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민어(民魚)
엉겁결에 벌이게 된 새로운 사업.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방향성을 찾게 된 보람이.
축하할 일이 두 개나 생겼다.
“자아, 이렇게 다들 모였으니 간만에 자장면이나 시켜 먹을까요?”
“좋지요. 축하도 해 줄 겸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장재준 영감과 고동우가 서로 밥을 사겠다며 휴대폰을 꺼내던 그때였다. 사심희가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베타는 어디 갔나요? 늘 함께 붙어 다니는 줄 알았는데.”
헉!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보람이 생각에 빠져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그만 베타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저 오늘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지트 계단을 단숨에 뛰어내렸다. 그 어린것을 홀로 두고 나오다니.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나는 분당으로 돌아왔다. 문가를 서성이며 울부짖고 있을 베타의 애절한 모습을 그리며 현관문을 열어젖힌 순간이었다.
“야~~~~ 옹.”
놀라운 광경에 나는 한동안 문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베타가 캣 타워 위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나는 신발도 벗지 못하고 달려가 베타를 와락 안아 주었다. 그랬더니 녀석은 귀찮다는 듯이 휙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베타의 몸집이 처음 왔을 때보다 부쩍 커진 것 같았다. 녀석의 성장이 반갑기도 했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내내 나는 캣 타워에 앉아 낮잠을 즐기는 베타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간이 즐거운 상상에 잠기기도 했다.
머지않아 수많은 낚시꾼들이 나와 보람이가 만든 멀티싱커를 들고 낚시를 즐기는 상상이었다.
다음 날.
나는 서현역의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어반자TV의 자회사 형태로 만든 새로운 회사의 이름은 ‘어반자팩토리’였다.
* * *
짧은 장마가 끝나고 7월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를 위해 민어를 잡을 생각으로 벼르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유튜브에 민어 예고편을 올리자마자 사심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뜻밖의 비보였다.
“미안해서 어쩌죠? 제가 이번 출조는 못 갈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사실은 갑자기 부산에 가게 되었어요. 외삼촌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이 와서.”
“당연히 가 봐야지. 그럼 언제 올라오는데?
“모레 점심쯤에 올라오니까 하루 늦어도 괜찮다면 민어 요리는 제가 책임질게요.”
“무리하진 말아. 정 안되면 우리끼리 회라도 떠 먹으면 되니까.”
이번에는 간만에 나 홀로 출조가 되겠군.
다른 멤버들도 모두들 이번에는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뒤였다.
특히 장재준 영감은 몸살을 앓고 있어, 아지트에도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베타를 집에 두고 갈 계획이었다. 솔직히 베타의 급격한 변화가 마음에 걸리고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성장을 위해 이번에는 모험을 감행해 보기로 했다.
그래! 혼자서도 괜찮아.
그렇게 마음을 달래며 나는 이것저것 출조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낚싯대는 늘 사용하던 라이트 지깅대를 가져가면 그만이고, 제일 중요한 생새우 미끼는 현지에서 새벽에 구매하기로 했다.
잠들기 전에 어떤 나눔 요청이 왔을까 이메일을 검색해 보니, 벌써 수많은 메일들이 들어와 있었다.
한 개씩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그때, 약간 색다른 메일이 눈에 띄었다. 제목부터가 나눔을 원하는 메일이 아니었다.
[꼭 한 마리만 잡아 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이건 뭐지?
궁금해서 얼른 클릭해 보니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었다.
‘의정부에 사는 오경환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제가 내일 민어 낚시를 예약했는데, 예약자 명단에서 우럭 님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 차로 함께 이동하시면서 많은 조언을 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초보라서 혼자 가기가 몹시 두려웠거든요. 제 전화번호는 010―4XXX―6XXX입니다. 메일 확인하시면 늦더라도 연락 꼭 부탁드립니다.’
너무 늦은 시각 아닌가? 아무래도…….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잠깐 망설이던 나는 그래도 전화를 해 보기로 마음을 고쳤다. 초보라는 표현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실례지만 오경환 님 되세요?”
“누구십니까?”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저 어반자TV의 우럭이라고 합니다.”
“아아! 우럭 님. 안 그래도 제 메일을 못 보셨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늦게 확인해서 미안합니다.”
“그럼 제 차로 같이 가 주시는 겁니까?”
“폐가 안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는 길인데요. 뭘. 정말 고맙습니다.”
그와 시간과 만날 장소를 정하고 통화를 마쳤다.
혼자 가기가 적적하던 차에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람을 맞추고 잠깐 잠을 청하다가, 부스스한 얼굴로 집을 나선 시각은 밤 1시경이었다.
“베타야. 밥 잘 먹고 잘 놀고 있어야 된다.”
베타를 위해 새로 구입한 자동 급식기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지만 베타는 잠에 빠져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나는 오경환이라는 생면부지의 사내와 함께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요? 알고 보니 저랑 동갑이군요. 하하하하.”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나와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된 그가 크게 기뻐했다.
만난지 얼마 안 되어 우리는 마치 잘 알고 있던 사이처럼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낚시꾼들은 낚시라는 공통의 관심사만으로 대화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무엇을 잡았고, 어떤 낚시를 좋아하고, 최근에 어떤 물고기가 잘 나온다는 등등.
다만 오경환이라는 사람은 아직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였다.
그가 메일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이번이 두 번째 출조였다. 그래서 낚시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솔직히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지난번에 우럭 배를 탔는데 꽝은 저 혼자였어요.”
“하아, 많이 아쉬웠겠군요. 그런데 실례지만 뭐 하시는 분이십니까?”
“직딩입니다. 사실은 오늘 휴가 내고 가는 겁니다. 낚시에 홀딱 빠진 것도 이유지만, 아버지에게 민어 한 마리 떡 바쳐 드리고 싶어서요.”
“오! 저랑 같군요. 오늘은 아버지를 위한 출조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우럭 님이야 당연히 잡으시겠지만, 저에게 행운이 따를지 모르겠습니다. 실력도 없고.”
“혹시 제가 많이 잡으면…….”
나와 같은 이유라는 생각에 그에게도 한 마리를 내주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절대 그런 말 마세요. 저는 제 손으로 잡으려는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면 낚시를 왜 가겠습니까? 차라리 마트에서 사고 말지.”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꼭 잡을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유쾌한 대화였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거침없는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내 마음을 끈 것은 그의 얼굴에 드러난 들뜬 표정이었다. 그것은 처음 내가 낚시에 빠졌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오경환 님은 어쩌다 낚시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최근의 일일 것 같은데요.”
대화 도중에 문득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럭 님 때문이었습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두 달 전에 우연히 우럭 님의 방송을 본 것이 낚시에 입문한 계기였다는 말입니다.”
“정말입니까?”
낚시터에서 내 방송을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낚시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나의 의도.
그것이 헛되지는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의 출조지는 전북 변산에서 가까운 격포항이었다. 항구에 도착하니, 선착장 제일 앞쪽에 내가 예약한 E호가 눈에 띄었다.
새로 건조했다는 5톤 급의 신조 낚시선에서는 페인트 냄새가 풍겼다. 소음에 민감한 민어를 찾아 펄물 포인트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쾌속선이었다.
배에 오르고 있을 깨 오경환이 내게 물었다.
“오늘은 몇 마리가 목표예요?”
“목표는 없죠. 그런 거 마음에 두면 즐거움을 방해할 수 있겠더군요. 그냥 주어지는 대로 바다가 허락하는 만큼 즐기다 보면 몇 마리 잡혀 있겠죠.”
솔직한 심정을 말했지만, 그래도 내심 세 마리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나눔 요청 메일이 쇄도했다.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좋은 놈으로 한 마리 보내야 하고, 멤버들과 시식도 해야 하는 등 필요한 마릿수는 최소 세 마리.
이번에도 나는 고심 끝에 나눔 요청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해 두었다. 대상자를 몇 명으로 할지는 낚시를 마치고 결과물에 따라 확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민어가 그리 쉽게 잡히는 어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백성의 물고기라는 이름과 달리, 민어는 예로부터 백성이 잡되 임금님이 먹었던 귀한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
“역시 휴가를 내고 평일에 나온 보람이 있군요. 두세 자리는 비겠는데요?”
오경환의 말처럼 배에 올라가 보니 손님들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3분의 2 정도는 채워져 있었다.
“오늘은 그냥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시면 됩니다.”
선장의 말은 굳이 자리 추첨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좌현 중간 부근으로 빈자리를 잡고 아이스박스를 내려놓았다.
“오늘 손맛 많이 보셔야 합니다. 포인트까지 40분은 걸립니다.”
선장의 외침과 동시에 신조선이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갔다. 나와 오경환은 선실로 들어가는 대신 채비를 정돈하면서 방송을 준비하기로 했다.
오호라!
내 자리 뒤쪽에서 카메라를 고정시킬 좋은 곳을 발견했다. 창가에 설치된 철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예고드린 대로 격포항에서 여름 바다의 보양식 민어를 잡으러 왔습니다.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위한 출조가 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대민어를 잡아, 나눔 요청을 보내 주신 분들의 기대에도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오프닝 멘트를 날리고, 가져온 외수질 채비와 살아 있는 생새우 미끼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어느 노인이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요즘에는 낚시도 모르는 것들이 방송 찍는다고 저렇게 떠드는 갑네. 쯧쯧.”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쾌한 비아냥거림이었다. 연세가 지긋한 분께 뭐라고 대꾸할 생각도 없었지만, 오경환이 내 눈치를 보며 선실로 이끄는 바람에 그 자리를 떴다.
어째 느낌이 좋지 않은 어르신을 만난 것 같군.
얼핏 보니 그는 선수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곳은 오경환의 옆자리였다. 동이 터 오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연신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의 얼굴에 왠지 불친절한 느낌이 묻어 나왔다.
40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상쾌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오늘 만날 민어들을 상상하다 보니, 누런 펄물을 가르며 달리던 배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나는 낚싯대를 움켜쥐면서 옆 자리의 오경환에게 눈을 찡긋했다.
“오경환 님! 파이팅입니다.”
“우럭 님도요!”
그때 멀리서 약간 기분 나쁜 음성이 들려왔다.
“아싸! 오늘 느낌이 좋구먼! 민어 놈들 오늘 나한테 혼 좀 나 보라지.”
아까 보았던 그 노인이 킬킬거리며 내뱉은 말이었다. 최신 장비와 옷차림으로 무장한 그의 행색으로 보아 낚시깨나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미끼를 꿰면서 슬쩍 살펴보니 노인의 미끼가 남들과 달라 보였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미끼로 쓰는 ‘중하’가 아니라 크고 값비싼 ‘대하’였다.
대물 민어를 노리겠다는 노인의 욕심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낚시가 시작되고, 모든 손님들이 동시에 채비를 던졌다. 채비가 하강하는 동안 물속을 들여다보니 아래에는 익숙한 물고기가 몇 마리 눈에 띄었다.
“얼씨구! 지화자!”
채비를 담그자마자 1분도 안 되어 어신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아까 그 노인이었다.
그래도 낚시는 좀 하는 분이군.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보니 잠시 후 누런 송곳니를 드러내고 릴링을 하던 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뭐여? 이거 민어가 아니라 농어 새끼 아녀?”
민어 낚시에서 심심찮게 손님고기로 올라오는 농어.
사실 여름의 농어도 맛과 영양으로 보자면 훌륭한 물고기다.
“이깟 놈 때문에 비싼 대하만 한 마리 갖다 바쳤구먼. 에라이.”
노인은 신경질적인 태도로 농어를 바늘에서 빼내어 바다에 휙 던져 버렸다.
허어, 참 여러모로 연구 대상인 영감님일세.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낚시에 집중하기로 했다. 옆면에 점이 박힌 농어들 틈에서 매끈한 몸통의 물고기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몹시 입질이 예민한 놈이었다.
살랑살랑 고패질을 하자 놈이 슬그머니 다가와 내 미끼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다가 움직임을 잠시 멈추자 덥석 새우를 물고 늘어진 물고기.
“히트!”
짜릿한 손맛이었다.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6짜는 되어 보이는 준수한 민어였다.
“역시 우럭 님입니다. 축하합니다.”
푸드덕!
일찌감치 마수걸이를 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올라온 민어를 아이스박스에 담으면서 나는 오경환에게 눈을 찡긋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온한 하루를 예감했다. 낚싯배에서 보기 드문 희대의 빌런을 상대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