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문어 소굴
며칠 후 나는 보람이와 아지트에서 만나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노트북을 보며 그동안 구축한 온라인 판매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중이었다.
“쉽지? 결론적으로 주문 들어오면 배송 대행업체에 바로 전송만 하면 끝나는 거야.”
“알겠어. 너 이거 만드느라 고생했겠다.”
고생은 했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다.
이제 주문만 들어오면 보람이가 움직일 차례였다.
“아이고, 젊은 두 사장님이 여기 계셨군요.”
“안녕하세요? 캡틴 님. 사시미 님도 안녕?”
두 사람이 한꺼번에 아지트에 들이닥쳤다. 마지막으로 아래층에 있던 고동우가 올라오면서 멤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들을 한데 모은 사람은 장재준 영감이었다. 그의 손에 들고 있던 검정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점심거리입니다. 맨날 얻어먹기만 해서 오늘은 제가 내는 겁니다. 허허.”
얼른 봉지를 뒤적거리던 고동우의 입이 귀에 걸쳤다,
“이거 뭡니까? 비싼 소고기 아닙니까?”
“그래요. 집 근처 마트에서 한우를 잡는 날이라 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사심희가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려 하자, 장재준 영감이 그녀를 말렸다.
“사시미 님은 그냥 앉아만 있어요. 그동안 맛있는 거 해 주느라 고생했잖아요. 오늘은 남자들이 하겠습니다.”
장재준 영감은 나와 보람이를 향해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테이블에 휴대용 버너와 프라이팬을 가져다 놓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가끔은 낚시꾼들도 소고기를 먹어 줘야 합니다. 맨날 비린내만 맡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다. 허허.”
구워지기 무섭게 사라지는 갈빗살 조각들을 바라보며 장재준 영감은 흐뭇해했다.
“고기 좋은 거 사 오셨네요. 한입에 먹기에는 좀 크지 않나요?”
고동우의 말에 나는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가위를 챙겨 왔다. 고기를 반으로 싹뚝 자르려 하자 사심희가 얼른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차차! 바늘 공포증이라고 했지.
끝이 몹시 뾰족한 가위였다. 나는 그것을 테이블 아래에 감추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큼직해야 육즙이 빠지지 않는 법이죠. 그냥 드세요.”
정신없이 갈빗살을 뜯고 있을 때 장재준 영감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는 멀티싱커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온라인 중심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인터넷 시장에 입점해 놓았어요. 지금까지 12박스나 주문도 들어왔고요.”
“벌써요? 어허, 시작하자마자 주문이 왔다면 대단한 거 아닙니까?”
“그냥 처음 보는 거니까 호기심에 구매한 것 같아요. 본격적인 판매로 이어지려면 아직 멀었죠.”
“홍보 활동을 말하는 것이군요. 물론 계획은 세워 놓았겠지요?”
“그럼요. 곧 시작할 겁니다.”
허겁지겁 고기로 배를 채운 고동우는 길게 트림을 했다. 그리고 내게 다음 출조 계획을 물어 왔다.
“그저께 예고편이 올라왔던데? 이번에는 돌문어라면서?”
“예. 낼모레 가려고요.”
“어디로 갈 건데?”
“남해로 정했어요. 8인승 보트도 빌려 놓았고요.”
“너무 멀리 가는 거 아냐? 요즘에는 오히려 군산 쪽이 핫하다던데.”
지구 온난화의 영항으로 남해안을 따라 서식하던 돌문어가 군산에서 많이 잡힌다는 소식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번 남해를 다녀온 이후로 내 마음은 그곳으로 끌렸다.
“보트를? 이번에 또 운전 연습하려고?”
“그래야 늘죠.”
“좋아. 돌문어라…….”
고동우가 관심을 보였지만 선뜻 함께 가자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곁에서 듣고 있던 장재준 영감도 갈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사실 내가 8인승 보트를 예약해 놓은 것은 가급적 많은 멤버들의 참여를 감안한 조치였다. 그렇지만 강제로 모시고 갈 생각은 아니었다.
“모든 경비는 어반자TV에서 낼 겁니다. 사시미 님은 당연히 가는 거니까 됐고, 혹시 같이 가실 분 있을까요?”
“글쎄. 가고는 싶지만 좀 멀어서…….”
고동우가 살짝 꼬리를 내리는 사이, 보람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도 끼워 줘라.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전에 올해의 마지막 낚시가 될 것 같으니까. 남해도 또 가 보고 싶고.”
오케이! 이제 두 명만 남았다.
이쯤에서 나는 이번 출조의 나눔 대상을 미리 밝혀 보기로 했다. 아직 신청을 받고는 있지만 거의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문어 나눔 요청을 보내 온 분이 계십니다.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자들 상대로 무료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더군요. 수십 마리는 보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말꼬리를 살짝 흐리자, 장재준 영감이 손을 들었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나서야죠. 좋습니다. 같이 갑시다.”
마지막 남은 사람은 고동우였다.
나는 그의 눈앞으로 멀티싱커 한 박스를 슬그머니 밀어 놓았다.
“판매 활동을 도와주신다고 하셨죠? 그럼 구피 님도 이번 출조에 동행하셔야죠.”
“남해까지 가서 이걸 팔고 오란 말이냐?”
“아뇨. 이걸로 멋진 돌문어를 잡아 달란 말입니다.”
고동우는 물론, 모든 멤버들은 즉각적으로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렇다. 나는 다른 홍보 활동을 세우지 않았다. 굳이 돈을 들여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어반자TV.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의 방송이야말로 강력한 마케팅 채널이 되어 줄 터였다.
“이야! 좋은 생각이다.”
“그래도 방송인데 그렇게 제품 홍보를 해도 되나요?”
“방송에서 미리 밝혀 두면 문제없다고 하더라고.”
고동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좀 비싸 보이려고 연기를 한 거지. 내가 돌문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크크.”
고동우의 너스레에 아지트 안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모든 멤버들이 함께하는 출조가 확정되었다.
특히 이번 출조는 멤버들 모두가 직접 바다에서 멀티싱커를 처음 사용해 보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예정이었다.
두어 달 전에 안흥항으로 우럭 낚시 대회를 다녀온 이후로 멤버들이 모두 모이는 일은 처음이었다.
또한 보람이의 말처럼 멀티싱커가 잘되면 당분간 얼굴도 보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고기 더 없어요?”
“어허, 그 많은 걸 벌써 다…….”
먹성이 좋은 보람이가 오랜만에 강한 식욕을 보이자 장재준 영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가만 있어라! 내가 얼른 사 오마!”
나는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육점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고마운 멤버들을 위해 제일 좋은 등심을 사 올 작정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하루 일찍 남해에 도착했다. 멤버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홀로 남겨 둘 수 없어, 이번에는 베타도 함께 데려왔다.
남해 미조항.
남해의 남쪽 끝에 위치한 큰 항구는, 예전에 왔을 때는 와 보지 못한 곳이었다. 보트 임대인을 만나 키를 전달받고, 항구 주변을 한 바퀴 돌아 하얀색 보트를 찾을 수 있었다.
키리릭!
키를 꽂고 비트니까 지난 번 구닥다리 보트와는 다른 경쾌한 소리가 나왔다. 널찍한 항구라서 배를 이안하는 일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천천히 보트의 방향을 바꿔 방파제를 빠져나온 나는 곧바로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보람이와 왔을 때 우리를 태워 준 낚싯배의 선장이 전화로 알려 준 곳을 찾아 나서는 길이었다.
돌문어의 소굴.
오늘 내가 할 일은 멤버들이 마음껏 문어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포인트를 발굴하는 것이 첫 번째. 운전 연습은 두 번째 목적이었다.
“야! 시원하다. 베타야 너도 좋지?”
“야~ 옹!”
베타는 조타석 옆에 가만히 앉아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보트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좌우로 크고 작은 섬들이 솟아 있었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오른쪽으로 작은 모래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휴가철을 맞아 일찍이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저긴가? 설리 해수욕장 근처라고 했는데.
플로터가 아직 익숙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휴대폰 지도로 위치를 확인해보니 지족항 선장이 말해 준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핸들을 틀어 해수욕장 근처로 보트를 접근시켰다.
아주 천천히 휘파람을 불어 보니 바닥에는 조개껍질들이 흩어져 있었다.
‘삼천포 낚싯배들이 아직 모르는 비밀 포인트예요. 아무도 잡지 않아서 바글바글할 겁니다.’
선장의 말이 너무 솔깃해서 도저히 확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지그재그로 배를 몰면서 열심히 바닥을 노려보았다.
해안가에서 다시 멀어지고 왼쪽으로 언덕 위에 작은 리조트가 보이는 지점이었다. 조개껍질이 아까보다 수북이 쌓여 있는가 싶더니, 간간이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다!
신천지를 발견한 사람처럼 나는 미친 듯이 휘파람을 불어 댔다. 지족항 선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바닥에 두세 마리씩 뭉쳐 있는 돌문어들이 촉수를 뻗어 살금살금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가 보기로 했다.
정치망 그물이 쳐있는 곳까지 보트를 흘려 보니 문어 포인트는 생각보다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낚싯대를 가져오길 잘했군.
참으로 다목적 낚싯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가져온 것은 그동안 광어 다운샷부터 통영 다잡아 낚시는 물론 최근 민어 낚시에도 사용했던 다목적 라이트 지깅대였다.
20호가 좋겠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창 밀물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케이스에서 20호 봉돌을 하나 꺼내 채비에 연결시켰다.
반짝이가 달린 문어 채비는 아니었다. 에기 3개를 봉돌에 직결한 간단 채비였다.
풍덩!
생각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었다. 문어들이 엉켜 있는 곳으로 채비를 던졌더니 똑바로 하강하던 봉돌이 사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휘리릭!
나는 채비를 회수하고 10호 봉돌을 꺼내 기존의 20호에 끼워 맞췄다. 매우 간편한 작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 채비를 내리자 이번에는 목표한 곳으로 내려가던 봉돌이 쉬고 있던 문어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순식간에 좌우로 흩어지고 있는 문어들.
그러나 내가 곧 에기들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자 도망치던 문어들이 관심이 보이며 다가왔다.
임무 완수!
나는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문어 소굴을 찾은 것으로 할 일은 다했다. 어차피 테스트를 위한 사전 답사였기 때문에 문어들은 내일 꺼내 가기로 했다.
다른 포인트를 더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여기만 해도 우리 멤버들이 하루 종일 잡아 올려도 충분해 보였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미조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미조항 방파제가 가까워지자 오른 쪽으로 큰 두 개의 섬이 눈에 띄었다.
항구에 도착해 보트를 정박시키고 뭍에 오르자 휴대폰 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유록이냐?”
“네. 엄마.”
“왜 그 비싼 TV는 보내 가지고…….”
벌써 수일 전에 배달된 스마트TV 얘기였다. 고장이라도 났나 싶어 엄마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잘 안 나오나요?”
“그게 아니라 네 아버지가 또 말썽이구나.”
“아버지가 왜요?”
“맨날 너 나오는 방송만 틀어 놔서 드라마를 못 본다. 그것까지는 괜찮다만…….”
그럴 줄 알았다. 그러시라고 사 드린 TV였다.
“오늘 낚싯대를 사 들고 오셨지 뭐냐.”
“네에?”
상상도 하지 못한 대사건이다.
“낼 용식이 아버지랑 낚시 간다고 벌써부터 난리다.”
“그게 뭐가 문제예요. 술 드시는 것보다 좋지요.”
“말도 마라.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두고 보시라니까요. 조만간 또 찾아가 뵐게요.”
통화를 마치고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낚싯대를 사시다니. 얼마 전 나와 잠깐 동안 짬낚시를 나가자고 하셨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조만간 아버지와 함께하는 출조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에 내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 있었다.
모텔이 위치한 항구의 바다 위에는 선명한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내일도 유속이 빠를 거라는 증거였다.
나는 굳이 문어 낚시에 불리한 사릿물때를 잡았다.
그것은 멀티싱커의 편의성을 어필하려는 계산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