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6화 (6/130)

[제6화] 설렘

서울 양화 조종 면허 시험장.

가 보니까 정말로 양화대교 아래 한강변에 위치해 있었다.

휴우~

이름도 거창한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 2급 필기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길이었다.

점수는 66점.

벼락치기 공부로 간신히 커트라인 60점을 넘겨 당당히 합격. 이제 실기시험만 합격하면 웬만한 5마력 이상의 보트를 운전할 수 있다.

선상 낚시에서 조황을 좌지우지하는 선장의 역할.

바다 사나이가 되기로 작정한 이상, 나는 직접 낚시 보트를 운전하며 자유로운 낚시를 꿈꾸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엄마였다.

반가워야 할 엄마의 전화인데 어쩐지 심장이 뜨악했다.

“엄마예요?”

“그래. 유록아. 점심은 먹었니?”

“그럼요.”

“그런데 어째 지금 사무실이 아닌가 보구나.”

엄마는 귀가 밝은 편이다. 자동차의 소음을 들으셨나 보다.

“잠깐 외근 나왔어요. 금방 들어갈 거예요.”

“회사 일은 힘들지 않고?”

“그럼요. 다들 잘해 주시고, 일도 잘하고 있어요.”

“장하다. 우리 아들…….”

거짓말로 둘러대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곧 전화를 걸어온 이유를 꺼냈다.

“요즘 네가 바쁜 것 같더라. 집에도 통 오지 않고…….”

“죄송해요. 조만간 꼭 뵈러 갈게요.”

“몸조심해라. 밥도 꼭 챙겨 먹고.”

“그럼요. 얼마 전 보내 드린 용돈은 잘 받으셨죠?”

“너도 힘든데. 적금에 넣었다. 너 장가갈 때 보태려고.”

“안 그러셔도 되니까 마음껏 쓰시라니까요.”

“그래도 네가 힘들게 번 돈인데…….”

통화를 마치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시울이 붉어져 억지로 위를 올려다보았더니 하필이면 양화대교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도중에 문득 엉뚱한 걱정거리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충주시라고는 하지만 산골짜기나 다름없는 곳에서 작은 백반집 식당을 하고 계신 부모님들이다.

그들이 유튜브를 보실 기능성은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누가 아들이 나오더라 귀띔을 해 줄 우려가 있었다.

설마…….

내 소식이 그 산골짜기까지 도달했다면 그것은 내가 떳떳하게 말씀드릴 때가 되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쓸데없는 기우를 털어 버리려 머리를 흔들면서 나는 자취 집의 문을 열었다.

생선가스를 만들고 남은 광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다진 마늘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텁텁했지만 비린내는 없어 다행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유튜브를 열어 보았다. 집에 박혀 있을 때면 간혹 올라오는 댓글에 답을 달아 주는 일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며칠 새에 구독자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마지막 방송을 올린 지 일주일 만에 100명에 근접했다.

이러다가 조만간 역대 최고 기록인 100명을 넘어설 조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 보고 갑니다. 광어 남았나요? ㅎ

―다음에는 어떤 낚시를 하실 건가요? 궁금.

몇 개의 새로운 댓글이 올라와 있어 일일이 대댓글을 달아 놓고 아래쪽으로 스크롤바를 내려 보았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걸까?

내가 올려놓은 감사 글에 대한 ‘사시미’의 응답은 보이지 않았다.

* * *

분당 외곽의 S 낚시점.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 안녕하셨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앳된 청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천천히 골라 보세요.”

“예.”

고동우와 갯바위로 떠나기로 한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낚시점을 찾았다. 낚시를 시작할 때부터 즐겨 찾는 곳이다.

뭐부터 사야 할까? 옳지! 저기다.

사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나는 미리 준비한 구매 리스트를 들고 바구니에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낚시를 떠나기 전의 쇼핑은 즐거운 과정의 시작이다.

새로운 장르의 낚시에 도전한다는 흥분으로 전날에는 갯바위 낚시와 관련된 정보들을 탐독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막대찌보다는 구멍찌가 좋겠지. 수중 봉돌은 이거면 충분하겠고, 면사 매듭(목표한 수심에 맞춰 찌의 위치를 고정해 주는 매듭)은 주황색이 눈에 확 띌 거야. 바늘은 어디 있더라?

갯바위 낚시의 채비는 약간 복잡하다. 그래서 사야 할 것도 참 많다.

안전이 우선이니 갯바위 장화도 하나 골랐다. 낚싯대와 릴을 고동우가 빌려준다고 했지만 이참에 하나 구비하기로 했다. 예산이 빠듯했지만 과감하게 낚시 가방까지 집어 들었다.

묵직한 바구니를 카운터에 턱 올려놓았더니 청년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오우! 드디어 갯바위로 진출하시나 보군요. 축하드려요.”

“축하는요. 낼모레 참돔 치러 거제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작은 낚시점이지만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는 곳.

수많은 낚시점 중에서 내가 유독 이 낚시점을 즐겨 찾는 이유는 스물두 살의 이 청년 때문이다.

친절하고, 싹싹하고, 나를 알아봐 주고 그래서만은 아니다.

“낚싯대는 다른 걸로 써 보세요. 처음이니까 가벼운 1.5호대(2호, 3호…… 숫자가 높을수록 무거워짐)가 좋겠어요. 가성비 좋은 물건이 새로 나왔거든요.”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바가지를 씌우지 않고, 늘 고객에게 적합한 물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는 부차적인 이유다.

“저도 일요일에 가게 문 닫고 제주도로 가요. 간만에 돌돔이 땡겨서요. 기다려라. 돌돔들아.”

“하하하.”

열정이다.

이 청년에게서는 낚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낚시 얘기를 꺼낼 때면 눈빛부터가 변한다. 내가 처음 낚시에 빠졌을 때와 똑같은 초롱초롱한 눈빛. 늘 변함이 없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낚시를 다녔다는 그는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들었다.

낚시가 좋아 낚시점을 맡게 되었지만 그 때문에 낚시할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그는 종종 투덜거리곤 했다.

손님이 많은 일요일에 반드시 가게 문을 닫는 이유는, 그가 낚시를 즐기기 위해 세워 둔 원칙이었다.

“포인트 적립했고요, 구멍찌 하나는 서비스입니다. 잘 다녀오세요. 우럭 님!”

계산을 하던 중에 청년이 내게 눈을 찡긋했다.

그런데 우럭 님?

그동안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내 닉네임이 우럭이라는 말을 했던 기억은 더더구나 없다.

“최근에 유튜브로 알게 되었어요. 부럽습니다. 저도 형님처럼 낚시만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응원합니다. 파이팅!”

하아, 그랬구나…….

때마침 손님들이 뜸한 틈을 타서 그는 묻지 않았는데도 갯바위 낚시에 대한 경험과 주의 사항들을 설명하느라 신이 났다.

장사를 하면서 여러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귀찮을 법도 한데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쇼핑을 마치고 나는 차의 트렁크에 구입한 물품들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어쩌면 내가 사고 나온 것이 단순히 낚시용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처음 낚시를 떠날 때처럼 순수한 열정을 가득 충전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낚시점을 떠나 차를 몰고 내가 향한 곳은 집이 아니라 서해 쪽이었다.

눈동냥과 귀동냥만으로는 들뜬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안산 시화 방조제.

참돔이 나올 확률은 전혀 없지만, 오로지 캐스팅 연습을 위해 찾은 곳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이곳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이틀 전에는 한밤중에 보람이가 사는 수원으로 찾아가 채비와 바늘 매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며 떼를 쓰고 돌아오기도 했다.

초릿대부터 낚싯대를 줄줄 뽑아 보니 무려 5.3미터.

낚싯대를 번쩍 들어 보았더니 그리 가벼운 느낌은 아니다. 좌대나 방파제나 선상에서 주로 내림 낚시를 해 왔던 터라 왼팔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보람이에게서 배운 대로 채비를 정돈하고 전쟁에 나선 장수처럼 긴 낚싯대를 빼어 들었다.

휘이익! 척!

비장한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내 손을 떠난 채비가 힘없이 발 앞에 툭 떨어졌다. 실패다. 다시.

쉬이익! 촤악!

이번에는 그래도 멀리 날아갔다. 그렇지만 내가 목표했던 지점과는 거리가 멀다.

쐐애액! 철썩!

어이쿠! 너무 멀리 던져서 하마터면 부표에 걸릴 뻔했다.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던져야 한다.

던지고 회수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변에 낚시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웬 찌낚시 채비냐면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이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에 열중했다.

쉬이익! 촤라락!

어깨가 욱신거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낚싯대를 접고 차의 시동을 걸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 * *

이틀 후.

나는 하남시에 있는 고동우의 가게 앞에 주차를 하고 나왔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우럭 님! 벌써 왔구만. 빨리 타셔.”

“안녕하세요? 구피 님. 제 차로 가시죠.”

“잔말 말고 타라니까.”

새로 산 낚시 가방을 고동우의 승합차에 옮겨 놓고 얼른 앞자리의 조수석에 올랐다.

“매달 적자지만 이래 봬도 나는 사장이야. 백수가 되셨으니 기름값도 아까워 벌벌 떨고 있을 테고.”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

“갈 때는 내가 운전할 테니까 올라올 때는 우럭 님이 해. 오케이?”

고동우는 비쩍 마른 체구에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말수가 좀 많기는 하지만 그는 늘 주변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입담을 자랑한다.

“오늘 내가 기막힌 곳으로 안내해 주지. 경치만 담아도 자네 독자들이 좋아라 할 거야.”

“구피 님은 제 방송 독자가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랬나? 하하하.”

밤샘 운전으로 내려가 종일 낚시를 즐기고 다시 밤에 올라오는 무박 24시간의 낚시 여행.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낚시꾼들은 사서 고생이다.

“그나저나 낚시로 어떻게 밥벌이를 하려는 건지 원……. 일 년 정도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

“…….”

“자네나 나나 아마추어야. 업으로 삼는 일은 다른 차원이라구.”

“글쎄요…….”

나처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수족관을 운영하는 고동우.

내가 알기로는 그의 가게도 애들 학원비 내기 빠듯할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고 들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그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나는 말꼬리를 흐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고, 무거워진 분위기를 감지한 고동우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오늘은 무조건 한 마리라도 잡아야 해. 안 그러면 집에 못 들어갈 판이거든. 장사도 안되는데 반찬도 못 구해 온다고 마나님이 벼르고 있어.”

“구피 님은 잘 잡으시잖아요.”

“갯바위는 선상 낚시와 달라. 한두 마리 잡으면 다행이지. 오늘 너무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걱정 마세요. 저라도 잡아서 구피 님 쿨러를 채워 드릴 테니까요.”

“갯바위를 너무 모르는군. 그러다 큰코다친다니까.”

“원래 초보가 사고 치는 법 아닙니까? 하하.”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니다.

미지의 낚시터로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 해 본 농담이다. 사실 나는 소풍을 떠나는 어린아이처럼 몹시 들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자 두는 게 좋을 거야. 강행군이 될 테니까.”

“그래도…….”

“올라올 때 나는 시체가 되어 있을 거야. 그때는 나한테 말도 걸지 마.”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억지로 눈을 붙였다.

하지만 정신이 말똥말똥해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새로운 장르의 낚시에 도전한다는 설렘.

바다의 미녀라 불리는 참돔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

무엇보다 탁 트인 갯바위 위에서 멋진 바다를 감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무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거제도.

일찍 문을 연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편의점에 들러 점심용 김밥과 음료수 등을 구입했다.

아침 8시가 넘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작은 항구.

“여기서 또 배를 타야 해.”

“걸어가는 게 아니고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절벽이니까.”

항구에서 바라본 바다만 해도 훌륭했다.

멀리 한려 수도의 아름다운 섬들 틈으로 빨간 해가 솟아 있었다.

오늘 제대로 ‘눈맛’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얼른 카메라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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