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16화 (16/130)

[제16화] 보트

“어디 한번 올라가 봐라.”

“왜~~ 용.”

베타는 새로 설치한 캣 타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여느 고양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행각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넌 언제부터 고양이가 될래?”

통영 출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얼마 전 안흥항 낚시 대회처럼 베타를 데리고 통영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꼬박 24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일정이기도 하지만, 작은 보트에서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르는 일이다.

베타가 생선을 좋아하게 되고 홀로 캣 타워에 올라가 사색에 잠겨 있을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결국 나는 베타의 짐을 또 꾸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저녁 8시.

새벽 두시 전에 일어나려면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둬야 한다. 후딱 짐 정리를 마치고 나는 침대에 누워 베타를 끌어안았다.

용치놀래기, 농어, 쏨뱅이, 볼락, 성대…….

어류 도감에서 보았던 남도의 물고기들이 천정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까무룩 잠에 빠져드는 순간.

눈꺼풀 너머로 마지막에 환영처럼 나타난 물고기는 붉바리였다.

* * *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새벽 1시 30분.

쉽게 눈이 떠지지 않아 다시 잠이 들었다. 정확히 10분 뒤 알람이 다시 울렸다.

“아~~ 졸립다.”

수도권 거주자에게 선상 낚시의 유일한 단점은 전날 밤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낚싯배의 출항 시각은 아침 5시에서 6시.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최소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그만큼 낚시꾼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다만 오늘의 출항은 오전 9시로 느긋하게 미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가는 길에 두 명의 멤버들을 픽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눈을 비비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몹시 피곤했지만 동시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낚시를 떠날 수 있는 삶.

오늘도 한 편의 멋진 그림을 위해 나는 힘차게 이불을 걷어찼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베타를 고이 모시고, 먼저 도착한 곳은 안양.

“미안합니다.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군요. 눈 좀 붙이리다.”

“편히 주무세요. 운전은 걱정 마시고요.”

장재준 영감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긴 잠에 빠져 버렸다.

실로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다.

정확히 오전 7시에 사심희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지금부터는 내가 운전할게요.”

“괜찮습니다.”

“빨리 나와요. 낚시하다가 졸지 않으려면.”

사심희의 말투가 전보다 거침이 없어졌다.

그만큼 거리감이 줄었다는 느낌. 그녀의 성화에 나는 결국 운전석을 내주었다.

“내비에 찍힌 곳으로 가면 되죠? 눈 좀 붙이세요.”

차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카레이서 뺨치는 거친 운전. 어찌나 빠르게 달리는지 슬그머니 조수석 머리 위에 달린 손잡이를 꽉 붙잡아야 했다.

그렇게 다시 해안을 달려 도착한 곳은 통영의 척포항.

아침 부두에는 갈매기들이 어지러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바람은 약한 남서풍.

물때는 적당히 조류가 흐르는 3물.

약간의 구름이 끼어 있지만 해가 뜨면 사라질 정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어디에 있을까?

보트 주인이 사진으로 보내 준 정박 위치와 보트의 모양을 확인하던 중 선착장 귀퉁이에 묶여있는 푸른색 보트가 눈에 들어왔다.

출조지로 통영을 선택한 것은 일전에 멀리서 보았던 한려 수도의 절경들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카메라에 담으려는 의도였다.

또한 장재준 영감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굳이 보트를 임대한 이유는 포인트를 마음대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어종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각종 제철 물고기들의 서로 다른 손맛을 만끽하고, 덤으로 해산물 뷔페까지 맛보려는 야심찬 계획. 이를 위해 나는 하루 종일 휘파람을 부르며 골라서 잡을 계획이었다.

작은 파도에 밀려 들썩거리는 푸른 보트를 가리키며 사심희가 물었다.

“저 배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낡은 보트였다. 심히 걱정스러운 외관이었다.

내가 먼저 보트에 훌쩍 뛰어올랐다. 시동키를 비틀자 엔진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재준 영감이 보트 안을 둘러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이런 걸 보트라고 빌려주다니. 쯧쯧.”

“설마 바다 위에서 멈추는 건 아니겠죠?”

사심희는 약간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걱정 마시고 구명조끼나 입으세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계기판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면허 시험장에서 보던 형태와 약간 달라 뭐가 뭔지 어리둥절했다.

왼쪽 편에 플로터(배의 내비게이션에 해당)와 어군 탐지기 겸용 장치가 달려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단 기어를 후진으로 넣고 출발부터 해 보기로 했다.

끼이익~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 선수 쪽을 살폈더니 밧줄이 팽팽하게 보트를 붙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에서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아차차! 계류줄을 풀지 않았구나.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계류줄을 풀고 다시 출발을 시도했다.

쿵!

이번에는 후진 중에 뒤에 있던 보트와 슬쩍 부딪쳤다. 허겁지겁 전진 기어를 넣었더니 계류장의 난간에 닿은 보트가 다시 쿵 소리를 냈다.

“왜~~~~ 앵!”

등에 지고 있는 백팩 안에서 베타가 펄쩍 뛰어오르며 성질을 부렸다.

겁에 질린 사심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어, 오늘 출발은 할 수 있는 거죠?”

“아, 그럼요…….”

가만히 지켜보던 장재준 영감이 내게 조타석에서 나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아직은 무리입니다. 안전한 곳까지는 내가 운전을 해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캡틴 님. 이건 면허가 있어야…….”

“이래 봬도 소싯적에 해군 함정까지 운전했던 저입니다. 해기사 면허까지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허허.”

해군 출신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배를 운전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장재준 영감은 거침없이 계류장에서 보트를 빼내는가 싶더니 어느덧 방파제를 빠져나와 넓은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 쾌속정 같네요. 정말 시원해요.”

사심희는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원래의 쾌활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장재준 영감은 장애물이 거의 없는 곳까지 나온 뒤에야 나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지금부터는 연습 삼아 해 보세요.”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두 분은 경치나 구경하세요.”

비록 서투른 실력이지만 나는 적당한 속도로 보트를 몰기 시작했다. 마음은 멀리 욕지도까지 가 보고 싶었지만 안전을 위해 근처의 비진도까지만 가 보기로 했다.

뒤를 돌아보니 베타는 가방에서 나와 사심희의 무릎 위에서 놀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베타를 쓰다듬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바람도 좋고, 날씨도 좋고. 면허증을 따길 잘했군.

보트 운전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어느덧 긴장은 사라지고 주변의 바다가 다 내 것처럼 느껴졌다.

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과 직접 운전을 하는 느낌이 다르듯, 배를 직접 몰고 질주하는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나 도로 경계가 없는 물 위를 달리는 순간, 마치 양탄자를 타고 구름 위를 날아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플로터와 어탐기는 보고 있는 거죠? 물속에 암초가 없는지도 잘 봐야 합니다.”

“당연하죠.”

비진도가 가까워지자 장재준 영감의 얼굴에 다시 불안감이 번졌다. 반면에 나는 의기양양하게 휘파람을 불렀다. 물속에 바위가 있는지 물고기가 있는지는 이미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진도에 이르러 저속으로 섬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머릿속 어탐기로 적당한 포인트를 찾는 과정이었다.

저기다!

움푹 패인 지형에 자연 어초가 듬성듬성 피어오른 장소를 발견하고 나는 기어를 중립으로 바꿨다.

보트가 멈추자 장재준 영감이 기다렸다는 듯이 조타석으로 다가왔다.

“편하게 낚시나 하세요. 배는 나한테 맡기시고요.”

“…….”

“못 미더워서가 아니에요. 언제 조류에 쓸려 절벽에 부딪힐지 모릅니다. 어차피 나는 오늘 선장 자격으로 온 겁니다. 허허.”

사려가 깊은 분.

나는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그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장재준 영감은 처음부터 보트 연수를 목적으로 동행에 나선 것이다.

“멋진 물고기로 보답할게요.”

나는 곧바로 낚싯대를 폈다.

내가 가져온 낚싯대는 일전에 광어 낚시에 사용했던 라이트 지깅대였다. 채비와 미끼는 각각 세 종류를 가져왔지만 일단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 30호 묶음추를 꺼내 들었다.

미끼는 갯지렁이.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미끼를 꿰고 있는 내 모습을 찍던 사심희가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혹시 지렁이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사랑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나는 안도했다.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니까.

미끼를 매단 묶음추를 입수함과 동시에 발밑으로 휘파람을 후욱 불어 넣자 눈과 눈 사이에 제3의 흑백창이 열렸다.

어초 사이로 힐끔힐끔 보이는 물고기들.

내려다보니 길게 형성된 어초밭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눈에 띄었다.

채비가 어초에 닿기 전에 릴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오호라!

마침 30센티가 넘은 물고기가 미끼에 눈독을 들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눈알이 툭 튀어나온 모습이 영락없는 쏨뱅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놈이 큰 입을 열고 난폭하게 미끼를 물고 좌우로 몸을 흔들어 댄다.

“히트!”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전율.

여유롭게 릴링을 하면서 나는 사심희가 들고 있는 카메라로 얼굴을 향했다.

“첫수로 어떤 물고기가 올라오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대체 뭘까요?”

그리고 잠시 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튀어나온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물고기는 30센티미터 정도의 쏨뱅이였다.

알록달록한 물고기에 관심이 가는지 사심희가 어창 안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채비를 던지면서 두 번째 물고기를 탐색했다.

저게 좋겠군.

양옆에 둥근 날개를 펼치고 유영하는 물고기를 발견하고 나는 녀석의 주둥이 근처에서 갯지렁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번에는 작고 예쁜 물고기가 올라올 것 같군요.”

부르르 가볍게 진동하는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나는 다시금 멘트를 던졌다.

휘리릭!

가벼운 릴링과 함께 곧바로 올라온 물고기는 연한 와인 빛깔의 ‘성대’였다.

사심희는 성대의 아가미 부근에 돋아난 초록색 날개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어시장에서 보긴 봤어요. 이름이 뭐죠?”

“성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흔한 물고기랍니다.”

사심희는 베타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는지 녀석을 번쩍 들어 물고기 앞에 내려놓았다.

“왜~~~ 앵!”

작은 물고기가 날개를 파득거리자 기겁을 하면서 달아나는 고양이.

사심희가 어이없어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우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참 희한한 고양이죠? 하하하.”

“그러게요.”

“아! 그리고 엔진 쪽이 약간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

“걱정 말아요.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선외기(엔진이 외부에 노출된 형태의 배)인지라 보트의 선미 엔진 부분에 바다와 연결된 틈으로 아까부터 신경이 쓰여 한 말이었다.

“히트!”

이번에는 볼락이었다.

겨울에 주로 나오는 어종이지만 여름에도 간간이 얼굴을 보이는 붙박이 어종. 갈색 띠무늬가 선명하고 크고 동그란 눈동자가 앙증맞게 생겼다.

“이건 저도 알아요. 요건 구이로 써야겠다. 헤헷.”

어창으로 쏙 들어간 볼락을 바라보며 사심희는 벌써부터 오늘 메뉴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같았다.

배는 조류를 따라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덧 어초밭은 사라지고 바닥에는 작은 자갈들이 뒹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작은 함대처럼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서너 마리의 새로운 생명체 무리를 발견했다.

이제 두 번째 채비로 교체할 때가 왔다.

나는 재빨리 핀도래(낚싯줄과 채비를 연결하는 고리 모양의 소품)에서 묶음추를 떼어 내고, 에깅 채비를 연결했다.

스르륵!

새우 모양의 에기(바늘 묶음이 달린 플라스틱 재질의 가짜 미끼, 에기를 미끼로 사용하는 낚시를 에깅 낚시라 칭함)가 달린 가지 채비가 놈들의 머리 앞으로 서서히 하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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