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입맛
깨톡! 깨톡!
모두가 곯아떨어진 선실 안에서 코 고는 소리를 뚫고 나온 메시지 도착음이었다. 바지춤을 더듬어 살펴보니 내 휴대폰이었다.
사시미의 답장이 왔다.
신선한 상태로 받고 싶으니 오늘 당장이라도 만나겠다는 답이었다. 그와 수차례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배는 어느덧 항구에 도착했다.
짐을 꾸려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면서 나는 멤버들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생선 초밥입니다. 내가 잡은 개우럭으로 만든.”
“에이, 뭐야. 그냥 회나 떠서 소주나 한잔 걸치자고.”
고동우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투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고요.”
길게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그들의 코앞에 내 휴대폰을 불쑥 내밀었다.
―오늘 좋은 우럭을 몇 마리 얻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이나 내일 전달드리고 싶습니다만.
―기쁜 소식입니다. 약속을 잊지 않으셨군요. 신선한 식재료를 얻으려면 오늘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다소 늦은 저녁이 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져가면 좋을까요?
―당연히 제가 가야죠. 맛있는 요리를 해 드리겠다고 했던 제 약속 기억하시죠? 근처의 단골식당이라든가 잠깐 주방을 빌릴 장소가 있을까요?
―사실은 마땅한 장소가…… 아! 하남시에 친구들 모이는 아지트가 있긴 합니다.
―가깝고 좋습니다. 정확한 주소 남겨 주시면 초밥 재료를 준비해서 찾아가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뵙죠.
대화 도중에 나는 우리의 아지트에 부엌이 딸려 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긴 대화를 보고 나서야 멤버들은 자초지종을 이해한 듯 쾌재를 불렀다.
“간만에 요리사가 해 주는 초밥을 얻어먹게 생겼군요. 허허허.”
“부엌 청소라도 하려면 서둘러서 올라가야겠어요.”
“그래도 시상식은 확인하고 가야죠.”
한마디씩 내뱉으며 도착한 시상식장.
가벼운 아이스박스를 흔들면서 그냥 지나치는 조사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운집한 그곳에는 거의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임시로 지은 간이 단상 위로 선장들이 올라가 자신의 배에서 기록한 마릿수와 최대어 사이즈가 적힌 쪽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비쳤다.
“오늘 우리 안흥항에서 낚시를 즐겨주신 열혈 조사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다들 길이 막히기 전에 돌아가셔야 할 테니까 곧바로 대회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다어상 부문입니다.”
순간, 장재준 영감의 목젖이 크게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1등은 F호에 승선하셨던 박기출 조사님. 2등은 A호를 타셨던 홍영탁 조사님. 마지막으로 3등은 H호의 이종규 조사님. 참고로 1등은 오늘 28마리를 잡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호명되신 분들은 단상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12마리로는 명함도 못 내밀죠. 괜히 헛바람만 들어서 그만. 허허허.”
장재준 영감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상금 욕심은 아니겠지만, 그가 군대에서 퇴역한 이후로 간혹 조바심을 내는 경우가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다음으로 대어상 부문입니다. 1등은…….”
두근두근.
쪼이는 맛. 나 또한 전혀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T호를 타신 황선태 조사님입니다. 참고로 56센티의 대물 우럭을 잡으셨습니다.”
감독관의 말에 주변에서 군중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와아! 56센티?”
“그런 우럭도 있어?”
“나는 제일 큰 게 40인데. 쨉도 안 되는데 괜히 기다렸구먼.”
멤버들이 내 얼굴을 힐끔거리는 통에 급하게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2등은 S호를 승선하신 강유록 조사님! 3등은…….”
하지만 2등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억지로 붙잡고 있던 얼굴 근육이 활짝 펴졌다. 상이라는 것을 언제 받아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얼떨떨했다.
진한 손맛을 만끽하고, 어느 노인에게서 손맛의 새로운 의미도 얻어 가는 마당. 나에게는 덤이나 다름없는 상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뭐 해? 빨리 받으러 가야지.”
멤버들은 모두들 나를 따라 단상 아래까지 달려가 주었고, 보람이는 카메라를 들고 내 수상 장면을 찍어 주려 단상 위까지 올라왔다. 나는 베타를 잠시 장재준 영감에게 맡기고 낮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단상 위에 올라서자마자 먼저 와 있는 수상자와 마주친 내 눈동자가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아니, 이런!”
“우럭 님! 축하드립니다. 제가 오늘 운발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56센티를 잡다니.”
1등을 차지한 황선태.
그는 내가 단골로 찾아가는 낚시점의 젊은 주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이름을 들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대단해요. 저도 축하합니다.”
세상은 좁다, 그러나 이름 모를 낚시 고수들은 널렸다.
나보다 월등한 낚시꾼들은 너무나 많고, 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오늘 내가 받은 이 상은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여정의 작은 시작이리라.
기분 좋은 상을 받고, 부상으로 30만 원이라는 두툼한 현금 다발을 들고 내려온 내게 멤버들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는 투명창으로 얼굴을 내민 베타에게 속삭였다.
“베타야. 약속했던 캣 타워는 사 줄 수 있겠구나. 너도 좋지?”
“야~~ 하~~ 홍!”
* * *
하남시의 아지트에 도착했을 때는 7시가 조금 못 된 시각이었다. 다음 날 근무 때문에 결국 보람이는 수원에서 내려놓았고, 나머지 세 명은 불 꺼진 수족관의 2층으로 올라왔다.
“앉아들 계세요. 대충이라도 치워야지 원.”
고동우는 곧바로 걸레를 꺼내 주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얼룩만 지우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보니 어느덧 7시 20분.
꼬르륵~
누군가의 배에서 신호음이 울려 왔고, 장재준 영감은 소파에 앉아 졸기 시작했다. 나는 발밑을 서성이는 베타에게 마지막 남은 캔을 챙겨 주었다.
“시간을 안 지키네. 연락이라도 다시 해 봐야 하는 거 아냐?”
고동우가 보채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깨톡을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딩동!
그때 아래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려왔다. 일찍 닫아 둔 수족관으로 누군가 찾아온 것이다.
“제가 내려가 볼게요.”
나는 후닥닥 계단을 내려와 가게 문 쪽을 살펴보았다.
반투명 문짝 밖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사시미 님일 거라 생각하며 얼른 달려가 문을 확 열어젖혔다.
“누, 누구시죠?”
여자였다. 그것도 아주 젊은.
가벼운 아웃도어 차림에 뒤로 묶은 긴 머리가 말꼬리처럼 흔들렸다. 쌍꺼풀이 없는 전형적인 동양적 미인에 속하는 얼굴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뮬란’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수족관을 찾은 손님인 것 같아, 나는 문을 반쯤 닫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수족관 문은 일찍 닫았어요. 내일 오셔야 합니다.”
“저어, 혹시 우럭 님 아니신가요? 유튜브 하시는.”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사시미라고 합니다. 제가 제대로 찾아왔네요. 호홋.”
“네에? 그럴 리가…….”
사시미는 분명히 남자이어야 했다. 그것이 모든 멤버들의 추측이었고 나의 확신이었다.
완전히 예상이 빗나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히 깨톡 프로필 사진은 중년의 남자였다.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닐까,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며 서 있던 찰나.
“들어가도 되겠죠?”
“그, 그럼요.”
문을 막고 서있던 나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그녀를 2층으로 안내했다. 나를 따라 내려왔던 베타에게 그녀는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기 고양이구나. 참 예쁘다. 이름이 뭐니?”
“야~~ 옹.”
“……베타라고 합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의 반응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난데없이 젊은 여자가 들어오자 그들은 움찔 놀라면서 일제히 자세를 고쳤다. 심지어 고동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유튜브에 가끔씩 나오던 분들이네요.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어, 어서 들어오세요.”
눈을 휘둥그레 치켜뜬 두 사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뚜벅뚜벅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배가 고프실 테니 인사는 잠깐 미루고 요리부터 시작할게요. 괜찮겠죠?”
“그, 그럼요.”
모두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꿀 먹은 벙어리.
간신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가스레인지의 불부터 댕겼다.
“넉넉히 가져오길 잘했네요.”
그녀는 냄비에 물을 붓고 즉석밥 일곱 개를 집어넣고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횟감은 어디에 있나요?”
“아! 내 정신 좀 보게.”
나는 냉큼 아이스박스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 마리의 우럭을 꺼냈다. 두 마리는 벌써 선물용으로 포장해 두었고, 한 마리는 저녁 식사용이라고 더듬거렸다.
“이런 귀한 걸. 양식으로는 이런 우럭을 만나기가 불가능하죠. 감사히 가져가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다른 물고기는 없나요?”
“있습니다. 노래미가 있는 데 필요하시다면 꺼내 드리죠.”
“노래미라면 훌륭해요. 이왕이면 모둠 초밥을 만들어 보려고요.”
대화를 듣고 있던 고동우는 냉큼 달려가 낮에 잡은 노래미를 들고 왔다. 우럭과 노래미의 아가미 부근을 살피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피는 미리 빼놓았으니까 안심하고 요리하시면 됩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저어,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카메라로 찍겠다는 말씀이죠? 저는 상관없어요.”
눈치가 빠른 사람은 오히려 그녀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녀의 요리 과정을 직접 담아 보기로 했다. 그녀는 먼저 대물 우럭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시미 칼을 빼들었다. 끝이 뾰족하지 않고, 약간 뭉툭한 특이한 모양의 회칼이었다.
회를 떠 보기는 한 건가?
뭔가 미심쩍었다. 특이한 칼끝의 모양 때문은 아니었다. 나를 당혹하게 만든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회를 뜨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으로 비늘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회를 먹다가 손톱만 한 비늘을 씹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두 번째는 사시미 칼이다. 회를 뜨기 전에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도 제거해야 하는데 이럴 때는 단단한 데바 칼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군다나 저 우럭의 굵디굵은 뼈를 자르려고 한다면 사시미 칼로는 무리다.
“자연산이 틀림없네요. 빛깔을 보니.”
그나마 자연산 우럭을 볼 줄은 아는 모양이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옆면에 검은 점들이 고르고 매끈하면 양식이고, 버짐이 핀 것처럼 불규칙하면 자연산이다.
그러나 잠시 후 카메라 너머로 그녀의 현란한 칼춤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현란한 칼춤과 같았다.
우럭의 목 부근에 칼집을 내는가 싶더니 그녀는 곧바로 뼈를 타고 내려가 꼬리까지 쭈욱 살덩이를 걷어 냈다.
그다음에는 어느새 살덩이를 뒤로 젖혀 놓는가 싶더니 칼날을 꼬리 부근에 찔러 넣고 단숨에 껍질을 분리해 내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눈 깜짝할 새에 그녀의 시퍼런 칼날 위에는 껍질까지 제거된 묵직한 살덩이가 올려져 있었고, 그것은 곧 그녀가 준비해 온 깨끗한 행주 위로 살포시 떨어졌다.
손바닥만 한 생선의 경우에 저런 방식으로 회를 뜨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5짜 우럭을 가지고 저렇게 휘리릭 칼춤을 추는 장면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대단하시군요.”
회 좀 떠 봤다는 장재준 영감도 멀리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도마 위에는 기묘한 형태의 서더리만 남았다.
우럭과 노래미의 머리 아래로 살점 하나 붙지 않은 뼈가 원형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리고 꼬리 근처에는 아주 얄팍한 껍질이 다소곳이 연결되어 있었다.
예술의 경지.
그녀가 생선을 손질하는 장면을 보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였다.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고수의 솜씨에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녀는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배합초에 데워진 즉석밥을 버무리는가 싶더니, 3초마다 한 점씩 척척 쌓여가는 초밥 조각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그녀는 도마 위에 하나 가득 초밥을 올려놓고 소파로 향하고 있었다.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부족해도 맛있게 먹어 주시면 고맙겠어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우럭 초밥은 옅은 갈색의 혈합육이 비칠 정도로 완벽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일정한 크기로 올려놓은 회 조각에서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우럭과 노래미만으로 무슨 모둠 초밥인가 했더니, 간간이 묵은지로 만든 초밥이 섞여 있었다. 혹시 모를 느끼함을 덜어 내기 위한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예쁘게 생겨서 먹기가 아깝군요. 그래도 어디 한번 먹어 볼까요? 허허.”
점잖게 인사말을 던지고 장재준 영감이 먼저 한 점을 집어 입으로 쏙 집어넣었다. 나도 얼른 그를 따라 두툼한 초밥을 집어 들었다.
뭐야? 이건 너무 심하잖아!
입에 넣은 그 순간 나는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반칙이다.
내 생애 이렇게 맛있는 초밥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