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눈맛 (1)
갯바위로 이동시켜 주는 배 안에는 우리 말고도 서너 명의 낚시꾼들이 먼저 와 있었다.
나와 고동우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내가 끼어들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선한 눈빛의 사내였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인가 보네예.”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경기도예요.”
“거기가 거기지예. 멀리서 여기까지 참 고생입니다.”
“하하. 낚시꾼이 다 그건 거죠. 고기가 있으면 어디든 못 가겠습니까.”
넉살 좋은 고동우가 그의 말을 살갑게 받아 주었다. 사내가 은근한 기대를 내비치며 담배를 꺼내 물고 말했다.
“큰 놈으로 한 마리만 잡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저는 어제도 왔었는데 꽝을 쳤다 아입니까.”
정말로 귀한 참돔인 모양이었다. 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도 말입니까?”
“어데예. 수온이 아직 차다 안 합니까? 오늘도 꽝치면 집에 들어갈 면목이 없을 것 같고…….”
말꼬리를 흐리는 사내 또한 고동우처럼 집에서 참돔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무심코 물어본 질문이었다.
“집에서 고기를 쓰실 데가 있나 봅니다?”
“내일이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 기일입니다. 살아생전에 아버님과 여기로 낚시를 자주 왔었지예. 평소 좋아하시던 자연산 참돔 한 마리를 올려 드리고 싶어서예.”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선장이 나를 향해 외쳤다.
“거기 둘이 오신 손님들 내리세요.”
선장의 말에 허겁지겁 첫 번째 포인트에서 하선했다.
여러 포인트 중에서 선장이 무작위로 지정해서 내리게 하는 방식이었다.
“캬아. 경치 한번 끝내준다. 다시 봐도 좋다니까.”
배에서 내려 낚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고동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
내 뒤로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이 우뚝 솟아 있고, 발아래로는 넘실거리는 파도가 달려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조금 멀리 시선을 옮겼더니 한려 수도의 섬들이 서로 겹쳐 장관을 이뤘고, 하늘에는 뭉게구름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내려다보니 잔물결에 일어난 윤슬이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래! 이 맛에 낚시를 오는 거야.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한 순간, 엉뚱하게도 지난날들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마뜩지 않은 팀장의 눈빛, 의미 없는 보고서로 가득 덮인 책상, 억지로 끌어 올려야 했던 내 입꼬리, 진심이 아니면서도 수없이 내뱉어야 했던 ‘죄송합니다.’…….
나쁜 기억들은 이제 안녕.
완벽한 한 폭의 진경산수화 안에서 나는 가슴에 응어리졌던 모든 것들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동시에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바다는 그렇게 지쳐 있던 내 영혼을 치유해 주고 있었다.
“낚시꾼이 아니라면 오기 힘든 곳이지. 어때? 따라오길 잘했지?”
“그럼요. 방금 막 고맙다고 말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내게 고동우가 핀잔을 주었다.
“멍 때리지 말고 낚시 왔으면 어서 채비나 만들어 봐.”
“알겠습니다.”
“채비 묶는 법은 도라에몽한테서 배워 왔다고 했지? 일단 바늘에 수심 봉돌을 걸고 바닥 지형부터 파악해 보셔.”
“미끼를 거는 게 아니고요?”
“허허. 참. 초보자가 말이 많구만. 수심부터 체크하는 게 순서야.”
캐스팅 연습은 어느 정도 하고 왔지만 솔직히 수심 체크는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갯바위 낚시에서는 바닥 지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폭넓은 수심 체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의 휘파람으로 그런 수고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그의 말을 따라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바늘에 작은 봉돌을 매달고 가까운 곳에 빠뜨려 보았다. 잠시 후 빨간색 구멍찌가 물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확인 차원에서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안개가 걷히듯 푸른 바다가 회색빛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물고기들도 슬쩍 비쳤다.
흐음. 대략 5미터는 내려가 있군.
물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구멍찌의 위치로 가늠할 수 있었다.
채비를 올리고 찌의 위치를 적당히 조정한 다음에 나는 곧바로 미끼로 손을 가져가려 했다.
큰 주걱으로 밑밥을 흩뿌리던 고동우가 깜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벌써 수심을 파악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보란 듯이 봉돌이 달린 채비를 물속으로 던져 넣었다. 빠르게 채비가 정렬되면서 찌가 수면 근처에서 보일락 말락 흔들리고 있었다.
“호오. 어쩌다가 얻어 걸렸구만. 그럼 이제부터는 캐스팅 연습이야.”
“캐스팅이라면 적당히 연습하고 왔는데요.”
“그럼 어디 한번 해 봐.”
“하하. 네.”
나는 보란 듯이 낚싯대를 젖혔다가 앞으로 휙 던져 보았다. 그럭저럭 목표 지점에 채비가 안착된 것 같았다.
“그럴 줄 알았어. 나무 막대기처럼 뻣뻣해. 처음에 길을 들이지 않으면 습관처럼 굳어질 거야.”
고동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시범을 보였다.
“왼손으로 낚싯대를 잡고, 오른손은 낚싯줄을 쥐는 거야. 오른손은 그냥 없다고 생각하고 부드럽게 휘리릭. 알겠지?”
낚시에서는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별로 힘을 들이지 않은 것 같은데 그의 손을 떠난 채비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갔다.
역시 독학은 무리다.
나는 그를 흉내 내어 채비를 던지고 회수하기를 여러 번 반복. 30분 만에 그럭저럭 합격점을 받았다.
“그만하면 대충 됐어. 그럼 이제 미끼를 달고 해 봐.”
드디어 본격적인 낚시가 시작되었다.
고동우는 유동적인 채비로 상층부터 바닥까지 공략하기로 했고, 내게는 초보임을 감안하여 고정된 채비로 바닥만 노리게 했다.
나는 튼실한 크릴을 한 마리 집어들고 정성스럽게 바늘을 감쌌다. 그리고 슬며시 제3의 시야를 펼쳐보려던 순간 고동우의 푸념이 들려왔다.
“아까부터 던져 봤더니 입질이 없어. 5월 중순 정도가 좋은데 너무 일찍 왔나? 아까 그분이 말했던 것처럼 수온이 낮은 것 같아.”
실제로 확인해 보니 물속에는 몇 마리의 자잘한 잡어들이 유영하고 있을 뿐, 참돔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멀뚱히 서서 언제 다가올지 모를 참돔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얼마 전 장재준 영감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와 헤어진 뒤로 가끔씩 내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
물속을 투시하면서 물고기를 낚는 일. 그것이 과연 즐거운 낚시일까? 상상력을 저하시키고 의외성에서 오는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만 불러오는 건 아닐까?
여러 측면을 감안하여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즐겁다’였다.
물속을 보는 능력은 낚시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고기를 낚을 수는 없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조류의 흐름, 물고기의 습성, 적절한 미끼, 정확한 캐스팅, 효율적인 채비 운용, 효과적인 액션, 정확한 챔질 타이밍…….
그렇지만 나의 투시 능력은 기본적으로 예전보다 확률 높은 손맛을 안겨 줄 것이고, 아직 잡아 보지 못한 수많은 물고기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내게 커다란 즐거움이다.
남들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구사할 수 있는 낚시.
벼락처럼 찾아온 능력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왔다! 왔어!”
갑자기 고동우의 낚싯대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그가 신이 나서 외쳤다.
재빨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돔은 아니었다.
“어째 째는 맛도 없고, 참돔이 아닌갑네.”
경험이 많은 그는 곧 참돔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차리고 휘리릭 릴을 감아올렸다.
용치놀래기.
잠시 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온 것은 녹색과 붉은 빛깔로 덮여 알록달록한 물고기였다.
“그래도 꽝은 면하셨네요.”
“매운탕거리 하나 생겼네. 하하핫.”
고동우는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채비를 던졌다.
“오후를 노리자고. 그때가 들물이거든. 틀림없이 참돔은 온다.”
“구피 님만 믿겠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잡어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나와 고동우는 서로 키득거리며 자잘한 손맛을 만끽했다. 볼락과 용치놀래기, 심지어 복어까지 연달아 올라왔다.
그렇게 대상어가 아닌 물고기를 올리고 방생하기를 여러 번.
“휴우. 점심이나 먹자.”
“좋습니다.”
“그나저나 우럭 님 방송 분량이 없어서 걱정이네.”
“이 좋은 경치를 담은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래도 낚시 방송인데.”
“…….”
차가운 김밥을 우걱우걱 삼키고 나서 우리는 곧바로 낚싯대를 들었다. 고동우가 말한 대로 물돌이가 끝나고 들물이 시작되는 시각이었다.
고동우는 한차례 전쟁을 기대하며 밑밥을 아끼지 않고 투척했다.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나자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었다. 발 앞에서 바글거리던 잡어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왔다!
나는 잠시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왼쪽 편에서 서너 마리의 대어들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모양새로 보아 참돔이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낚싯대를 쥔 손에 힘을 주고 바짝 긴장했다.
문제는 수심이었다.
바닥에 착 가라앉은 내 미끼의 위치와는 달리, 참돔은 중층에 떠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수시로 면사 매듭을 조정하면서 고동우의 말대로 바닥권만 공략하고 있었다.
오른편 고동우의 채비로 시선을 돌려 보니 그의 바늘도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주 천천히 릴을 감아올리면서 놈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이라 이렇게 해도 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크릴이 아직 바늘에 붙어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릴링과 함께 채비가 살짝 내 쪽으로 가까이 붙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덧 중층 부근까지 올라온 것만은 분명했다.
바로 그때였다.
덥석 덥석 먹이 활동을 하던 참돔이 내 미끼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놈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수면에서 깜빡거리던 빨간 구멍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이쿠!”
깊은 수심에서 하는 내림 낚시(찌 없이 물속에 채비를 내려서 하는 낚시)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
5미터 길이에 아주 예만한 낚싯대를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 강한 전류처럼 왼팔을 마비시켰다.
“뭐야? 밑걸림(바늘이 물속 바닥에 걸리는 현상) 아냐?”
고동우는 아직 사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곧 예사롭지 않게 휘어진 내 낚싯대의 진동을 알아채고 뜰채를 찾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찌이잉! 쩌러렁!
드랙(릴에서 줄 풀림 정도를 조절하는 장치)을 치고 나가는 강렬한 몸부림.
“바닥에서 띄워. 안 그러면 돌 틈으로 들어갈 거야!”
허둥거리는 나에게 고동우는 침착하게 돕고 나섰다.
“낚싯대를 더 치켜들어. 그리고 물고기를 따라가면서 빠르게 감아!”
그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대물에 압도되어 나는 허둥거렸다. 흥분이 최고조로 올라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다가 차츰 안정을 찾아가면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놈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힘주어 끌어당기고, 힘을 빼면서 화르륵 릴을 감아 들이고.
그렇게 한참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물살을 가르며 연보랏빛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으로!”
마침내 고동우가 뜰채를 들고 있는 곳으로 골인.
드디어 생애 첫 참돔을 잡게 된 환희의 순간이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았구만. 처음치고는 훌륭했어.”
뜰채에서 꺼낸 참돔은 40센티미터 후반급의 괜찮은 사이즈였다. 고동우는 크게 웃으며 낚싯대에 거치해 놓았던 내 카메라를 빼고 내 쪽으로 앵글을 맞춰 주었다.
“갯바위에서 미녀와 처음 만난 오늘을 기억하라고.”
“다 구피 님 덕분입니다.”
살림망에 참돔을 넣기 전에 신기한 보물이라도 보듯 한참을 쳐다보았다.
횟집 수족관에서 봤던 참돔과는 확연히 다른 빛깔이었다. 양쪽 면에 새겨진 점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이 참돔을 바다의 미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내가 확인했던 참돔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머뭇거리던 나는 고동우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가 믿을지는 의문이었다.
“중층에 몰려 있는 것 같습니다. 얼른 던져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