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내시경
나는 물러서지 않고 노인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어르신! 민어를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어디 내 민어에 손을 대려고?”
“누구의 바늘에 걸렸는지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 드리면 되겠습니까?
구경꾼이 몰려드는 바람에 노인도 계속 버틸 수만은 없었다. 증거를 보이겠다는 내 말에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결국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그가 내 등 뒤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낚시 경력만 30년이여. 아무렴 입질과 줄걸림도 구분 못 했을까…….”
나는 거침없이 민어를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로 잡기엔 너무 무거워 두 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의 대민어였다.
날카로운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민어의 주둥이 근처였다. 역시 내 추측이 옳았다. 나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거 잘 보십시오. 여기 왼쪽 입가에 나 있는 바늘 자국 말입니다. 바늘 자국은 하나뿐입니다. 확인하셨죠?”
“어어, 정말 그러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미끼만 물었다는 얘기네.”
“진짜로 누구의 미끼였을까?”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인이 나섰다 그는 변함없이 그것이 자신의 바늘 자국이라고 항변했다.
“그게 무슨 증거라는 거여? 내 바늘만 물었으니께 바늘 자국이 하나인 건 당연한 거 아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부터입니다.”
나는 다시 민어를 눈높이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훑어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물고기에게 키스라도 하려는 해괴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입에서 아주 높은 음계의 극초음파가 발산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초음파 내시경.
초음파는 고체에서 멀리 뻗어 나가지 못한다. 다만 수분을 다량 함유한 대상물의 경우에는 흐릿하게나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민어의 몸속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내 눈길이 민어의 아가미에서 약간 꼬리 쪽으로 향한 곳에서 스르르 멈췄다.
나는 마지막으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아까 고기를 올리자마자 제 일행의 바늘을 끊어 버리셨죠?”
“그건 또 뭐 할라고 물어.”
“분명히 영감님의 낚싯줄에 엉켜 있었습니까?”
“그, 그렇다니께 왜 자꾸…….”
노인은 끝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로 미루어 확신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끝내 부인하지도 않았다.
나는 비식 웃으면서 민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구명조끼 주머니에서 ‘바늘빼기’라 불리는 핀셋처럼 생긴 도구를 꺼내 들었다.
툭!
민어의 목구멍 속에 깊이 박혀 있던 작은 물체가 갑판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런데 왜 이게 민어의 목구멍에서 나왔을까요?”
“그, 그게 뭔디?”
노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몰려온 사람들이 먼저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죽어 있는 새우 미끼였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구경꾼들을 바라보았다.
“중하입니다. 저기 계신 노인분의 미끼가 아니란 말입니다. 영감님은 오늘 대하를 쓰고 있었습니다. 저분의 욕심만큼 큰 새우를 말입니다.”
완벽한 증거였다.
초음파 내시경을 통해 내가 발견한 것은 목구멍에 걸려 있는 중하였다. 배 속까지 들어가 있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배를 가르는 참극까지 벌여야 했다.
“이런, 이런……. 어디 남의 고기를. 쯧쯧쯧.”
선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중하를 주워 들고 혀를 찼다. 그리고 냉큼 바닥에 놓인 대민어를 들고 노인을 향해 말했다.
“아이고, 영감님! 요즘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더니. 이건 저쪽 손님 쿨러에 넣겠습니다.”
“…….”
“그리고 앞으로 저희 배는 승선 금지입니다. 아셨어요?”
“…….”
노인은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경환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그런 표정 지으실 필요 없어요. 이건 100% 오경환 님이 잡으신 민어니까요.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양보할 생각이었는데…….”
“오늘 초보의 서러움을 단단히 겪으신 걸로 충분합니다. 최대어의 주인공이 되셨으니 초보 딱지는 떼셔도 되겠습니다.”
배에서 벌어진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항구로 돌아오는 도중에 오경환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민어의 목구멍에 작은 새우가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뭔가 들여다보는 것 같은 행동을 하던데요.”
“…….”
그의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보아, 딱히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선상 위에서 장비도 없이 초음파 내시경을 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햇빛에 비춰 본 겁니다. 혹시나 했는데 속까지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꺼내 본 거죠. 50%의 확률을 믿고 말입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정말로 몰라서 그랬을까요? 내가 보기엔 약간 의심스러워 보이기도 하던데.”
“그야 나도 알 수 없죠. 그냥 잊읍시다.”
노인이 정말 실수를 한 건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알고 그랬을 수도 있고, 모르고 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심 고의로 그랬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나는 물고기의 정당한 주인을 찾아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내 노력이 이제 막 낚시에 빠진 사내에게 초보의 설움을 딛고 일어설 계기가 되어 주길 바랐다.
* * *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격포항.
나는 오경환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의 수산물 포장 코너에 들어가 민어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택배 보낼 수 있습니까?”
“그럼요. 몇 박스입니까?”
“세 군데 보내려고 합니다.”
제일 큰 민어는 아버지의 몫이었고, 아지트로 돌아가 멤버들과 시식할 것은 따로 챙겨 두었다.
배 위에서 다소의 씁쓸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네 마리나 잡은 것은 의외의 성과였다. 덕분에 이번에는 두 건의 나눔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대상자는 벌써부터 점찍어 두었다. 갓 입대한 청년의 요청이었다.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는 그는 군대에 와서 늘 고향에 계신 그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한다는 조부모의 건강에 대한 염려였다.
“이건 충주로 보내 주시고요, 이건 순천으로 보내 주세요.”
“그럼 나머지 하나는요?”
문제는 두 번째 나눔 대상자를 누구로 정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우선순위로 정해 놓은 두 개의 사연. 결정 장애에 빠진 나는 불쑥 오경환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 보내는 게 좋을까요?”
내가 건네준 휴대폰을 들고 사연을 읽어 내려가던 오경환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중 한 개의 메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려운 결정이네요. 그래도 저라면 이분께 보내겠어요.”
“알겠습니다. 의견 고마워요.”
최근에 실직했다는 중년 가장의 메일이었다.
늦둥이를 낳자마자 남의 집 일을 다니게 되었다는 그의 아내. 산후조리도 못 해 줘 염치 불고하고 한 마리를 얻고 싶다는 남편의 절절한 내용이었다.
“매번 결정하느라 힘들겠어요. 직접 옆에서 보니까 어려운 일을 하시네요.”
“무슨 말씀을요. 그래도 보내고 나면 모든 낚시의 피로가 사라진답니다. 하하하.”
워낙 마릿수로 잡기 어려워 많은 분들께 보낼 수는 없었다. 오경환의 말처럼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오경환은 좀처럼 말이 없었다. 뭔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분당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차에서 내려 오경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늘 덕분에 편하게 다녀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겠습니다.”
“저야말로 우럭 님 덕분에 귀한 민어를 잡았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의 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는 다급하게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오는 동안 베타가 심히 걱정스러웠다. 자동 급식기를 설치해 놓긴 했지만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베타야~~ 나 왔다. 형아 왔다.”
문을 열면서 베타의 이름을 불렀다.
급식기 앞에서 홀로 밥을 먹다가 쪼르르 달려 나오는 녀석이 모습이 보였다.
“아이고, 이 녀석. 그래도 잘 있었구나. 고맙다.”
너무나 기특해서 녀석을 번쩍 들어 안았다.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베타도 내가 그리웠는지 사정없이 얼굴을 핥아 대는 통에.
“오늘은 너무나 멋진 하루였다.”
베타의 활짝 웃은 얼굴을 바라보던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낚시를 하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했을 감동의 하루였다.
어반자TV의 구독자인 오경환이라는 사내와의 동행.
마지막 대민어를 그에게 돌려주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
그리고 두 사람에게나 민어를 나눌 수 있었던 하루.
그러나 나를 제일 미소 짓게 만든 상상은 조만간 동네방네 아들이 잡은 민어를 자랑하고 다니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 * *
다음 날.
곤히 늦잠을 자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휴대폰 벨소리였다. 눈도 뜨지 못하고 휴대폰을 귀에 붙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록이냐?”
아버지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네네. 아버지.”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잠이냐?”
벌써 이렇게 됐나?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벌써 오전 11시였다.
“어제 좀 무리를 해서요.”
“그거 잘 받았다.”
“아……. 그거요. 벌써 도착했어요? 엄마랑 몸보신하시라고 보냈어요.”
“네가 잡은 거냐?”
“그럼요.”
“알았다. 너무 커서 용식이네 식구도 불러서 먹어야겠더라. 잡느라 애썼다. 쉬어라.”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내 입꼬리가 슬슬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점심 전에 아지트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간밤에 사심희가 전화를 걸어와 정오경에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전갈을 남겼다. 다행히 외삼촌은 맹장 수술을 하고 퇴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대강 씻고 베타와 함께 차에 올랐다. 먹방이 빠져 있어 아직 동영상도 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오늘 점심은 중요한 일이 겹쳐 있었다.
보람이가 그동안 공들여 만든 시제품을 멤버들 앞에 공개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부리나케 차를 몰고 근처의 마트에 들어가 각종 채소를 사 들고 나왔다. 사심희가 미리 귀띔해 준 메뉴는 민어탕이었다.
오늘 제대로 된 보양식을 먹을 수 있겠군.
입가에 맴도는 군침을 삼키며 나는 아지트에 도착했다.
“어이, 왔냐?”
“오셨어요?”
고동우와 사심희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재준 영감도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는 몸살이 다 낫지 않았는지 약간 초췌해 보였다.
보람이가 보이지 많아 내가 물었다.
“보람이는요?”
“지금 오고 있대. 업체에서 시제품 검수하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나 봐. 음식 딱 나오면 맞춰서 오려나? 헤헤.”
고동우의 장난기 섞인 대답이었다. 사심희는 내가 건네준 부재료들을 받아 들고 곧장 칼질을 시작했다.
“지리탕으로 푹 고아서 내놓을 거예요. 시간이 좀 걸리니까 커피나 마셔요.”
사심희가 냄비에 모든 재료들을 예쁘게 담은 뒤에야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소파에 앉아 지글지글 냄비 소리를 들으며 멤버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어제 배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장재준 영감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고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젯밤 긴 댓글이 하나 올라와 있길래 물은 겁니다.”
“댓글요? 아직 민어 편은 올리지도 않았는데요.”
“그게 아니라 민어 예고편에 말입니다. 누구라더라? 함께 낚시를 다녀온 오경환이라는 분이던데요.”
무슨 일인가 싶어 나는 후닥닥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오늘 함께 낚시했던 오경환이라고 합니다. 저와 같은 초보를 챙겨 주시고 배려해 주신 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여러 손님들에게 민폐도 많았고, 스스로 막판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자괴감이 들어 낚시를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럭 님이 나서서 해결해 주시고 격려까지 해 준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바다에서 만나게 되면 오늘보다 멋진 낚시꾼이 되어 있을 겁니다.
늘 어반자TV를 응원하겠습니다.
오경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