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도라에몽
“지금 어디냐? 아직도 거기야?”
아지트까지 한 시간 정도 남긴 시각부터 고동우의 전화가 10분 단위로 걸려 왔다. 그는 붉바리를 들고 간다는 전갈을 받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개선장군처럼 목에 힘을 주고 돌아온 나를 향해 고동우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달려들었다.
“어디 보자. 어딨냐? 그거.”
그는 다짜고짜 내가 들고 있던 아이스박스를 빼앗다시피 낚아채고 뚜껑을 열어젖혔다. 얼싸안기라도 할까 봐 두 팔을 벌렸던 나는 뻘쭘해지고 말았다.
“맞네. 붉바리. 사시미 님! 맛있게 해 줄 거지? 다른 준비는 내가 다 해 놓았어. 우리 요리사님이 요리에만 집중하시게끔.”
주방을 보니 전화로 부탁한 부재료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붙임성 좋은 고동우는 두 번째 만난 사심희를 마치 오랜 동안 알고 지낸 동생처럼 대했다.
곧바로 그녀의 신공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닐 차례였다.
먼저 큼지막한 농어가 순식간에 기다란 두 장의 어포로 변신했다. 그녀는 그중의 일부만 떼어 내는가 싶더니 기계처럼 일정하게 화투장만 한 크기로 썰어 놓았다.
“이건 전을 부칠 거예요. 나머지는 내가 가져가도 되겠죠?”
요리 보조를 자처한 고동우가 냉큼 달려가 남은 식재료를 냉장고에 고이 모셔 놓았다.
다음은 갑오징어였다.
대포알만 한 갑오징어의 뼈가 쑥 빠지고, 내장을 제거하고, 키친타월로 껍질을 벗겨 내니, 새하얀 속살만 남았다.
“요건 숙회로 만들어 볼게요.”
말만 들어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다음으로 비늘이 벗겨진 볼락이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려지고 지글지글 기름을 내뿜었다.
“볼락은 역시 구이가 제맛이죠. 숯불이 없으니까 오늘은 기름에 튀기는 게 좋겠어요.”
카메라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쏨뱅이와 성대를 툭툭 조각내어, 아까 남겨놓았던 농어 대가리와 함께 끓고 있는 냄비에 퐁당 빠뜨렸다. 맑은 색깔로 보아 지리탕을 끓이려는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 순서는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붉바리.
휘리릭 그녀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느새 두툼한 크기의 횟조각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이야! 오늘은 해산물 뷔페로구나!”
소파 앞 테이블에 하나씩 놓이는 요리들을 내려다보며 고동우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식탐이 별로 없는 장재준 영감의 눈동자에서도 생기가 번득였다.
회, 탕, 전, 구이, 숙회.
무려 다섯 가지의 요리였다.
눈으로만 보아도 먹기 아까운 해산물 한상 차림이 완성되었다. 맛은 어떨까? 촬영 때문에 멤버들의 시식을 지켜봐야 하는 나로서는 괴로운 순간이었다.
모두들 젓가락을 들고 붉바리 회 접시로 가져가던 찰나.
나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그들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왜? 또?”
“보람이가 없잖아요.”
모두들 요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나머지 한 멤버가 빠졌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고동우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가 전화해 봤어. 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늦는다고 하더군.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래. 늦어도 온다고는 했어.”
심적 갈등은 길지 않았다.
모두들 눈을 번뜩이고 있어 기다리자고 말하면 봉변을 당할 분위기였다.
결국 우리는 그의 몫을 남기고 먼저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말도 안 되는 맛이다. 이거 정말 공짜로 먹어도 되는 거냐?”
“그러게 말입니다. 사시미 님 덕분에 이런 호강을 하게 될 줄이야.”
“헤헷. 저야말로 호강이죠. 붉바리를 잡은 우럭 님 덕분에.”
모두들 정신없이 식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붉바리 회부터 집어먹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터져 나오는 육즙이 왜 붉바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참동안 그야말로 침묵의 식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동우는 좋은 음식에 술이 빠지면 되겠냐는 핑계로 냉장고에서 소주를 들고 왔다.
모두들 한 잔씩만 홀짝거리는 가운데 고동우만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적당히 배를 채운 그의 눈에 이제야 베타가 들어온 모양이다.
“고양이 바꿨냐? 오늘은 무슨 팬더처럼 생긴 고양이를 데리고 왔네?”
“하하하. 오징어 먹물을 뒤집어써서 그래요. 사실 오늘 붉바리를 잡은 건 제가 아니고 저 녀석이었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말하자면 길어요. 그냥 음식이나 마저 드세요.”
고동우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자초지종을 아는 나머지 세 사람들만 서로를 보며 키득거렸다.
“붉바리 회가 이런 맛이었구나. 그냥 비싼 걸로만 알았는데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있었어.”
고동우는 보람이의 몫으로 남겨놓은 회에 계속 눈독을 들이며 중얼거렸다. 장재준 영감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붉바리 회를 먹어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더 맛있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궁금해서 내가 물어보았다.
“칼질이 달랐습니다. 어떤 두께로, 어떤 결을 따라 써는 방법에 따라 회의 맛이 달라지죠. 재료도 재료지만 사시미 님의 실력이 맛을 좌우한 겁니다. 저걸 우럭 님이 썰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와하하하!”
너무 적절한 비교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인정합니다. 내가 했다면 벌써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겠죠. 사시미 님! 고마워.”
엉겁결에 마주 앉은 사심희와 눈길이 닿아 불쑥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처음으로 내게 말을 놓았네요? 방금. 맞죠?”
“아아. 내가 그랬…… 나…… 요?”
소주 한 잔에 취기가 돌았는지, 아니면 하루 종일 함께 돌아다니느라 벌써 편해진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엉겁결에 그녀에게 편히 말을 놓게 된 시작점이었다.
삐그덕 소리와 함께 2층 출입문이 열리면서, 누군가의 큰 머리가 불쑥 들어왔다. 보람이였다.
“어서 와라. 네 거 남겨 놓았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보람이는 소파에 앉자마자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사심희에게 작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말씀 들었어요. 우리 피싱 어벤저스의 새 멤버가 오셨다고. 축하 선물입니다.”
“네에? 정말이에요? 이거 받아도 되는 거죠?”
사심희는 깜짝 놀라며 내 눈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눈을 찡긋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보람이는 늘 그런 친구였다. 낚시터에서도 항상 집에서 만들어 온 채비를 나눠 주곤 하는. 보람이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보람으로 삼는 유형의 인물이다.
“너무 예뻐요.”
그녀가 헝겊 재질의 작은 가방을 꺼내 들고 활짝 웃었다.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람이가 직접 만든 퀼트 가방이었다.
“장바구니로 쓰세요. 맘에 든다면 다행이네요.”
“마음에 들다마다요. 장바구니는 말도 안 되요. 핸드백으로 써도 되겠어요.”
보람이는 몹시 쑥스러운 나머지 얼른 젓가락을 들고 딴청을 피웠다. 고동우가 장난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이 친구 닉네임은 도라에몽입니다. 생긴 거와 다르게 손재주가 아주 좋지요. 낚시는 늘 꽝이지만.”
“저는 그냥 사시미라고 불러 주세요.”
“아, 네.”
보람이는 나보다도 더 숫기가 없는 녀석이다. 할 말을 다 하고 난 표정으로 그는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고동우에게 하루의 무용담을 늘어놓느라 분주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은, 보람이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던 순간이었다.
“벌써 다 먹었냐?”
“음. 맛있게 먹었어.”
“그거 회 비싼 거야. 구피 님이 눈독 들이는 걸 못 드시게 막은 거라고.”
“그래? 구피 님 이거 안주로 더 드셔도 돼요.”
우리 멤버 중에서 유독 식탐이 많은 친구.
그가 자연산 회를 남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최근의 통화에서도 영 기운이 없어 보이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가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냐?”
“……아니.”
짧게 자른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줄 알았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다.
“저, 잠깐 담배 좀 피우고 올게요.”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그의 뒤를 기다렸다는 듯 따라갔다. 자초지종을 캐묻기 위해서였다.
“후욱~~”
가게 앞 가로등 불빛 아래로 보람이의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나는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말해 봐. 무슨 일인지.”
“아무 일도 없다니까.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친구끼리 이럴 거냐?”
하염없이 연기만 내뿜던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억지로 지어낸 웃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 줘. 괜한 걱정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사실은…… 오늘 회사 그만두고 오는 길이다.”
역시 그랬다.
그 좋아하는 회가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을 만한 이유였다.
“잘린 거야?”
“아니. 회사가 문을 닫았어. 그동안 계속 어려웠거든. 여섯 명 정도 있던 직원들도 하나둘씩 떠나서 세 명으로 줄어 있었고.”
힘든 과정을 겪고 있음에도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친구였다. 그의 속마음이 어땠을까 순간 가슴에 휑한 바람이 일었다.
“회사야 또 구하면 되지. 너무 상심하지 마라.”
“그래야지. 그런데 이제 갈 곳이 있을지도 의문이야. 경기가 나빠져서 다들 힘든 상황이거든.”
“다른 곳들도?”
“먼저 나간 선배들도 고전하고 있더라고. 쇳조각이나 다루던 사람들이라 뭐 다른 재주도 없고.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
벌써 다 피웠는지 보람이는 담배 한 대를 또 꺼내 불을 붙였다. 길게 연기를 뿜어내며 그가 중얼거렸다.
“너무 걱정 마. 젊은 놈이 입에 풀칠이야 하겠어? 쉬는 동안에 어디 멀리 여행이나 떠나면 좋겠구나.”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어디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글쎄……. 내가 뭐 어디 다녀 본 데가 있어야지. 그나마 수원으로 온 뒤로는 네 덕분에 낚시라도 다녔지만.”
보람이는 고등학교까지 강원도 원주에서 지냈다고 들었다. 이른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안산 부근의 수도권 일대를 떠돌다가 수원에 자리를 잡은 것은 대략 3년 전의 일이었다.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여행도 하고 간 김에 낚시도 하고.”
“……나야 좋지.”
“잡고 싶은 물고기가 뭐야? 아니면 먹고 싶다든가.”
“나 같은 꽝조사가 뭘 가리겠냐. 그래도 이왕이면 나도 멋진 돔 한 마리 잡아 봤으면 좋겠다.”
“알았다. 내가 알아서 준비해 볼게.”
함께 아지트로 돌아온 보람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히려 말수가 적어진 사람은 나였다.
“오늘 즐거웠습니다. 조만간 또 봬요.”
“최고의 만찬이었습니다. 다들 조심히 돌아가세요.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장재준 영감과 사심희는 가는 길에 보람이가 데려다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낚싯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야~~~ 옹.”
“야아~ 저리 가.”
오늘 사용했던 릴을 잘 닦아 보관함에 넣으려 할 때였다. 베타가 그 안에서 뭔가를 덥석 물고 끄집어내려 끙끙거렸다.
베타의 입에서 빼앗고 보니, 전동릴을 담을 때 쓰는 작은 주머니였다.
고동색과 검정색으로 정성스럽게 장식한 퀼트 주머니.
값비싼 전동릴을 처음 샀다고 기뻐하던 나에게, 보람이가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한 뭔가가 올라왔다.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어쩌면 생계의 문제에 직면하여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친구.
돌이켜 보면 그에게서 받은 것은 많지만 내가 해 준 거라고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휴~ 머리 아프다.
내 코도 석자인데 친구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이나 자야겠다.
거의 24시간의 강행군을 마치고 돌아온 뒤라, 동영상은 다음 날 올리기로 했다. 베타도 눈을 비비며 연신 하품을 내뿜었다.
베타를 안고 잠을 청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늘 꽝조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친구.
다음 출조에서는 보람이를 멋진 여행지로 안내하고 그곳에서 최고의 손맛을 선사해 주기로.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