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24화 (24/130)

[제24화] 폭죽

한치 낚시의 핵심 성공 요소는 에기의 선택과 수심 파악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수심 파악은 내게 필요치 않았다.

채비를 바닥까지 내렸다가 천천히 올리며 한치의 유영층을 가늠하려는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곧바로 15미터 부근에서 에기를 흔들었다.

무난하다고 들었던 수박색 에기는 한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스르륵.

어느새 다가와 촉수 한 개를 뻗어 에기를 건드리는 한치. 비록 뻣뻣한 경질 낚싯대지만 초릿대의 반응으로 입질을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내게는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쭈욱!

그리 먹성 좋은 놈은 아니었다. 가만히 다리 한 개를 올려놓은 상태에서 그대로 챔질을 시도했다.

“벌써 잡은 거예요?”

수면을 벗어나는 순간 쫘악 물을 내뿜는 한치 한 마리를 발견하고 사심희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내가 말했지? 폭죽놀이를 보게 될 거라고.”

“아하. 저게 바로 그…….”

배의 첫수는 내가 차지했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부터는 던지는 족족 한 마리씩 또는 1타 2피로 두 마리의 한치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너무 예뻐요. 마치 외계 생명체 같네.”

사심희는 바닥에 놓인 한치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한치를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오징어보다 투명한 한치의 몸에서 노란 불빛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옅은 자주색으로 돌변했다.

사무장이 다가와 내 아이스박스를 열어 보며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아따, 젊은 친구가 잘 잡네. 아직 초저녁인디. 근디 쿨러가 좀 작은 거 같구먼.”

“첫 끗발인데요. 뭐.”

내 농담이 문제였을까?

다시 채비를 내리려던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많던 한치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게 뭐여? 만새기 아녀?”

바다의 폭군, 만새기.

해외에서는 고급 어종 취급을 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도 안 먹는다는 대형 어종. 만새기의 출현으로 한치들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뱃전에 정적이 흘렀다.

몇몇 낚시꾼들은 만새기 떼가 사라질 때까지 선실로 들어가는 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금 몇 마리 잡았죠?”

“한 스무 마리?”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는 베타를 가방에서 꺼내 무릎 위에 앉히고, 아이스박스에 앉아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을 기다렸을까?

“아아, 올라온다.”

집요하게 채비를 담그고 있던 어느 낚시꾼의 함성 소리에 배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일어선 나는 바다를 보자마자 감탄을 내뱉었다.

“사시미 님! 이거 보고 있었어요?”

너무나 황홀한 광경이었다.

환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는 집어등 아래로 펼쳐진 밤바다.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유성처럼 떠도는 그곳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잠시 경치 구경에 빠져 있던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나는 다시금 물속을 살피며 채비를 흔들었다.

만새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럭저럭 한치들이 돌아와 있었지만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심심치 않을 정도로 따박따박 올리다 보니 어느덧 자정을 넘겼다.

“아이고. 이제 목표량은 채웠네.”

33마리.

나는 머릿속으로 세고 있던 마릿수를 기억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표량이 있었어요? 아항! 나눔 대상자를 벌써 정했나 보군요.”

“맞아. 그런데 아무래도 목표량을 올려야겠어. 한 사람당 두 마리씩으로.”

“힘들지 않아요? 조금 쉬었다 하지.”

사실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한치의 손맛이 너무 좋았다. 그냥 손맛이 아니었다. 한 마리 끌어 올릴 때마다 그걸 맛있게 먹게 될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손맛에 더해진 특별한 의미.

내 예상이 옳았다. 내 새로운 시도는 손맛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효과를 현실에서 보여 주고 있었다.

활성도가 그리 높지 않지만 나는 꾸준히 한치를 낚았다. 등에서 잠든 베타를 확인하고 백팩은 아이스박스 옆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본격적인 야간 낚시의 시작이었다.

새벽 동이 터 오를 무렵 내 아이스박스에는 거의 100마리에 육박하는 한치들이 쌓여 있었다.

“이제 딱 두 마리만 잡겠어. 그건 우리 방송용이야.”

먹방은 선상에서 즉석 한치회를 선보이기로 했다.

이왕이면 갓 잡아 올려 펄떡거리는 놈을 사용하기로 했다.

“자아, 이제 끝!”

마지막에 한꺼번에 올라온 두 마리.

그런데 작은 불상사가 벌어졌다. 가방에서 고이 잠들어 있던 베타가 어느샌가 뛰쳐나와 앞발로 한치의 촉수를 툭 건드린 것이다.

찌익!

이번에도 오른쪽 눈이었다. 한치의 입에서 발사된 먹물을 뒤집어쓴 베타가 깜짝 놀라 내 품으로 달려왔다.

“아이고, 베타야. 너를 어떡하면 좋냐. 이제 먹물이 겨우 다 빠졌는가 했더니.”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백옥처럼 새하얀 베타의 모습을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사심희는 입을 막고 키득거렸다.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기다리시던 먹방 타임입니다. 바로 여기 선상에서 바다의 맛을 직접 선보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멘트를 남기고 사심희의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잠시 후.

사심희가 휘두른 몇 번의 칼질로 두 마리의 한치는 투명한 회로 변신했다. 초장을 찍어 입에 넣은 순간 달콤한 기운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방금 잡아 올린 물고기로 선상에서 즐기는 즉석 회.

아마도 낚시꾼이나 어부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쫄깃한 회를 씹는 순간, 나는 시청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 * *

새벽 5시에 출발한 배가 여수 국동항으로 돌아온 시각은 오전 8시 반. 아침 식사를 하고 안양까지 올라오니 벌써 오후 두 시였다.

“사시미 님. 이거라도 들고 가.”

“아뇨. 오늘은 됐어요. 더 좋은 데 쓰려는 거 알아요.”

사시미는 내가 내민 비닐봉지를 한사코 마다하고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나는 잠깐 망설였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숙면을 취한 뒤라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다. 나는 근처의 수산물 시장으로 성큼 걸어갔다.

잠시 뒤 나는 빈 스티로폼 박스 몇 개를 얻어 들고나와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박스에 한치들을 담고 밀봉한 뒤에 내가 향한 곳은 분당이 아니라 경기도 평택이었다.

성곡 아동복지센터.

그곳은 평택시의 외곽 후미진 들판에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작은 놀이터가 보였고, 그네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기가 맞겠지?

확인도 해 볼 겸 초인종을 눌렀더니, 한참 후에 인터폰으로 인자한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시죠?”

“여기가 성곡 아동복지센터 맞습니까?”

“예. 맞아요.”

“혹시 김준서 학생이라고 지금 안에 있나요?”

“예. 지금 있는데 무슨 일이시죠?”

“학생에게 전달할 물건이 있어서요.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아주머니와 함께 나온 사람은 열 살 정도의 남자아이였다. 초등학생이었구나. 예상보다 어린아이여서 나는 깜짝 놀랐다. 편지글에 묻어 있던 성숙함으로 미루어 중학생 정도로 생각했다.

“네가 준서구나?”

“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시죠?”

“나. 우럭이야.”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말하자 아주머니는 나를 수상쩍게 쳐다보았지만,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아이의 눈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흔들렸다.

“정말이군요. 우럭 아저씨가 진짜로 오시다니.”

“세 박스다. 하나는 바로 회로 먹고, 나머지는 나중에 두고두고 친구들과 먹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갈 참이었다. 그러나 내 다리를 붙잡은 것은 아이의 짤막한 외침이었다.

“아저씨! 나중에 저도 낚시꾼이 될 거예요. 언제 저도 바다에 데리고 가 주실 거죠?”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때 묻지 않은 그의 눈동자 안에 바다를 향한 강렬한 동경이 묻어 있었다.

“그래. 조만간 꼭 데리러 오마. 약속할게.”

분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좀처럼 아이의 눈망울이 떠나지 않았다. 꼭 방송을 위한 시도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게 진한 힐링의 여운을 남긴 낚시였다.

조만간 함께 낚시를 하자고 했던 약속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와 함께하기 적당한 어종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눔 낚시를 공지하자마자 찾아온 첫 번째 메일.

김준서라는 아이는 자신을 평택에 있는 보육원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32명의 보육원 아이들과 원장 할아버지를 위해 한치를 간절히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이가 말하는 원장은 예전에 낚시를 즐겼고, 잡아 온 물고기로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 낙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몇 해 전 허리를 다친 이후로 그런 소소한 행복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원장은 몹시 가슴 아파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아이는 예전에는 원장 할아버지와 평택항으로 낚시를 다녀온 추억도 소개했다. 또 예전에 원장이 오징어를 잡아 와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말해 주었다.

아직 어리고 돈이 없어 배를 탈 엄두는 내지 못하지만 귀한 한치를 보내 준다면 원장의 쓰린 가슴도, 불편한 허리도 곧 나을 것 같다는 대목이 나의 심금을 울렸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원아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생선회를 구경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다만 몇 마리의 한치라도 나눠 준다면 그 어린 동생들에게 한치회를 맛보게 해 주고 싶다는 아이의 작은 소망이 담긴 편지였다.

택배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굳이 평택으로 달려간 이유는 숙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싱싱한 회를 먹기를 바라서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바다에서 뛰놀던 싱싱한 한치들이 아니던가.

처음에는 33명에게 한 마리씩 나눠 줄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손맛에 탄력을 받아 두 마리씩으로 다시 세 마리씩으로 나도 모르게 늘어나 버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길게 누워 버렸다.

밤낚시를 위한 긴 여정을 끝에 진한 피로가 밀려왔다.

지금쯤 잘 먹고 있을까?

몹시 피곤했지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맛있게 한치회를 먹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소박한 밥상에 작은 폭죽이 되어 주기를…….

스르르 눈이 감겼다가 번쩍 다시 떠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먹물을 뒤집어쓴 베타부터 씻겨 주었다. 그리고 오늘의 기록을 편집해서 업로드를 해야 했다.

* *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유튜브에 접속한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전날 밤 올린 여수 한치 편에 달린 무수한 댓글들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 많은 한치들을 누구에게 전해 줬는지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유난히 긴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평택 성곡 아동복지센터의 원장 박영규입니다. 몸이 불편하여 직접 찾아오셨는데 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들 맛있게 한치회를 먹는 모습에 눈물이 흐르더군요. 우럭 선생님이 놓고 가신 한치는 그들에게 한 끼 식사가 아니라 희망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었다.

별것도 아닌데 이렇게 좋아해 주시다니.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를 때마다 빠르게 증가하는 조회 수 때문에 좀처럼 일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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