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어반자팩토리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낚시하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봤지만 좀 심했군요.”
전날 민어 낚시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들은 장재준 영감의 반응이었다.
곁에서 듣고 있던 고동우도 발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거 동영상에 올려라. 그런 사람은 혼 좀 나 봐야 정신을 차릴 거다.”
“안 그래도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해서 올릴 생각이에요. 다른 선량한 낚시꾼들에게 피해가 없게끔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에서.”
멤버들의 성토가 벌어지는 동안 민어탕은 계속 끓어오르고 있었다.
보람이는 아직도 오지 않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가 떨어져 가고 있을 무렵, 장재준 영감이 불쑥 멀티싱커로 화제를 이어 갔다.
“그날 집에 가서 천천히 생각해 보니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더군요. 그런데 어떤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디다.”
“재작년 겨울 경남 고성에서의 낮볼락 낚시였어요. 아직 회사에 들어가기 전이였죠.”
긴 얘기였다.
나로서는 낚시에 입문한 이후로 처음 겪게 된 폭망의 날이었다.
그날 나는 밤새도록 경부 고속도로를 달렸다. 비몽사몽으로 배에 오른 시각은 아침 6시였다.
선장이 알려 준 80호 봉돌 열 개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뼈아픈 판단 실수였다. 물론 어초에 숨어 사는 볼락 낚시가 처음인지라 서툴렀던 것도 이유였다. 담그는 족족 거친 바닥에 채비를 뜯기는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결국 오전 10시도 못 되어 모든 봉돌을 소진.
가방에는 혹시나 해서 챙겨 온 50호와 100호 봉돌이 있었지만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선상 낚시에서는 옆 사람과 줄이 엉키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봉돌 무게를 통일하는 것이 불문율.
머리를 조아리며 옆자리 조사에게 하나를 얻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 못 가 바다에 헌납하고 말았다.
제기랄!
또다시 남에게 구걸할 염치는 없었다.
모든 낚시꾼에게는 언제고 봉돌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가급적 부탁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결국 나는 낚시 종료까지 다섯 시간을 멀뚱히 선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비참한 기분에 잠도 오지 않았다.
선상 호텔에서 쉬려고 이 먼 곳까지 달려왔다는 말인가?
허탈한 웃음을 짓던 그때였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서로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봉돌이 있다면?
즉석에서 무게를 조절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거다! 그렇게만 한다면 물때에 따라 몇 호 봉돌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겠고, 대상어마다 서로 다른 봉돌을 구입할 필요도 없을 테고…….
빈 쿨러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으로 달려가 ‘무게 조절 봉돌’을 검색해 보았다. 바다낚시 용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잘하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청계천 골목의 영세한 금속가공업체였다. 20호짜리 샘플 하나를 만드는 데 무려 5만 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그 후로 회사에 들어간 나는 책상 서랍 깊숙이 던져 놓았던 그 쇳조각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지낸 것이다.
“이야! 역시 궁즉통이었군. 사실 경험이 아니었으면 저런 아이디어는 떠올리기 쉽지 않지.”
내 얘기를 들은 고동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지트의 문이 열리고 보람이가 큰 머리를 내민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딘지 모르게 그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보였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보람이는 소파에 앉자마자 들고 온 작은 가방을 열어 볼 태세였다. 그를 제지하고 나선 사람은 사심희였다.
“식후경 몰라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민어탕부터 먹고 시작해요. 지금이 딱 적당히 끓었을 때니까요.”
“나야 좋지.”
“그렇죠. 먹는 게 우선이죠. 허허.”
모든 멤버들이 모인 가운데 사심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탕을 한 그릇씩 나눠 주었다. 오래 푹 끓인 민어 지리탕은 곰탕처럼 뽀얀 색깔을 띠고 있었다.
“죽인다. 죽여. 나는 사시미 님이 미국에 안 가고 계속 여기 있으면 좋겠다.”
고동우의 시끌벅적한 감탄에 사심희는 얼굴을 붉혔다. 아마도 내 추측에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한동안 아지트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후루룩 소리와 쩝쩝거리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크아! 역시 여름에는 이런 걸 먹어 줘야지.”
“몸살 기운이 싹 사라진 것 같습니다. 허허. 이렇게 맛있는 민어탕은 처음입니다.”
식사가 끝나자 멤버들의 관심은 다시 보람이에게로 쏠렸다. 그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가방 안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예 세트 상품으로 만들어 봤어요. 거래하던 외주업체에서 가격도 많이 도와줬고요.”
보람이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것은 작은 도시락만 한 반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였다.
툭!
내가 케이스의 고리를 벗기고 들어 올린 순간, 모든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냐?”
“이건 정말 기대 이상입니다.”
고동우와 장재준 영감이 한마디씩 던졌고, 낚시를 못 하는 사심희도 관심을 보였다.
“이게 봉돌 맞아요? 너무 예뻐서 쓰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케이스의 내부는 3단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맨 위에 5호 봉돌 열 개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각각 10호와 20호 봉돌 열 개씩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른 봉돌처럼 아연도금도 넣었어요. 케이스는 할인마트에서 적당한 기성품을 고른 거라서 딱 맞지는 않을 거예요.”
보람이가 부연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봉돌이라고 하면 비닐봉지에 뒤죽박죽 담긴 것만 봐 왔던지라 놀라움은 더욱 컸다.
나는 케이스 안에서 10호와 10호 봉돌을 하나씩 꺼내어 나사를 연결해 보았다.
전혀 헐겁거나 빡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사가 다 들어가는 순간에는 ‘똑’ 소리를 내며 잠기는 것이, 낚시 도중에 저절로 풀릴 염려는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보람이의 얼굴을 장난스럽게 흘기며 말했다.
“역시 도라에몽이다. 시행착오도 없이 단번에 완성품을 내놓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보람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궁금해하고 있을 사항들을 나서서 설명해 주었다.
“일단 샘플로 10세트만 만들었어. 그걸로 시장 반응이 좋으면 바로 대량 주문을 넣기로 했고.”
“대량 주문 단위는 몇 개야?”
“세트 기준으로 2천 세트가 최소 기준이야.”
2천 세트라…….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수량이다. 그보다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판가와 원가였다.
“2천 세트 주문하는 데 얼마지?”
“내 계산으로는 세트당 1만 원에서 조금 빠지더라. 케이스와 포장비, 배송비 등등 모두 포함해서.”
세트당 1만 원의 원가.
시장에 내놓을 만한 원가인지 알려면 판가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럼 판가는?”
“기존 봉돌과 같은 수준으로 맞추려면 내 생각에는 1만 6천 원 정도 해야 하지 않을까?”
세트당 1만 6천 원의 판가.
그렇다면 마진이 대략 40%라는 말이다. 조구 시장에 참여하는 제조업체의 일반적인 마진이 얼마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냥 감으로 볼 때 나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부터 사마. 봉돌 30개들이 케이스가 만 육천 원이라니.”
“허허. 내 생각에도 낚시꾼들이 좋아할 것 같습니다.”
고동우와 장재준 영감의 의견도 나와 같았다. 모두가 희망의 미래를 그리고 있던 그때였다. 내 가슴속에는 작은 걱정거리 하나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돈이었다.
당장 2천 세트를 발주하려면 2천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내게는 그런 돈이 없다. 아지트 임차 보증금으로 5백만 원을 지불하고 남은 돈은 1천5백만 원에 가까운 액수.
그 때문에 어반자팩토리의 설립 자본금도 일단 1백만 원으로 해 놓았던 것이다.
내 얼굴에 드러난 작은 그늘을 알아챈 걸까. 보람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나도 어반자팩토리에 투자하려고 해. 어차피 내 인생을 건 일인데 그냥 월급쟁이로만 있고 싶지 않거든.”
“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래 봬도 직장 생활만 10년이야. 쥐꼬리만 한 봉급이었지만 장가가려고 조금씩 모아 둔 돈이 있어. 한 2천만 원은 될 거야.”
꼭 당장의 자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보람이를 위해 만든 회사다. 그의 말대로 그가 인생을 걸었다면, 주주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좋아! 그렇다면 나랑 50:50으로 하자. 각자 2천만 원씩 출자하는 거야. 대신에 너는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고, 판매는 내가 담당하는 것으로 하고.”
“오케이! 내 성격이 사람들 대하는 건 젬병이니까.”
어반자팩토리의 자본 구성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멀티싱커가 시장에서 어떤 활약을 보이는가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달린 셈이었다.
“판매처 찾으러 돌아댕기는 일이라면 나도 도와주마.”
시제품 품평회가 마무리되고 있을 때, 고동우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저야 고맙지요. 구피 님 말발이라면 낚시점 주인들이 그냥 넘어갈 테니까요. 근데 가게는 어쩌시게요?”
“하루 이틀 정도만 비우는 거야 뭐. 지금도 봐라. 손님이 있으면 내가 여기 2층에서 이렇게 한가로이 노닥거리고 있겠어?”
제품도 완성된 마당에 판매를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와 고동우는 바로 다음 날 만나 수도권 인근의 낚시점들을 둘러보기로 약속했다.
최종 수요자와 접점에 있는 낚시점 주인들.
그들이 멀티싱커의 시장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수주까지 받아 오겠다는 야심 찬 기대감마저 꿈틀거렸다.
* * *
오랜만에 홀가분한 저녁 시간이었다.
아지트에서 돌아와 격포 민어 편을 업로드하고 베타와 저녁 식사를 마쳤다. 베타는 마지막 남은 감성돔 어묵으로 포식을 하고 노곤한 몸으로 캣 타워 위에서 졸고 있었다.
아차! 오늘이 목요일이지.
때마침 생각난 TV 프로그램이 있어 나는 리모컨을 눌렀다. 내가 검색한 채널은 케이블 방송의 낚시 채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배스의 추억’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저 황선태가 오늘 찾아온 곳은 충남 예산의 예당지 포인트입니다.”
황선태 프로가 출연하는 방송은 첫 회부터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순항 중이었다.
젊고 풋풋한 프로 조사는 훌륭한 입담과 폭발적인 조과를 선보이며 단숨에 인기 스타로 발돋움할 기세였다.
실로 대단한 테크닉이었다.
종횡무진 저수지 곳곳을 누비며 던지는 족족 배스를 걸어 내는 모습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렇지! 신형 TV를 사 드릴 생각이었지.
문득 눈이 침침해서 휴대폰으로 내 방송을 보기 어렵다던 아버지의 말이 기억났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 적당한 가격의 스마트 TV를 골랐다. 그리고 언제든지 내 모습을 TV로 보게 되실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클릭 버튼을 눌렀다.
* * *
다음 날 아침.
나는 고동우와 함께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헐렁한 양복을 입고 나온 고동우에게 내가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구피 님은 웬 정장까지 입고 나오셨습니까. 하하하.”
“그래도 비즈니스 미팅이잖아. 우럭 님이야말로 청바지가 뭐야?”
더 말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그냥 웃고 말았다. 잠시 후 골똘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고동우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제 올린 동영상 반응이 대단하더라. 그 욕심꾸러기 노인에 대해서는 격론이 벌어졌더군. 게다가 민어탕은 또 어떻고? 아마 오늘 민어탕 식당들 미어터질 것 같던데?”
“……그래요?”
“관심 없는 척하기는. 이러다가 최고 인기 낚시 채널이 되겠어.”
“하하.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요.”
“민어를 두 사람한테나 보내 줬더구만. 그분들이 남긴 감사 댓글에도 대댓들이 줄줄이 달렸더군. 나눔 낚시의 아이콘이라. 우럭 님은 좋겠어.”
사실은 나도 아침에 나오면서 확인했다.
나눔을 받은 대상자들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감사의 댓글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독자들의 대댓글도 넘쳐나고 있었다.
차가 안성 IC를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고동우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당장 주문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굳이 우리가 설명하지 않아도 상품이 스스로 말을 해 줄 거야. 대박 예감이라니까.”
나도 그러기를 바랐다.
어반자TV는 궤도에 올라서 있었고, 이제는 어반자팩토리가 잘되기를 바랐다. 보람이가 인생을 건 사업이라 더더욱 그랬다.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을 진정시키며 우리는 톨게이트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