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죽방 멸치
“이야! 오늘 최고의 수확은 문어가 아니었잖아.”
“그럼요. 사시미 님이야말로 오늘의 장원입니다. 허허.”
항구로 돌아오는 보트 안에서 고동우와 장재준 영감이 했던 말이다.
멤버들의 얼굴에는 초승달 같은 미소가 걸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만족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장재준 영감은 제일 많은 25마리의 돌문어를 포획했고, 고동우는 21마리로 약간 뒤처졌지만 자신의 종전 기록을 경신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보람이는 막판에 사심희가 카메라를 넘겨받은 틈을 타서 생애 첫 돌문어를 낚았고, 나 또한 안전한 위치에서 조타석을 비우고 순식간에 10여 마리의 문어를 들어 올렸다.
그렇지만 최고의 힐링을 얻은 사람은 단연코 사심희였다. 그녀가 바늘 공포증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인 대형 사건이었다.
아직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는 지금도 바닥에 놓인 에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려다보고 있다.
“이런 플라스틱 미끼로 문어를 잡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꼭 새우처럼 생겼네요.”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머지않아 낚싯대를 손에 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 * *
돌아온 미조항 방파제에서 즉석 먹방이 열렸다.
“캬아! 역시 돌문어는 라면에 넣어야 제맛이지.”
“그렇죠. 야들야들해서 술술 넘어가네요.”
휴대용 버너를 중심으로 우리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라면 5봉지를 흡입했다. 작은 문어로 골라 5마리나 넣었더니 그야말로 라면 반 문어 반이었다.
그윽한 문어 향이 방파제 주변에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베타는 고동우가 던져 준 문어 조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닥을 뛰어다니는 작은 게들을 쫓기 바빴다.
국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릇을 비운 장재준 영감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이 얘기를 잊을 뻔했군요. 오늘 멀티싱커를 처음 써 봤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고동우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우럭 님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도라에몽 님이 정말 공들여 만들었어. 후반전에는 35호에서 20호까지 하나씩 줄여 가면서 썼잖아. 말 그대로 만능봉돌이었어. 방송 나가면 아마 주문이 꽤 들어올걸?”
기대가 섞인 고동우의 말이었지만, 보람이의 얼굴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식사를 마치고 승합차에 오르는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먼저 올라가세요.”
“왜요? 우럭 님은 바로 안 가요?”
사심희가 의아해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 김에 하루 더 쉬다 가려고. 동영상은 오늘 밤 안으로 올려놓을 거야.”
“그러세요. 남해에 단단히 꽂혔나 봐요. 호홋.”
하룻밤을 더 묵겠다는 내 말에 고동우도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럼 나눔 배송은 어떻게 하려고?”
“어차피 캡틴 님과 구피 님이 거의 다 잡으셨잖아요. 잡은 분들께서 직접 전달도……. 헤헤.”
“……알았어. 쑥스럽지만 그렇게 하지 뭐.”
그들이 막 승합차의 문을 닫고 출발하려 할 때였다.
나는 작은 아이스박스를 승합차 뒤에 슬쩍 밀어 넣었다.
“이건 내가 잡은 겁니다. 알아서 나눠 가지세요.”
“그것도 좋은 일에 함께 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허허.”
“우리도 행복해야 남을 도울 수 있지요. 가족분들이랑 문어숙회나 해 드세요.”
고동우가 눈을 찡긋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멀리 언덕길 너머로 승합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잠시 후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지족항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장님! 저 강유록입니다.”
“어이! 오늘 재미 좀 봤습니까?”
“그럼요. 알려 주신 포인트에서 대박을 쳤습니다.”
“다행입니다요. 하하하.”
“그런데 저번에 제가 묵었던 그 민박집. 오늘 들어갈 수 있습니까?”
“텅텅 비었어요. 안 그래도 손님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네요. 오늘 오시게요?”
“예. 1층으로 부탁합니다. 아, 참! 거기 인터넷 연결되던가요?”
“그럼요. 와이파이 잘 터집니다.”
애초에 하룻밤 더 묵고 가려던 계획은 없었다.
어차피 내 차로 따로 내려왔겠다, 이왕 멀리 온 김에 나 혼자만의 짧은 휴가를 즐기려는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노트북을 챙겨 오기를 잘했다.
인터넷도 된다니 동영상 편집과 업로드는 밤에 후닥닥 해치울 수 있겠다.
첫 방문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남해.
나는 지난번에 가 보지 못했던 장소들을 둘러보기 위해 베타와 함께 차에 올랐다.
남해의 지도를 보면 나비의 형상과 흡사하다.
예전에 가 봤던 지족항이나, 보리암, 물건항, 미조항 모두 오른쪽 날개에 속해 있다.
이번에는 왼쪽 날개 하단에 위치한 다랭이마을을 택했다.
계단식 논으로 이어진 이국적인 풍경을 걷다가, 내친김에 평산항이라는 곳에 들러, 회덮밥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다시 차를 달려 남해읍을 둘러보고, 지족항의 황토색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선장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
“늦게 왔네요. 그놈의 고양이는 맨날 붙어 다니나 봅니다.”
“하하. 네. 집 열쇠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잘 묵다 가세요.”
돌아서려다 궁금해서 선장에게 물었다.
“저 민박집을 누가 산다면 가격이 얼마나 하나요?”
“글쎄요. 사실 저는 주인이 아니라서. 주인은 서울에 살고, 저는 그냥 운영만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육칠천이면 사지 않겠어요? 2층이지만 워낙 부실한 집이라……. 살 생각이 있으면 주인에게 물어봐 줄까요?”
“아아. 지금은 아닙니다. 돈도 없고요.”
“젊은 사람이 싱겁기는…….”
언젠가 남해로 오게 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굳이 가격까지 물어본 것 또한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민박집에 짐을 던져 놓고 나는 곧바로 방파제로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내린 방파제는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베타가 성큼성큼 걸어가자, 몰래 기어 나왔던 작은 게들이 화들짝 놀라며 방파제 아래로 흩어졌다.
나는 그때 앉았던 그 평상에 앉아 고즈넉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너무 좋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가까이 바다 위에 서 있는 죽방렴의 나무 말뚝 또한 다시 봐도 친근하기 그지없다.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봤던 장소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곳에서 여름밤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 친숙함의 정체가 뭘까?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이곳에 와 본 건 아닐까? 그럴 수 있겠다. 어쩌면 부모님과 여행을 왔을 수도 있겠다.
진즉에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다음에 충주에 가면 부모님께 물어보면 될 것을.
기시감이니 뭐니 했던 상념들이 한 방에 정리된 기분이었다. 홀가분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던 그때였다.
어디 갔지?
베타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느라 신경 쓰지 못했다.
“베타야! 베…….”
휴우.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베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방파제로 들어서는 입구 근처의 가로등 아래였다. 냉큼 달려가 보니, 베타가 입에 뭔가를 물고 있었다.
“너 그게 뭐냐? 이리 와 봐.”
“왜~~~~ 용.”
완강히 거부하는 녀석 때문에 결국 입에 든 것을 강제로 빼앗아야 했다.
엥?
작고 물컹한 생선이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쯤 마른 왕멸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10여 미터 앞에 멸치를 말리려고 깔아 놓은 비닐 장판이 눈에 띄었다.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 감성돔으로 만든 어묵을 먹은 적은 있었지만, 베타가 생선을 먹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너……. 이제 정말 다 컸구나.
너무 대견해서 베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야~~~~ 옹.”
주변에 널린 죽방 멸치들을 노려보며 계속 뛰쳐나가려는 녀석 때문에 민박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 * *
“흐억!”
깊은 밤.
민박집 안에서 튀어나온 내 비명 소리였다.
돌문어 편을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린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니터를 향한 내 시선이 한 점에 멈췄고, 크게 벌어진 내 입은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정산금.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떠 봐도 법인 통장에 꽂힌 수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속적이고 가파른 구독자의 유입을 지켜보면서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현실로 다가온 큰돈에 겁이 덜컥 났다.
내가 해 온 일에 대한 보상.
내 앞에 다가온 경이로운 현실에 적응하느라,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멀티싱커였다.
멤버들과의 테스트 낚시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수많은 낚시꾼들에게 유용하고 저렴하게 쓰일 획기적인 상품이 될 것도 같았다.
보람이와 약속한 50:50의 투자.
두 번째 정산금은 부족한 자본금 문제를 해소할 가뭄에 단비 같은 돈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대로 보람이와 증자 이슈를 해결하리라 다짐하며 나는 가뿐하게 침대에 누웠다.
이제 주문만 받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 텐데.
돌문어 편에서 보여 준 멀티싱커의 위력에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나는 전날 올려놓은 돌문어 편을 확인했다. 짧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동영상의 조회 수는 적지 않았다. 내가 먼저 살핀 부분은 댓글 창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댓글들이었다. 멀티싱커에 대한 뜨거운 반응들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멀티싱커? 그것참 신박한 봉돌일세.
―영상에 나오는 봉돌은 어디서 파나요? 오프 매장에서는 못 봤는데요.
달랑 두 개의 댓글이 전부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돌문어 포인트가 정확히 어디냐, 문어 라면이 너무 고급지다는 등의 댓글들만 수두룩했다.
단 한 번의 홍보로 너무 큰 기대를 품은 걸까?
차분하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것도 사업인데 지나치게 기적을 바라는 태도는 옳지 않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베타와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어젯밤 베타가 왕멸치를 훔쳐 간 바로 그 장소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떤 놈이 멸치를 훔쳐 먹었을꼬? 내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네.”
눈이 부리부리한 사내였다. 그는 비닐 위에 올라가 구석에 흐트러진 멸치들을 정돈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으이그. 베타가 저런 사고를.
간밤에는 어둑해져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슬그머니 사내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멸치 좀 살 수 있나요?”
“이건 아직 상품이 아니요. 말려야 팔 수 있어요.”
“우리 고양이 간식으로 적당할 것 같아서요.”
“고작 고양이에게 이 비싼 죽방 멸치를? 나야 뭐 사 간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사실라우?”
“비닐봉지 하나만 주세요. 제가 알아서 담아 볼게요.”
간밤에 큰돈이 들어와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베타도 죽방 멸치쯤은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겼다.
녀석도 어반자TV에 가끔 얼굴을 비치는 출연자가 아니던가.
사내가 근처의 가게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안에 베타가 사고 친 부근의 멸치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죽방 멸치라 좀 비싸요. 오만 원만 내고 가시오.”
“여기 있습니다.”
차라리 잘됐다.
생선 맛을 알게 됐으니 베타의 아침 식사는 왕멸치로 해결하기로 했다. 소고기보다 비싸지만 괜찮다.
참 잘도 먹는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베타가 멸치에 빠진 틈을 타 짐을 꾸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염분이 있는 멸치라 베타를 말려야 할 것 같았다.
“짜니까 그만 먹어라. 이제 가자.”
보람이의 전화가 걸려 온 것은 막 민박집 문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어. 도라에몽. 어제 잘 올라갔어?”
“급한 일 때문에 전화했다.”
뭘까?
좀처럼 흥분하지 않은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었다. 머릿속으로 추측해 볼 틈도 없이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멀티싱커! 아침부터 주문이 좀 많아. 미안하지만 빨리 와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