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남해
다음 날.
한 폭의 그림 같은 통영 보트 출조를 업로드하고, 나는 베타와 함께 길을 나섰다. 찾아간 곳은 분당 외곽의 단골 낚시점이었다.
“우럭 님!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황선태 사장님.”
나는 그를 최근 낚시 대회에서 호명되었던 이름으로 불렀다. 청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를 반겨 주었다. 심지어 나와 동행한 베타에게까지.
“안녕? 전에 안흥항까지 따라왔던 그 고양이구나?”
“야옹!”
베타는 둥근 투명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낯선 이에 놀랐는지 쏙 사라졌다.
“오늘은 뭐가 필요하세요?”
“찌낚싯대 하나 더 사려고요.”
“이번에도 참돔 치러 가시려고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감성돔입니다.”
보람이와 함께 할 출조의 대상어로 감성돔을 선택했다.
전날 밤 은백색으로 덮여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 감성돔의 사진을 보며 나는 언젠가 보람이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세상에. 바다의 백작이라 불린다더라. 멋지지 않아?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오호!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5월 감성돔 금어기가 끝나고 이제 6월 아닙니까. 그동안 잡지를 못했느니 물속에 바글바글할 거예요.”
맞장구를 쳐 주는 황선태에게 얼른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요. 어디 좋은 포인트가 없을까요? 사실은 함께 가는 친구가 있는데 갯바위는 좀 어려워 할 것 같고. 이왕이면 선상으로 말이에요.”
“당연히 있죠!”
역시 오길 잘했다.
호기롭게 좋은 곳을 알려 주겠다는 말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남해로 가 보세요. 지족해협이란 곳에 지금쯤 감성돔들이 마릿수로 잡힐 겁니다.”
“남해라면 경남 남해군을 말하는 거죠?”
“그렇죠. 원래 큰 섬이지만 삼천포나 하동에서 다리만 넘어가면 금방이에요.”
“남해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럼 남해로 가서 낚싯배는 어디에서 구하나요?”
“지족항으로 가세요. 거기서 뜨는 낚싯배들 중에서 고르시면 돼요. 거기는 대부분 닻을 내리고 낚시하는 배들이에요. 안 나오면 또 이동해서 정박하는 식으로. 초보자도 편하게 하실 수 있죠.”
경남 남해.
통영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이다. 그래서 더욱 끌렸다. 이왕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내게도 낯선 곳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낚싯대는 왜 사시려고요? 지난번에 1.5호대 사 가셨잖아요. 약간 무겁긴 하지만 그냥 그걸로 하시면 돼요.”
“친구에게 선물하려고요.”
“아항. 그럼 예전 그 브랜드로 하나 찾아 드릴게요.”
“고마워요. 릴도 함께 부탁해요.”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고 나오려는데, 황선태가 머리를 긁적이며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는 눈치였다.
“사실은 앞으로 수요일에도 우리 가게를 닫게 되었어요. 오셨다가 허탕 치실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
“에엥? 일요일도 문을 닫는데 수요일까지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황선태는 부끄럽다는 시늉으로 목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부끄럽지만 제가 프로 조사 쪽으로 계속 알아보고 있었어요. 이번에 기회가 닿아, 수요일마다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 정말입니까? 20대 중반의 젊은 프로 조사라! 대단하군요.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배스 낚시예요. 바다도 좋아하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거든요. 피싱티비에서 다음 달부터 나온다니까 잘 봐 주세요.”
“당연히 봐야죠. 역시 낚시 대회 1등이 우연이 아니었군요.”
“그거야 우연히 큰 놈이 걸린 거고요.”
겸손의 말이다.
나는 대회 당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통해 그가 잡은 마릿수도 거의 수상권에 근접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럭 님도 한번 프로 조사 쪽으로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내가요? 하하. 사람들이 웃겠습니다. 실력도 안 되지만 저는 제 방송이 좋습니다.”
아직 실력도 부족하지만 내 선택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프로 조사들은 전문성 차원에서 특정 어종과 일정한 낚시 방식에 특화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보다 자유롭고 싶었다.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않고 수많은 미지의 물고기들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려면 유튜버의 길이 내게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이. 어반자TV에서 보니까 요즘 대단하시던데요. 사실은 이번에 제가 용기를 내서 방송국에 지원한 데에는 우럭 님의 영향도 컸어요.”
“그건 또 무슨…….”
“회사도 그만두면서 낚시에 올인하셨잖아요. 나는 아직 낚시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고, 됐습니다. 이만 가 볼게요. 다음부터는 황선태 프로님이라고 불러 드리겠습니다.”
민망해져서 얼른 인사를 나누고 낚시점을 빠져나왔다.
본격적인 직업 낚시꾼으로 한 발을 더 내디딘 청년에 대한 축복과 부러움을 동시에 품은 채.
친구를 위한 낚싯대는 트렁크에 잘 넣어 두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어린 동료. 그로부터 받은 신선한 자극 또한 트렁크에 함께 실었다.
* * *
사흘 후.
“친구 잘 둔 덕에 내가 호강한다. 서해와는 또 다른 느낌이구나.”
달리는 차 안에서 보람이는 멀리 보이기 시작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늘 남해 관광은 내게 맡겨요. 저는 벌써 두 번째니까.”
사심희의 쾌활한 목소리.
그녀는 보람이보다 더 들떠 보였다. 예전에 남해에 여행을 왔었다는 그녀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가이드를 자청하고 나섰다.
장재준 영감과 고동우에게는 일부러 동행을 권하지 않았다. 오롯이 보람이의 힐링을 위한 부득이한 배려였다.
장재준 영감은 통영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다면서 잘 다녀오라고 했지만, 고동우는 젊은것들끼리 잘 놀다 오라며 서운한 약간 기색을 보였다.
경남 사천을 지나 삼천포 대교를 지나면서 드디어 남해에 진입하자, 왼쪽으로 고즈넉한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일단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걸 기시감이라고 하는 걸까? 처음 와 보는 곳인데 알 수 없는 친숙함이 느껴졌다.
“이상하네?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다니. 마치 예전에 와 본 것처럼.”
“충주도 호수가 많다면서요? 아마 바다가 너무 잔잔하니까 그런 착각이 들었을 거예요.”
“그런가? 하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사심희가 나름의 그럴듯한 이유를 대신 설명해 주었다.
좁은 1차선 도로를 달려 창선대교를 넘었다. 다리를 넘자마자 황토색 페인트를 칠한 2층집 앞에서 차가 멈췄다.
다음 날 승선하기로 한 낚싯배의 선장이 추천해 준 작은 민박집이었다.
2층은 사심희가 쓰기로 하고, 나와 보람이는 1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숙박비가 워낙 저렴해서 약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소 허름한 내부의 모습에 슬쩍 보람이의 눈치가 보여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음. 좀 좁구나. 곰팡이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무슨 소리야? 나한테는 호텔이나 다름없는데. 이야! 뷰 봐라. 죽인다.”
보람이가 창문을 열자 바로 앞에 지족항의 전경이 사진처럼 드러났다. 그의 말처럼 하룻밤 묵어 가기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죠. 위로 조금만 걸어가면 끝내주는 짬뽕집이 있어요. 따라오세요.”
사심희가 안내한 식당.
우리는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그녀가 있어서 든든했다. 특히나 요리사인 그녀가 추천한 중식당은 의외의 맛집이었다.
신선한 해물이 듬뿍 담긴 짬뽕도 좋았지만, 남해의 특산물인 유자를 넣은 탕수육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심희는 직접 차를 몰고 우리를 상주 해변 근처의 ‘보리암’이라는 곳으로 이끌었다.
가파른 해안 절벽 위에 지어진 작은 사찰이었다.
나와 사심희가 6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던 중 보람이는 홀로 해안에 우뚝 솟은 대형 불상 앞에서 뭔가를 빌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빌고 있을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당일치기니까 다 둘러볼 수는 없어요. 가까운 해변을 차로 둘러보고 물건항으로 갈 거예요.”
사심희의 안내로 우리는 해안 도로를 달려 상주 은모래해변을 잠시 거닐었다.
베타도 잠깐 백팩에서 나와 해변의 모래밭을 뒹굴었다.
마지막으로 독일마을 맞은편에 위치한 물건항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과 바다에 온통 붉은 노을이 가득 번져 있었다.
“저기가 어부림이라는 곳이에요.”
알고 보니 물건항이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사심희가 가리킨 곳에는 해안을 둘러싼 울창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어부림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수백 년 전에 조성한 방풍림. 밀림이나 다름없는 어부림의 오솔길을 걷다 보니 이름 모를 나무들의 틈새로 노을빛이 흘러들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보람이가 은근슬쩍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고맙다. 이렇게 좋은 곳에 데려와 줘서.”
“덕분에 나도 호강이야.”
저녁식사는 민박집 근처의 멸치쌈밥 식당이었다.
다음 날 출조를 위해 술은 마시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어슬렁어슬렁 민박집으로 걸어가던 도중, 방파제 중간쯤에 작은 평상을 발견했다.
우리는 평상에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캔 커피를 마시면서 바닷바람을 쐬고 있을 때였다.
어두운 바다 위에 뭔가 이상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아까 낮에는 유심히 보지 않았던 물체였다.
“저게 뭐지?”
“죽방렴이라는 걸 거야.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찾아봤거든.”
보람이가 옆에서 오래 전부터 멸치를 잡기 위해 설치한 원시 어구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내 의문은 그게 아니었다.
또다시 찾아온 기시감.
묘하게도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언젠가 봤던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시커먼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죽방렴은 더더욱 그런 느낌을 자아냈다.
허어, 참. 이상한 일이네.
나는 슬며시 일어나 방파제 앞에 섰다. 그리고 긴 휘파람을 죽방렴 쪽으로 후욱 불어 넣어 보았다.
어둠 속에서 바다 안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죽방렴의 말뚝들이 박혀 있는 바닥에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조용히 노닐고 있었다.
“왜 그래요? 또 와 본 것 같아요?”
“참 이상해. 분명히 남해는 처음인데.”
사심희는 그럴 줄 알았다며 이번에도 설득력 있는 원인 분석을 늘어놓았다.
“TV에 죽방렴이 나온 적이 얼마나 많은데요. 근처에 죽방 멸치 만드는 장인들이 많거든요. 아마 거기서 봤을 거예요.”
“그, 그런가?”
그럴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참동안 밤바다의 정취를 만끽하고 민박집으로 돌아가려던 무렵이었다.
말없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던 보람이에게 내가 불쑥 물었다.
“아까 보리암에서 뭐라고 빌던데. 물론 취직이겠지?”
“……아냐.”
예상이 빗나갔다. 그럼 뭐였을까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그럼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아니라니까. 취직이야 노력하면 언젠가 할 수는 있겠지. 내 고민은 그게 아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모르겠어.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 순간 나는 보람이도 퇴사 무렵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인생의 길을 찾아 달라고 빌었다는 말이구나?”
“그것도 아냐. 누구에게 빈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잖아.”
“이이고, 그래서 뭐였냐고? 불자도 아니면서 부처님한테 기도한 게.”
“……사실은 내일 감성돔 한 마리만 잡게 해 달라고 빌었어.”
“뭐라고?”
갑자기 터져 나오려 하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잡게 해 달라고 하다니 너무나 소박한 소원이 아닌가. 그것도 심지어 부처님에게.
입술을 깨물고 간신히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걱정 마! 큰 놈으로 한 마리 잡게 될 테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두고 보면 알아. 그만 들어가자.”
민박집으로 향하다가 뒤쪽의 죽방렴을 돌아본 내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나무 말뚝 아래를 도도한 자태로 유영하던 감성돔의 무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