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8화 (8/130)

[제8화] 눈맛 (2)

중층을 노리라는 내 말에 고동우는 미심쩍어하는 분위기.

“바닥이 아니었어?”

“네. 혹시나 해서 저는 띄우고 있었거든요.”

“흠. 그렇단 말이지. 알았어.”

그는 얼른 채비를 바꾸고 캐스팅했다. 나도 그를 따라 수심을 중간쯤으로 조정하고 멀리 채비를 던졌다.

3분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신호가 왔다.

서너 번 움찔하던 고동우의 찌가 사정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끼야호! 정말이네. 드디어 왔어! 크하하하!”

고동우의 입이 귀에 걸렸다.

흐뭇한 얼굴로 그를 쳐다볼 틈도 없었다. 어느샌가 내 미끼를 향해 다가온 또 한 마리의 참돔이 미끼를 물고 몸을 돌리고 있었다.

“또 왔구나!”

더블 히트였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어느덧 서쪽으로 넘어간 태양도 우리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두 마리 모두 아까와 비슷한 사이즈.

우리는 멋진 포즈로 번갈아 서로의 사진을 번갈아 찍어 주었다.

“이제 마누라한테 혼날 일은 없구나. 크크큭.”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는 고동우.

봄의 참돔은 귀한 생선이다. 마릿수로 잡기 어려운 참돔을 모두 얻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후로 몇 번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이렇다 할 조과는 없었다. 낚시를 접고 떠날 때가 되자 고동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이즈는 좀 아쉽네. 대물이 출몰하는 시기인데 말이야.”

오짜에 가까운 참돔을 잡았지만 고동우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은 눈치였다.

“아쉬워야 다시 오는 게 낚시 아니겠습니까? 이만 접으시죠. 30분 있으면 배가 올 시간입니다.”

“그래야겠지? 내가 먼저 물청소를 하고 있을 테니까 우럭 님은 조금 더 해 봐. 혹시 모르잖아.”

처음 갯바위에 오른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즐기라고 배려해 준 말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두레박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그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이제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린 바로 그때였다.

어라? 어디 갔지?

찌가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만 해도 수면 위에서 가물거리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반사적으로 나는 낚싯대를 힘차게 치켜올렸다.

부르르.

분명히 생명체의 움직임. 휘파람으로 확인해 보니 엄청난 놈이 내 미끼를 문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히, 히트!”

엉겁결에 외치면서 나는 몸을 뒤로 크게 젖혔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저항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낚싯대가 부러질 것처럼 90도 각도로 꺾인 것을 확인하고 고동우가 달려왔다.

“드랙을 풀어! 어서!”

그의 말대로 드랙을 조정하자 주르륵 줄이 풀려 나갔다.

내 1.5호대로 감당하기 버거운 대물이었다. 그렇게 종료 휘슬이 울려야 할 시각에 조금은 긴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끄응.”

놈을 제압하는 데 거의 20분이 소요되었다.

어깨보다도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욱씬거렸다.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마지막 바늘털이를 시도했지만 결국 대물은 뜰채 속에 담겨 뭍으로 올라왔다.

“아싸! 8짜는 족히 넘겠어! 이건 대형 사건이야.”

뜰채를 들어 주고 카메라로 나를 찍어 주며 열 일을 도운 고동우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반면에 나는 진이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잠시 후 기운을 차린 나는 기념비적인 대어를 들고 갯바위 위에 섰다.

“자아, 더 위로 들어 봐. 어서!”

고동우가 좋은 그림을 담아 준다고 하여 나는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붉게 물든 노을빛과 대물 참돔의 영롱한 빛깔이 어우러진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무엇이 참돔인지 구별하기조차 어려웠다.

마지막에 잡은 대물만 내가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고동우가 가져가기로 했다. 수업료를 내겠다는 내 말에 그는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자 배가 도착했다.

우리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갑판 위로 올랐다. 돌아갈 때의 저녁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는 켜 놓은 상태였다.

“좀 잡으셨습니까?”

“말도 마이소.”

아침에 보았던 그 사내가 난간에 몸을 걸치고 서 있었다. 고동우가 묻자, 그는 빙긋 웃으면서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종일 낚시의 고단함과 실망감이 누런 연기에 배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나와 고동우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찡긋 눈을 깜빡이자 고동우가 아이스박스를 열었다.

“그럼 여기 한 마리 가져가 쓰세요. 우린 충분히 잡았으니까요.”

“아이고, 그라면 안 되지요. 괘않습니다.”

“사양하지 마시고요. 어차피 저 친구가 잡은 건데요 뭘.”

고동우가 작은 놈 하나를 골라 번쩍 들어 올리려던 순간, 나는 얼른 아이스박스로 달려갔다.

“제사상에 쓸 건데요. 이걸로 가져가세요.”

8짜 대어를 꺼내 사내의 아이스박스에 얼른 넣어 주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고동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 초면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예. 정말로 고맙습니데이.”

어차피 내가 가져간다 해도 허접한 요리의 희생양으로 둔갑할 운명. 카메라에 담았으면 충분하다. 차라리 좋은 곳에 쓰는 편이 대물 참돔에 대한 예의라 여기기로 했다.

신나는 낚시 여행을 마친 뒤라 올라오는 길에도 피곤한 줄 몰랐다.

옆에서 규칙적으로 울려 오는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내 머리는 온통 이번 일기장을 어떻게 써 내려갈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번에는 ‘눈맛’을 중심으로만 편집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한 마리 가져가래도.”

“됐다니까요. 얼른 집으로 들어가세요. 형수님한테 혼나시기 전에. 오늘 너무 고마웠습니다.”

고동우의 살림집은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들었다.

내 차가 있는 방향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잠깐만! 내가 깜빡했다.”

고동우가 달려와 내게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책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물고기를 총망라한 어류 도감이야. 쓰던 거지만 넣어 둬, 앞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고동우는 그렇게 말하고 총총 집 안으로 쏙 사라졌다.

감동.

혹여 내 일에 도움이 될까, 차 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화르륵 두툼한 책장을 넘겨 보니 수많은 물고기의 컬러 사진 아래에 서식지와 습성 등까지 빼꼭하게 적혀 있었다.

빈 아이스박스를 흔들면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동영상 편집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날 밤 꿈에서도 거제도의 갯바위에서 내려다본 비경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 * *

“아~~ 함!”

눈을 떠 보니 아침 9시.

조금 더 자고 싶었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아침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장소로 달려가야 했던 그때는 얼마나 꿈꿔 왔던 게으름인가.

그곳에서 매일 마주해야 했던 똑같은 얼굴들…….

그런데 이상하다. 문득 팀원들의 얼굴에 겹쳐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렇다고 그립다거나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로 나쁜 기억들을 바다 깊숙이 수장하고 온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졌다. 심지어 무한 긍정의 에너지마저 샘솟는 것 같았다. 틀에 박힌 생활을 못 견뎌 하는 내 성향과 회사라는 조직이 서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는.

이럴 때가 아니지.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벌떡 일어섰다. 전날 밤에 하지 못했던 일. 밀린 일기를 써야 했다.

뚝딱뚝딱.

벌써 여러 번 해 왔던 영상 편집 작업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공을 들였다.

구성에도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거제도 선착장에서 갯바위에 도착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갯바위 위에서 찍은 풍경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낚시 장면보다 경치 분량이 더 많기는 처음이었다.

뒤이어 연거푸 두 마리의 참돔을 포획하는 장면이 이어졌고, 마지막 장면에는 대어를 낚고 노을에 물든 참돔이 클로즈업되면서, 오늘의 주제에 딱 어울리는 낚시 격언을 자막으로 끼워 넣어 보았다.

[낚시꾼들은 자신이 잡은 물고기의 대부분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들은 낚시를 하던 장소의 멋진 풍경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군.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켜고 업로드를 하려다 보니 뭔가 허전했다. 먹방 분량이 빠진 덕에 다른 회차에 비해 눈에 띄게 짧다는 아쉬움이었다.

아직 카메라에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찍은 분량이 남아 있었다. 부친의 제사상을 걱정하던 사내에게 8짜 참돔을 선뜻 내준 장면을 포함한 자투리 영상이었다.

선행은 남모르게 해야 아름다운 것이거늘.

나로서는 다소 오글거리는 장면이라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입술을 쑥 내밀고 고민하던 나는 결국 낚시터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해당 영상을 함께 올렸다. 먹방을 쉬게 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 * *

오후에 찾아간 곳은 판교역 부근의 병원이었다.

3월 말에 찾아간 이후로 정확히 한 달만의 방문이었다.

“가만 있어 보자……. 음…….”

새로 찍은 CT 결과를 들여다보는 의사가 지나치게 뜸을 들였다. 조바심이 나서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커졌습니까?”

“다행히도…… 그렇진 않은 거 같네요. 한 달 전과 비교해 보면 변화가 없습니다.”

“그럼……?”

혹시라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은근히 조마조마했다. 물론 의사가 권하더라도 수술에 동의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두통은 요즘 어떻습니까?”

“전혀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두통을 느낄 틈도 없이 바쁘게 지내 온 날들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두통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두통은 혹 때문이 아니라 갑갑한 회사 생활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안심은 금물입니다. 6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

“하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병원 문을 나섰다.

백수가 되었지만 회사원일 때보다 더 바쁜 날이었다.

병원 다음에는 서울. 보트 면허 실기시험에 대비하여 연수를 받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저녁 7시.

일찍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다가 아침에 올린 영상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유튜브에 접속해 본 순간.

뭐지?

나는 화들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로만 알았다. 구독자 수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589명.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오류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되어 앱을 껐다가 다시 켜 보았다.

592명.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구독자 수가 늘어나 있었다.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러워 가슴이 뭉클했다.

콘텐츠에 대한 독자들의 정직한 반응은 너무나 정직했다.

지난번과 달리 완벽하게 즐긴 낚시였다. 처음 가본 갯바위의 절경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생애 첫 참돔의 아름다움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함께한 사람과의 더블 히트에 신명이 났고, 마지막에는 생각지도 못한 대어라는 선물에 감사했다.

내가 선택한 일.

공감해 주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였다. 두근두근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번에는 댓글을 확인해 보았다.

―우와, 경치 죽이네요. 앞으로도 기대합니다.

―저도 예전에 가 본 곳이네요. 추억이 방울방울^^

―마지막 꽝친 분에게 내준 건 참 잘했어요.

―먹방보다 제사상에 올라간 참돔이 행복해했을 겁니다.

―다음 주에 우리 할아버지 제사인데 한 마리 가능? ㅋ

―은근히 자랑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괜찮아 보이네요.

수많은 공감과 응원의 댓글들.

감격에 겨워 눈가가 촉촉해졌다.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독자들은 멋스럽게 올린 명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그들은 공허한 텍스트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오고 가는 따스한 이야기에 오히려 열광하고 있었다.

소소한 낚시의 일상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진솔하고 리얼한 이야기들.

독자들의 반응은 역으로 앞으로 나의 일기장을 채워 나갈 이야기의 새로운 방향성을 일깨워 주었다.

사시미?!

댓글들의 중간쯤을 읽어 내려가고 있을 때 익숙한 닉네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시미: 친절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낚시에는 관심이 없어 제안하신 낚시 동출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하지만 귀한 생선을 주신다면 공짜로 받을 수는 없을 거 같고, 대신에 맛있는 요리로 보답하겠습니다. 제 깨톡 아이디를 남깁니다. sasimi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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