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9화 (9/130)

[제9화] 아지트

“구피 님! 이 물고기 이름은 뭐죠?”

“거기 써 있을걸? 수족관 아래쪽에.”

5월의 첫 주말 저녁.

나는 고동우의 수족관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었다.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 천지였다. 아마존이 원산지라는 어떤 물고기는 수십만 원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인 물고기는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물고기였다. 작은 어항에 각각 한 마리씩 담긴 그것들은 마치 날개를 편 공작새처럼 화려한 지느러미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베타.

어항의 아래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어느새 고동우가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물고기 고를 줄 아는군. 하나 살래? 우럭 님에게는 싸게 넘겨주지.”

귀가 솔깃했다.

혼자 사는 방에 놓아 두면 적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러나 곧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녜요. 괜히 가져갔다가 죽이기 십상입니다.”

언제고 또 먼 출조를 떠나야 하는 낚시꾼의 삶.

규칙적으로 밥을 줄 수 없다면 차라리 데려가지 않아야 한다.

그때 가게 안으로 시끌벅적하며 두 사람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아이고, 수족관이 아담하고 좋네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허허.”

“구피 님 안녕하세요? 우럭 님도 안녕?”

장재준 영감과 보람이었다.

내 경우도 그랬지만 두 사람도 고동우의 가게 안으로 초대받기는 처음이었다.

“드디어 간만에 한자리에 모였군요. 환영합니다. 어서들 저를 따라오세요.”

고동우의 뒤를 따라 우리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 보니 휑한 공간에 달랑 곧 무너질 것 같은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었다.

“다들 앉으세요. 소주와 맥주는 무제한입니다.”

고동우는 구석에 놓인 냉장고로 달려가 얼른 술을 가져왔다.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투명 유리문이 달린 냉장고였다. 그러고 보니 그 옆으로 먼지가 풀풀 내려앉은 구식 주방이 눈에 띄었다.

고동우가 테이블에 놓인 휴대용 버너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내 머릿속을 읽은 사람처럼.

“오래전에 여기 2층에 식당이 들어와 있었어. 쫄딱 망해서 나간 뒤로는 내가 창고로 쓰고 있었고. 요즘 돈이 궁해져서 싹 비우고 다시 복덕방에 내놓았지.”

“그래요? 알고 보니 건물주셨군요. 부럽습니다. 허허.”

“아이고 캡틴 님도 참. 낡아 빠져서 값도 안 나가요. 거의 폐건물이나 다름없어 임대도 어렵고.”

한참 동안 손사래를 치던 고동우가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다들 심심할 때 여기로 놀러 오세요. 어차피 세 나갈 때까지는 빈집이니까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안 그래도 종일 집구석에만 있다 보니 적적했는데.”

“캡틴 님께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우리 피싱 어벤저스의 아지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언제든지 오시면 커피는 공짜입니다. 하하.”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임대가 나갈 때까지’라는 시한부 단서가 붙었지만 처음으로 우리들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낚시터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나의 멤버들. 이제부터는 언제라도 편하게 모여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고동우가 씨익 웃으며 버너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이제 올리겠습니다. 우리 아내가 양념을 했으니까 우럭 님 요리보다는 맛이 괜찮을 겁니다.”

갑작스러운 회식은 최근에 참돔 세 마리를 들고 의기양양하기 돌아온 고동우가 그의 아내를 설득해서 만들어 낸 자리였다.

“한 마리는 찜을 해 먹었고, 한 마리는 회를 떠서 해치웠어. 우리 애들이 죄다 먹어 치운 덕분에 한 마리만 남았지 뭐야.”

고동우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비 뚜껑을 활짝 열면서 혼잣말로 떠들었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냄비 안에서 커다란 참돔이 세 토막으로 흩어져 육즙을 뿜어내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두 모여 신이 난 고동우가 또 요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회를 떠 볼까도 했지만 도라에몽 님이 선어회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갓 잡은 활어회와 숙성된 선어회.

실제로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장이냐 짬뽕이냐의 논쟁이나 다름없다. 고동우는 아예 매운탕으로 무난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성공이었다.

“끝내줍니다!”

맛이나 보겠다며 한 숟가락 국물을 맛본 보람이가 번쩍 눈을 크게 떴다.

반면에 나로서는 그다지 해산물이 당기지 않아 머뭇거렸다. 냉동실에 넣어둔 대광어를 사흘이 멀다 하고 탕과 구이로 먹어 치웠는데도 아직 몇 토막이 남아 있었다.

그냥 빈속이라도 달래 볼 생각으로 국물을 한 국자 퍼서 마셔 보았다. 보람이의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고소한 참돔의 기름에서 깔끔한 감칠맛이 확 올라왔다.

“역시 음식은 재료가 반이네요. 형수님 음식 솜씨도 좋지만 내가 만들었어도 이 정도는 됐을 겁니다. 하하.”

무심코 던진 농담이었다.

그런데 다들 헛기침을 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머쓱해진 나는 건배를 외치는 것으로 얼른 화제를 돌려야 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술이나 드시자고요.”

여러 번 술잔이 오고 갔다.

보람이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친구인지라 물잔으로 대신했다. 그는 안양에 사시는 장재준 영감을 차로 모시고 왔고 돌아갈 때도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멤버들이 한데 모여 기분이 좋아 홀짝홀짝 원샷을 연발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안주에 유쾌한 술자리.

빠듯한 예산에 갇혀 있지만, 오늘 같은 날 대리운전 비용을 아끼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내게는 약간의 믿는 구석이 생겼다.

“다들 아시죠? 우리 우럭 님 방송이 슬슬 뜨고 있는 거. 그게 다 나랑 갯바위에 다녀온 뒤로 그렇다는 것도.”

“구피 님은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나와 동출했던 광어 낚시부터 벌써 조회 수가 올라가고 있었다니까요. 허허.”

멤버들은 서로 공치사를 주고받으며 내 방송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게 바로 내가 믿는 구석이었다.

“지금은 또 얼마나 올라갔는지 제가 확인해 볼게요.”

보람이가 바지춤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확장했다.

“구, 구독자가 드디어 천 명을 넘었어요. 최근 편 조회 수는 1만 회를 넘겼고요.”

“그래? 어디 보자.”

“정말입니까? 허허.”

모두들 휴대폰을 꺼내 드는 바람에 나는 홀로 남은 소주잔을 털어 마셨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가 이처럼 달짝지근한 적이 있었던가.

흥분한 보람이가 조만간 정산금을 받을 수 있겠다며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구독자 1천 명과 누적 시청 시간 4천 시간이 유튜브 정산의 최소 기준이라는 것은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고동우가 크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돈 나오면 한턱 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반면에 장재준 영감은 고동우에게 살짝 면박을 주었다.

“허허. 참. 낚시 방송으로 무슨 큰돈을 번다고.”

“웬걸요? 내가 아는 낚시 유튜버는 구독자가 80만에, 인기 동영상 조회 수는 8백만 명까지도 올라가던데요.”

“최고 수준이 그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는 용돈이나 버는 수준이라고요.”

장재준 영감의 말뜻을 내 방송에 대한 폄훼로 오해하지는 않았다.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라는 현실적이고 진심 어린 충고였다.

“우럭 님 방송에 뭔가 획기적인 차별화가 필요해요. 먹방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고.”

보람이가 아픈 곳을 건드렸다.

우리의 아지트가 생기고 나서 첫 화두는 내 방송에 대한 각자의 분분한 의견들이었다.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는 눈빛들이었다.

장재준 영감이 조심스럽게 먼저 의견을 꺼냈다.

“다른 낚시 유튜버들이나 조사들과 콜라보를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설마 낚시 대결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승부에 집착해서 즐거움을 포기한 낚시가 되지 않을까요?”

“허허. 올림픽 가서 메달을 따 오라는 게 아닙니다. 낚시에서 이기고 지는 게 무슨 대수입니까? 재미있게 놀면서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배울 수도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재준 영감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말처럼 그런 콜라보 낚시라면 충분히 해 봄 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입을 연 사람은 고동우였다.

“아주 나중 일이겠지만 해외 낚시도 염두에 두면 좋겠어. 가능하면 나도 좀 데려가 주면 좋고. 하하.”

“그럼요. 오대양을 누비면서 대어를 낚아 보는 게 제 꿈입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람이는 또다시 먹방에 대한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먹방은 계속 할 거야?”

“할 거야. 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해 보려고. 적당한 파트너를 구할 계획이거든.”

요 며칠 동안의 수없는 고민의 결과였다.

내 결심은 요리를 담당해 줄 파트너를 구하는 것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왕이면 나처럼 낚시에 관심이 많고, 요리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어야 했다.

점점 증가세에 있는 독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서두를 생각이었다.

대부분 낚싯대에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 앵글도 문제였다. 보다 역동적인 화면을 담기 위해서 때때로 카메라를 들고 도와줄 수 있는 파트너라면 금상첨화일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설마 사시미라는 사람 아냐? 너랑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던데.”

보람이의 말에 멤버들의 화두는 자연스럽게 ‘사시미’라는 미지의 인물로 모아졌다.

“나도 봤어. 사시미인가 쌍칼인가 그 사람은 누구야? 음식으로 보답하겠다는 걸 보면 요리깨나 하는 분일 것도 같던데 말이야.”

고동우의 말처럼 나는 그가 요리사일 거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세상에 요리사가 어디 한둘인가. 누구인지도 모를 그분이 어느 정도 요리를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선뜻 내 방송에 참여하겠다고 나설지도 미지수다.

결정적으로 그의 댓글에 ‘낚시는 관심이 없어 사양한다’는 대목 또한 마음에 걸렸다.

“그분은 아닙니다. 제 파트너는 인터넷 동호회나 그런 데서 구해 보려고요.”

“그래? 그래도 공짜 생선을 준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만나는 봐야 하지 않겠어?”

“그럼요. 좋은 놈으로 하나 잡으면 바로 연락드려야죠.”

내 대꾸가 미적지근하게 들렸는지 고동우가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시미란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 어째 실망한 눈친데? 글에서 캡틴 님처럼 원숙미와 노련미가 물씬 풍기더구만. 하하.”

고동우의 말에 보람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라니. 백 퍼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틀림없어요.”

별로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추측이 아니라 아예 중년 남성일 거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글에서 묻어 나온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시미’라는 서늘하고 남성적인 닉네임도 근거는 아니었다.

결정적인 단서는 그가 남긴 깨톡 아이디. sasimi69.

아이디를 저장하고 나니 그의 프로필이 친구 목록에 추가되었다. 사진을 확인해 보니 기다란 요리사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가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아이디에 붙은 ‘69’라는 숫자.

이는 그가 69년생, 사진 속에서 연륜이 물씬 풍기는 그의 모습 또한 50대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봄도 왔는데 다 함께 동출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우럭 님 다음 방송도 찍을 겸 말입니다.”

술자리가 거의 파할 무렵이었다.

장재준 영감이 넌지시 다 함께 낚시를 떠나자고 제안했다. 나야 당연히 선뜻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좋지요. 좋은 계획이라도 있나요?”

“다음 주에 안흥항에서 우럭 낚시 대회가 있더군요.”

대회라고는 하지만 아마추어 낚시꾼들의 작은 축제일 뿐이다.

봄을 맞아 지역별로 몇 개의 선단들이 모여 소규모로 주최하는 그런 이벤트는 적지 않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고동우와 보람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저는 회사 때문에 주말 아니면 어려워요.”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멀리 다녀와서 당분간은 자제를 하지 않으면…….”

장재준 영감이 고동우의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어허. 돌아오는 일요일입니다. 도라에몽 님은 휴일 잔업만 없다면 문제없을 테고. 구피 님은 1등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사모님을 구슬려 보세요.”

“1등 상품이 뭔데 그러십니까?”

“자그마치 백만 원입니다. 낚싯배 스무 척이 공동 주최하는 대회라 작년보다 두 배란 말입니다. 허허허.”

1등?!

그렇게만 된다면 구독을 눌러 주는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술김에 해 보았다.

보람이는 무조건 가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상금이 크다는 말에 고동우도 침을 삼키며 크게 외쳤다.

“그럼 나도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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