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30화 (30/130)

[제30화] 오픈 마켓

평택 B 낚시점.

내가 이곳을 첫 방문지로 택한 이유는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았던 가장 큰 낚시점이기 때문이다. 3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낚시 백화점이었다.

막상 가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더욱 큰 규모였다.

문을 열자마자 널찍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평일 오전인데도 매대마다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위축되어 멀뚱히 서 있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고동우는 지나가는 점원에게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사장님 어디 계쇼?”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조구업체에서 나왔소. 좋은 물건이 있어서 소개 좀 드리러 왔다고 전해요.”

“그런 일이라면…… 구매 담당 이사님이 따로 있습니다. 따라오세요.”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점원을 따라간 곳은 카운터 뒤쪽의 작은 사무 공간이었다.

점원이 다가가 뭐라고 소곤거리자 검은 안경을 쓴 사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업체에서 오셨습니까?”

그가 손짓으로 가리킨 의자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어반자팩토리라고 합니다.”

“어반자? 처음 듣는데요. 우리 매장에 등록된 업체인가요?”

“첫 방문이니까 아닐 것 같습니다.

“그건 됐고. 가지고 오신 물건이나 보여 주세요.”

보여 달라고는 했지만, 두고 가라는 말처럼 들렸다.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물건을 보면 확 달라질 거라 나는 믿었다. 케이스를 열어 보이자 고동우가 얼른 제품 설명에 나섰다.

“신개념 봉돌입니다. 멀티싱커라고 부르죠. 이렇게 한 세트만 들고 가면 어떤 낚시에도 활용할 수 있는…….”

구매 담당이라는 사내는 고동우의 설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눈빛에 주목했다. 제품을 살펴보는 사내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번득인 것이다.

봉돌을 꺼내 이리저리 맞춰 보던 사내가 몸을 젖히면서 물었다.

“아이디어 상품이네요. 잘하면 꾸준히 팔릴 것도 같고……. 판가는 얼마로 생각하고 계시죠?”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가격을 물어본다니. 내게는 거의 사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소비자 가격으로 만 육천 원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넘기는 가격은요?”

“그건…… 대략 10% 정도 낮춰서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으하하하!”

상대방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나는 당황했다. 그가 들고 있던 봉돌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쪽 일을 잘 모르시는군요.”

“그게 무슨…….”

“유통 마진으로 최소한 30%는 보장해 줘야 합니다. 처음이라 잘 모르셨나 봅니다.”

“30%나…… 요?”

40%의 마진 중에서 30%나 떼어 줘야 하다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유통을 우습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게 연구하고 만든 사람이 고작 10%만 가져갈 수는 없다.

말이 10%이지 재고 비용과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의미다.

어이없어하는 내게 상대방은 고개를 까딱거렸다.

“정 어려우시면 어쩔 수 없지요. 30%를 제게 주시면 대량으로 사 드릴 용의는 있습니다만.”

머리가 어지러웠다.

고심 끝에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는 쪽을 택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큼성큼 낚시점을 빠져나가는 내 어깨를 고동우가 붙잡았다.

“정말 그냥 돌아갈 거야? 어쨌든 시장에 널리 알릴 기회는 될 수 있잖아.”

“손해를 보면서까지 할 생각은 없어요. 다른 업체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

자선 사업을 하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은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적당히 남아야 새로운 투자도 가능하다. 더구나 이건 보람이의 쌈짓돈까지 털어서 벌인 사업이 아니던가.

“그래. 그래도 제품 자체에는 관심을 보이더라. 그럼 이제 어디로 가 볼까?”

“수원 쪽으로 가시죠. 거기에도 꽤 큰 낚시점이 있더라고요.”

기대가 컸던 만큼 다소 실망스러운 첫 방문이었다.

서로에게 위안의 말을 건네면서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옮겼다.

두 시간 후.

우리는 수원의 J 낚시점을 힘없이 나서고 있었다.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이 30%의 유통 마진을 요구해 온 터라 또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제품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새로운 언급이 있었다면, 소비자 가격을 2만 원까지 확 올려 보라는 제안이었다.

그것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 판단으로는 무리한 가격이었고, 유통 마진을 확보하는 데만 급급한 유통사의 이기적인 제안이었다.

고동우의 헐렁한 양복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열심히 제품 설명을 하고 나온 그도 슬슬 기운이 빠진 것으로 보였다.

“화성 쪽으로 한번 가 보실까요? 거기에도 큰 낚시점이 좀 있던데요.”

우리는 점심 식사도 잊은 채 화성으로, 다음에는 안산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해가 저물 무렵에는 완전히 풀 죽은 모습으로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안산의 어느 낚시점에서는 봉돌을 팔러 왔다는 말만 듣고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까지 겼었다.

“그만 가자. 오늘은 틀렸다.”

“…….”

더 이상 낚시점을 방문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제품만 믿고 너무 큰 기대를 품었을까? 역시 다른 봉돌보다 다소 높은 원가가 문제인 건가?

조구 시장의 현황을 지나치기 모르고 도전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난 이 일에 인생을 걸었어.’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보람이의 얼굴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휴우~~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제 어떡한담?

어느새 우리는 분당 근처의 국도로 진입해 있었다. 차 안에 내려앉은 무거운 공기를 환기하려 창문을 슬쩍 내리던 그때였다.

오늘이 금요일이던가?

그래! 마지막으로 저곳에 한번 가 보는 거야.

멀리 보이는 2층 건물을 발견하고 차를 황급히 돌렸다.

황선태 프로가 운영하는 단골 낚시점에 들러 볼 생각이었다.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나요? 황선태 프로님!”

“자꾸 프로님 그러지 마세요. 쑥스럽습니다.”

“무슨 말씀! 요즘 빼놓지 않고 다 보고 있는데요.”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 고동우는 이제 지쳤는지 구석에 가서 낚시용품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황선태 앞에 멀티싱커를 꺼내 놓고, 단도직입적으로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오늘은 사러 온 게 아니고 팔러 왔어요. 이것 좀 한번 봐 주세요.”

“이게 뭐예요?”

“사실은 우리 회사에서 봉돌을 만들어 봤어요. 이를테면…….”

“이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황선태는 얼른 봉돌을 꺼내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피고 이리저리 맞춰 보고 있었다.

“제품명이 멀티싱커라고 쓰여 있네요? 진즉 이런 게 나왔으면 하고 있었는데. 정말 멋진 물건입니다.”

“여기 오기 전에 몇 군데 둘러봤는데 하나도 못 팔고 왔어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랬을 거라고?

황선태의 대강의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아마 마진 때문이었겠죠. 맞나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 바닥이 그래요. 유통 마진 30% 이하로는 안 받으려고 하죠. 사실 우리도 재고 부담이다 할인 행사다 나름 이유는 있고요. 결국 제조업체 기준으로 50% 마진 여유는 확보해야 유통에 떼어 주고도 살아남을 수 있죠. 그런데 이건 가공비가 추가됐으니까 50% 마진이 어려웠을 테고요.”

너무나 정확한 지적이었다.

업계의 생리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시장 판가를 높일 생각은 없으실 테고. 원하시면 적당히 제 마진을 낮춰서 팔아 볼 수는 있어요. 시장 반응을 살피려면 그렇게라도 해 보시겠어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부담을 드리려고 찾아온 건 아닙니다.”

친분을 활용해서 불완전하게 시장에 내놓고 싶지는 않았다.

조구업계를 잘 아는 전문가로부터 근본적인 문제점과 방향성을 얻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럼 제 생각에는 당장 오프라인 매장 입고는 힘들어요. 차라리 온라인으로 팔아 보시는 게 어떨까요? 말 그대로 만능이라 온라인으로도 꽤 나갈 것 같은데요.”

“온라인…… 이라면?”

“자사 몰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포털 사이트 오픈 마켓을 권해 드립니다. 거긴 유통 마진이 5% 안팎으로 저렴하거든요.”

꺼져 가던 불씨가 살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사람들이 알아서 사 줄까요? 홍보를 하지 않으면…….”

“당연히 해야죠. 돈이 좀 들겠지만 오픈 마켓에서 유료 마케팅 프로그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입소문만으로는 어려울까요?”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결국 그건 시간의 문제겠죠.”

그렇구나…….

얼마가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온라인 홍보도 해야겠지.

“이건 그냥 가지세요. 컨설팅해 주신 대가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런! 그럼 제가 이 멋진 제품을 사용하는 첫 번째 낚시꾼이 되는 건가요? 하하하.”

“배스 낚시에 쓰셔도 될 겁니다.”

“솔직히 온라인에서 팔면 저는 무조건 살 겁니다.”

나는 황선태에게 가져온 샘플 중에서 세 박스를 건네주고 낚시점을 나왔다.

“이야! 네 단골 낚시점이라고? 작지만 꽤 괜찮더라. 나도 저런 낚시점이나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수족관 보다는 잘할 자신 있는데.”

“빨리 가시죠. 하남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고동우는 좀처럼 낚시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한눈을 파느라 낚시점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동안 김치국만 몇 사발 마셨구나. 다 좋은데 가격이 안 맞을 줄이야.”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

“그럼 내일 또 한 바퀴 돌아보자는 거냐?”

“아니에요.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겠어요.”

나는 낚시점에서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을 고동우에게 알려 주었다. 그도 온라인이 차라리 좋겠다는 반응이었다.

“당분간 저 아지트에 못 나갈 거예요.”

“그래. 알았다. 보람이가 오늘의 참패를 알게 되면 몹시 실망하겠지?”

“제가 따로 얘기할게요. 아직 실망하긴 일러요.”

양복까지 챙겨 입고 나온 고동우의 뒷모습이 힘이 없어 보였다. 도와주러 나섰지만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다는 그를 하남에 내려 주고 나는 다시 분당으로 돌아왔다.

호되게 매를 맞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조구 시장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았다. 고동우의 표현처럼 김치국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실망도 컸다.

그렇지만 좌절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짧은 출장을 통해 새롭게 얻은 것이 있었다.

제일 큰 수확은 온라인 판매망으로의 새로운 방향성.

거기에 더하여 언젠가는 외주 생산에서 벗어나 직접 생산으로 마진을 높여야 한다는 값진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중요한 수확도 있었다.

멀티싱커를 눈으로 본 사람들은 제품 자체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오픈 마켓에 올릴 제품 사진을 촬영하고, 수원 모처의 택배업체를 방문하여 포장과 배송 업무를 일괄적으로 맡기는 계약도 체결했다.

오픈 마켓에 대해서는 공부할 게 많았다.

낮에는 돌아다니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분주한 날들이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일에 열정을 쏟은 적이 있었을까,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매일 아침 나는 행복하게 일어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친구를 위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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