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낚시로 인생 역전-3화 (3/130)

[제3화] 선택

“캬! 이 맛에 낚시한다니까.”

보럼이는 완전히 신이 났다.

내가 얼기설기 썰어 놓은 우럭회를 우적우적 씹으며 그가 크게 웃었다.

정상 수율의 70% 정도밖에 안 되는 그야말로 ‘막 썰어’ 우럭회였다. 반면에 나는 젓가락을 쥔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양은 좀 별로지만 맛은 훌륭하다. 뭐 해? 먹지 않고.”

친구가 하도 보채는 통에 한 점 입에 집어넣었지만 무슨 맛인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던 그때 아까부터 우리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혼자 온 아이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괜찮으시대요.”

“그럼 너라도 먹어라.”

“고맙습니다.”

아이가 신이 나서 젓가락을 들고 나서야, 나는 다시금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무슨 현상일까?

설마 머릿속에 생긴 작은 지방 덩어리……?

그것 때문일까? 휘파람을 불어야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혹시…….

돌고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뜬금없는 생명체의 이름.

언젠가 돌고래가 초음파로 사물을 식별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에 튀어나온 부분이 초음파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했던가?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접시에 수북했던 회 조각들이 사라지는 동안 내 머릿속은 온통 신비로운 현상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길게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멀리 작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는 위치였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음계를 높일수록 또는 휘파람 소리를 크게 낼수록 제3의 시야는 더 넓고 깊고 선명하게 물속을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수평선이 있는 먼 곳으로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수면 아래로 살짝 물속이 들여다보일 뿐 깊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초음파의 원리와 흡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휘파람은 공기 중에서는 멀리 뻗어 가지 못했고, 액체 상태에서만 진폭을 유지하며 아주 먼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럼 이번에는…….

때마침 곁을 지나가는 사내가 있었다. 그를 향해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고체를 뚫지 못하는 초음파의 한계

얄팍한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사내는 흑백으로만 바뀌었을 뿐 투시가 불가능했다.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에 탑재된 고성능 어군 탐지기라니.

갑작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때 문득 바다낚시에 입문했던 3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게 언제였더라?

대학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을 따라나선 첫 낚시였다.

찌를 통해 전해지던 생명체의 입질.

그리고 정신없이 걷어 올린 중치급 우럭 한 마리.

나를 낚시의 세계로 인도한 출발점이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나는 내륙 지방인 충북 충주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끔씩 민물낚시를 하는 친구들을 봤지만 나는 도통 낚시에는 관심이 없었다.

처음으로 경험한 낚시에서 나는 내 안에 사냥꾼의 본능이 감춰져 있음을 깨달았다. 낚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천정을 올려다볼 때면 위아래로 요동치는 찌가 나타나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회사에 들어온 뒤로 낚시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간절해졌다.

바다는 영혼을 잃고 헤매는 나를 리셋해 주는 유일한 안식처였고, 내게 살아 있음을 일깨워 주는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우럭 님! 그만 집에 가자. 길 막히기 전에.”

멀리서 보람이가 외치는 소리에 나는 과거의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회를 뜨고 남은 서더리는 매운탕거리로 쓰겠다며 보람이가 챙겼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이동하려 할 때 아까 그 아이가 또 눈에 띄었다.

아빠도 아이도 아쉬운 표정으로 낚싯대를 접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아이에게 다가갔다.

“우럭 잡아 본 적 있어?”

“아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럼 내가 우럭 잡는 법을 가르쳐 줄까?”

“에이, 정말이에요?”

반신반의하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는 분주히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기는 아니고, 이곳도 아니고…….

옳지! 바로 여기다.

나무 발판의 틈새가 벌어진 곳으로 휘파람을 불어넣는 나를 보고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한번 해 봐라.”

“여기 구멍에요?”

“그래. 일명 구멍치기라고 한단다.”

구멍 속으로 아이가 채비를 쏙 담그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선착장에 서서 뭍으로 나갈 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잡았어요! 아빠! 내가 잡았어요.”

귓가에 들려오는 아이의 들뜬 목소리.

멀리서 보니 휘청거리는 그의 초릿대 아래로 우럭 한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야! 우럭 님 오늘 좀 달라 보이네. 거기에 우럭이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냐?”

“그냥 감이지. 구멍 안에서 우럭 냄새가 나더라고.”

그렇게 둘러댔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구멍 아래 밧줄 무더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우럭 두 마리를.

낚시는 사랑과 비슷해서 교과서로 배우기 어렵다. 직접 경험해야 매력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오늘 생애 첫 우럭을 잡은 저 아이는 조만간 멋진 낚시꾼이 되어 바다를 누비게 되리라.

* * *

조상 중에 돌고래라도 있었나?

분당의 작은 반지하 자취집에 돌아오자마자 열심히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한참 만에야 나는 가만히 노트북을 닫았다.

역시 돌고래였다.

아직은 가설 단계지만 내게 일어난 현상은 돌고래의 원리와 유사했다. 인간의 가청 진동수는 20~20,000Hz인데 반하여, 돌고래는 2,000~200,000Hz의 초음파를 발산하여 사물을 인식하고 서로 대화까지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를 더욱 경악케 한 것은 돌고래의 앞머리에 ‘멜론’이라는 기관이 초음파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대목이었다. 엉겁결에 이마를 만져 보았지만 그리 튀어나온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였다.

그 흔한 놀이공원에도 가 보지 못했다. 태어나서 돌고래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슬쩍 두려움마저 일었다.

긍즉통이라고 했던가.

이건…… 신이 주신 기회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낚시 실력.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암전 속에서 좀비 게임을 벌인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좀비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참가자가 될 수 있다.

낚시는 어디까지나 취미였다.

밥벌이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날고 기는 프로 조사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렇다고 프로 조사를 꿈꾸기로 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기이한 능력을 얻었다고 하나 내 일천한 낚시 경험으로 프로 조사는 언감생심.

하물며 돈을 좇아 돈스코이호와 같은 보물선을 찾아다니며 인생을 허비할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평생 낚시를 즐기며 그 즐거움을 방송으로 소통하는 작업. 그 일을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겠다는 실낱 같은 가능성을 찾은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중국 속담의 글귀였다.

1시간 동안 행복해지려면 술을 마셔라.

3일 동안 행복해지려면 결혼을 해라.

8일 동안 행복해지려면 돼지를 잡아라.

그러나 영원히 행복해지려면 낚시를 하라.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하고 자취방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판교에 있는 회사 건물이었다.

드르륵.

사무실의 슬라이딩 도어. 이 문을 넘어설 때마다 느꼈던 서늘함이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일요일인지라 사무실에는 괴괴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투다닥! 툭툭!

노트북을 열자마자 나는 묵은 숙제부터 해결했다. 이틀 전 팀장이 지시한 중국 판매법인 수정 사업 계획이었다.

중국에서 보내온 엑셀 데이터를 요약해서 10장짜리 보고서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단순히 내부 보고를 위해 이런 공을 들여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하나 둥지를 떠나는 새는 깃털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하는 법. 군소리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흘러갔다.

보고서를 완성한 나는 점심 식사도 잊은 채 곧바로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사직원.

몇 번이고 펼쳤다가 접기를 반복했던 익숙한 문서.

거침없이 빈칸을 메우던 손가락이 또다시 마지막 항목에서 스르르 멈췄다. 항상 나를 고민에 빠뜨렸던, 퇴사 사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충주에 계신 부모님 생각은 일단 접어 두기로 했다.

언젠가 그들에게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마지막 칸을 그렇게 작성했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상신’ 버튼을 꾹 눌렀다.

* * *

정확히 보름 후.

이른 새벽에 나는 차를 몰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사직서를 낸 다음 날, 팀장은 다짜고짜 인수인계 문제부터 언급했다. 어쨌거나 생애 첫 퇴사를 하는 마당에 나로서도 깔끔한 마무리를 피할 생각은 없었다.

짧은 협의 끝에 나에게는 2주일의 정리 기간이 주어졌고, 나는 충실히 마지막 직장 생활을 수행했다.

회사를 떠나던 날.

부서 막내의 쓸쓸한 퇴장을 염려하는 시선들과 부러워하는 눈길이 교차했다. 저녁 환송회를 열어 주겠다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나는 간단한 점심 식사로 그들과의 짧았던 인연을 마무리했다.

회사 사옥을 나서면서 나는 제일 먼저 고성능 카메라를 구입했다. 방수 기능이 탑재된 카메라는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위한 약간의 사치였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통장 잔고부터 확인해야 했다.

대략 1,700만 원.

일 년 하고도 3개월 동안 푼푼이 모은 전 재산이었다. 곧 입금될 퇴직금을 합한다 해도 약 2천만 원.

매달 내야 하는 월세 50만 원을 고려하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다.

분당의 자취 집을 빼고 근교의 저렴한 동네로 옮길까도 궁리해 보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간혹 엄마가 음식을 부쳐 주는 마당에 멀리 이사라도 한다면 의심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우럭 님! 여깁니다. 여기. 허허허.”

“캡틴 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행정 구역상 인천에 속해 있는 서해의 영흥도.

차에서 내리자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겨 주었다.

장재준. 나이 62세. 닉네임 캡틴.

평생을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고 최근에 군복을 벗었다. 그는 ‘피싱 어벤저스’ 멤버 중 한 사람이다.

“도라에몽 님에게서 얘기 전해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고요.”

“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너무 걱정은 마세요.”

“걱정이라뇨. 젊음이 부러울 뿐입니다. 허허.”

회사를 그만두고 낚시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들은 보람이는 복에 겨워 그런다며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다.

다행히 장재준 영감님은 내 결정에 대해 걱정부터 앞세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마치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채비는 준비해 오셨어요?”

“아니요. 봉돌이랑 웜(Worm, 고무 재질의 인조 미끼)이랑 몇 개 사야 합니다.”

나는 오늘 타기로 한 K호의 출조점으로 앞장섰다.

작은 컨테이너 가게 안에는 벌써 도착한 손님들이 승선 명부를 작성하거나 간단한 소품들을 고르느라 분주해 보였다.

“요즘 무슨 색깔이 작 먹힙니까?”

“봉돌은 30호 쓰면 되겠죠?”

“어제 조황은 어땠슈? 사진이 올라와 있지 않던데.”

모두들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들.

낚시도 여행과 마찬가지로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즐겁다. 그들이 눈동자에는 하나같이 6짜 대물 광어가 그려져 있었다.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고 나는 장재준 영감과 함께 부둣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 출조.

회사를 다닐 때는 하계휴가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봄 산란철을 맞아 나는 대광어 낚시를 선택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퇴사를 하고 직업 낚시꾼으로 시도하는 첫 촬영이기 때문이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옅게 깔려 있던 해무가 싹 사라져 있었다. 마치 나의 새로운 도전에 한줄기 서광이라도 비춰 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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