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첫 수입
내게는 작은 로망이 하나 있다.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이다. 먼 훗날이 될지 아니면 가까운 시기가 될지 명확하지는 않다.
바닷가의 그림 같은 집, 집 앞의 바다에 묶여 있는 작은 배 한 척, 그리고 마당의 평상 위에 누워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내 모습.
마당에는 횟집에서나 볼 수 있는 수족관이 놓여 있어야 한다. 물고기들이 그득 담겨 있어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수족관이 비면 언제든지 배를 타고 나가 두 손 가득 제철 물고기를 건져 오면 그만이다.
남해를 떠나면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언젠가 내 로망을 실현할 장소는 이곳이 되리라고.
뚜렷한 이유는 없다.
그냥 처음 발을 디딘 순간부터 고향처럼 다가온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만 바로 근처에 좋은 포인트가 있을 줄이야. 조심해서 가세요. 하하.”
선장의 너털웃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상경 길에 올랐다.
아이스박스가 얼마나 묵직한지 보람이와 내가 함께 들어 올려 트렁크에 실어야 할 정도였다.
차가 경부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무렵 나는 사심희에게 불쑥 물었다.
“사시미 님! 그런데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하려고? 양으로 승부하려는 것 같던데.”
“가 보면 알아요.”
비밀이라는 뜻이다. 깜짝 놀라게 해 주려는 모양이다.
그래도 부재료는 준비해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가다가 마트에서 살 것 없어?”
“아무것도 없어요. 주방에 다 있으니까.”
아무 것도 없다고? 그럼 회를 뜨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6마리도 많은데, 왜 더 잡아 달라고 했을까?
의문을 한껏 품은 채 아지트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였다.
장재준 영감과 고동우는 생선을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테이블을 말끔히 치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것들끼리 잘 놀다 왔냐? 감성돔을 잡아 왔다니까 내 용서하지. 이거야? 와우!”
“하하하.”
“그런데 우럭 님! 요즘 갑자기 왜 이렇게 잘 잡는 거지? 출조만 갔다 하면 만선일세. 설마 낚시 천재인가?
“천재는요 무슨……. 보람이 덕분이었습니다. 제일 큰 놈도 보람이가 잡은 거예요.”
나와 고동우가 떠드는 동안 사심희는 큰 도마를 꺼냈다. 그녀가 신속하게 7마리 전부 포를 뜰 때까지만 해도 멤버들 모두는 회를 먹게 될 거라며 입맛을 다셨다. 회는 언제 먹어도 진리니까.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사심희가 칼집에서 또 하나의 칼을 빼어 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쌍칼. 그녀는 양손에 칼을 쥐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타다닥! 토도독!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한 차례 난타 공연이 지나가고 도마 위에 남은 것은, 분쇄기로 갈아 놓은 것처럼 곱게 다져진 생선살이었다.
“산란철 직후의 감성돔은 살이 물러요. 오늘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어묵을 드시게 될 거예요.”
어…… 묵?
도미살로 만들어진 고급 수제 어묵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갓 잡은 자연산 감성돔으로 어묵을 만들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한 요리였다.
어이없어하는 내 표정을 사심희가 읽었나 보다.
“어묵이 그 표정을 보면 서운해하겠어요. 어묵도 좋은 재료를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요리랍니다.”
“하하. 내가 뭐라고 했나…….”
모두가 놀란 눈으로 사심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에 쥔 칼로 다진 살을 사각기둥으로 만들어, 기름이 끓고 있는 대형 냄비에 하나씩 빠뜨렸다.
기계로 뽑아낸 것처럼 일정한 크기의 어묵들이 하나둘씩 익어 가고 있었다.
잠시 후 멤버들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대형 접시를 휘둥그레 내려다보았다. 동전 두께로 얇게 썰어 놓은 어묵 조각들이 꽃잎처럼 피어 있었다.
심지어 어묵의 단면은 흡사 도토리묵처럼 매끈하게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와사비 간장에 찍어 드세요. 일부러 간을 안 했거든요.”
어묵을 회처럼 썰어 간장에 찍어 먹는다니.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어묵의 맛은 어떤 건지.
“흐읍!”
“아니, 이건!”
놀라운 맛이었다.
회보다 쫄깃한 식감.
기름에 익혀 최대한 끌어올린 감칠맛 때문일까?
“아까워서 이거 먹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전부인가요?”
양이 적다면서 투덜거리며 모두들 원망의 시선으로 사심희를 바라보았다.
“우리 다섯 명이 똑같이 나눠 놓았어요. 집에 가셔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언제든지 해동해서 드시면 돼요.”
“역시!”
각자의 몫을 챙겼으니 이제 앞에 놓은 공동의 먹잇감을 향한 전투가 벌어졌다. 모두들 하나라도 더 먹겠다는 욕심으로 앞다투어 젓가락을 들이밀던 그때였다.
“야~~ 옹.”
뜬금없게도 베타가 테이블 근처로 다가와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동우가 어묵 한 개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너도 하나 주랴?”
“주지 마세요.”
“아까워서 그래? 베타도 하나 먹을 자격이 충분해. 너보다 스타가 되었잖아. 옜다. 맛이나 봐라.”
고동우의 말처럼 지난번 통영 보트 출조의 반응은 대박이 났다. 조회 수와 구독자 수는 계속해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려 주었고, 대박의 중심에는 예상을 뒤엎고 붉바리가 아닌 베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반자TV의 애청자들은 먹물을 뒤집어쓴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붉바리를 제압하는 아기 고양이의 모습에 열광했다. 댓글 중에 삼 분의 일을 차지한 것도 베타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복덩이가 틀림없었다.
고양이에게도 출연료를 줘야 한다고 빗발치는 댓글처럼 나도 녀석이 대견했다. 어묵이 아까워서 주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입에도 대지 않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야~~ 홍!”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베타는 고동우가 던져 준 어묵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더니 얼른 입맛을 다시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최대한 애절한 눈빛으로.
“아이고, 알았다. 내 어묵의 절반은 네 몫이다. 하하하.”
생선은 거들떠보지 않는 녀석이 어묵에 눈독을 들이다니.
어이가 없어 나는 내가 먹으려던 한 조각을 녀석의 입으로 가져갔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어묵. 어쩌면 세상에 하나뿐인 어묵.
까다로운 베타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귀한 어묵을 나눠 들고 우리는 아지트를 나섰다. 장재준 영감과 고동우는 가족들과 매운탕거리로 쓰겠다며 남은 서더리를 남김없이 싸 들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보람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굽어 있던 그의 어깨가 조금은 솟아올라 있는 것처럼 보였다.
* * *
남해를 다녀와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최근에 개설된 법인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건 법인 설립에 쓴 법무사 비용이고, 이건 지난번 남해에서 지불한 선비인 것 같고, 이건…….
스크롤바를 내리며 온라인 계좌의 지출 내역을 확인하던 내 손이 스르르 멈췄다.
뭐지? 입금?!
온통 ‘출금’ 항목으로 줄어들고 있던 잔고가 불쑥 솟아오른 지점이었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발생한 입금액.
반사적으로 입금자의 명의를 살피던 내 눈망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의 첫 유튜브 정산금.
한두 달 뒤에나 나올 걸로 예상했던 터라 처음에는 놀랐다. 그러다가 뜬금없게도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기대 이상의 금액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일궈 낸 생애 최초의 성과.
그밖에 어떤 것도 내 눈물의 의미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첫 수입이 들어오면 하고자 계획한 바가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사심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여 통장을 알려 달라고 하자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말 하지 말아줘. 사시미 님은 우리 회사의 첫 번째 직원이잖아. 적어서 미안해.”
“…….”
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은 아지트 문제.
나는 베타와 함께 차에 올랐다. 아지트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동우만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구피 님, 커피나 한잔하시죠.”
“그럴까? 먼저 올라가 있어. 금방 올라갈 테니.”
잠시 후 고동우가 시원한 얼음이 담긴 커피를 들고 올라왔다.
“오늘은 아무도 안 오길래 무슨 일인가 했지. 우럭 님이라도 놀러 와서 다행이네.”
“구피 님! 여기 2층 말입니다. 얼마에 세를 내놓으셨죠?”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요.”
“이깟 낡은 건물이 얼마나 하겠어? 더구나 2층인데. 보증금 2천만 원에 월 50만 원이야. 근데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그럼 저에게 임대하시겠어요?”
고동우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커피를 쏟을 뻔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에게 내가 말을 이었다.
“제가 아직은 목돈이 부족해서 보증금은 5백만 원으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신에 월세를 그만큼 올려 드릴게요.”
“……어디에 쓰려고?”
“우리 회사 사무실로 쓰려고요.”
“나야 한 푼이라도 아쉬운 형편이라 좋다만, 괜히 나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아니라니까요. 이제부터 여긴 어반자TV 본사예요. 물론 우리 멤버들에게는 아지트 역할도 계속될 겁니다.”
“그래. 고맙다.”
첫 수입이 나왔다고 해서, 한껏 기분을 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굳이 밝히자면 첫 정산금은 회사 다닐 때의 월급에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조회 수와 편 수가 더해진다면, 다음 달부터 더 크고 안정적인 금액이 나올 거라 조심스럽게 기대하고는 있었다.
언제 다른 세입자가 들어올지 모르는 불안한 아지트.
나는 가급적 우리 멤버들만의 공간이 지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이 물심양면으로 나를 돕는 그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 여겼다. 더구나 아지트의 주방은 내 방송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 아닌가.
문방구 양식의 임대차 계약서에 나와 고동우는 흔쾌히 서명을 마쳤다. 고동우는 어차피 임대료를 내리려던 참이었다면서 월세를 원래의 50만 원으로 깎아 주었다.
아지트를 나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집 근처의 문구점이었다. 오다가다 잠깐씩 보긴 했지만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서 오세요.”
“명함 만들려고 하는데요.”
“기존에 쓰고 계신 명함이 있나요?”
“아뇨. 처음입니다.”
첫 수입, 첫 직원, 첫 사무실 계약, 그리고 첫 명함.
공교롭게도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첫날’이었다.
나는 준비해 온 USB를 꺼내어 문구점 주인에게 기본적인 도안을 설명해 주었다.
“어이구, 젊은 분이 사장님이시군요. 허허.”
“하아, 네.”
“어반자TV? 뭐 하는 방송국인가요?”
“……방송국은 아니고, 그러니까…….”
주인장이 이것저것 물어보는 통에 진땀이 났다. 감성돔을 형상화한 이미지 파일을 회사의 로고로 써 달라고 부탁하며 문구점을 나왔다. 도안은 물론 내가 며칠간 고심하여 만든 이미지였다.
* * *
다음 날.
나는 명함을 찾아들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잠시 뒤 두 벌의 여름옷을 사 들고 나와 다시 차량에 올랐다. 그리고 시동을 걸자마자 내비게이션의 주소록을 뒤적거려 ‘충주 집’을 눌렀다.
첫 수입으로 선물을 사 드리고 싶은 분들.
나의 첫 명함을 제일 먼저 전해 드리고 싶은 두 사람.
나는 오늘 충주의 부모님 댁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부모님의 실망이 클 거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뒤에 액셀을 꾹 밟았다.
“야~~ 옹.”
조수석에 앉은 베타는 여행이라도 떠나는 아이처럼 카랑거리며 좋아라 한다. 불안한 내 속마음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