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아버지
[일성 식당]
부모님이 한평생 운영해 온 식당의 문을 열었다. 휑한 실내에 홀로 앉은 어머니가 손으로 파리를 쫒아내고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아이고! 유록이구나.”
“그동안 잘 계셨어요?”
“연락이라도 좀 하고 오지.”
언제나 살가운 엄마의 음성.
엄마는 낡은 슬리퍼를 신고 한걸음에 달려 나오셨다.
“아버지는요?”
“동네잔치가 있어서 나가셨어. 전화해서 오시라고 해야겠다.”
“아녜요. 그냥 두세요. 곧 오시겠죠. 이거 받으세요.”
백화점 로고가 박힌 종이 가방을 건네주자 엄마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객지 나가 고생하면서 웬 선물이냐. 와서 밥이나 한 끼 먹고 가 줘도 엄마는 좋은데.”
“아버지 거랑 같이 샀어요. 안 맞으면 시내에 가셔서 바꾸시면 돼요.”
“고맙다. 자고 갈 거지? 얼른 밥 차려 주마.”
엄마는 잠깐 앉을 틈도 없이 곧바로 점심 식사를 차린다며 주방으로 나섰다. 다섯 평 식당 의자에 앉아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에그머니나!”
잠시 후 쟁반을 들고 나온 엄마가 기겁을 했다.
내 옆자리의 가방에서 고개를 내민 베타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 소개도 드리지 못했다.
“제가 기르는 고양이에요.”
“아이고, 회사 댕기면서 네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 텐데.”
“아뇨. 혼자서도 잘 놀아요.”
거짓말이다.
“그래도 어쩌다 고양이를…….”
“비 오는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쳐들어왔어요.”
“그래. 집으로 찾아든 짐승을 내쫓을 순 없지. 잘했다.”
엄마는 이해심이 남다른 분이다.
베타가 소고기를 잘 먹는다는 내 말을 듣고, 그녀는 얼른 달려가 잡채에 넣으려던 소고기 고명을 들고 왔다.
“그래. 회사 일은 어떠냐? 사람들은 잘 대해 주고?”
“……그럼요.”
“승진은 아직 멀었지?”
“……이제 2년 차인데요. 한참 남았어요.”
아직은 이실직고하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니다. 아버지가 오시면 한꺼번에 매를 맞는 게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둘러대느라 애썼다.
엄마의 반찬은 늘 변함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즐겨 먹던 어묵조림, 진미채, 그리고 적당히 익은 오이소박이까지.
“아버지가 또 낮술을 드시나 보다. 점심도 거르시고 연락도 없는 걸 보면.”
아버지는 술은 좋아하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으로 그를 불러 보지 못했다. 필요한 말만 가끔씩 던지는 그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가 겉으로 속내를 드러낸 경우는 단 두 번이었다.
내가 대학 합격증을 받고 돌아왔을 때, 그리고 역시 내가 회사에 합격했을 때…….
‘사내는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 구실을 하는 거다.’
아버지가 평소 하시던 잔소리였다.
이미 각오는 되어 있다. 아버지만 오시면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리라.
“그런데 손님이 거의 없네요?”
“요즘 누가 이런 시골 백반집에 오겠니? 동네 사람들도 다들 피자다 햄버거다 시내로 가는 마당인데.”
“그래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전화하지 않으면 또 취해서 밤늦게야 오실 게야.”
이번에는 엄마를 말리지 않기로 했다.
언제까지 주사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좌불안석으로 앉아 있기도, 계속되는 회사 얘기에 거짓말로 둘러대기도 괴로웠다.
지이잉~ 지이잉~
엄마가 전화를 걸자마자 식당 어디에선가 진동음이 들려왔다.
“이 양반이 또 전화기를 두고 갔나 보네. 쯧쯧.”
소리의 진원지는 입구 카운터 부근이었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버지의 휴대폰을 들고 왔다.
그런데 전에는 못 보던 신형 스마트폰이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요금을 아낀다고 늘 낡디낡은 2G 효도폰을 고집해 왔던 아버지였다.
“엄마! 아버지 휴대폰 새로 사셨어요?”
“얼마 전에 새로 사 왔더라. 네가 그렇게 바꿔 준다고 할 때는 마다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원.”
설거지를 하러 엄마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아버지의 스마트폰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좋을 걸로 사셨네.
아버지의 신형 휴대폰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한 것은 순전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앱이나 제대로 깔아 놓으셨는지…….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비틀어 보았더니 역시나 보안 장치도 전혀 해 놓지 않으셨다.
날씨, 시계, 계산기…….
기본적인 앱들만이 정리도 되지 않은 채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물컵을 들고 왼손으로 휘리릭 다음 화면을 열어 보던 그때였다.
푸웁!
벌컥벌컥 물을 마시다 화들짝 놀라 내뿜고 말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화면에 달랑 남겨져 있는 빨간색 앱.
그것은 유튜브였다.
떨리는 손으로 눌러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알고리즘이 골라 놓은 채널들은 온통 낚시 관련 방송들이었다. 심지어 제일 위쪽에는 최근에 내가 올린 남해 감성돔 편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맙소사!
아버지가 어떻게 아셨을까? 왜 모든 걸 알면서도 나에게 묻지 않으셨을까? 엄마에게도 비밀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니고 있을 때, 철커덩 식당문이 열렸다.
“아, 아버지…….”
얼큰하게 낮술을 하고 돌아오신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퀭한 눈과 딱 마주친 나의 시선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땅바닥을 향하고 말았다.
* * *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까?
식당에 딸린 살림집 1층에 앉은 나는 애꿎은 방바닥만 문지르고 있었다.
“아버지, 엄마, 사실은 저 회사 그만뒀어요.”
엄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회사를 그만두다니.”
“당신은 잠자코 있어요!”
아버지의 한마디에 엄마는 망연자실 몸을 뒤로 젖히고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진즉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됐다!”
아버지는 더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잠시 후 고개를 떨고 있던 내 머리 위로 예상치 않은 질문이 떨어졌다.
“밥벌이는 할 수 있는 거냐?”
“……네. 아직은 적지만……. 사실은 첫 월급도…….”
“그럼 됐다. 열심히 해 봐라.”
“네에?”
귀가 고장이라도 난 줄 알았다. 열심히 해 보라니.
무뚝뚝한 아버지에게서 튀어나온 말 한마디에, 툭 방바닥에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아마도 처음에는 몹시 놀라고 실망하셨을 아버지였다.
분기탱천하여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호통치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을 것이다. 새로 산 스마트폰으로 아들을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셨을까.
“용식이 애비한테서 들었다. 네가 휴대폰에 나오더라고. 낚시를 하도 잘한다고 해서 얼마나 잘하는가 궁금하더라.”
용식이는 동네에 사는 후배 녀석이다. 아마도 그 녀석이 내 방송을 봤고 그의 아버지에게 귀띔을 해 준 모양이다.
엄마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이제는 남편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당신은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어떻게 들어간 회사인데…….”
“그만합시다. 유록이 너는 그만 가서 쉬거라.”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엄마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오랜 추억이 배어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가슴에 얹혀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아직 대낮인데도 나는 오랜만에 숙면에 빠져들었다.
* * *
“유록아! 저녁 먹어라.”
저녁 식사에 맞춰 내려갔을 때에는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였다.
“세상에 얼마나 회사가 힘들었으면…….”
마음을 정리하신 엄마는 어느새 내 편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표정했다.
“야~~ 옹!”
아버지의 무거운 입술을 들어 올린 것은, 구석 자리에서 소고기를 먹고 있던 베타였다.
“저놈이 얼마 전에 그 귀한 물고기를 잡았던 그 고양이냐?”
“예. 아버지.”
“실제로는 처음 보네. 귀엽다.”
“베타라고 해요.”
아마도 아버지는 내 방송을 전부 본 것 같았다. 내친 김에 밥상을 물리고 나서 두 분께 명함을 한 장씩 건네주었다.
“제 명함이에요.”
“CEO? 이건 뭐냐?”
“사장이라는 뜻이에요.”
“그래. 이왕 하려면 사장을 해야지. 용식이 애비한테 주게 한 장 더 놓고 가거라.”
집에 발을 들이고 나서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사내놈이 실없이 웃긴…….”
“죄송해요.”
“근데 테레비에는 안 나오는 거냐? 쬐깐한 휴대폰으로만 보니까 영 눈이 시려서 불편하더라.”
“TV를 좋은 걸로 바꾸면 되는데…….”
“일없다. 신경 쓰지 마라.”
부모님의 방에 놓인 낡은 TV.
나는 조만간 그것을 유튜브 시청이 가능한 신형으로 바꿔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밥상을 물리고 어색한 분위가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내가 사 가지고 온 새 옷을 꺼내 입어 보더니,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아들한테 새 옷을 얻어 입은 김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
“네. 아버지.”
날이 저물고 있는데 어딜 가냐며 엄마가 말렸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내 차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둠이 내린 호수였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시나? 엄마 앞에서 못 하신 꾸중이라도 하시려는 건가?
은근히 불안해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너 혹시 낚싯대 가지고 온 거 있냐?”
“네에? 낚싯대요?”
“그거 재미있어 보이더라. 난 지금껏 먹고사느라 한 번도 못 해 봤지 뭐냐.”
“아아…….”
낚싯대라면 트렁크에 늘 구비되어 있다.
나는 얼른 차로 달려가 짤막한 루어대를 하나 꺼내서 돌아왔다.
“한번 해 보시겠어요?”
“미끼도 없는데 되겠나?”
“여긴 배스가 있을 것 같으니까 루어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민물낚시 용도가 아니어서 최적의 채비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럭저럭 다운샷 채비에 국방색 웜을 끼워 아버지의 손에 쥐여 드렸다.
“이렇게 잡으시고, 최대한 멀리 던져 보세요.”
“이렇게?”
“아니요. 오른손으로 쥐시고 왼손은 그냥 갖다 대시라고요.”
“알았다. 알았어.”
“아이고, 아버지. 낚싯줄을 꽉 고정해고 던져 보세요.”
“이 녀석이 아비를 혼내는 거냐?”
“그게 아니고요. 아버지…….”
아버지의 생애 첫 캐스팅은 그의 발 앞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다시금 채비를 물속에 던져 보려 했지만 번번이 마찬가지였다.
“허어. 이거 쉽지는 않구나.”
겸연쩍어하면서도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아버지와의 정겨운 순간이었다.
아버지와의 낚시.
언젠가 그와 함께 바다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고 있을 장면을 상상하며 나는 또 한 번 그의 자세를 고쳐 주었다.
휘익! 척!
드디어 아버지의 채비가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수면에 안착했다.
“됐다! 됐어!”
아이처럼 기뻐하시는 아버지.
결국 그날 아버지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의 손에는 내 손이 꼭 쥐어져 있었다.
은근슬쩍 아버지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나였다. 아들의 선택을 이해해 주려 애쓰시는 그분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거 놔라. 아버지 아직 정정하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뿌리쳤다. 야심한 밤에 외출하여 돌아오지 않고 있는 부자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에 인사를 드렸다.
“자주 올게요.”
“그냥 건강하면 된다.”
“아버지, 엄마도 건강하세요.”
“우린 아무 걱정 없다. 너만 알아서 챙기고 살면 그뿐이다.”
식당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어제 들어올 때와 달리 무척 가벼워졌다. 차로 향하려다 문득 부모님의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부모님이 식당 앞까지 나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어 주는 엄마. 반면에 아버지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언제나 내 뒤를 그렇게 지켜 주시는 두 사람…….
아버지의 얼굴이 예전보다 수척해 보였다. 원래 작은 키였지만, 이제는 어깨가 굽어져서 그런지 더욱 작아만 보였다.
졸지에 낚시꾼을 아들을 두게 된 아버지.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조만간 부모님께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약을 선물해 드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