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대광어
나는 K호 선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손님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내가 엄청난 놈을 걸었어. 그런데 얼마나 큰지 릴을 감다가 잠깐 쉬는 동안에 도망을 치더군.”
“6짜 정도 되었겠구먼.”
“뭔 소리여? 최소한 9짜는 됐을 거여. 낚싯대가 부러질 뻔했거든.”
나와 눈길이 마주친 장재준 영감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얼굴을 돌려 키득거렸다.
낚시꾼의 허풍.
놓친 물고기는 늘 상상을 불허하는 대물로 둔갑하기 마련이다.
선실 안에는 부족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최근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들, 휴대폰으로 전날 조황을 확인하는 사람들로 각양각색.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꾸르릉!
전속력으로 달리던 배가 중립 기어로 변속하자 사람들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우르르 선실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5분 대기조가 따로 없다. 그들은 어느새 각자의 채비와 미끼를 정렬하고 언제든지 던질 태세로 바다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새로 산 카메라부터 낚싯대에 고정시키고 흰색 웜을 하나 꺼내 들었다.
삡!
짧은 부저가 한 번 울렸다. 낚시를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다. 모두들 발 앞으로 다운샷 채비를 입수시키는 가운데 홀로 허둥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나였다.
바늘에 웜을 제대로 끼우지 못해 낑낑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서두르지 마세요. 바늘허리 매어 고기 못 잡습니다.”
다운샷 채비는 매우 간단하다.
봉돌(낚시추) 하나에 커다란 낚싯바늘 하나. 봉돌이 낚싯바늘보다 아래에 위치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물고기 모양의 웜을 바늘에 끼우려는데 처음에는 반대 방향으로 끼웠고, 나중에는 꼬리가 휘어져 엉망이었다.
허술한 미끼로는 광어를 유혹할 수 없다. 결국 나는 맨 마지막으로 채비를 입수시켰다.
채비를 던지자마자 나지막이 휘파람을 휙 불어 보았다. 바다 밑바닥은 온통 모래밭. 내 봉돌이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하강하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차피 첫 포인트부터 광어가 바글바글할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과 몇 초 후에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모래밭에 봉돌이 푹 박히고, 릴을 한 바퀴 감아 살짝 채비를 띄웠을 때였다. 갑자기 바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보호색으로 위장 중이던 광어 한 마리를 건드린 것이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래 바닥의 일부가 슬며시 일어나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내 미끼를 향해 비상했다.
텅!
낚싯줄을 타고 총에 맞은 듯한 짧고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채비에 광어 한 마리가 매달려 펄럭이고 있었다.
‘히트!’라고 외칠 틈도 없었다.
엉겁결에 낚싯대를 곧추세우고 곧바로 릴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휘청휘청.
낚싯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광어는 다른 물고기에 비해 몸부림이 적은 편. 초반에 강렬한 저항이 있으나, 대개는 곧 체념하고 순순히 끌려오는 경우가 많다.
푸드덕!
잠시 후 수면 위로 꽃무늬가 아로새겨진 암갈색 몸통을 나풀거리며 광어가 올라왔다.
번쩍 들어 올리기에는 작지 않은 사이즈.
배에서 열 일을 도와주는 사무장이 달려와 뜰채로 건져 줄 때까지 혹여 놈이 바늘을 뿌리치고 달아날까 조마조마했다.
“이야! 씨알 좋네.”
“담그자마자 첫수구만. 축하합니다.”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올라온 광어는 대략 40센티가 넘는 준수한 크기였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광어의 꼬리를 붙잡고 사무장의 카메라를 향해 불쑥 내밀었다.
“광어 처음 잡아요? 반대로 뒤집어서 내밀어 봐요.”
광어의 새하얀 배를 카메라 쪽으로 보이라는 말이었다.
이른바 자연산 인증.
자연산과 양식 광어를 구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자연산의 배가 하얀색을 띠는 것과 달리 양식은 거무튀튀하다.
운이 좋았다. 시작하자마자 첫수라니.
장재준 영감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오늘 어복이 따를 운세인가 보네요. 축하합니다.”
“방송 분량 채우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하하.”
마수걸이를 했음에도 조바심이 났다.
아니, 오히려 욕심이 더 커졌다. 나를 찾아온 신비로운 능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찌질했던 방송과는 달라진 멋진 장면을 연출해 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엄청난 대광어를 잡는 모습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벌어진 첫수 소식에 낚시꾼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은근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그들은 낚싯대를 더욱 힘주어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한동안 뱃전에 고요가 찾아왔다.
간간이 휘파람을 내뿜으며 바다를 탐색해 보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초반에 의기양양하던 내 얼굴에도 초조함이 번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날 샜구만.”
“어제 조황은 좋았다던데 나만 오면 왜 이럴까?”
술렁이는 사람들.
내려놓은 긴장감에 비례하여 그들의 낚싯대도 아래로 축 기울어져 있었다.
“선장님! 포인트 안 옮기슈?”
누군가가 선장을 향해 소리쳤다.
선상 낚시의 조과는 선장의 포인트 선정이 70%를 차지한다는 것이 낚시꾼들의 정설. 이쯤 되면 푸념이 쏟아질 때도 되었다.
선장이 채비를 걷으라고 부저에 손을 가져가던 바로 그때였다.
“잡았다!”
“왔어!”
배의 좌현(뱃머리를 중심으로 배의 왼쪽 편)과 우현에서 동시에 터진 함성이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나와 장재준 영감이 있는 좌현의 중간쯤에서 한 낚시꾼의 초릿대가 기역 자로 꺾여 부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모래밭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부러운 시선으로 그를 곁눈질했다.
반대쪽도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로 보아 그쪽에서도 대광어를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른하늘에 더블 히트라니…….
낚싯대를 내려놓고 구경이나 하려던 참에 선장의 안내 방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현에 계신 분 낚싯줄 푸세요. 광어는 안 잡고 서로 뭐 하는 겁니까?”
장재준 영감이 곁에서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나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선상 낚시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
배의 양쪽에 위치한 두 낚시꾼의 채비가 엉켜 서로 등을 지고 줄다리기를 벌인 것이다.
“하하하하.”
“난 또 뭐라고.”
삑! 삑!
신속하게 채비를 걷으라는 두 번의 부저 소리.
지루하던 차에 한바탕 웃음거리를 남기고 배는 새로운 포인트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수심이 깊은 곳이었다.
“산란장입니다. 물이 깊으니까 떨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초봄의 광어는 깊고 움푹 파인 곳을 산란장으로 선호하기 마련이다. 경험 많은 선장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삐익!
신속하게 채비를 떨구니 수심은 35미터.
그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모래밭 곳곳에 살랑살랑 날개를 흔들고 있는 생명체들이 포착되었다.
“어이쿠야!”
제일 먼저 입질을 받은 사람은 장재준 영감.
그는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 챔질을 하고, 노련하게 낚싯줄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왔어!”
다른 곳에서도 흥분에 들뜬 목소리가 울려왔다.
휘파람을 불며 물속을 들여다보니 장관이었다. 곳곳에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광어들이 마음에 드는 웜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제일 바빠진 사람은 사무장이었다.
갑판 위를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그가 뜰채로 건져 준 장재준 영감의 광어는 5짜였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마수걸이를 하셨군요.”
“허허. 간만에 좋은 손맛을 봤네요. 우럭 님도 큰 걸로 하나 건져 보세요.”
그러게 말이다.
웜이 문제일까? 양쪽 옆에서 대광어를 잡아 올리는 와중에 놈들은 유독 내 미끼만 본체만체하는 게 아닌가.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더니…….
은근히 속이 타들어 갔다.
결국 나는 빨간색에 펄이 박힌 웜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채비를 던지기 전에 다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저기 있다!
내 미끼 바로 아래에 두 마리의 광어가 서로 뒤엉켜 있었다.
슬그머니 채비를 입수시키고 아주 천천히 낚싯대를 흔들었다. 광어의 코앞에서 웜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액션. 곧바로 반응이 왔다.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위로 솟구쳤다.
“히트!”
드디어 걸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차분하게 릴링을 시작했다. 놓치면 어떡할까 심장이 콩알만 해졌다.
그렇게 바늘털이를 시도하는 광어의 몸부림을 눈으로 보면서 속도를 높이고 늦추기를 여러 번.
잠시 후 물 위로 6짜 광어가 허연 배를 너울거리며 올라올 때까지도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드디어 해냈군요. 대단합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장재준 영감의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분명히 두 마리였다.
날카로운 광어의 이빨에서 바늘을 빼내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아직 남아 있을 다른 한 마리가 아른거렸다.
다행히 물이 멈춘 시각이라 배가 멀리 흘러가지 않았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대상물을 발견하고 나는 캐스팅을 시도했다.
두두두두둑!
초릿대가 사시나무 떨듯이 진동했다.
연거푸 대물을 낚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혹시라도 놓칠세라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큰 사이즈라 더욱 신중하게 릴을 감아올리던 순간.
“아이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너무 빨리 챔질을 하는 바람에 바늘이 어설프게 걸린 것이다. 잠깐 동안 정신이 멍해졌다. 유유히 아래로 도망치는 광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였다.
나는 재빨리 릴을 풀어 바닥으로 향하는 광어를 향해 채비를 하강시켰다. 언젠가 케이블 방송에서 들었던 얘기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산란기 광어의 먹성은 방금 겪은 위기의 순간을 3초 만에 지워 버릴 정도로 대단하다고.
정확히 3초 후.
도망치던 광어는 다시 미끼를 물고 늘어졌다.
“히트!”
이번에는 7짜 광어였다.
많은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사무장의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했다.
대광어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낚시를 할 수 있다니.
머릿속 어탐기의 가공할 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차례의 광풍이 지나가고 또다시 소강상태.
이럴 때는 예외 없이 점심 식사가 제공되기 마련이다. 사무장이 도시락과 따뜻한 어묵 국물을 나눠 주었다.
대광어를 연거푸 잡아낸 뒤라 다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6짜 광어를 골라 선뜻 동승한 낚시꾼들에게 내놓았다. 사무장이 회를 떠서 수북하게 내놓자 사람들이 몰려와 한마디씩 거들었다.
“젊은 친구가 참 잘 잡네.”
“덕분에 잘 먹었수다.”
오후가 되어 드문드문 낱마리 조황이 이어졌다.
나는 내친김에 마릿수에서도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신이 내게 주신 재능을 아낌없이 활용할 생각뿐이었다.
낚시가 끝날 무렵.
결국 나는 세 마리의 광어를 추가로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여섯 마리라면 그동안 내 개인 방송에서 한 번도 보여 주지 못한 대기록이었다.
항구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모두들 피로에 지쳐 잠을 청하고 있을 때였다. 장재준 영감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오늘 장원은 우럭 님이군요. 오늘은 눈빛부터 예사롭지 않더군요. 그동안 어디 학원이라도 다닌 겁니까? 허허허.”
장재준 영감은 세 마리를 잡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다른 손님들도 거의 모두 한두 마리의 광어를 챙길 수 있었던 그야말로 만선의 날이었다.
이상하다. 뭘까? 이 기분은…….
알 수 없는 느낌에 나는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낚시였다. 아쉬움을 남길 여지가 없을 만큼.
낚싯대를 잡은 이후로 최고의 조과를 기록했고, 큰 것을 골라 사람들에게 선심도 썼다. 만족스러워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탈한 기분마저 몰려왔다.
“허허. 잠이 안 오는 모양이군요. 그 이유를 내가 맞혀 볼까요?”
선실 벽에 기대고 앉는 장재준 영감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 알고 있다는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