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고양이 앞의 생선
갑자기 무언가가 에기를 잡아채고 쓰윽 빨아 당기는 느낌.
“잡았다! 갑오징어입니다. 하하하.”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낚싯대를 위로 쭈욱 당기는 동시에 그렇게 외치고 말았다.
장재준 영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차 싶어 입을 닫았다.
“호오, 정말이군요. 설마 했는데 귀한 갑오징어를 잡다니.”
장재준 영감은 활짝 웃으면서도 뭔가 미심쩍다는 말투였다. 사심희는 혹여 먹물이 튈까 조심하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산란철에 해당하는 봄철의 갑오징어는 최대로 성장한 시기여서 몸집이 대포알만 한 크기였다.
조심조심.
불상사는 갑오징어를 슬며시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발생했다. 성이 잔뜩 난 갑오징어의 색깔이 짙게 변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시커먼 먹물이 찌익 튀어 오르고 말았다.
“야~~~~~ 웅!”
먹물을 뒤집어 쓴 희생양은 어처구니없게도 호기심에 고개를 내민 베타였다.
먹물이 오른쪽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하자 베타는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질렀다.
“미안하다. 베타야.”
얼굴의 절반이 새까맣게 변해 버린 베타를 보고 울지도 웃을 수도 없었다.
사심희가 부랴부랴 수건으로 베타의 얼굴을 닦아 주었지만 팬더처럼 새겨진 오른쪽 눈가의 먹물은 그대로였다.
“피부에 좋은 거니까 괜찮을 겁니다. 허허허.”
“그러고 보니 더 예뻐진 거 같아요. 헤헷.”
입가에 묻은 먹물을 핥아 내며 입맛을 다시는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낚시는 계속되었다.
보트는 계속 흘러가 섬의 해안 절벽 아래에 가까이 닿고 있었다. 장재준 영감이 배를 이동하려는지 기어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내가 외쳤다.
“캡틴 님! 스톱요. 여기가 좋겠습니다.”
“그럽시다. 하지만 절벽에 닿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옮겨 보겠습니다.”
장재준 영감은 능숙한 조작으로 배를 20미터 정도 절벽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켰다. 그동안 나는 마지막 세 번째 채비를 낚싯줄에 연결해 놓았다.
외수질(살아 있는 새우를 미끼로 쓰는 낚시의 총칭) 채비.
기포기로 고이고이 살려 온 미끼는 팔딱거리는 새우였다.
꿈틀거리는 새우를 바늘에 꿰는 동안 나는 사심희의 반응을 훔쳐보았다.
지렁이 때문이 아니었나?
이번에도 그녀는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새우라면 혐오감은 없을 줄로 알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채비를 정돈하고 곧바로 입수.
물속을 들여다보니 서너 마리의 작은 복어들이 무심히 미끼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배가 흐르면서 이번에는 크고 작은 농어의 무리들이 포착되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놈들의 반응을 기다리던 순간.
아니나 다를까? 무리 중에서 제일 튼실한 녀석이 미끼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옆줄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점농어였다.
“히트!”
후두둑!
생각보다 저항이 심한 녀석이었다. 좌우로 째면서 올라오는 통에 하마터면 난간에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활처럼 휘어진 낚싯대 너머로 기분 좋은 진동이 밀려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몹시 큰 대물이었다.
“역시! 따오기(80센티미터 이상의 농어)급 농어가 올라왔습니다!”
뱃전을 뒹굴며 퍼덕거리는 8짜 점농어.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며 바닥에 내려놓자 베타는 깜짝 놀라며 구석으로 숨어 버렸다.
“이건 횟감으로 써야겠지요?”
농어의 입에 걸린 바늘을 빼내면서 사심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두 손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을 뿐, 시선은 멀찌감치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를 꺼리고 있는 것일까?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미심쩍은 행동에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던 그때였다. 장재준 영감이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외쳤다.
“먹을 만큼 잡았습니다. 이만 철수합시다.”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장재준 영감과 내려오면서 이미 약속한 것이 있었다. 아지트로 돌아와 요리까지 할 시각을 맞추려면 오후 1시 이전에는 낚시를 마치기로.
“그러시죠. 이만하면 저녁 파티에는 충분할 것 같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낚시에 빠져 있었나 보다. 시계를 살펴보니 벌써 오후 1시였다.
아쉽지만 철수를 결정했다. 뭍으로 돌아가 점심도 먹어야 하고 먼 길을 달려가려면 그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장재준 영감이 배를 돌리고 차츰 속도를 높이려 할 때였다. 아까 처음에 낚시를 시작했던 바로 그 어초 포인트였다.
아쉬움을 달래려 휘파람을 불며 물속을 들여다보던 내 시야에 이상한 물고기가 포착되었다.
색깔은 알 수 없었지만 표범의 무늬가 온몸을 덮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물고기였지만 책에서 보았던 그 이름이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 붉바리?
다금바리보다 더 높은 값을 쳐준다는 남도의 물고기.
전날 밤 꿈속에까지 나를 설레게 했던 그 물고기.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눈앞에 있는 붉바리를 외면하고 그냥 돌아간다면 그건 귀한 물고기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자, 잠깐만요!”
꾸르릉!
갑작스러운 내 외침에 장재준 영감이 급정거를 했다.
“뭐 빠뜨린 거라도 있나요? 무슨 일이죠?”
“아무래도 한 마리만 더 잡고 가면 좋겠습니다. 다섯 멤버들이 다 모이는데 약간 부족할 것 같아서…….”
“허허. 미련이 남은 모양이군요. 그럼 그렇게 해 봅시다.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고맙습니다.”
다행히 보트를 세웠지만 나는 곧바로 채비를 입수하지 않았다. 어찌할까 망설이는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붉바리의 위치가 족히 10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붉바리는 보트의 엔진 소리 때문인지 고개를 돌려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안 돼!
떠나가는 물고기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꼭 고급 어종이 아니더라도 처음 만난 멋진 생명체를 잡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잠시 후 나는 낚싯대를 번쩍 들어 멀리 캐스팅을 시도했다.
쉬익! 쉭!
내림 낚시에 특화된 장비였지만 봉돌이 허공을 가르며 정확히 붉바리의 방향으로 포물선을 그렸다. 낚시 입문을 하던 무렵 원투 낚시로 단련된 캐스팅이었다.
타악!
동심원을 그리며 채비는 정확히 대상어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훨씬 앞으로 떨어졌다. 빠르게 기포를 내며 채비가 가라앉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나는 나지막이 외쳤다.
“됐어!”
폴링 바이트(Falling Bite, 채비가 하강하는 도중 입질을 받는 현상)!
슬그머니 뒷걸음질치던 붉바리가 자신의 코앞으로 내려오던 생새우를 덥석 물고 늘어졌다. 황급히 줄 풀림을 멈추자 가느다란 낚싯줄이 팽팽해지면서 격한 진동이 몰려왔다.
“히트다! 히트!”
만면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는 힘차게 릴링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어초에서 놈을 띄우기 위해 최대한 낚싯대를 곧추세우고 빠르게 줄을 감아야 했다.
끄응.
낡은 릴이 버걱거렸지만 처음 접해 보는 신선한 전율이 낚싯대를 타고 올라왔다. 멀리서부터 끌어오는 바람에 더욱 길고 진한 손맛은 덤이었다.
“이야! 이거 붉바리 아닌가요?”
수면 위에 비친 붉고 괴이한 물고기를 처음 본 사심희가 탄성을 질러 댔다. 장재준 영감은 붉바리라는 말을 듣자마자 허겁지겁 뜰채를 들고 달려왔다.
40센티미터급 붉바리!
뜰채에 담겨 갑판 위로 올라온 아름다운 생명체는 오늘 낚시의 클라이맥스였다.
“으하하하!”
드디어 잡았다는 기쁨에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은, 사심희가 숨죽여 바닥을 뒹구는 붉바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어?
입가에 걸쳤던 바늘이 빠진 모양이다. 놈이 두어 번 펄떡거리는가 싶더니 엔진 근처의 빈틈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애써 잡은 물고기를 놓칠 위기일발 상황이었다. 손을 쓸 틈은 전혀 없었다. 마지막 텀블링을 시도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그때.
“왜~~~ 앵!”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샌가 나타난 베타가 앞발로 자신의 몸집만 한 물고기를 툭 내려치는가 싶더니, 얼른 물고기를 막아서고 포효하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벌어진 놀라운 광경에 카메라 아래로 사심희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푸드덕!
붉바리가 다시 뛰어오르려 했지만 베타는 앞발에 힘을 주어 놈을 제압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마터면 베타까지도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베타야! 물러서!”
나는 쏜살같이 달려가 베타를 안아 들었다. 동시에 장재준 영감이 억센 손으로 붉바리를 들어 올렸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베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깐이었지만 베타에게서 고양이로서의 야생 본능을 처음 발견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역시 고양이는 고양이구만. 용감하군요. 허허.”
“장하다. 베타야. 이건 네가 잡은 물고기다. 하하하.”
“그러다가 물에 빠지면 어떡하려고. 조심해야지?”
“왜~~~ 용.”
너도나도 번갈아 가며 안아 들고 칭찬을 퍼붓자 베타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무엇보다 나를 고무시킨 점은 고양이다운 야생성을 보인 변화였다. 작은 희망이 생겼다.
계획대로 다양한 물고기들로 채워진 만선이었다.
우리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항구로 돌아왔다. 보트를 원래의 자리에 정박시키고, 물 칸을 열어 보니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내가 뜰채로 오늘의 수확을 건져 올리는 동안, 뭔가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입을 연 사람은 장재준 영감이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씀이세요?”
“어떻게 이렇게 골고루 하나씩 잡았을까요? 마치 골라서 잡기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
“갑오징어인지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넘겼습니다. 그렇지만 아까 마지막에 보트를 세운 것도 좀 이상하더군요. 멀리 캐스팅까지 해서 붉바리를 건져 올린 것도 그렇고. 거기에 있다는 것을 마치 알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뜰채를 잡고 있던 내 손이 움찔했다.
이럴 때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대응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당연하죠. 골라서 잡았으니까요.”
“네에?”
“붉바리도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보트를 세운 겁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물속을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거든요. 헤헤.”
갑작스러운 내 말에 당황했는지 두 사람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들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웃기 시작했다.
“뭘 그리 정색을 하십니까? 푸하하하!”
“호호호홋! 오늘 하루 종일 웃다가 가겠어요.”
한참만에야 겨우 웃음을 멈추고 진정한 두 사람이 장난스럽게 내게 눈을 흘겼다.
“농담이 많이 늘었습니다. 우럭 님!”
“그러게요. 요즘 들었던 농담 중에서 최고였어요.”
휴우~
나도 믿지 못하는 이 변화를 그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여진처럼 남아 있는 웃음을 터뜨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심 안도했다.
항구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를 서울로 향했다. 올라갈 때는 세 사람이 교대로 운전을 맡기로 했다.
먼저 운전대를 잡은 장재준 영감 옆에서 나는 뒷좌석을 향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사시미 님은 오늘 첫 출조였는데 어떠셨나요?”
“너무 좋았어요. 좋은 곳에서 신나게 보트도 타 보고, 멋진 물고기들도 만나고.”
“다행이군요. 그런데 가끔씩 불편해하는 것 같던데 무엇 때문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호기심 때문에 무심코 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바늘 공포증이라고 아세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바늘만 보면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럽고 말예요.”
“아아…….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에요. 심하지는 않고 그냥 가벼운 정도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외면했던 것은 미끼를 꿰던 바늘이었고, 물고기의 입에서 제거하던 바늘이었던 것이다.
바늘 공포증.
TV에서 어느 연예인에게 그런 병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심희를 처음 보던 날 그녀의 칼끝이 뭉툭하게 변형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괜한 질문을 던져 미안하다는 생각에 나는 무릎 위에 잠들어 있던 베타를 번쩍 들어 올리면서 딴청을 피웠다.
“아이고, 베타야. 오늘은 네가 장원이구나. 얼른 가서 소고기나 먹자. 우리는 맛있는 붉바리를 먹을 테니.”
“야~~~ 홍!”
억지로 깨웠더니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눈가에 먹물이 배인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베타가 앞발로 내 머리를 툭 내리쳤다. 그러더니 냉큼 사심희에게로 달아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