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손맛 (1)
안흥항은 우럭의 메카라고 불린다. 그만큼 우럭 낚싯배들이 밀집한 항구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의 항구에는 300명이 넘는 인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배를 찾아 이동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인사를 건넸다.
“앗! 우럭 님! 안녕하세요? 오늘 대회 오셨나요?.”
어두워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단골 낚시점의 주인 청년이었다.
“이야! 여기서 만나는군요. 사장님도 대회 출전?”
“하하. 그렇습니다. 저는 작년에도 참가했었어요.”
“그래요? 작년에는 어땠습니까?”
“거의 꽝이었죠. 아무튼 일주일이 어찌나 더디게 흘러가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하하.”
“그럼. 우럭 님 파이팅!”
아이스박스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가는 청년의 발걸음이 몹시도 경쾌해 보였다.
오랜 세월 안흥항을 들락거린 장재준 영감은 나보다 아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그는 가끔씩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벗고 알은체를 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누군가와 눈인사를 나누고 우리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저분은 작년 대회 우승자입니다. 서른 마리나 잡아서 당당히 1등을 하셨죠. 올해도 또 참가하셨을 줄이야.”
“서른 마리나요?”
고동우가 깜짝 놀라며 물었지만 장재준 영감의 다른 누군가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갔다. 악수를 나누고 돌아온 그가 말했다.
“저 사람은 소싯적에 프로 조사로 이름을 날렸던 분입니다. 오늘 고수들이 너무 몰려왔는데요.”
“프로 조사였다고요…….”
고수들 천지였다.
차에서는 1등을 맡아 놓은 사람처럼 그렇게 말이 많던 고동우였다. 자신감이 떨어졌는지 그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S호.
나와 멤버들은 배의 이름을 확인하고 난간을 넘었다. 백팩을 벗어 갑판 위에 내려놓고 보니 베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자리 추첨을 통해 우리 일행이 배정받은 자리는 좌현의 맨 앞쪽이었다. 고동우가 1번을 맡았고, 나는 4번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를 찾아 채비를 정돈하려는데 내 옆의 5번 자리에 있는 노인에게 눈길이 갔다. 아직 해도 뜨지 않는 시각인데 그는 새카만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가 불쑥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젊은이인 것 같은데, 나 좀 도와주시겠소?”
“예. 어르신.”
“내 미끼통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분명히 아내가 챙겨 줬는데.”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노안으로 고생하는 분이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나는 곧 그가 전혀 앞을 못 보는 맹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가방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미끼통을 얼른 주워 노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여기 찾았습니다. 어르신.”
“고맙구려.”
미끼는 꿸 수 있는 건지, 봉돌은 제대로 매달았는지 심히 신경이 쓰였다.
그렇지만 내 걱정과 달리 노인은 섬세한 손길로 채비 정돈을 마치고 남들보다 일찍 선실로 들어갔다. 세상에나…….
나는 가방 안에서 전동릴이 아닌 수동릴을 꺼냈다.
오늘은 마릿수에 연연하지 않고, 대물의 진한 손맛을 맛보고 싶었다. 오롯이 낚싯대를 통해 전해지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기로 했다.
오른쪽 3번 자리의 보람이는 집에서 만들어 온 자작 채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대물 우럭용 28호 바늘이 눈에 띄었다. 비교적 큰 바늘을 선택한 것으로 미루어, 그 또한 대어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야~~ 옹!”
베타가 잠에서 깬 모양이다.
나는 백팩을 들고 선실로 들어가 길게 누웠다. 다른 멤버들도 긴 여정에 대비하여 내 곁에서 잠을 청했다.
까무룩 잠에 빠졌던 우리가 깨어난 것은 무려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자아, 어서들 나와 채비 준비하세요. 바닥이 좀 까칠까칠한 여밭이니까 바짝 조심하시구요.”
선장의 멘트에 손님들은 우르르 선실에서 빠져나와 미끼가 장착된 채비를 들고 준비 태세를 갖췄다. 베타가 울부짖는 소리에 하는 수 없이 백팩을 매고 나도 선실 문을 나섰다.
등에 고양이를 지고 낚시를 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일 거라며 멤버들이 키득거렸다.
13물의 끝 썰물이 진행되고 있는 시각.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물색도 좋고, 물의 흐름도 적당해 보였다.
삑!
드디어 낚시의 시작.
투둑!
채비가 바닥에 닿자마자 두어 번 릴을 감아올리면서 제3의 시야를 열었다.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묵직한 100호 봉돌이 왼쪽으로 사정없이 뻗어 나가는 게 아닌가. 오징어 미끼 또한 물살을 타고 태극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겉물과 속물이 완전히 다르군.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한 바다였지만, 깊은 물 속에서는 빠른 조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 틈에 숨은 우럭들이 머리만 내밀고 바람에 나부끼는 미끼를 외면하고 있었다.
“아이쿠!”
시작은 1번 자리의 장재준 영감부터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낚싯대를 거칠게 흔드는 것으로 보아 밑걸림이다. 물고기가 아니라 지구가 걸린 것이다.
“제기랄! 시작부터.”
“나도요…….”
2번 고동우도, 3번 보람이도 돌 틈에 푹 박혀 버린 채비를 구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물속을 들여다보니 내 채비도 회수 불능의 상태로 돌 틈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낚싯대를 거꾸로 세우고 줄을 쑥 뽑아 올리던 내 시선이 왼쪽의 노인에게 닿았다.
희한하게도 노인의 채비만 멀쩡했다.
그렇다고 채비를 너무 높이 띄운 것도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낚싯대를 손에 쥐고 부드럽게 돌 틈을 공략하고 있었다.
허어, 참 대단하신 분이네.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마치 바닥을 읽고 있는 듯한 손놀림. 놀라운 광경에서 나는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위이잉~ 위이잉~
뱃전에 온통 탄식 소리와 함께 전동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입수부터 밑걸림이 속출하는 상황.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깊은 곳의 조류가 빨라 우럭의 입질이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선장은 배를 돌려 더욱 먼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보람이가 담배를 꺼내 물며 투덜거렸다.
“목표 변경이다. 대물이고 뭐고 한 마리만 잡는 걸로.”
“기다려 봐. 이제 시작이잖아.”
화창한 날씨에 오랜만에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울 생각이었던 사람들의 얼굴빛은 어두워져 있었다.
“여기는 밑걸림은 별로 없을 겁니다. 물이 죽을 때까지는 여기서 계속할 겁니다.”
새로운 포인트에 도착하자마자 튀어나온 선장의 멘트.
물속을 들여다보니 바닥은 평평한 자갈밭이다. 우럭과 같은 습성의 물고기들은 엄폐물이 많은 곳에 모여 사는 법. 밑걸림이 적은 대신 손맛을 보기에는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바닥에서 노닐고 있는 우럭 치어들과 노래미들을 확인하고 나는 아이스박스에 엉덩이를 붙였다. 어차피 손맛을 보지 못할 바에는 베타와 함께 바다를 감상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베타야. 저게 바다라는 거다. 너는 처음이지?”
“야~~ 홍.”
갑갑한 백팩에서 꺼내어 내 무릎에 올려놓자, 베타는 까치발을 하고 신기하다는 듯이 바다를 향해 눈알을 굴렸다.
낚시를 하던 손님들도 베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거나, 간혹 배에 웬 고양이를 데리고 왔냐는 시선으로 힐끔거렸다.
“왔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5번 자리의 노인이었다.
선글라스 아래로 잇몸을 드러낸 그가 힘차게 전동릴의 레버를 당겼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의 모습을 담아 보기로 했다.
출렁출렁 흔들리는 낚싯대를 붙잡고 있던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째 우럭은 아닌 것 같아. 노래미야. 노래미.”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올라온 물고기는 중치급 정도의 노래미였다. 물고기의 몸짓을 통해 웬만한 어종을 구별할 수 있는 고수가 틀림없었다.
“그래도 손맛은 느끼게 해 줘서 고맙구나. 우럭을 잡아 가야 아내가 좋아라 할 텐데.”
노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낚싯줄을 훑어 고기를 바늘에서 빼내고는 개인 물 칸으로 쏙 집어넣었다.
노래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대다수의 조사들은 노래미보다 우럭을 선호하는 편이다. 노인도 우럭을 원하고 있었다.
노인의 첫수를 신호탄으로 여러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장재준 영감도 괜찮은 크기의 우럭을 건져 올렸고, 보람이는 기준치에 훨씬 미달하는 우럭을 잡았다가 곧바로 바다로 보내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잔손맛을 맛보기는 했으나, 모두들 23센티미터를 넘기지 못해 아쉬움이 그득한 표정으로 방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예 입질조차 받지 못한 고동우는 순위에 들어가는 기대마저 접었는지 하염없이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충분히 쉬었다고 판단한 나도 잔손맛이라도 볼 생각에 슬그머니 일어나 낚싯대를 쥐었다.
나는 2단 채비의 맨 아래에 국방색 웜을, 위에는 오징어 생미끼를 끼우고 풍덩 바다에 빠뜨렸다. 오늘은 어떤 미끼가 먹힐지 테스트나 해 보려는 심산이었다.
휘익! 휘익!
휘파람 소리 너머로 우럭들이 어떤 미끼에 반응을 보이는지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우럭 치어 한 마리가 국방색 웜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오다가 멈췄다. 그리고 돌 틈에 숨어 있던 중치급 우럭도 웜 근처까지 다가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씨익 웃으며 채비를 회수하고 모든 바늘에 국방색 웜을 갈아 끼웠다. 그리고 기포를 뿜으며 하강하는 웜의 꼬리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토도독! 토도독!
적중했다. 잔챙이 우럭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가와 미끼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낚싯대를 휘저어 잔챙이들을 쫒아 버리자 곧바로 중치급 우럭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투두둑! 투둑!
짜릿한 입질. 드디어 걸렸다. 첫 입질을 받은 나는 정교하게 낚싯대를 움직여 우럭의 위턱에 바늘을 거는 데 성공했다.
포악한 우럭의 저항.
비록 대어는 아니지만 손맛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쉴 새 없이 쿡쿡거리며 몸부림을 칠 때마다 내 심장이 함께 쿵쾅거렸다.
“우럭 님! 축하해.”
고동우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끌어올린 우럭은 30센티미터 중반 정도. 첫수를 물 칸에 던져 넣고 나는 옆자리의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영감님. 이걸로 한번 해 보세요. 오늘 우럭이 좋아하는 미끼 같아요.”
“이게 뭐유? 고맙네요.”
나는 말없이 그의 바늘에 국방색 웜을 끼워 주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도 그것들을 하나씩 나눠 주며 말했다.
“방금 그걸 물고 늘어지더라고요.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해 보세요.”
“좋지. 안 그래도 생미끼가 시원치 않아서 고민했는데.”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내가 나눠준 미끼로 교체하고 다시금 의지를 불태웠다.
“왔다. 왔어!”
잠시 후 호들갑을 떨면서 낚싯대를 번쩍 들어 올리는 고동우. 그리고 곧바로 5번 노인의 낚싯대를 후려치며 찾아든 어신.
나는 만면에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기준치를 넘는 우럭을 잡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낱마리의 손맛을 만끽하면서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는 멤버들은 물론 노인의 물 칸에도 서너 마리의 우럭들이 채워져 있었다.
“초면인데 너무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우럭 손맛을 봤습니다.”
노인이 내게 말했다.
베타에게 소고기 캔을 따 주고 갑판 위에 멤버들과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까 먹고 있을 때였다.
“별것도 아닙니다. 오후에 더 많이 잡으셔야죠.”
“손맛은 충분히 봤습니다. 욕심내서 뭐 하겠습니까. 매운탕거리는 충분하니까 횟감으로 한 마리만 더 잡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노인의 말을 듣고 고동우도 동조했다. 그는 이제 등수에 들겠다는 마음을 완전히 비운 말투였다.
“내 실력에 저 정도 잡은 것만 해도 신기하지. 그나마도 우럭 님이 나눠준 웜 덕분이야.”
점심 식사를 마치고 포인트를 옮겨 다니기 여러 번.
물돌이 시간에 따박따박 한 마리씩 추가하고 또다시 물살이 빨라지고 있을 때, 선장의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12미터 침선입니다. 조류가 세니까 알아서 판단들 하시구요.”
침선(난파되어 바다에 가라앉은 배) 포인트라는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채비가 작살나겠구나 하는 두려움과 잘하면 대물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나는 후자였다.
아직 대회는 끝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갈망했던 진한 손맛을 기대하며 나는 보람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라에몽! 네가 만들어온 3단 채비. 하나만 줘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