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기현상
보람이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휘파람을 부르다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아, 아냐.”
도대체 내가 뭘 본 거지?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내려다본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검푸른 장막으로 덮여 있었다.
이마에 혹이 생겼다더니 혹시 시신경을 건드린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지만 시신경이 잘못되는 바람에 물속을 투시하게 되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가자. 거의 우리 순서가 된 거 같다.”
보람이에게 이끌려 자리를 뜨면서도 나는 몇 번이고 바다를 힐끔거렸다. 아까 봤던 우럭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아른거렸다.
헛것을 본 거야. 잠을 충분히 못 자고 나온 탓이지.
아이스박스를 들고 배에 오를 때가 되어서야 가슴이 진정되었다. 아무리 물고기가 궁하기로서니 환영을 보다니. 비시식 실소가 새어 나왔다.
“어서들 오세요.”
손님들을 태우러 쏜살같이 달려온 작은 배.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선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채 5분도 되지 않는 쾌속정을 즐기고 드디어 좌대에 올라섰을 때는 오전 9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M 좌대는 가두리 양식장에 물고기를 풀어놓은 방식과는 다른 소위 자연산 좌대. 마릿수가 적더라도 자연산 우럭을 선호하는 내가 처음으로 낚시에 입문한 장소이기도 하다.
“물고기보다 사람이 더 많겠다.”
좌대를 둘러보던 보람이의 푸념은 과장이 아니었다.
수많은 목제 뗏목들을 덧붙여 연결한 수상 좌대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부지런한 낚시객들이 북적이는 좌대 위에는 적당한 자리를 잡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꾸물거리다가는 명당자리는 고사하고 사람 구경만 하고 가게 생겼다. 우리는 후다닥 잰걸음으로 걸어가 화장실 부근의 빈자리에 짐을 내려놓았다.
“오늘도 카메라에 담으려고?”
“…….”
낚싯대 손잡이에 휴대폰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는 나를 보며 보람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우럭 님 너도 참 열심이다. 구독자도 없는 방송 때문에 허구한 날…….”
“누가 봐 준다고 일기를 쓰는 건 아니잖아. 먹방에 쓸 횟감은 구해 볼 테니 기다려 봐.”
내가 [우럭의 낚시일기]라는 개인 방송을 시작한 것은 대략 1년 전의 일.
낚시의 매력과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겠다는 거창한 기대가 방송을 시작한 첫 번째 목적이었다.
두 번째 이유도 있었다.
나는 회사를 위한 보고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글이라도 잘 쓴다면 재미난 조행기를 썼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방송이 돈이 될 거라는 기대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커피값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 버린 유튜브 안에서 내가 선보인 평범한 조황과 보잘것없는 요리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구독자 39명.
지난 일 년 동안 내 방송이 일궈 낸 초라한 성적이다. 한때 100명을 넘기면서 은근한 기대감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구독자들이 앞다투어 구독을 취소하는 참사가 있었다. 너무나 엉망인 내 요리가 원인이었다.
간신히 잡은 노래미 새끼 한 마리를 라면에 넣어 먹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비릿한 국물을 들이켜던 나는 결국 딸꾹질을 연발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도 떠나지 않은 분들의 인내심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과분한 응원을 보내 주는 세 명의 애독자들이 있다. 방송은 관두고 낚시나 즐겨야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지만 그들이 있어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댓글에 꼬박꼬박 감사의 대댓글로 화답했고, 어느새 우리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함께 출조를 떠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낚시를 마친 술자리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이름도 거창한 [피싱 어벤저스]라는 소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김보람도 그 모임의 일원이다.
그는 내 개인 방송에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 준 사람이었고, 서로 동갑내기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가장 가까운 낚시 친구가 되었다.
“시작하자! 딱 세 마리만 잡아 보자고.”
“좋아! 난 열 마리닷!”
물색은 탁하지만, 직접 부딪히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채비를 물에 담그기 전까지 낚시꾼들은 터무니없는 낙관론에 빠져 있게 마련이다. 우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람이는 짧은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낑낑거리면서 낚싯줄에 뭘 매달고 있는지 살펴보니, 기성 묶음추(봉돌과 낚싯바늘 여러 개가 일체형으로 연결된 간편 채비) 대신에 집에서 자작 채비를 준비해 온 모양이다.
그는 거구의 체격과는 다르게 꼼꼼한 채비 제작이나 매듭법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 한 덩치 하는 그의 취미가 뜨개질과 퀼트 공예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보람이는 갯지렁이를 미끼로 매달고 채비를 내린 뒤 낚싯대를 좌대의 난간에 걸쳐 놓았다. 한 곳에 채비를 고정시키고 초릿대의 움직임으로 입질을 감지하는 내림 낚시였다.
반면에 나는 보다 폭넓은 탐색 범위를 위해 찌낚시를 준비해 왔다. 이른바 ‘쏘세지 채비’.
찌가 소시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끼로 오징어채를 끼우고 낚싯대를 한껏 뒤로 젖혔다.
쉬익! 퐁당!
희망을 담은 나의 첫 캐스팅.
목표 지점을 훨씬 벗어난 소시지 찌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선다. 나는 천천히 릴을 감으며 우럭이 도사리고 있을 포인트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
보람이는 낚싯대를 드리운 채로 잠들어 버렸다. 쉬지 않고 이곳저곳 찔러 보던 나도 슬슬 지쳐 가고 있었다.
간밤에 열어 놓은 수문 때문에 물이 뒤집혔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운 좋게 얻어걸린 우럭을 잡은 사람이 멀리서 간혹 환호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아빠~~ 한 마리만 잡아 주면 안 돼? 가지고 놀고 싶은데.”
옆자리에 있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를 따라 처음 낚시를 나왔는지 아이는 열심히 낚싯대를 휘두르다가 이젠 포기했는지 애꿎은 아빠를 보채고 있었다. 그의 아빠도 허망한 표정으로 컵라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참 보기 좋네. 아들과 낚시를 나오다니.
바닷바람만 쐬어도 좋은 봄날이었지만, 야속한 바다는 아이의 간절한 소망을 들은 체 만 체.
그때였다.
스멀스멀.
조류를 따라 왼쪽으로 흘러가던 내 찌에 생명체의 반응이 감지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입질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쑤욱!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찌가 순식간에 사라지자마자 나는 휙 바람을 가르며 낚싯대를 치켜들었다.
부르르~~
야생의 몸부림을 확인함과 동시에 등골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려던 던 찰나……. 나는 곧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너무 작은 물고기였다.
휘리릭 릴을 감으니 열흘 전쯤에 태어난 듯한 우럭 치어가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왔다.
“뭐야? 하나 잡은 거냐?”
보람이가 잠꼬대처럼 물었지만 나는 씨익 웃고 말았다.
고맙다. 그래도 손맛은 보게 해 줬으니.
바늘에서 떼어 낸 우럭을 가만히 놓아주려 할 때였다. 아까부터 지켜보던 아이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잠깐만 구경하고 보내 주면 안 돼요?”
“그래라. 이건 ‘애럭’이라고 부른단다.”
“우럭이 아니고요?”
“너처럼 초등학생 우럭을 그렇게 불러.”
좌대 바닥에 누워 펄떡이는 물고기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
잠시 후 내가 슬며시 우럭을 바다에 내려놓자 아이는 아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아빠에게 돌아갔다.
“점심이나 먹자.”
보람이는 눈을 뜨자마자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점심으로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해치우자마자 그는 다시 길게 누웠다.
배도 채웠겠다, 작지만 손맛도 봤겠다, 다시 낚싯대를 손에 움켜잡은 나는 심기일전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멀리 던져 놓은 찌가 다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가 찌를 건드리는가 싶더니 곧 잠잠해졌다.
활성도는 낮지만 분명히 있다.
물고기들도 탁한 물속에서 미끼를 찾느라 헤매고 있을 것 같아 몹시 안타까웠다.
또다시 시간은 흐르고.
“아함~ 낮잠 한번 잘 잤다. 좀 잡았어?”
보람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빈 살림망을 뒤적거렸다. 내 대답이 없자, 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만 접자. 오늘은 글렀다니까.”
“…….”
얼마나 기대하고 나온 주말 출조인데…….
아쉬워서 선뜻 그러자고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보람이가 혼잣말처럼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잠수라도 해서 물속을 확인해 보고 싶네. 도대체 물고기가 다 어디로 도망간 거야?”
입질이 없는 상황에서 흔히 튀어나오는 낚시꾼들의 푸념.
내 심정도 그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고기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도통 소식이 없어 조바심이 났다.
끼룩~ 끼룩~
뜬금없이 하늘에서 갈매기 떼가 나타나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서, 설마…….
벼락처럼 스쳐 가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갈매기 떼.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는 아침에 선착장에서 겪었던 기이한 현상이 되살아났다.
돌이켜 보니 그때 나는 분명히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어디 한번…….
휘이익♬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미친 척하고 그냥 불러본 멜로디 없는 휘파람이었다.
허억!
내 추측이 들어맞았다. 휘파람이었다. 강한 전류에 감전된 사람처럼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비누 거품이 바람에 걷히듯 바닷속이 투명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눈과 눈 사이에 있는 어딘가에 제3의 시야가 펼쳐졌다. 비록 흑백 화면이었지만 어군 탐지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화질이었다.
“그만 접자니까 뚱딴지같이 웬 휘파람?”
보람이가 옆에서 투덜거렸지만 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우럭 님! 내 말 안 들리시나?”
“미안. 잠깐만!”
휘~~ 휘이~~익♬
이번에는 조금 세게 휘파람을 불어 보았다. 가시거리가 더욱 넓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 물속에 폐타이어 서너 개가 잠겨 있는 모습이 또렷이 나타났다. 아까 우럭 치어의 입질을 받았던 바로 그 위치였다.
나는 엉겁결에 채비를 회수하고 곧바로 타이어 포인트를 향해 캐스팅을 시도했다.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쳤지만 왼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채비를 근접시킬 수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나는 제3의 눈을 활짝 열어 확인하고 있었다. 타이어 밖으로 얼굴만 불쑥 내민 채 도사리고 있는 중치급 우럭을.
기우뚱, 쏙!
성공이다. 흐느적거리며 코앞을 지나가는 오징어채를 우럭이 덥석 무는 순간 찌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강렬한 물고기의 몸부림이 가느다란 줄을 타고 올라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릴을 휘감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잡은 거야?”
“……그, 그런 것 같아.”
잠시 후 물살을 가르며 물고기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발밑 부근에서 마지막 바늘털이를 시도했지만 나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놈을 좌대 위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좌대에서는 보기 힘든 30센티미터급의 준수한 씨알.
우럭은 화가 잔뜩 났는지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 채 바닥을 뒹굴며 푸드덕거렸다.
“와아! 드디어 횟감은 구했구나. 아싸! 자연산 우럭이닷.”
보람이가 기뻐하며 외쳤을 때, 나는 어렴풋이 직감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유일한 취미…… 낚시.
폭죽처럼 불쑥 솟아오른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