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5화 (5/130)

[제5화] 세 가지 맛

장재준 영감의 첫마디에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낚시를 즐기지 못하더군요. 마치 회사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눈빛도 예전과는 달라졌고 말입니다.”

입이 달라붙어 머뭇거리는 내게 장재준 영감은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조바심이 났겠지요. 물론 강태공처럼 세월을 낚으려는 낚시꾼이 아니라면 적당한 탐욕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낚시의 본질은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훌륭한 조과에도 불구하고 기쁘지 않았던 이유를.

나는 낚시를 즐기지 못했다.

수단이 되어야 할 방송을 목적으로 여겼다. 즐겁기는커녕 하루 종일 조바심과 탐욕에 빠져 물고기를 쫓아다니기 바빴다.

행복하기 위해 호기롭게 던진 사직서에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나부터 즐기지 않으면서 어떻게 방송을 보는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겠는가.

“우럭 님은 낚시꾼과 어부의 차이를 아십니까?”

선문답에서나 나올 법한 장재준 영감의 두 번째 물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어부는 늘 바다가 내어 준 만큼 잡는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자연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으로 잡겠다는 뜻이지요. 반면에 낚시는 절제가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재준 영감의 말에 빈틈없이 다섯 마리의 광어를 욱여넣은 내 아이스박스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놈이 다섯 마리나 되는 대광어를 가져가 뭘 하겠다는 건가.

몇 달간 냉동실에서 썩다가 버려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입을 꾹 다문 내게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표정이었다.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게 뭔데요?”

“나에게 몇 마리만 내어 달라는 말을 길게 했습니다. 동네 경로당 잔치에 광어를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왔거든요. 내가 잡은 세 마리로는 영 부족해서 말입니다. 허허허.”

“네에? 하아…….”

장재준 영감이 농담이라며 슬쩍 물러섰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이 결코 농담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낚시를 마친 뒤의 조과물은 덤이다.

맛있게 먹어 주거나 최소한 이웃과의 나눔으로 소진할 수 있어야 한다.

장재준 영감의 말이 옳다. 무분별한 살생은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섯 마리를 잡아도 아쉬운 것 또한 낚시꾼의 인지상정이리라.

비록 오늘은 즐거움을 망각하는 실수를 범했지만 진한 손맛은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차라리 잡은 고기를 의미 있는 일에 쓰는 방향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장재준 영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차츰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낚시의 즐거움에 대한 주제로 옮겨 갔다.

“캡틴 님은 낚시의 어떤 점이 제일 즐거우십니까?”

“흔히 눈맛, 손맛, 입맛이라고들 하지요. 젊었을 때는 손맛 때문에 낚시에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보니 입맛이 더 땡기더군요. 허허허.”

낚시 도중에 마주한 자연의 비경에서 오는 ‘눈맛’.

가느다란 낚싯줄을 통해 전해지는 ‘손맛’.

그리고 낚시 뒤에 따라오는 신선한 요리의 ‘입맛’.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낚시꾼들만의 호사가 아닐 수 없다. 한참을 떠들고 있을 때 누군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다들 자는데 좀 조용히 합시다!”

“아아, 예예. 죄송합니다.”

우리의 대화 소리에 누군가가 잠에서 깬 모양이다.

나와 장재준 영감은 입을 막고 키득거리다가 나란히 선실에 누웠다.

* * *

낚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닫고 아이스박스 뚜껑을 여니 길게 누운 7짜 광어가 담겨 있었다. 장재준 영감에게 억지로 네 마리를 내어 주고 한 마리만 챙겨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도마에 올려놓은 대광어를 내려다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우럭의 낚시일기]는 경치와 낚시 장면 25분, 요리와 먹방으로 5분, 총 30분을 넘기지 않는 원칙을 세워 두었다.

크고 작은 반성의 여지를 남겼지만 낚시 장면은 그럭저럭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문제는 후반부였다.

이걸로 뭘 만들어야 하지?

생선회와 매운탕은 이미 지겹게 선보였다. 두툼한 생선살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이번에는 생선가스를 만들어 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터넷을 뒤적거려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의외로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요리 칼을 꺼내 어마무시한 생선부터 손질을 시작했다.

대략 두 시간 후.

기름과 밀가루 범벅이 된 몰골로 나는 카메라 앞에 앉았다. 내 앞에는 대형 접시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자아, 그럼 지금부터 대광어로 만든 생선가스를 시식해 보겠습니다. 어떤 맛이 날지 저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나이프로 생선가스의 귀퉁이를 잘랐더니 튀김옷이 너덜너덜해졌다. 포크로 집어 드니 새카맣게 타서 뒤집어 놓은 뒷면이 슬쩍 드러났다.

먹어도 괜찮을까? 설마 죽기야 하겠어.

용기를 내서 꿀떡 삼켰더니 느끼한 기름향이 물씬 풍겨 왔다. 육즙이 빠져나간 살덩이를 베어 물었더니 푸석한 스펀지를 씹는 것 같았다

“역시 튀김은 진리입니다. 고소한 기름이…….”

말하던 도중에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억지로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할 정도로 뻔뻔스럽지 못한 탓이다.

꾸역꾸역.

극도의 인내가 필요한 먹방.

결국 나는 냉장고로 달려가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어떡하지? 다른 걸 만들어야 하나?

고심 끝에 나는 있는 그대로의 영상을 업로드하기로 했다.

일기는 일기다.

부족하지만 이 또한 내 기록의 한 페이지라 여기기로 했다.

낚시를 다녀와 피곤했지만 부랴부랴 영상의 엑기스만 뽑아 편집하고 업로드를 마친 시각은 자정 무렵.

그대로 곯아떨어져 시체처럼 잠든 나를 깨운 것은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였다.

“하암. 누, 누구십니까?”

엉겁결에 전화를 받고 창밖을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나야. 구피. 벌써 목소리도 까먹은 거야?”

구피. 본명은 고동우.

42세의 가장인 그는 피싱 어벤저스의 마지막 멤버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구피 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냈을 리가 있나. 겨울 내내 낚시도 못 가고 손이 근질거려서. 지금까지 자고 있다니 팔자 늘어졌군. 그 좋은 회사를 그만뒀다면서?”

“……네. 그렇게 됐어요.”

“섭섭하네. 나한테는 귀띔도 안 해 주고 말이야. 어제는 캡틴 님이랑 낚시를 다녀왔던 모양이더군.”

간밤에 올려놓은 동영상을 확인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조만간 전화하려고 했어요.”

“됐어. 말 나온 김에 조만간 갯바위나 한번 가 보자고. 봄에는 참돔이지. 백수가 되신 기념으로 내가 모시고 가지.”

고동우도 낚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위인이다.

다양한 낚시를 섭렵했지만, 특히 갯바위 낚시를 선호한다. 선상 낚시를 좋아하는 장재준 영감과는 대조적이다.

갯바위로 참돔을 낚으러 가자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나에게는 아직 미지의 장르인 갯바위 낚시.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시간과 거리의 압박 때문에 멀리 남도까지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서해 인근의 좌대나 방파제, 혹은 선상 낚시가 내가 해 왔던 최선의 낚시였고, 갯바위는 언제고 꼭 해 보고 싶단 생각만 품어 왔다.

“언제요?”

“날씨랑 물때 좀 확인해 보고 곧 연락 줄게.”

“구피 님 가게 일은 괜찮으시겠어요?”

고동우는 하남시에서 수족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도 나처럼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일찍 접고 나서 수족관을 차렸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물고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민물이건 바다건 물고기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백과사전이다.

“마나님한테 맡겨야지 별수 있나. 어차피 손님도 없어. 며칠 동안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러면 허락해 주겠지. 걱정 마셔.”

“평소에 잘 좀 하시죠.”

“그런 게 아냐. 고기는 못 잡아 오면서 돈 쓴다고 그러는 거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대다수의 아내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의 출조를 그리 반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동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통화를 마치려 할 때 고동우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어제 광어 잘 잡더만. 대리만족이지만 덕분에 나도 손맛 좀 봤지. 그리고 반응이 좀 오는 것 같던데?”

반응이라고?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후다닥 유튜브 앱을 열어 보았다.

[우럭의 낚시일기]

명절이나, 충주 집을 방문할 때나, 회사 일로 주말 근무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주말마다 올린 동영상들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눈길이 돌아간 부분은 구독자 수.

42명!

간밤에 무려 세 명이나 늘었다. 거의 두 달 동안 움직임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눈물겨운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어제 올린 방송분을 클릭했다.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도 조회 수가 무려 102명.

무심코 스크롤바를 내려 댓글은 없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있다!

나를 흥분시킨 것은 그것이 세 개가 아니라 네 개라는 변화였다.

―캡틴: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도라에몽: 남은 광어 얻어먹으러 함 가야겠당. ㅋ

―구피: 실력이 일취월장하신 듯.

역시나 세 개는 무플 방지 위원들인 멤버들이 올려놓았다. 나를 고무시킨 것은 마지막 네 번째 댓글이었다.

사시미.

닉네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기대감에 들떠 두 눈을 부릅뜨고 읽어 보았다.

―사시미: 봄철 자연산 대광어라니. 정말 좋은 식재료군요. 내게 한 마리 파실 수는 없을까요?

광어를 ‘식재료’로 표현하는 점이 특이해 보였다.

물론 팔지는 못한다. 어업 허가가 없는 낚시꾼이 물고기를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문득 기름 덩어리 생선가스를 장면을 올린 사실이 떠올랐다. 사시미 님이 표현한 그 좋은 식재료로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앞으로 먹방은 빼 버릴까?

부족한 내 요리 실력으로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다이어트를 위한 식욕 억제 목적이 아니라면 차라리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

반대로도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낚시의 3대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저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고민이 깊어졌다.

요리 학원을 다녀 볼까, 누구 음식을 잘하는 사람에게 부탁해 볼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시미. 혹시 요리를 하시는 사람이 아닐까?

그의 채널 정보를 클릭하게 된 이유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개설해 놓은 방송도 없을뿐더러 가입일은 불과 사흘 전. 어쩌다가 내 채널에 흘러들어 왔는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유튜브 창을 닫으려 하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가 다른 댓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나는 다른 회차의 방송분을 클릭하고 댓글부터 살펴보았다. 퇴사 직전에 보람이와 다녀왔던 M 좌대 방송분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거기에도 하나의 댓글이 추가되어 있었다.

―사시미: 비주얼은 별로지만 막 썰어 회가 먹음직스럽군요. 나도 오늘은 그렇게 썰어 봐야겠습니다.

곧바로 다른 동영상들도 확인해 보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근래에 올린 여러 회차에 그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하나같이 식재료와 요리에 대한 언급들.

허접한 내 요리를 인내해 주시고 애써 칭찬해 주는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나는 작심하고 그에게 감사의 댓글을 달았다.

―우럭: 응원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언제고 저와 동출하시게 되면 좋은 놈으로 그냥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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