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손맛 (2)
“선수(배의 앞쪽) 좌현 쪽부터 진입합니다.”
선장의 말에 나는 직감적으로 배가 흘러가는 방향을 살폈다. 바다 밑바닥에 유령선처럼 보이는 검은색 물체가 누워 있었다.
1번 자리에 있는 장재준 영감의 채비는 바닥에서 6미터 정도 띄워진 상태로 빠르게 침선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좋았어!”
후두둑! 위이잉~
뭔가 시커먼 놈이 장재준 영감의 채비를 물고 늘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전동릴의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욕심내지 않고 한 마리라도 건져 내려는 노련한 결정이었다.
다음에는 2번 고동우.
바짝 긴장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낚싯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만이 알고 있었다. 밑걸림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채비를 너무 높이 들어 올리고 진입한 게 문제였다.
제3의 시야로 확인한 바로는 옆으로 누워 있는 침선의 하단, 특히 바닥 근처에 시커먼 우럭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3번 보람이의 낚싯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의 동작이 너무 느렸다. 6미터 부근에서 한 마리를 걸고 빨리 올렸어야 하는데 올라오다 그만 장애물에 채비가 엉켜 버렸다.
이번에는 내 차례.
보람이가 채비를 끊어 내느라 정신이 없던 사이, 내 채비는 포인트에 다가가고 있었다.
바닥에서 4미터.
밑걸림에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휘파람은 내게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과감한 낚시를 가능케 해 주었다.
축 내린 채비에 우럭 한 마리가 달려들자 나는 정확한 후킹으로 놈을 포획했다.
“아싸! 한 마리!”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곧장 채비를 올리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살폈다. 한 마리라도 더 걸어서 두 배로 강력해진 손맛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후.
드르륵~ 드르륵~
나는 고개를 저으며 수동 장구통릴을 감아올렸다.
과욕이 부른 참극을 피하기 위한 작전상의 후퇴.
유속이 너무 빨랐다. 다른 놈까지 걸어 올리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손맛은 괜찮았다.
열심히 올리고 보니, 4짜 우럭이었다. 물 칸에 던져 놓고 열심히 릴링 중인 5번 노인을 바라보니, 그도 역시 4짜 우럭 한 마리를 올리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드디어 횟감을 구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짜릿한 손맛을 덤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횟감까지 구하다니. 정말 최고의 날입니다.”
노인은 기쁨을 감추지 않고 활짝 웃었다.
멀리서 고동우가 노인이 잡은 우럭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번에는 선미(배의 뒤쪽) 우현부터 들어갑니다.”
침선 낚시의 묘미는 포인트에 진입하는 순서가 다가올 때 두근거리는 긴장감이다. 배가 진입하는 방향에 따라 앞쪽 순서의 사람들은 입질을 받기 쉽고, 뒤쪽으로 갈수록 확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맨 나중 순서로 바뀐 우리 일행들이 변변한 입질을 받지 못했다. 앞쪽 손님들의 채비가 침선의 난간에 부딪히고 엉키면서 우럭들이 더 아래쪽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다음 진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선수 우현부터 진입한다는 방송이 들렸지만, 내가 보기엔 선장이 포인트를 놓쳤다. 침선과는 약간 떨어진 곳을 지나가는 바람에 모두가 헛손질만 했다.
“이번에도 안 나오면 오늘 낚시는 종료하겠습니다. 선수 좌현부터입니다.”
어느덧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재빨리 미끼를 점검하고 튼튼한 3단 채비를 풍덩 바다에 빠뜨렸다.
이번에는 더 과감해 보기로 했다.
“자아, 다 왔습니다. 열 바퀴 정도 감아올리세요.”
선장의 멘트가 있었지만, 나는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봉돌을 질질 끌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포인트에 먼저 진입한 장재준 영감의 채비에서 흰 오징어채가 꼬리를 날리고 있었다.
“왔다! 크다!”
50센티가 넘는 개우럭이 그의 맨 아래 바늘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환호성과 동시에 이번에도 그는 침착하게 전동릴의 레버를 올렸다.
“…….”
고동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번에도 그의 채비는 높이 빈 공간을 지나쳤다.
“어라? 히, 히트!”
보람이는 오랜만에 사고를 쳤다. 그는 큰 우럭을 걸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채비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나는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전진하고 있는 채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침선의 형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잠시 후.
조류에 날리며 우럭 무더기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던 내 채비가 시커먼 우럭들이 우글거리는 블랙홀 한가운데로 쏙 빨려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에 순간적으로 낚싯대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입질이 아니었다. 마치 폭탄의 뇌관을 건드렸을 때의 그런 반응이었다.
가까스로 손아귀에 힘을 주어 낚싯대를 놓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잠시 후 자세를 가다듬은 나는 최대 속도로 릴을 감기 시작했다.
“끄으응!”
절체절명의 순간.
강렬한 저항과 맞닥뜨린 릴이 좀처럼 회전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시간이 없었다. 조금만 더 지체하다가는 침선의 난간을 넘지 못하고 채비를 몽땅 날리는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밑걸림 아냐? 빨리 채비 끊어!”
꼼짝도 하지 않는 내 낚싯대를 보고 고동우가 외쳤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조금씩 릴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목이 아려 왔다. 하지만 젖 먹던 힘까지 모아서 릴링의 속도를 높여야 했다.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뒷목에서 뿜어져 나왔다.
정신없이 있는 힘을 다해 릴을 감았다. 가까스로 침선에서 벗어나 꼬리를 흔들고 있는 세 마리의 대물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 느껴 보는 진한 손맛.
장애물을 피한 다음부터는 제대로 손맛을 만끽해 볼 생각으로 릴링의 속도를 늦췄다. 그때 별안간 내 머릿속으로 오래된 기억의 파편이 떠올랐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어느 회식 자리에서의 대화였다.
‘거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뭐가 좋다고 잡으러 댕겨? 그냥 마트에서 사서 먹으면 되지.’
‘손맛 때문이죠. 중독성이 장난이 아니에요.’
‘손맛? 도대체 그게 뭔데?’
‘그건…….’
술에 취한 동료들은 낚시를 다닌다는 내게 핀잔을 주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손맛이 뭐냐고 물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선뜻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게 진정한 손맛이구나.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내 심장의 박동 소리에 나는 살아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태곳적의 낚시꾼도 느꼈을 이 신비로운 전율.
문명화된 사람들에게 지금은 잊혀진 ‘야생성’. 대물을 잡았을 때 다시 깨어난 야생성이 지금 내가 내린 손맛의 의미였다.
최대 탄성치까지 휘어진 내 낚싯대에서 간헐적인 생명체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나서야 고동우는 밑걸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설마…… 정말로 잡은 거야?”
사투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낡은 낚싯대를 원망하면서 나는 우럭들이 저항할 때마다 힘을 빼고 밀당을 이어 갔다.
이윽고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첫 번째 우럭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완전 개우럭이닷!”
보람이가 얼른 내 낚싯대에 거치된 카메라를 빼 들고 아래쪽으로 들이밀었다.
“한 놈! 두우 놈! 어라? …….”
진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숫자를 세던 보람이는 할 말을 잊었다. 부레를 내밀고 항복을 선언한 개우럭들이 줄줄이 올라와 갑판 위에서 나뒹굴기 시작했다.
“쓰리걸이닷!”
선장도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오며 외쳤다. 5짜 개우럭을 그것도 한꺼번에 세 마리나 올리는 광경은 오랜만이라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완전히 지쳐 버렸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내가 잡은 물고기들을 내려다보았다.
깊은 물 속에서 올라오느라 우럭들은 모두 ‘메롱’ 하듯이 입에 튀어나온 부레를 물고 있었다.
선장이 부레를 제외하고 계측을 해 보니, 전부 50센티미터를 넘겼고, 그중의 하나는 무려 53센티미터였다.
“이거, 잘만 하면 우리 배에서 대어상이 나오겠구먼.”
선장도 몹시 흡족해하며 나를 치켜세웠고, 멤버들도 모두 은근한 기대감을 얼굴에 드러냈다.
잠시 몸을 추스른 나는 분주히 낚싯짐을 챙기고 있던 5번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아닙니다. 앞은 안 보여도 나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듣자 하니 멋진 놈을 잡은 모양인데,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나는 말없이 그의 물 칸에 있던 크고 작은 우럭들을 아이스박스에 담는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낚시꾼.
그의 모습에 겹쳐 수년 전 TV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맹인 소년이 출연하여 아이돌 춤을 열심히 추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심사를 맡았던 어느 여가수가 눈물범벅이 되어 그의 춤사위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말했다.
‘작은 손짓 하나마다, 동선을 따라가는 발자국 한 걸음마다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저는 지금까지 저런 진정한 춤을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추지 못할 거예요.’
노인에 대한 내 생각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력을 잃은 대신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해서 즐기던 그의 낚시. 나는 그에게서 ‘손맛’이 어떤 의미일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도 손맛은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깨어난 야생성이 아닐는지.
인터넷 개인 방송을 촬영하는 목적이라고 밝힌 뒤에,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르신께 손맛이란 무엇입니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는 듯이 노인은 잠시 주춤했다. 나는 뭔가 근사한 명언을 기대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내게 손맛은 곧 내 아내의 웃음소리요. 아내가 우럭을 무척 좋아하거든. 내가 낚시를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요.”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곧 깨달았다. 그의 아이스박스에 담긴 우럭들이 어쩌면 물고기만은 아닐 거라고. 그가 하루 종일 낚으려 했던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이었을 거라고.
서둘러 귀항하는 배 안에서 고동우가 장난스럽게 내게 눈을 찡긋했다.
“상금 타면 한턱 내야 된다. 알지?”
“그럼요. 그런데 설마 1등이야 되겠어요?”
“53센티면 1등을 하고도 남을걸? 캡틴 영감님도 12마리나 잡으셨잖아요. 오늘 바다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까 다어상 순위권을 노려도 되지 않을까요?”
“에이, 설마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말투로 딱 자르면서도 장재준 영감의 눈동자는 완전히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은 눈치였다.
평범한 조과를 기록한 보람이는 제일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가 큰 머리를 흔들면서 내게 귀띔을 해 주었다.
“그분에게 연락해야 되는 거 아냐?”
“아! 그렇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시미’를 검색했다. 깨톡 창을 열어 짧은 문자를 끄적거리고 발송 버튼을 꾹 눌렀다.
―오늘 좋은 우럭을 몇 마리 얻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이나 내일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