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두통
드르륵.
사무실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자 먼저 출근한 동료들의 텅 빈 시선들이 날아든다.
학창 시절 유일했던 내 목표는 취업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바늘구멍을 비집고 번듯한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2년 차.
언제부터인가 아침 출근길마다 나의 목표는 ‘퇴사’로 바뀌어 있었다.
뚜벅. 뚜벅.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내 자리.
오늘따라 왠지 낯설어 보인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노트북을 켜고 인트라넷에 접속했다.
툭. 투둑. 탁!
몇 번의 클릭으로 모니터에 펼쳐진 문서는 ‘사직원’.
최근에 수차례나 열고 닫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글씨 하나까지 외울 정도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곧바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속: 경영지원그룹 해외협력팀
사번: 20XX01013
직급: 사원
성명: 강유록
퇴사 희망 일자: 업무 인수인계 후 즉시
빠르게 칸을 메우던 내 손가락이 마지막 항목에서 일순간 멈춘다.
‘퇴사 사유 및 향후 계획’
개인 사정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둘러대면 그만이다. 정작 내가 머뭇거리는 이유는 앞으로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이유 하나뿐.
[무한상사]처럼 웃음이 가득한 분위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미생] 정도의 적당한 긴장과 갈등과 애환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라는 곳은 군대의 연장선에 불과했고, 온갖 비합리와 무한 경쟁의 정글이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푸념에서처럼 다른 직장도 거기서 거기. 구직이라는 험난한 과정에 재도전할 용기도 없지만 ‘이직’을 대안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자유분방한 내 천성이 처음부터 조직 부적응자의 길로 이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자판을 두드리고, 작성된 문서를 보고하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다시 보고하고……. 틀에 박힌 결재 놀이 속에서 나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이제는 모든 에너지마저 고갈되어 버렸다.
“강유록 씨, 아침부터 또 멍때리고 있을 거야? 정신줄 집에 두고 왔어?”
화들짝 놀라 의자를 돌려 보니 막 사무실에 들어선 팀장이다.
“……안녕하세요.”
“금요일이니까 팀원들 주간 업무 취합해서 가져와.”
“……네.”
아무리 퇴사를 하려는 참이지만 할 일은 해야 되겠지.
7명 팀원들의 ‘금주 실적’과 ‘차주 계획’을 정리해서 제출하는 것은 부서 막내인 나의 역할이다.
엑셀로 화면을 바꾸고 꾸역꾸역 복사와 붙이기를 반복.
그러나 잠시 후 나도 모르게 화면은 다시 사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돌이켜 보면 철부지로 살아왔다는 자괴감뿐이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살아왔다.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막연히 문과를 선택했고, 취업에 유리하다는 말만 믿고 경영학부에 진학했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먹고사는 일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나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게 절실한 것은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들 새로운 일거리다. 돈은 상관없다. 밥벌이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나이 29세.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 적절치 않다는 아홉수가 마음에 걸리지만 결코 늦은 나이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면 멈춰야 한다.
그래! 일단 그만두고 보는 거야. 걸음을 멈추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겠지.
나는 긴 호흡을 내뱉으며 사직서의 마지막 빈칸을 메우기 시작했다.
개인 사정.
그럭저럭 양식을 메우고 ‘상신’ 버튼을 누르려던 그때였다. 책상 위에 벗어 둔 사원증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입사 당시에 환하게 웃던 내 사진.
매고 있던 파란 넥타이처럼 그때만 해도 미지의 직장 생활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었다.
문득 그 뒤로 환영처럼 부모님의 얼굴이 겹쳐서 떠올랐다.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는 내 말에 서로 부둥켜안고 우시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필이면 지금…….
부옇게 시야가 흐려지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어이! 강유록! 주간 업무 가져오란 말 귓등으로 들었어?”
눈가에 스며들던 물기가 싹 사라졌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팀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이제 출력만 하면 됩니다. 헤헤헤.”
나는 최대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청량감 100%로 끌어올린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오늘도 실패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사직원을 내렸다. 그리고 냉큼 복합기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 * *
두통은 그날 점심시간 직후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바늘 하나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콕콕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통증은 점점 심해져 저녁 무렵에는 머리를 들고 있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요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통증이 몰려오곤 했다. 작은 병원에 들러 진통제를 처방받았지만 약효는 잠시뿐이었다.
“저어, 팀장님. 조금 일찍 퇴근하면 안 되겠습니까?”
퇴근을 한 시간 남긴 시각.
결국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팀장의 자리로 다가갔다. 큰 키의 내가 파티션 위로 허옇게 질린 얼굴을 불쑥 내밀자 팀장이 눈을 치켜떴다.
“깜짝이야. 그런데 어디 아픈가?”
“네. 두통이 좀……. 병원에 좀 들렀다가 일찍 들어가고 싶습니다만.”
“두통이라고?”
팀장이 안경 너머로 작은 눈알을 굴렸다. 그의 눈빛이 마치 정말로 아픈 거야?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든가. 낚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면서 회사만 오면 골골거리네.”
“죄송합니다. 주말 잘 쉬세요. 그럼…….”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팀장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뒤통수로 날아왔다.
“아 참! 중국법인 수정 사업 계획은 어떻게 됐어?”
불과 하루 전에 지시받은 보고서였다. 어떻게 됐냐고 묻는 것은 주말에 나와 일하라는 압박이다.
“월요일 아침에 자리에 올려놓겠습니다.”
힘없이 대답은 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다음 날에는 낚시 약속이 있으니까, 일요일에 회사에 나오면 그만이지. 그렇게 넘겼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돌아보니, 파티션 너머로 팀장의 도끼눈이 아른거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병원은 회사가 있는 판교테크노밸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네 의원은 정답이 아닌 것 같아 판교역 부근의 약간 큰 병원을 찾아왔다.
진통제도 듣지 않는다는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의사가 불쑥 물었다.
“MRI를 찍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큰 병원을 찾은 이유는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어쩐지 과도한 처방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꼭 그래야만 합니까?”
“정 부담스럽다면 CT 촬영이라도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의사는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말라는 사무적인 말투였다. 그의 말대로 비교적 저렴한 CT라도 찍어 보기로 했다.
“강유록 님!”
간호사의 부름에 다시 찾아간 진료실.
차트를 살펴보고 있던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에 요상한 주머니가 보이는군요.”
의사가 너무 태연스럽게 말하는 통에 선뜻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네? 주머니라 하심은…….”
“쉽게 말하면 혹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군요. 이마 부근에 엄지손가락만 한 덩어리가 확인되네요.”
“덩어리요?!”
뜬금없이 혹부리 영감이 떠올랐다가 곧바로 ‘뇌종양’이라는 단어가 뒷목을 서늘하게 했다. 회사에서 개고생하다가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건가,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불길한 상상이 뇌리를 스치던 순간.
“너무 걱정은 마세요. 모양으로 봐서 악성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지방 덩어리로 보이니까요.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일단 한 달 후에 오셔서 다시 검사합시다. 사이즈가 그대로라면 괜찮겠지만 계속 커진다면 제거를 해야겠죠.”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거듭 확인하고 나는 병원을 나섰다. 나오는 길에 효과가 빠르다는 진통제를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월요일까지 마쳐야 할 보고서와 머릿속 덩어리 걱정으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두통이 서서히 걷히면서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 * *
다음 날 새벽 6시.
뜬금없는 알람 소리에 놀라 화들짝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친구와의 낚시 약속 시간에 맞춰 놓은 기상 알람이었다.
어느새 두통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나는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낚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팀장의 핀잔이 떠올라 비식 웃음이 났다.
분당 자취 집에서 출발하여 새벽 어스름을 뚫고 달려간 곳은 수원이었다.
“여어~ 우럭 님. 그동안 잘 지냈어?”
“빨리 타라. 도라에몽.”
거구의 사내는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들떠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른다.
‘우럭’은 내 이름인 강유록에서 따왔고, ‘도라에몽’은 워낙 머리가 커서 어릴 때부터 따라다녔다는 친구의 별명. 그의 본명은 덩치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김보람’이다.
“봄이 왔다더니 아직 쌀쌀하네. 늦겠다. 출발!”
보람이가 비좁은 조수석에 올라타자 차가 기우뚱했다. 나는 차의 속도를 높여 서해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보람이가 큰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어제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칠 뻔했어. 작업하다가 손가락이 빨려 들어갈 뻔했지 뭐야.”
“뭐라고?”
“아무 일 없으니까 걱정 마. 낚시를 좀 쉬었더니 수전증이 와서 그랬던 것 같아.”
보람이는 수원에 있는 조그만 금속가공업체의 직원이다. 그는 그다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졸음을 쫓으려 억지로 그에게 이런저런 말을 시키다 보니 어느새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는 서산의 삼길포항.
정확히 말하자면 항구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M 좌대였다.
3월 하순인지라 본격적인 선상 낚시가 시작되기에는 다소 이른 시기. 휴무가 거의 없는 자연산 바다 좌대는 겨울 동안의 손 떨림 현상을 치료하기 위한 적절한 대안이었다.
“오늘은 좀 잡히려나? 지난번엔 영…….”
“모르지.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죄다 숨었을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며 선착장에 도착하니 벌써 아이스박스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말을 맞아 낚시객들이 몰린 탓이었다.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긴 줄이었다.
맨 끝에 아이스박스를 내려놓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엥? 물색이…….”
보람이의 말에 바다를 내려다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온통 흙탕물. 근처의 수문을 열어 대량의 민물이 유입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오늘도 글렀구나.”
물고기도 적당히 물이 맑아야 미끼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조과가 신통치 않을 거라는 불길한 징조였다.
바다는 오늘도 자연산 우럭을 내어주지 않을 심산인가 보다. 실망감에 보람이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람이나 쐬러 왔다고 생각해야지 뭐.”
“도라에몽. 시작도 하기 전이야. 아무튼 꽝치면 회는 사 먹고 가자.”
“나는 자연산이 먹고 싶은데…….”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보람이는 연신 담배 연기만 뿜어냈다.
끼룩! 끼룩!
갈매기 떼가 이른 아침의 바다 위를 유영하고 있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물고기 욕심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삐비 삐 삐삐♪ 삐비 삐 삐삐♬”
오랜만에 바다에 나온 것만으로 상쾌한 기분에 젖어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두통도 말끔히 사라져 홀가분한 탓이기도 했다. ‘부산갈매기’라는 노랫가락이었다.
먹잇감이라도 발견했는지 무리를 이탈한 갈매기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갈매기를 따라 아래쪽으로 향하던 내 시야에 뭔가 포착된 시점이었다.
가시거리가 1미터도 되지 않은 혼탁한 바닷속.
암흑 속으로 고성능 라이트를 비추듯 물속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정박된 배들 주변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밧줄들. 그 아래로 어지러이 쌓여 있는 수중 쓰레기.
“헉!”
내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온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어슬렁거리던 우럭의 순진무구한 눈알과 마주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