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바다의 백작
“빨리 나와욧!”
똑똑똑!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와 보람이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벽시계를 보니 9시 10분. 출항 약속을 10분이나 넘긴 시각이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문을 열어 보니 사심희가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시커먼 얼굴의 중년 사내도 눈을 부라렸다. 그는 오늘 출조를 맡은 선장이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 버렸네요.”
“이러다가 물때 놓치겠습니다. 얼른 서두르세요.”
씻거나 아침을 먹을 새도 없이 우리는 후닥닥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선장은 내 등에 짊어진 가방을 발견하고 다시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도 함께 탑니까?”
“아, 네. 좀 부탁드립니다.”
낚싯배는 어젯밤 앉아 있던 평상의 바로 앞에 정박되어 있었다. 3톤 정도의 작은 낚싯배는 우리들만의 독배로 예약해 두었다. 다만 오후에 생활 낚시 예약 손님이 있는 관계로 2시까지 돌아오는 조건이었다.
“오늘 이걸로 해 봐라.”
“……새 낚싯대잖아. 빌려서 쓴다고 하지 않았어?”
“그냥 써. 선물이다. 비싼 거 아냐.”
“네 호주머니 사정도 뻔한데…….”
배에 오르자마자 새로 산 낚싯대를 건네주었더니 보람이는 머뭇거렸다. 그래도 내심 싫지는 않은지 거절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부르릉.
배가 출발하면서 죽방렴을 지나치고 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코앞에 감성돔을 두고 굳이 멀리 떠나려 하는 선장 때문이었다.
“선장님! 오늘 어디로 가시게요?”
“선장 마음입니다. 오늘 딱 세 군데만 찍을 겁니다.”
마치 관광버스처럼 정해진 포인트를 전부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선장들이 있다. 그것을 마치 손님에 대한 성의라 여기는 것 같다. 오늘의 선장도 마찬가지였다.
아쉽다.
좋은 포인트인 죽방렴이 멀어져 갔다. 그러나 눈길을 떼고 정면을 바라보니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처에 죽방렴 천지였다. 휘파람으로 살펴보니 곳곳에 적지 않은 감성돔들이 눈에 띄었다.
황선태 프로의 말이 정확했군.
그의 말을 따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배는 더 멀리 나아가 커다란 정치망(바다에 고정시킨 그물 어구) 근처에서 멈췄다.
“일단 여기서 해 봅시다.”
정치망 부표에 배를 묶은 선장은 곧바로 배의 좌현 쪽에 밑밥을 잔뜩 흩뿌리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볼까?
제3의 시야로 레이더를 돌렸더니,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20미터 부근에 몇 마리의 물고기들이 포착되었다. 모양새로 보아 매끈한 감성돔의 자태였다.
“그럼 한번 해 볼까?”
최근에 고동우와 갯바위 낚시를 경험했던 나는 그럭저럭 채비를 만들고 갑판 위에 우뚝 섰다. 단번에 측정해 보니 대략 15미터로 매우 낮은 수심이었다.
“보람아 한 15미터 나온다. 참고해라.”
“알았어.”
보람이가 바늘을 묶고 채비를 정돈하는 모양새를 보니 나보다 훨씬 능숙해 보였다. 수심을 맞춘 그가 채비를 슬며시 내려놓은 것은 나와 거의 동시였다.
캐스팅이 거의 필요 없는 선상 흘림낚시를 택한 것은 찌낚시가 처음인 친구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보람이는 어느새 거의 무리 없는 동작으로 흘러가는 찌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만하면 그의 소박한 소원 정도야 수월하게 풀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선장이 크게 소리쳤다.
“물이 잘 가고 있네요. 나올 때 잡아야 합니다.”
스르르.
두 개의 빨간색 구멍찌가 나란히 물살을 따라 정면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채비는 계속 흘러갔다.
크릴 미끼가 달린 내 채비가 대상어에 거의 근접하고 있을 때였다.
철컥. 휘리릭.
나는 줄 풀림을 멈추고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찌가 흘러가는 방향을 확인한 결과, 보람이의 채비가 목표물을 빗나가고 있었다.
“보람아. 미안하지만 자리 좀 바꿀래? 햇볕 때문에 좀 신경이 거슬려서.”
“그래. 나는 모자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가급적이면 첫수의 기쁨은 보람이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보람이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한 이유는 단지 그 때문이었다.
다시 입수.
나는 빠르게 흘러가는 보람이의 채비를 힐끔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거의 다 왔다.
물고기가 달려와 보람이의 채비를 톡톡 건드리더니 과감하게 물고 늘어졌다. 드디어 됐구나, 속으로 외치며 나는 보람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라?
보람이도 찌의 움직임을 보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는 허둥거리며 쉬익 허공을 향해 헛손질을 하고 말았다. 챔질 타이밍이 너무 느린 게 문제였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보람이는 반 박자 느리거나 빠른 챔질로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맙소사. 손재주는 그렇게 훌륭한 녀석이 저토록 행동이 둔하다니.
사실 예전에 나는 보람이의 저조한 조과의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남들보다 어복이 없는 것이려니 여겼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보람이는 낚시에 있어서만큼은 민첩성과 집중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라? 자, 잡았다!”
생각에 잠긴 사이 보람이의 낚싯대가 휘영청 휘어지며 요동을 쳤다. 드디어 마수걸이는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잠시 후.
티잉!
바늘이 대충 걸렸다가 풀린 것이다. 낚싯대가 힘없이 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보람이는 급기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어이쿠!”
“괜찮아?”
민망한 웃음을 짓는 친구가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난 보람이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무래도 난 안 되나 보다. 괜히 방해만 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
“무슨 그런 소릴……. 어쨌든 물고기가 있다는 건 확인했잖아. 천천히 다시 해 봐.”
내 말을 뒤에서 듣고 있던 선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도망 갔수다. 방금 놓친 고기 때문에. 이참에 자리를 옮겨야 되겠어요. 쯧쯧.”
사실인지 확인해 보려 물속을 들여다보았더니, 물고기들은 아직 그대로였다. 속설만 믿고 움직이려 하는 선장을, 나는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배와 포인트의 간격이 너무 멀어 초보에게는 쉽지 않은 포인트였다.
열심히 또 어디론가 배를 모는 선장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십니까?”
“저쪽에 절벽 아래에 내가 잘 가는 곳이 있어요. 근데 그건 왜 물어요?”
“슬슬 물이 멈출 타이밍 아닌가요? 차라리 죽방렴 쪽으로 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거긴 마지막에 가려던 곳인데요.”
“…….”
“좋수다. 어차피 손님이 왕이니까.”
선장은 결국 내 말대로 처음에 출발했던 항구 근처의 죽방렴 포인트로 돌아왔다.
“저기가 좋겠습니다.”
“그래요?”
“조금 더 왼쪽으로 붙여 보시죠.”
“어허, 이건 선장에 대한 월권인데. 내가 이래 봬도 여기서 낚싯배만 10년째요.”
“죄송합니다. 친구가 좀 서툴러서 편하게 해 주려고요.”
내 귓속말을 이해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선장은 결국 내가 가리킨 곳에 배를 정박했다.
여기서도 못 잡으면…….
바로 발밑에서 노닐고 있는 감성돔을 바라보며 보람이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도라에몽! 대충 보니까 수심이 10미터야. 먼저 시작해라. 난 조금 쉬다 할란다.”
“어, 그래.”
보람이는 피우던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 허겁지겁 채비를 입수시켰다. 밑밥도 뿌리기 전이었다.
제발…….
조바심을 내며 발밑을 들여다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는지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보람이의 바늘을 문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도라에몽! 왔다!”
“뭐라고?”
엉겁결에 보람이가 낚싯대를 들어 올리고 나서야 물고기는 저항을 시작했다. 가끔씩 미끼를 물고 미동도 없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직접 확인한 건 나도 처음이었다.
쩌어엉!
드랙을 완전히 잠근 보람이는 물에 빠질 듯 말 듯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뭐라고 떠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그의 행운을 지켜보기로 했다.
거리가 짧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엉성한 릴링이지만 보람이는 집요하게 힘을 주었다가 쉬기를 반복하며 물고기를 수면까지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와아!”
은빛 찬란한 비늘 색.
틀림없는 감성돔이었다. 배를 세우자마자 터진 첫수에 선장이 깜짝 놀라 뜰채를 들고 달려왔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빵빵하네요.”
40센티가 조금 못 되는 준수한 크기의 감성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보람이는 선장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게 정말로 내가 잡은 물고기냐는 듯이.
“도라에몽, 좋았어! 이제 소원은 푼 거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오랜만에 활짝 웃은 보람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기쁘기 그지없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사실 감성돔은 나에게도 새로운 영역의 생명체.
보람이의 첫수를 신호탄으로 나도 마음껏 손맛을 만끽해 볼 참이다.
“오늘의 게스트로 오신 도라에몽 님께서 드디어 첫수를 뽑아냈습니다. 본격적인 감성돔 낚시는 지금부터입니다!”
발밑에 담그자마자 찾아온 입질.
수심이 워낙 낮은 덕분에 물고기의 거센 몸부림이 곧장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총알처럼 좌우로 째는 손맛 또한 참돔과는 다른 거친 남성미가 느껴졌다.
“히트! 드디어 저에게도 첫수가 왔군요.”
보람이가 잡은 것과 거의 같은 사이즈의 감성돔.
바닥에서 뒹구는 놈을 피해 베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나는 열심히 휘파람을 뿜으며 물고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약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여지없이 짧은 캐스팅으로 물고기의 코앞에 미끼를 떨어뜨렸다.
“히트!”
어느새 내가 잡아 물 칸으로 골인시킨 감성돔은 무려 다섯 마리였다. 진한 손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낚시는 어느덧 종료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다고 느꼈을 때였다. 돌연 사심희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조금만 더 잡을 수 있어요?”
“이 정도면 많이 잡은 것 같은데.”
“그럼 한 마리만 더요. 계획이 있어서 그래요.”
오호라.
그녀가 뭔가 좋은 메뉴를 염두에 둔 모양이다. 그렇다면 후회 없는 손맛으로 마무리를 장식해 보리라. 의기충천하여 또다시 물속을 탐색해 보던 바로 그때였다.
발아래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대어가 눈에 띄었다.
어림잡아 보기에 50센티를 훌쩍 넘는 대어였다.
어어?
놈의 꼬리를 따라가 보니 목적지는 다름 아닌 보람이의 미끼였다. 첫수에 만족하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찌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촤라락!
줄이 팽팽해지고 나서야 보람이는 뭔가 걸렸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다. 허둥거리던 그가 번쩍 낚싯대를 치켜올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낚싯대가 90도 각도로 꺾여 버렸다.
“뭐, 뭐지?”
“뭐긴 뭐야? 빨리 바닥에서 띄워!”
사태를 파악한 보람이는 이번에도 힘으로 놈을 제압하기로 작정한 눈치였다.
“여엉차!”
어찌 보면 무지막지한 릴링이었다.
낚싯대가 부러질까, 물고기의 주둥이가 찢어질까, 둘 중 하나의 그림이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행운은 보람이의 편이었다.
잠시 후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른 감성돔은 대기하고 있던 선장의 뜰채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도라에몽! 오늘은 너의 날이다!”
55센티의 감성돔.
비늘의 크기가 엄지손톱보다 더 큰 멋진 위용을 보는 순간, 사람들이 감성돔을 바다의 백작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친구를 위한 출조.
처음과 끝을 그가 장식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 더구나 마지막은 온전히 혼자 힘으로 이룬 결과였다. 보람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 앞에 마지막 감성돔을 내밀었다. 최근에는 통 보지 못했던 그의 웃음소리가 뱃전을 울렸다.
물고기 한 마리가 인생의 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보람이의 어린아이처럼 웃는 모습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마지막 감성돔이 그의 고단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는 것을.
항구에 돌아왔을 때 사심희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아침에는 왜 늦잠을 잔 거예요?”
“…….”
“아하! 남자들끼리의 비밀이다 이거죠?”
씩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더니 사심희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이제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 낚시는 너만큼이나 좋아하지만 소질이 없다는 걸 나도 알아. 내 손재주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사실 낚시와 관련된 용품을 만들어 보는 게 내 꿈이긴 해. 지금은 뾰족한 아이디어도 돈도 없지만…….’
간밤에 민박집에서 잠들기 전에 보람이가 털어놓은 그의 속마음이었다.
낚시에 대한 애정, 쇳조각을 다룬 경력, 그리고 비범한 손재주……. 보람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아침에 지각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코를 골며 깊이 잠든 친구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를 도울 방법을 궁리하느라 새벽에야 잠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