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10화 (10/130)

[제10화] 베타

아지트에서 만신창이로 취하여 돌아온 그날 밤.

나는 씻지도 못한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응~~ 이 외~~ 옹.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런데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아기 울음소리 같았다.

요즘에도 누가 그런 짓을? 설마…….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래전에는 아기를 남의 집 앞에 두고 가는 일이 간혹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두근두근 가슴을 진정시키며 슬며시 문을 밀쳐 보았더니.

시커멓고 작은 무언가가 내 다리 사이로 쏙 들어가는가 싶더니 집 안으로 줄달음쳤다.

뒤를 돌아보니…… 아기 고양이였다.

간밤에 봄비가 내렸는지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쓴 고양이가 내 침대 위에 올라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아 영락없는 길고양이였다.

침대 위로 시커먼 흙탕물이 번졌지만 어차피 세탁을 할 때가 한참 지난 터라 상관하지 않았다. 그보다 고양이의 왼발에 있는 작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가엾은 것…….

술기운이 남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문득 측은하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단한 현실과 싸워 왔을 녀석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나는 가만히 고양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보았다. 어미의 젖이라고 생각했는지 고양이가 손가락 끝을 핥아 대기 시작했다.

뭔가 먹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비쩍 마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먹일 만한 것이 없을까 머리를 굴렸다.

그렇지! 그게 있었지.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던 냉동실의 대광어.

나는 냉장고로 달려가 그것을 꺼내 놓고, 곧장 가스레인지의 불을 댕겼다.

다행이군. 안 그래도 처치 곤란이었는데…….

어디서 주워들은 가닥은 있어 소금은 치지 않았다. 적당히 구운 생선을 잠시 식혔다가 고양이 앞에 툭 내밀어 보았더니.

“왜~~ 용.”

의외였다. 냄새를 맡자마자 고양이는 기겁을 하며 생선을 외면해 버렸다. 요상한 울음소리가 왜 이런 걸 주느냐고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상하다.

고양이에게는 생선이 진리인데.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뭐라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근처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부랴부랴 고양이 간식이라고 적힌 몇 개의 캔을 사 들고 돌아와 보니 고양이는 울다 지쳤는지 잠들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길고양이 같긴 한데. 어쩌면 어디선가 어미가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몰라. 이런저런 걱정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샌가 잠에서 깬 고양이가 나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왔다.

개냥이.

강아지처럼 애교가 많은 고양이였다. 나는 얼른 ‘참치’라고 쓰인 캔을 열어 고양이 앞에 내려놓았다.

코를 대고 킁킁거리다가 곧 외면하는 고양이.

이번에는 ‘소고기’라 적힌 캔을 내밀어 보았다.

우적우적.

입맛이 까다로운 고양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찌나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지 눈 깜짝할 새에 캔을 비우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일단 목욕부터 시킬 필요가 있었다.

따뜻한 물을 받아 구석구석 씻기고 나서야 나는 고양이의 색깔이 온통 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른하게 다시 잠든 고양이.

이제부터는 현실적인 고민이 머릿속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내가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불과 하루 전에 고동우의 가게에서 물고기 한 마리도 결국 들고 오지 못했다. 하물며 고양이를 집에 둘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게다가 길고양이일 거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다. 일단은 주인을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단 고양이의 사진부터 찍어 ‘둥근 마켓’에 올렸다.

길 잃은 아기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고 있으니 주인이면 연락해 주시고, 혹시 동네 근처에서 이런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면 어미를 찾을 수 있도록 위치를 알려 달라는 장문의 글과 함께였다.

* * *

사흘이 지났다.

나는 양화대교 아래 면허 시험장에서 실기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길이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쁜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표정하게 주차장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를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힐끔거리는 게 아니라 내가 매고 있는 작은 백팩이었다. 반쯤 지퍼가 열린 틈으로 고양이가 빼꼼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둥근 마켓에 올려놓은 글에는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예쁘다. 귀엽다.

그런 댓글만 수없이 달렸지 정작 근처에서 봤다는 댓글도 전혀 없었다.

‘제가 보기엔 사람 손을 탄 것 같지는 않네요. 영양 상태가 좀 좋지는 않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동물병원 의사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독한 개냥이가 틀림없었다. 내가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귀신같이 낌새를 눈치채고 혼비백산하여 울부짖는 통에 몇 번이나 신발을 신었다가도 벗어야 했다.

아지트에 장재준 영감이 오셨다고 하여 모질게 뿌리치고 외출을 감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까지 울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다시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양이를 업고 면허 실기시험을 치르러 왔다는 내게, 시험 감독관은 어이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는 시험을 치를 수 없다며 빡빡하게 굴던 그는 결국 고양이와 나의 동승을 허락해 주었다.

‘시험장에 반려동물 입장을 금지한다는 조항이라도 있습니까? 있다면 보여 주세요.’

그렇게 내가 박박 우긴 결과였다.

휴우~

고단한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오는 길에 근처의 정육점에 들렀다.

“우둔살 500그램만 주세요. 잘게 다져 주시면 좋고요.”

골치 아픈 주인님을 만났다.

생선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도 기가 막힌데, 비싼 소고기에 입맛을 들인 모양이다. 며칠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소금 간 없이 익힌 소고기에 사료를 절반쯤 섞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고양이가 쏙 빠져나와 침대로 올라간다.

나는 얼른 식사를 준비하고 고양이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왜~~ 용.”

시험장에서 고생한 생각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더니 고양이가 ‘내가 뭐?’라고 항변이라도 하듯 큰소리친다.

잠시 후 그래도 미안했는지 내 앞에서 발라당 배를 보이고 애교를 떠는 고양이.

하하. 그놈 참.

하루 종일 쌓였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녹아내린다. 그 순간 나는 봄비와 함께 우리 집으로 흘러 들어온 이 고양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이름을 지어야겠어. 흰색이니까 흰둥이가 어떨까. 아니다. 어쩐지 강아지 이름처럼 들려. 뭔가 색다른 이름이 좋겠는데……. 오호라!

베타!

지난 주말 고동우의 수족관에서 내 눈길을 끌던 그 눈처럼 희고 화려한 물고기.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 같았다.

“어이. 베타! 베타야.”

이름을 지은 기념으로 녀석을 불러 보았다.

“왜~~~ 용.”

신기하다. 천재 고양이인가 보다.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베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살인 미소를 보내는 게 아닌가.

* * *

“자아, 시작해 볼까나?”

방바닥에 온통 낚시용품들을 늘어놓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낚시 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거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3년 전에 구입한 경질 우럭대에서 먼지를 털어 냈다. 군데군데 가이드에 녹이 슬었지만 아직은 쓸 만해 보였다.

다음으로 챙긴 것은 기둥 줄에 가지 채비가 두 개 달린 2단 채비. 작년에 넉넉히 사 둔 바람에 이만하면 모자랄 것 같지는 않다. 100호 봉돌은 현지에서 한 봉지만 더 사면 될 것 같고.

사실 내게는 봉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초기에 홀로 감행했던 선상 출조에서 밑걸림이 심한 지형을 만나 초반에 봉돌을 모두 소진했던 쓰라린 기억이다.

그날 나는 오후 내내 낚싯배를 선상 호텔로 삼아 뜬눈으로 누워 있어야 했다.

미끼로 쓸 오징어채는 전날 마트에서 두 마리를 손질해서 냉장고에 얼려 놓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릴을 내려다보았다.

전동릴과 수동 장구통릴.

뭘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둘 다 가방에 넣었다.

“야~~ 옹.”

“베타야. 왜. 배가 고프냐?”

“외~~ 옹.”

“알았다. 알았어. 네 짐도 챙겨 달라는 거지?”

나는 옷장을 열어 베타를 위해 새로 구입한 물건을 꺼냈다. 반려동물 전용 캐리어 백팩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한번 들어가 볼래? 옳지.”

작은 가방 안으로 들어간 베타가 둥근 아크릴 창으로 얼굴을 쏙 내밀었다. 양쪽에는 공기가 통하는 작은 구멍들이 있어, 베타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낚싯배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베타가 빨리 커서 독립할 때까지는 함께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존의 백팩으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열린 지퍼 틈으로 빠져나와 물속에 빠지기라도 할까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소고기 통조림을 여러 개 베타의 가방에 꾹꾹 담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새벽에 나가려면 일찍 자 둬야 했다. 저녁을 먹자마자 침대에 나란히 누워 베타에게 약속했다.

“내일 1등 하면 상금으로 멋진 캣 타워를 사 주마.”

“야~~ 홍.”

* * *

새벽 2시.

낚싯짐을 이고 지고 나는 집 앞에서 고동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골목 어귀에서 그의 승합차가 나타났다.

인사를 나누고 조수석에 앉아 무릎에 백팩을 내려놓았더니.

“아이고, 깜짝이야.”

고동우가 기겁을 하며 뒤로 몸을 젖혔다.

가방 위쪽에 둥근 모양의 투명 창으로 불쑥 얼굴을 내민 베타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가 물었지만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세 번이나 똑같은 얘기를 재생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였다.

“이름이 베타예요. 자초지종은 이따가 말씀드리죠.”

안양에서 픽업한 장재준 영감도, 마지막으로 수원에서 차에 오른 보람이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서해대교를 넘어 행담도 휴게소에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나는 베타를 만난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복덩이가 들어왔군요. 허허.”

“그렇게 계속 붙어 있어야 한다면 피곤하겠다.”

멤버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장재준 영감은 긍정적으로 베타를 받아들이라는 의미였고, 보람이는 나를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반면에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동우는 상금에 대한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다가 말겠죠 뭐. 그나저나 오늘 대회에서 주는 상이 두 가지라면서요? 어떤 거를 노려야 할지 고민이네.”

물론 나도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대회 개요를 읽고 왔다. 어종에 관계없이 규정 치수 이상의 물고기들을 합산하여 최다 마릿수를 낚은 사람에게 주는 다어상(多魚賞). 그리고 가장 큰 우럭을 잡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대어상(大魚賞).

헛바람이 잔뜩 들어간 고동우에게 내가 넌지시 말했다.

“구피 님은 다어상을 노리셔야 할 거예요. 대어상은 제가 가져갈 거니까요. 하하하.”

“무슨 소리! 대어상은 내 거야. 큰 거 한 방이면 끝나.”

보람이는 아무거나 3등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현실적인 기대감을 내비쳤다. 우리 중에서 선상 낚시에 가장 능한 장재준 영감은 마릿수로 승부해 보겠다며 은근히 경력을 과시하는 눈빛이었다.

두 개의 분야에서 1등에게 각각 100만원. 2등과 3등에게는 각각 30만원과 20만의 상금이 걸려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김칫국을 한 사발씩 들이마시는 멤버들.

우리는 한숨도 자지 않고 어린애들처럼 왁자지껄 떠들었다. 베타가 오히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가끔씩 칭얼거렸다.

그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 승합차는 충남 태안 안흥항에 도착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골목길을 내려가니 항구에는 20척의 배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바다에서 풍겨 오는 짠내.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내 가슴은 벌써부터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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