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봄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오는 날.
벚꽃이 화창하게 피어 화사하게 봄이 한창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벚꽃 진짜 예쁘게 폈다. 그치?"
소율이와의 데이트도 빼먹지 않았다.
성욕에서 해방이 되니 소율이와의 데이트에 온 신경을 다써줄 수 있었다.
수줍게 미소를 짓는 임소율.
윤기가 흐르는 똑단발에 고양이 같은 눈으로 미소를 짓는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주먹 하나로 다 가려질 정도로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과 자그마한 입술까지 다 들어가 있는게 신기했다.
꽃놀이에 어울리게 분홍색의 블라우스에 흰색의 살랑거리는 치마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은 풋풋했다.
''소율아, 여기 설치해놓고 같이 사진찍자.,’
삼각대를 설치하고서 앵글을 잡았다.
옆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둔치에 줄지어 서 있는 벚꽃나무들 아래에 그녀가 서 있었다.
살랑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단발을 귀 뒤로 넘기며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는 모습에 셔터를 눌렀다.
찰칵!
''앗! 오, 오빠…. 같이 찍는거잖아요……
갑작스런 사진에 당황한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옛날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표현을 하는 소율이에게 웃어보이며 옆으로 다가갔다.
''너무 이뻐서 담아두려고 했지."
"그래도…."
"자."
수줍어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 위에 작고 따뜻한 손을 포갠 그녀와 깍지를 끼고 벚꽃 나무 아래에서 카메라를 쳐다봤다.
찰칵.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봤을 때 소율이는 여느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기 아래로 내려가보자. 저기서도 이쁘게 나올것같아."
''네 •••."
카메라를 들고 둔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꽃과 함께 그녀의 모습을 담았다.
" 소율아〜."
"네?"
저 앞에 내 요구대로 서 있던 그녀가 귀를 쫑긋 세우며 나를 쳐다봤다.
"꽃보다 이쁘면 어떡해."
"아…! 앗! 아…!"
고장난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다.
"모, 목소리가 너무 커요……
"응? 작게 말해줘?"
당황하는 소율이의 허리춤에 손을 두르고서 귓가에 입을 맞춘 후에 속삭여주었다.
''쪽. 꽃들이 질투할까봐 조용히 하라는거였지? 마음이 예쁘네 우리 소율이.,’ ''으앗! 앜! 맛…!"
딸꾹질을 하듯 어깨를 떠는 그녀를 보면서 역시 놀리는 맛이 있었다. 이런 오글거림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몇 번을 놀려도 반응이 재밌었다.
당장 울것 같이 촉촉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는데 그 모습에 웃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이런거 싫어?"
''그럼 앞으로 이쁘다고 안 해줘야겠다."
내가 삐진 척 말을 하고 손을 풀자 아담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서 고개를 저었다.
"해줘?"
끄덕.
차마 말로는 해달라고 하기 그런지 고개만 주억거 렸다.
''알았으. 그럼 소율이한테만 이쁘다고 해주고 사랑한다고 해줘?,’
"네…."
''살면서 근데 소율이보다 이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본적이 없어서 해본 적이 없어." 이….
민망함에 눈은 마주치지 못했지만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소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다시 손을 잡고 한강을 걸었다.
"걷기만 해도 좋다." "저도요."
감정을 표현하는데 여전히 서툴렀지만 그래도 전에 비한다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소율아소율아.,’
내가 다급하게 부르자 땅을 보며 걷던 그녀가 움찔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사랑해." "……헷
"나도 사랑한다고 해줘. 빨리."
얼굴이 화악하고 빨개진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 여기서 소율이는 내꺼다〜이러고 소리지른다?" "안돼요."
단호하게 말은 하지만 얼굴은 붉어져 있었고 눈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얼른. 귀에 속삭여줘. 그럼 아무도 못 들을거야."
허리를 숙여 귀를 갖다대자 그녀가 주변을 눈치보다가 두 손을 모아 귀에 속삭였다.
"사랑해요."
"너무 작아. 다시 크게." ''사랑한다고요."
말을 뱉고나서 민망했는지 애꿎은 내 손만 잡고서 꼼지락 거렸다.
지금까지 연애에 대한 생각없이 소녀가장으로 지내왔기에 표현이 더 서툴렀다.
항상 강인한척 했어야했으니까.
''저기 앞에 푸드트럭 많이 있네? 저기서 뭐 먹을까?" "네."
아담한 소율이를 데리고서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꽃놀이도 성수기라 그런지 트럭 앞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찹스테이크를 포장해서 앉았다.
"꽃놀이 어땠어?"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며 묻자 소율이가 젓가락을 짜개다가 멈춰서 대답했다.
''좋았어요. 오빠랑 같이 있어서요."
"……사랑한다는 말은 어려워하면서 이런건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이건 괜찮아요."
직접적인 사랑 얘기나 칭찬 같은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소율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사랑이 담긴 눈으로 쳐다봤다.
섹스는 다영이랑 다희 누나랑 하면 되니까 소율이한테는 여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있었다.
화사했던 분홍색의 꽃놀이를 끝내고서 집에 돌아가는 길.
"오늘 재밌었어?"
"네."
달동네의 계단을 올라가다가 전봇대가 보였다.
그 아래에 서서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은채 그녀를 오롯이 쳐다봤다.
"일루와봐."
두 팔을 벌리자 내게 폭 안겼다. 아담한 만큼이나 내게 쏙 안겨졌다. 그런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소율이의 작은 입술에 내 입술을 덮고 미소를 짓자 그녀도 나를 따라 웃었다.
"아, 그리고 이거."
''어…. 아까 드신다고……
아까 꽃놀이중에 산 빵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괜찮아. 아까 하나 먹었으니까. 이거 동생들 좋아할거야.,’
''그래도……. 항상 주시기만 하셨잖아요."
''내가 좋아하니까주고 싶은거지. 부담갖지 말고. 나중에 동생들 크면 다 얻어먹을거야.,’
나중에 동생이 크면 얻어먹는다는 얘기는 그녀로 하여금 안정감을 들게 했다.
동생들이 클 때까지 계속 만나고 있을거라는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감사합니다…."
그녀가 두 손으로 빵이 든 가방을 들고서 내게 꾸벅 인사했다.
''소율이 좋아하니까 동생들도 좋게 보이는거지. 나한테 잘해줘."
"네! 무조건 잘해줄거에요."
''표현도 좀하구. 나 섭섭해."
내가 칭얼대자 그녀가 작은 발을 올려서 까치발을 만들었다.
"사랑해요."
조용한 골목길이라 그런가 그녀의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렸다. 말을 하고는 민 망했는지 후다닥 위로 올라갔다.
§
임소율.
집에 돌아오니 동생들이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나아〜."
''빵 먹을래? 오빠가 사줬어. 할머니도 먹어."
예쁘게 벚꽃모양으로 만들어진 작은 빵들을 내밀었다.
신나서 먹는 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요, 소율씨 사랑해요〜.]
카톡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지원되는거 같았다.
흐뭇하게 웃다가 입에 다 묻히고 먹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먹고 치카치카 해야 돼."
''알았어! 근데 형은 언제 와?"
"응? 또 놀고 싶니?"
이미 동생들하고 자주 놀았던 탓에 벌써부터 그리워하고있었다.
''조만간에 시간이 나면."
하루가 정리되고 누운 임소율의 입에 배시시 미소가 맺혔다. 이런게 연애구나.
듬직한 내 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훈훈했다.
§
집에 돌아온 나는 시나리오 북을 열어서 우다희가 출연한 작품을 살폈다.
#5scenario 응애 나 아기 시우
#6scenario 꿈꾸던 부부의 생활
#7scenario 한 지붕 한 자매
#10scenario 완벽한 부부
#llscenario 수우미양가
#13scenario 사춘기 소년은 혼란스럽다
총 6개의 작품.
[배우]
[우다희]
[몰입도 상승률 : 5%]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이마를 긁적였다.
이때엔 영향력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몰입도 상승률에 투자를 했었다.
"쯧, 이러면 4편은 더 해야하는데……
우다희를 공략하려면 4편을 더 써야 새로운 특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북 옆으로 공책을 펼쳤다.
설계해놓은 여러 세계관과 설정들을 보면서 고민을 했다.
''긴 시나리오는 이제 못해먹겠구만."
좋긴한데 시간의 공백이 길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무리였다.
게다가 한치의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빡세게 집중한 탓에 진이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가볍게가볍게 가야겠네."
어떤 시나리오를 쓸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부부컨셉도 재밌었고 동생으로 들어간것도 재밌었고……
그 외에도 아예 세계관을 뒤트는것도 있었다.
남녀역전세계라던지 아니면 세계가 멸망한 시나리오라든지 .
근데 그걸 쓸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전문 소설 작가도 아니고 디테일들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이건 보류고…."
고민을 하다가 옛날에 쓴 공책에 적혀 있는게 보였다.
"소율이꺼네?"
그러고보니 소율이랑 안 한지도 제법 오래됐다.
"……얘가 진짜 날 좋아하는건지 실험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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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영을 공략하면서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심적소모가 컸다.
실험을 해본다고 지정배우자의 시나리오도 제법 길었었다.
가볍게 즐길 목적으로 팔짱을 끼고 다음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
쏴아아아一!
하늘에서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중충한 하늘을 보면서 담배 하나를 물고 밖으로 나왔다.
''유찬아 너도 담배 피게?,’
"네네, 형님. 편집할게 너무 많네요."
"일이 확 몰리는 느낌 드네."
유찬이와 골목길에서 담배를 물었다.
치익.
비까지 내리니 담배냄새가확풍겼다.
''이번에 우현이 선배가 뭐 하나 건져온다던데요?"
''응? 걔 결혼준비하느라 바쁠텐데 뭘."
그러나 내 예상과 다르게 또 다시 관공서 홍보 영상을 기어코 따내서 가져왔다.
담배를 피고 돌아와 회의를 하는데 이번에 출장을 갈 인원을 정하고 있었다.
''이번에 누구 해보고 싶은 사람 있어?,’
다른 회사였다면 그냥 하라고 했겠지만 대체로 대학 친구들이라 일단 물어는 보는 것 같았다.
희한하게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서 무시했다.
시나리오 진행을 해야하는데 출사 나갈 시간도 없었다.
”..나야?"
침묵 속의 시선에서 참지 못한 내가 물었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번에 컨셉보니까유찬이가 가장 잘 어울리는구만. 너 출사 많이 나가잖아. 그치 유찬아.''
''요즘에 잘 못나가요. 일이 많아서요……
보통 외주를 받아 편집을 하는게 우리의 주업무였다.
그걸 도맡아 하는게 유찬이었다.
''그래서 인사이동을 할까하는데……
"갑자기…?"
우현이가 나와 소율이를 쳐다봤다.
n이번에 소율씨 인턴기간도 끝이 나잖아. 그래서 면접도 보고 제대로 정직원으로 채용을 할까 하는데. 어때요?"
소율이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명 더 인원을 뽑아서 3명으로 돌릴까 하는데."
"나는?,'
그렇게 되면 나 혼자 남게 되는데 우현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래도 편집, 촬영, 음향 다 할 줄 알잖아." n n
인성과는 별개로 배우는게 재밌어서 하필 다 배워놓은게 화근이었다.
n작년에 다희누나랑 찍은 홍보영상이 평가가 좋았었나봐. 그래서 연달아서 따놓은게 있거든."
"……아예 그럼 프로모션 영상 전담으로 나를 맡긴다?" ''응, 괜찮지? 믿을 사람이 너 밖에 없어……
이마를 짚고서 곰곰히 생각했다. 홍보영상이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혼자서 모든걸 하라는건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답사도 가야했고 오퍼에 따라 계절을 다 담아야했다.
"of,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따로 팀이 있었잖아. 5명이서 하는데 나 혼자는 좀 무리야."
챙겨야할 장비도 한두개가 아니었고 그 짐을 들고 산이라도 오를라 치면 사람 죽어나갔다.
''인센은 많이 챙겨줄게. 그래도 힘들어?"
"……너이거언제 계약한건데.,’
"2 주전에."
즉 내가 시나리오를 하고 있을 때 따온 계약이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꾸욱 누르고서 컨셉이 적힌 종이를 넘겨 살펴봤다.
"스읍, 알았어. 한 번 해볼게. 대신에 장비지원은 어떻게 되는건데."
''우리가 직접 대여해서 찍어야 할거야." "……알았어. 그것도 알아볼게.,’
처음엔 투정을 부리면서 내빼려고 했었는데 마음을 바꾼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다영을 그렇게 써먹고 앞으로도 써먹을건데 이 정도 쯤이야 해주지 뭐.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더 쌓을 기회이기도 했다.
''역시, 시우야. 고마워. 필요한거 있으면 다 말해줘. 최대한 도와줄게."
나는 최대한 진지한 얼굴로 이마를 긁적이며 다영이를 가리켰다.
''음향편집은 몰라도 장비는 다영이가 훨씬 잘 다뤄. 며칠만 나 빌려줘."
진지하게 일에 관해 말을 하니 우현이도 순순히 허락했다.
''근데 무리한건 시키지말아주라 시우야." ''왜? 얘도 굴려야지. 아…. 아아. 옼헤이."
순간 임신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구를 일은 없을겨. 등산은 괜찮지?,’
''그것도 안되 지 않나?"
이번에는 다들 다영이를 쳐다봤다.
''사찰도 있어서 직접 올라야 돼. 차량 있으면 주차장까지 올라가면 되는데."
''으음〜. 그 정도는 괜찮을거야. 너무 안에만 있어도 몸에 안 좋데. 우현아, 나도 같이 갔다올게.,’
다영이에게 넣어둔 설정이 제대로 작용을 하고 있었기에 우현이에게 넣은 설정도 제대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담백한 섹스를 좋아한다]
[싸보이는 여자를 싫어한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시우다.]
외에도 자잘하게 넣은 설정들이 그에게 제대로 적용이 되었다면 아무런 의심없이 나와 다영이를 보내줄 것이다.
"알았어. 둘이 갔다와."
''며칠이면 돼. 출사만 갔다가 음향만 따고 얘는 바로 갈거야. 그럼 언제부터 가면 돼?"
역시나 우현이는 나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애초에 의심조차 못하게 만들었으니 당연했다.
"장비 대여해서 오면은 그때부터 하면 될거 같아."
"기한은?"
"그래도 좀 넉 넉해. 7월까지야."
회의가 끝나고 다들 분주했다. 이제 자리를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오빠….''
짐을 챙기던 소율이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소율이도 이제 정직원이네. 축하한당."
이….
"열심히 하니까좋게 봐준거야. 그러니까잘하구."
짐을 옮기던 유찬이가 파티션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누가보면 이 별하는 줄 알겠어요."
"이별 맞지."
''아잇! 형님, 바로 맞은편인데 뭘요."
유찬이와 말장난을 끝내고서 파티션을 다시 분리해서 조립을 해야했다.
그렇게 편집 1팀은 유찬이네가 되었다.
''새로 한 명을 더 뽑는다는건 뭔 소리임?,’
조립을 끝내고 물어보니 유찬이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 좀 늘리긴 해야 돼. 일에 비해 사람이 너무 적어."
"그렇긴하죠."
누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내 우선순위는 그게 아니었다.
대여를 하기 전에 기간을 정해야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을지 정하는건 모든게 다 내 몫이었다. 콘티를 짜고 동선까지 계산을 하려니 골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원하는 장면들이 디테일하게 있어서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구상을 하고나면 대략적으로 촬영기간이 얼마정도 나오겠다라는게 있었다.
''보름 정도 잡고 하면 되겠네."
야외촬영의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날씨였다.
내가 원하는대로 된다면 보름이었고 틀어지면 한 달은 더 길게 갈 수도 있었다.
준비를 끝내는데만 며칠이 소모됐다.
"아오."
''하핫! 미안해, 시우야〜."
우현이도 알고 있었다. 회사를 위해 프로젝트를 크게 따왔지만 인원이 부족했기에 갈아넣어야한다는걸.
"네가 날 믿는건지 이용하는건지 모르겠다야."
"꼭 제대로 챙겨줄게."
"아오."
섹스는 커녕 소율이 만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4월의 중순.
폈던 벚꽃은 사그라들었고 푸른 잎들이 길거리를 메우기 시작할때 잠시의 짬이 생겼다.
''이제 쉬겠네……
긴 시나리오가 아닌 짧은 걸로 택했다.
사각사각
미리 적어둔 시나리오를 북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워낙 좁은 장소에서의 시나리오라 세계관같은 거창한건 필요없었다.
독립영화처럼 저예산의 촬영이었다.
"카메라도 필요없고……
그저 필요한건 조그마한 공간이었다.
"소율이한테는 미안하네…. 아직 한 번도 안 했다고 믿고 있을텐데……
보통 이런 능력을 얻게되면 복수나 부자가 되기 위해 사용하고는 하는데 나는 달랐다.
내게 있어서 돈은 그렇게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고 복수도 뭐 당한게 있어야 하지.
여러 컨셉으로 상황극을 하는데 상대는 그 상황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몰입감에 푹 빠졌다.
나는 씨익 웃으며 애드립으로 점철된 이번 시나리오를 전부 작성했다.
[로딩 중1%]
다음화보기
임소율.
연애.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 것.
가끔 사람들은 연애가 쉽다고 말을 하지만 그건 자주 해본 사람들의 말이었다.
임소율에게는 관심도 없고 할 일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단어였다.
살면서 과연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누군가를 만나 서로 사랑하고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은 그녀에게 사치였다.
할머니와 어린 쌍둥이 동생을 어릴 때 부터 챙겨야했다.
학업은 당연히 뒷전이었고 돈을 버는게 우선이었다.
가끔은 힘에 부칠때도 있었다.
가녀리고 여리며 아담하고 작은 소녀에게는 가혹한 일이었다.
학창시절엔 알바를 했었지만 그건 안정적이지 못했다.
어린 동생들을 대학까지는 못 보내더라도 고등학교는 정상적으로 졸업을 시키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배운게 없는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었다.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공장으로 들어갔다.
자주 손이 부르텄지만 그래도 일을 한 만큼 월급이 들어온다.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해 해가 지고나서 퇴근을 했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다만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마주쳤다.
"회식 나오시죠. 소율씨."
"퇴근 하시고 뭐하세요? 둘이 술 한 잔 할래요?"
공장이 다보니 남자들이 많았고 누가봐도 가벼움을 목적으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물론 경험이 없다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않았지만.
거절의 이유도 그 남자가 싫다기보다는 동생들을 위해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했다.
공장에 다니다보면 남녀할거 없이 욕하는걸 자주 듣게된다.
화내는걸 자주 보게 된다.
원래 말이 없던 소녀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굳이 대화를 해서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12시간 동안 말을 한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몇 년이 지나고 여린 몸은 버티질 못하고 점차 몸이 아파왔다. 그리고 동생들이 학교를 갈 나이가 되면서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통장에 있는 이 정도면 고등학교까지는 나올 수 있을거야……
괜히 자신이 아파 병원비로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모은 돈도 있었으니 동생들이 학교는 다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나오고나서 한동안은 뭘 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공장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돈은 쓸 생각은 없었고 모을 생각이었다.
여유만 된다면 대학교까지 보내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인 공고가 인턴 계약직이었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다른 곳도 넣어둬야지……
여러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공장만 다닌 그녀를 면접보러 오라 하는 곳은 드물었다.
몇 번의 탈락 끝에 도착한 곳의 간판 이름은 [늘솜 스튜디오]였다.
"……사진관 같은건가……?"
이력서를 넣은 이유도 단순했다. 사진 찍는걸 배우다보면 동생들이 입학할 때 예쁘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지 않을까.
공장에서 배운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해 면접을 보기 전에 골목길로 들어갔다.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고 라이터를 찾는데 보이질 않았다.
저기요.,'
이미 누군가 담배를 피고 있었기에 그에게 물었다.
''라이터……
그도 별말없이 라이터를 빌려주었다.
그때에는 관심이 없어서 누군지 자세히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면접을 봤고 합격을 하게 됐다.
"내가 가르치라고……?"
아직도 세상 귀찮아하는 표정이 눈에 보였다.
''일단…….편집 하실 줄아세요?"
아마 이게 첫 대화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요."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렇게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지 못했던 탓에 공부에 목말라 있었다.
게다가 동생들을 이쁘게 찍어줄 기술이니 인턴이 끝난다해도 도움이 된다.
"단축키 부터 외우셔야겠는데요."
이론부터 배워보고 싶었는데 회사다보니 그건 힘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매일 단축키를 외우고 그가 내준 숙제를 해결했다.
"이걸로 공부하시면 될겁니다."
어느 날은 그가 집에서 자신이 배우던 전공책을 가져와 건네주었다.
그의 일이 많은 탓인지 항상 늦게 퇴근을 하곤 했는데 그녀도 묵묵히 옆에서 공부를 하다가 같이 퇴근을 했다.
딱히 그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집에 가서는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이거 들고가요.''
회사의 맞은편에 있는 치킨집에서 포장을 해 건네주는데 그제야 그의 얼굴이 보였던 것 같았다.
한 번 의식이 되니 그제야그가 하는 것들이 보였다.
처음엔 귀찮아 했었지만 짜증 하나 없이 궁금한걸 가르쳐주고 해결해주었다.
그리고 이제 일을 시작하고나서야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았다.
책에 적혀있는대로 편집하는건 매우 쉽고 편했다는걸 깨달았다.
''제가 따준 가이드대로만 편집해서 저기 앉아있는 다영씨한테 보내주시면 돼요."
이제 좀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창피했다.
심드렁하게 의자에 눕듯 앉아서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편집이 끝나는게 보였다.
배우고나서야 보이는게 있다는걸 알았다.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며칠 동안 출장을 나가 힘들텐데도 돌아와 일을 끝내고 퇴근하기도 했었다.
"다희누나 맛...이아니라 좋드라. 응.,’
가끔 일이 힘든지 버벅 거릴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해 보였다.
게다가 여기에서 일을 하면서 욕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교 친구들끼 리 만든 회사라 그러는데 가끔 장난으로 욕을 하긴해도 전혀 심각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아마 그에게 더 푹 빠지게 된건 아팠을 때가 아니었나 싶었다.
아픈 자신을 위해 약과 죽을 사왔을때엔 솔직히 놀랐었다.
공장에서 아팠을 땐 너 때문에 빵꾸가 났다며 핀잔을 들었었는데.
소녀였던 임소율은 처음으로 그와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