게 근본 문제야. 그래서 자꾸 몸살도 나는 거라고. 원래 정년퇴직한 분들이 금방 늙어 버린다고 하잖아.”

삶의 지향점이라고?

나로서는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군에서 퇴역하신 것 때문에 그런 겁니까?”

“그게 제일 크겠지. 평생을 해군에서 바다를 누비고 다니던 분이 집에만 계시게 되었으니. 게다다 처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몸이고.”

“혼자 사신다고요?”

“몰랐구나. 캡틴 님도 너처럼 총각이야. 그냥 모른 척해 드려.”

하아.

한 번도 자녀 얘기를 꺼내지 않으셔서 무자식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예 장가도 안 가셨다니.

고동우는 계속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처럼 돈 걱정은 없다는 거지. 군인 연금 나오겠다. 아파트 있겠다. 처자식이 없으니 돈 들어갈 일도 없겠다…….”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동우에게 불쑥 물어보았다.

“혹시 캡틴 님 집 아세요? 병문안이나 함께 가시죠.”

“아이고, 그런 얘기 꺼내지도 마. 지난번에도 내가 집으로 문안드리러 간다고 했는데 한사코 마다하시더군. 혼자 사는 노인네 살림을 보이고 싶지 않으신 거지. 그냥 모른 척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링~

갑자기 벨소리가 울려오자 고동우는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나도 슬슬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장재준 영감의 너털웃음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평소에는 그저 인자한 모습만 보이던 그였다.

장재준 영감이 왜 허구한 날 아지트를 찾으시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마음을 둘 곳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낚시는 유일한 위안거리요, 아지트는 안식의 공간인 셈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니 안에는 난리가 났다.

베타가 창틀에 있던 화분을 떨어뜨려 집 안이 난장판이었다.

“너. 혼 좀 나 볼래?”

“왜용!”

어이가 없다.

장난으로 오른손을 들었을 뿐인데, 녀석이 앞발을 들어 올리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는 것 아닌가. 너무 많이 컸다.

* * *

분당 외곽의 낚시점.

황선태 프로는 먼저 온 손님의 전동릴에 노란색 5호 합사를 감아 주고 있었다. 손님이 밖으로 나가자 그가 나를 알아보았다.

“우럭 님! 언제 오셨습니까?”

“금방요. 잘 지냈나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방송 하나만 하는데도 정신이 없습니다. 오늘은 뭐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라이트 지깅대 하나 사려고요. 베이트릴도 함께요.”

“오호. 뭐를 또 잡으시려고요?”

“그냥 범용으로 하나 골라 줘 보세요.”

황선태는 얼른 2단 낚싯대 하나를 골라서 달려왔다.

“우럭 님이 쓰실 건가요?”

“아니요. 우리 아버지께 선물해 드리려고요.”

“하하. 아버님도 낚시를 하시나 봐요.”

“이제 입문하시는 거예요.”

“참 보기 좋습니다. 아버지와 낚시라니.”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

새로 산 낚싯대를 케이스에서 꺼내 이리저리 살피고 있을 때 황선태가 불쑥 물었다.

“그 멀티싱커라는 상품은 반응이 어떻습니까?”

“슬슬 나가고는 있어요. 조언해 주신 덕분입니다.”

“다행이군요. 원래 봉돌은 현지에 가서 바다 상황 보고 사는 게 일반적인데, 그 봉돌은 미리 사 둬도 된다는 장점이 있겠더라고요. 온라인에 적합한 물건이 확실해요.”

“잘되면 내가 한턱 내겠습니다. 하하.”

“벌써 공짜로 세 개나 주셨잖습니까? 안 그래도 써 봤는데 흠잡을 데가 없더라고요.”

언제나 내게 신선한 기운을 주는 황선태.

돈을 내고 나가려 할 때 그가 또 물었다.

“근데 아버님이랑 무슨 고기를 잡으러 가시나요? 광어?”

“아닙니다.”

“그럼…….”

“백조기입니다.”

“초보에게 적합한 어종이네요. 잘 다녀오세요.”

“또 오겠습니다.”

낚시점을 나오면서 축하 인사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서 말해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황선태가 메인으로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은 케이블 방송에서 드물게 3%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방송이 기존 30분에서 1시간으로 확대 편성하기로 했다는 예고편도 있었다.

TV와 유튜브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 정상에서 만날 그날을 상상하며 나는 집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늦은 저녁.

나는 아지트에서 보람이와 함께 멀티싱커 주문 현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시원한 여름용 낚시복 차림이었다. 보람이의 요청으로 잠깐 들렀다가 충주에 아버지를 모시러 갈 참이었다.

“일주일 동안 주문량이 1천 세트가 넘었어. 조만간 주꾸미 시즌이 오면 더 늘어날 것 같다.”

“오늘 출조에서도 멀티싱커를 쓸 계획이야.”

“이러다가 우리 부자 되는 거 아니냐? 헤헤.”

보람이가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부자가 되는 일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생기를 되찾은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었다.

이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멀티싱커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었다. 1천 세트라면 일주일 매출이 벌써 1천6백만 원이라는 셈이다.

고동우가 커피를 들고 올라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좋겠다. 또 낚시 가고. 참! 캡틴 님은 오전에 들렀다 가셨어. 무슨 알바 비슷한 걸 하시려나 보더라.”

“알바요?”

“뭔지는 말 안 하셔. 경비원이나 뭐 그런 거겠지.”

밖으로 걸음을 하신다니 다행이었지만,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 궁금했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리며 고동우가 물었다.

“오늘 백조기 잡으러 간다며?”

“네.”

“우리 마나님이 제일 기피하는 생선이구나. 하하.”

그의 말처럼 백조기는 잡기는 쉽지만 손질과 보관이 까다로운 생선이다. 비늘을 치는 것도 손이 많이 가고, 살이 물러 소금으로 염장해야 하고, 약간 말렸다가 보관해야 하고, 비린내도 심하고…… 등등.

낚싯배를 타는 일은 생애 처음이신 아버지.

초보도 백 마리는 너끈히 잡을 수 있다 하여 ‘백’조기라 농담처럼 불리는 어종이다. 정식으로 ‘보구치’라는 명칭의 그 물고기는 아버지도 충분히 마릿수 낚시를 즐길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눔을 하는 거 맞아?”

“물론이죠. 우리 아버지도 어반자TV의 애청자 아닙니까?”

“하긴 그렇지. TV만 틀면 네 방송을 보신다면서?”

미리 올려놓은 예고편에는 이번 백조기 낚시의 나눔 대상을 미리 선정했다고 양해를 구해 놓았다. 대상자가 바로 나의 아버지이며 함께 낚시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번 출조는 오롯이 아버지를 위한 낚시로 기획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매일 들락거리시는 마을 회관에 반찬거리로 제공하여 체면을 세워 드리기로 했다.

“아버지와 낚시라……. 부럽네, 부러워.”

“그러게요.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예고편의 댓글에도 고동우의 말처럼 부럽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중에는 우럭 님의 부친이라면 낚시 실력이 대단할 거라 기대감을 비치는 댓글도 다수였다.

사실은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인데…….

조금은 길게 집을 비우게 되었지만, 베타는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와의 낚시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도라에몽! 계속 수고해라.”

나는 아지트를 나와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한껏 들떠 계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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