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험을 위해 그다지 길지도 않은 시나리오였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나리오에서 걸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시나리오의 등급에 시간 역시 중요하지만 명성도 영향을 끼친다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수치로 나오질 않으니 시발…."
양장본으로 되어 있는 낡은 시 나리오북을 들고 이 리저리 둘러봤다.
처음 사서 능력을 알게 됐을 때도 그랬지만 둘러본다고 특별하게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건 아니었다.
아무리 집중해서 둘러봐도 그냥 낡은 공책일 뿐이었다.
반 년이나 넘게 써놓고서 지금에 와서 새삼 이런 의문을 갖는다는게 웃기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란게 호기심이 생기면 이 리저리 둘러보게 되어 있었다.
''스읍.,
아무리 둘러본다고 한들 반 년 동안 내내 둘러봐도 나오지 않았던 무언가가 나올리가 없었다.
"모르겠다"
툭.
책을 던져놓고서 소파에 기대 이마를 꾸욱하고 눌렀다.
덕분에 원 없이 정액을 싸댔으니 후회는 없었다.
"아니지, 그래도 기왕 가진 김에……"
후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은게 새롭게 생겼다.
그건 내 주변 지인들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하나의 욕망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도 능력만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하나의 시나리오를 쓰는데 굉장히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거기에 편 수가 쌓일 수록 그 주인공에게만 나타나는 특성도 꽤나 중요했다.
우다영이 5편의 주인공이 되면서 생긴 배우의 특성 덕분에 다음 시나리오를 계획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영향력의 고정……"
아무 쓰잘데기 없어보였던 영향력은 바로 다음 시나리오를 위해 존재하는게 분명했다.
시나리오가 아닌 밖에서도 내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섹파가 있었으면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하지만 대부분은 상상에서 그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성격으로 바꿔서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메리트가 있었다.
"그럼……"
착.
여러 세계관과 시나리오를 낙서처럼 적은 공책을 펼쳐서 우선 컨셉부터 짜기로 했다.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도 들어가야하니까
영향력은 무한정 있는게 아니었다. 한 작품을 제대로 만들어 거기에 모든 영향력을 투자해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즉, 시나리오에 영혼을 갈아넣어야했다.
책임감 없는 쾌락을 위해서.
§
우다희.
산부인과.
정기적으로 검진을 위해 온 산부인과에서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여기 보시면 질 쪽이 많이 부어계시던데 성관계를 최근에 자주 하셨나요?"
여의사쌤의 말에 우다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남편과 주기적으로 하기는 하지만 부을 정도로 거칠게 한 적은 없었다.
항상 자신을 위해 배려를 해주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조금이라도 아픈 티가 나면 멈추곤 했으니까.
''하기는 하는데……
''아니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럴 수도 있거든요.,’
검진을 마치고 나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어둔채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뭐지이?"
가끔 멍하니 있을 때가 종종 있긴 했다. 그럴 때마다 강한 위화감이 찾아오긴 했지만 그것의 근원이 뭔지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겪은 적 없던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었지만 그냥 무신경하게 넘길 때가 많았다.
그 날 저녁 잠에 들기 전 남편의 탄탄한 가슴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오빠."
n 기!
''오늘 검진 받았는데 밑에가 많이 부어있대.,’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서로의 일들을 공유하는게 하루의 마지막 낙이 었다. 최혁은 많이 피곤했는지 얼마 안 있어서 곧바로 잠에 들었지만 우다희는 그렇지 못했다.
의사의 표정을 보면 스트레스가 아닌 성관계로 부은게 분명한데 자신은 그렇게 거칠게 한 적이 없었다. 설마 위화감의 존재가 그것과 관계가 있나 싶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채 잠이 들었다.
§
내 일생의 역작을 만든다는건 언제나 영혼을 깎아 넣는 일이었다.
"와…, 내가 봐도……
공책의 몇 페이지를 깜지로 채운 글자들을 보며 나 스스로도 감탄했다.
욕심으로 여러 컨셉과 디테일 설정들을 넣으려다보니 페이지가 답도 없이 늘어나 있었다.
''일단 컨셉은 우현이 몰래 하는 섹파 느낌으로 갈건데……
나와 하는 섹스가 아니면 못 느낀다든지,
내 정액이 맛있다든지,
사실 우현이보다 나를 더 좋아했다든지,
꼴리는 요소들을 한데 집어넣다보니 혼종이 탄생 되어 있었다.
이걸 다 넣는다면 수작은 커녕 평작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우선 생각나는 것들을 전부 다 적어났다.
"나중에 하나씩 줄여서 필요한 것들만 남겨야지."
설정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연계되는 것들만 남길 예정이었다.
이런 컨셉을 짜는데만 해도 벌써 일주일이 넘어갔다.
2월도 그 끝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실 그 전에 컨셉을 끝낼 수 있었지만 임소율과의 데이트로 많이 늦어진 부분도 있었다.
''오늘은 어디 가보고 싶은데 있어?"
카페에서 맞은편에 앉은 임소율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언제나 그렇듯 단호하게 끝나는 단답이었다.
나는 찬찬히 그녀를 쳐다봤다.
단발도 길어서 목 언저리까지 자란 상태.
눈은 고양이처럼 또렷하게 나를 보고 있었고 어려서 그런지 피부에 잡티 하나 없이 탱탱했다.
내가 없을 때 몇 번이나 번호를 따는걸 목적한 적이 있긴 했다.
작고 아담해서 보호본능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잘 웃지 않으니 오히 려 새초롬하고 도도하게 보일 때도 많았다.
다만 다 좋은데 재미가 없었다.
항상 단답을 하고 뭘 하자고 하든 뭐든 좋다고 대답을 해주니 좋은데 재미가 없었다.
"흐음……
"전 오빠랑 있는게 그냥 좋아요."
회사 밖에서는 오빠라고 불러주니 감사할 따름이긴 한데 뭘 할지는 내가 정해야했다.
섹스가 고픈게 아니라서 항상 저녁을 먹고 집에 보내주었다.
임소율의 기억 속엔 내가 조교를 해준게 없다보니 아직 첫 경험도 못한 처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원 없이 섹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인지 굳이 조급하지도 않았다.
"그러냐, 그럼 여기 봐봐."
퇴근을 하고 하는게 밥을 먹고 카페에 와 앉아 얘기를 하는데 단답 뿐이니 일주일만 지나도 할 얘기가 떨어졌다. 같은 직장이라 다 아는 얘기 뿐이었다.
그래서 공부도 할겸 해서 임소율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찰칵.
''아…."
처음엔 어색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래도 매일 찍어주니 처음보단 자연스러워진 얼굴로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와..., 소율이 되게 이쁘게 나오는데?"
"……아닌데……
작은 칭찬에도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봐봐, 이쁘지?''
자신의 사진을 보자 얼굴이 더 빨개지며 고개를 저었다.
"이쁜 편은 아니에요."
''내 눈에만 이쁘면 됐지. 다른 남자들 눈에도 이쁘게 보이려고?,’
"아뇨…, 그건 아니에요."
임소율이 조막만한 손을 뻗어서 내 손을 잡았다.
''오빠 눈에만 이뻐보일거에요.,'
"와우."
내가 항상 오글거리는 멘트를 해주니 임소율도 익숙해진만큼 대답도 오글거리게 해주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었지만.
''그럼 이제 들어갈까?"
"……네에……
많이 아쉬워하는게 보이는데 슬슬 졸리기도 하고 집에가서 쉬고 싶었다.
''아니면 소율아……
"오빠 아! 머, 먼저 말씀하세요."
"아냐, 소율이 먼저. 괜찮아."
임소율이 내 손가락을 양 손으로 잡고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3월 2일에 입학식인데 저랑 같이 가주실래요?"
”……동생들?"
"네."
"어……
평일인데 괜찮나 싶었다.
"회사는?"
''아...!"
표정을 보니 그건 생각 안 하고 나랑 같이 갈 생각만 했던게 보였다.
귀여움에 내 손가락을 붙잡은 그녀의 손에 깍지를 꼈다. 워낙에 작은 손가락이라 힘을 주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그럼 우현이한테 말해놓을게.,’
"……왜?"
우현이한테 말한다니 약간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럼 저희가 사귀는게 들킬텐데……
"그게 왜?"
”……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오히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숨기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아니? 상관없는데……?"
"아……
''뭐야, 그래서 회사에서 그렇게 굴었던겨? 단답하고 쌀쌀맞게?,’
단답이야 원래 성격임을 알지만 쌀쌀맞게 굴길래 뭔가하고 대충 넘어갔던 적이 있었다.
"……네, 오빠한테 피해가 갈까봐서요."
''그게 왜? 사귀는게 뭐 어때. 내가 좋아하는 여잔데 오히려 자랑하고 싶지.,’
내 말에 그제야 그녀가 풀어진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깍지를 낀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소율아, 뭔가 고민이 있거나 하면 말해, 속으로 앓지 말고. 말 안 하면 모르잖아." "……네에…….죄송해요……
''이게 뭐가 죄송해. 내일 말해볼게."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임소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강아지처럼 미소를 짓는 그녀.
"이제 갈까?"
집에 먼저 보내주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고 기다리는데 임소율이 조심스럽게 내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왜에〜?,’
임소율의 작은 볼을 매만지며 묻자 임소율이 까치발을 들면서 말했다.
''버스 오기 전에……, 뽀뽀 해주세요……
매일 버스에 태우기 전에 뽀뽀를 해주다가 오늘은 가만히 기다리니 그녀가 먼저 말했다.
"……속으로 앓지 말고 말하라면서요."
바로 응용을 하는 임소율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무시하고서 임소율의 두 볼을 붙잡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쪽.
"됐어?,’
”……입술이요."
"우리 소율이 왜케 귀여워, 일루와."
키가 작으니 내 허리에 손을 얹고는 까치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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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에 입을 맞춰주고선 미소를 짓고 있는 임소율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댔다.
"이제 버스 온다."
"……네에. 갈게요, 오빠. 내일 봐요.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그녀가 꾸벅 인사를 하고선 버스에 올랐다.
§
임소율.
요즘엔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생에 첫 남자친구로 시우 오빠를 만나 참 다행이었다.
다정하고 신경 써주는 모습은 그녀가 원했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항상 행동에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도 사랑이지만 동경도 하게 됐다.
돈이나 시간에 쫓기던 삶을 살던 자신과는 다르니 동경을 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o|……
그를 생각하면 항상 미소가 떠올라 사라지질 않았다.
다음 날, 늘솜 스튜디오.
"3월 2일 날 소율이랑 같이 동생들 입학식 갔다올게. 반차내고서.,’
출근을 하자마자 임소율의 손을 붙잡고서 바로 사장님께 다가가서는 물어보는 모습에 순간 움찔했다.
''응? 그래도 상관은 없는데……. 드디어 사귀는거야?" ''응? 응. 알고 있었어?"
손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하는데 임소율이 움찔했다.
"뭐야, 거절할 줄 알았는데?"
옆에 있던 우다영 팀장님도 아는 척 말을 해오길래 되려 놀랐다.
"어, 어떻게 아셨나요?"
놀란 임소율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서 물었다.
되려 김우현과 우다영이 벙찐 얼굴로 임소율을 쳐다봤다.
''그렇게 티가 나는데 모를리가 있냐?" 옆에서 오빠가 머리에 손을 얹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티가 안 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혼자서 숨겨왔던 것 같아서 민망했다.
시우가 곤혹을 느낄까봐서 일부러 숨겨왔던건데 그게 아니었으니 임소율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여튼 그날 반차 쓸게. 괜찮지?"
''그래,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없으니까. 괜찮을거야.,’
시우와 우현의 얘기를 들으며 임소율은 애꿎은 손가락만 꼬물거렸다.
"땡큐
"꼭 반차 내라."
얘기가 끝나고서 임소율의 손을 붙잡고 자리로 돌아왔다.
끼익.
의자에 앉아 빙글 돌더니 옆에 서 있는 임소율을 보며 싱긋 웃었다.
"됐지?"
"네. 감사합니다."
감사한다는 말이 입에 붙어서인지 습관적으로 나왔다.
시우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네남친이야, 어때. 멋있어?"
"네."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는데."
''풋, 진짜에요."
자신의 자리에 앉은 임소율이 책상 위에 올려둔 작은 사탕하나를 집어서 내밀었다.
"선배, 사탕 드세요."
회사 내에서는 그래도 선배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였다.
"고마워, 소율아."
빙긋 웃어주는 시우를 보며 마음이 따뜻함으로 차오르는걸 느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계속 유지가 됐으면 했다.
§
퇴근 후에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시나리오 북을 열어 우다영의 컨셉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수북하게 적힌 컨셉들을 이제는 하나씩 지워나가야할 차례였다.
''섹파니까 섹스나 섹드립에 거부감을 좀 없애고••••••
아예 사람의 인격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신경써야할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성욕을 좀 강하게 만드는데 나한테만 느낄 수 있게……
우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만큼 친구로서 더 잘해주면 되겠지 라고 책임감 없는 생각을 하며 하나씩 지워나갔다. 점차 윤곽이 잡혀가는 우다영의 설정들을 훑어봤다.
성욕이 강하나 그걸 느끼는건 오직 나에게만,
내가 하는 섹드립에 거부감을 없애고,
여러 체위, 야외, 달도 같은 도구에 흥미를 갖게 하고,
동시에 나를 가장 신뢰하는 친구로 만들고,
나랑 있으면 편하고 재밌는 관계로 만들며,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벌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충 남은 설정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 이거 내가봐도 설정이 존나……
다 합쳐버리 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벌리는 그런 애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하나.
배덕 감.
나와 할 때 신뢰하는 누군가를 배신한다는 배덕감에 강한 쾌감을 느끼도록 설정을 잡았다.
기왕 하기로 한 거 끝을 봐야했기에 추가로 설정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다만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신 나와의 관계는 무조건 비밀로 함구할 수 있게……
안전장치 역시 만들어둬야했다.
이어서 김우현에 대한 설정도 몇 개를 넣었다.
끝까지 나를 신뢰하고 또 여자친구인 우다영을 의심치 않도록 말이다.
써내려가면서도 헛웃음이 계속 나왔다.
보통이라면 망상에 그쳐야 했을 설정들, 야설에서조차 나오지 않을 그런.
"근데 최면야설 같은게 있나?"
근원적인 질문.
야설을 읽을 기회가 없다보니 막연하게 그런게 있나 싶기도 했다.
"설정은 이정도면 됐고."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한 번 더 검수를 할 생각으로 공책을 접었다.
이제 남은건 이 설정들을 녹여서 한 명의 인생을 바꿀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와 설정들이 필요했다.
§
우다영.
''흐음…….최근에 이상하단 말이지……
점심을 먹고서 남친인 우현이와 카페에 잠시 나왔는데 자꾸 신경쓰이는게 있었다.
"뭐가?,’
커피를 들고 온 우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가 가져온 커피를 들고서 진지하게 신경쓰이는걸 말했다.
''요즘에 시우가 엄청 이상하단 말이지? 원래 걔 여친한테 관심 없지 않았어?,’
"……그랬나?"
''친구잖아아. 왜 모르는거얌. 들어봐봐.,’
우다영은 눈썹을 좁히며 지금까지 알던 시우와 다른 모습을 말했다.
''요새 소율씨하고 매일 같이 퇴근하고 붙어다니지 않아?"
"애인이잖아."
''원래는 안 그랬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리고……. 자꾸 우리한테 이상한거 물어보기도 하고."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남자친구가 답답했다.
''아니이, 우리 처음 만난 날하고 데이트 한 날이랑 간 곳이랑 다 물어보잖아아." ''그거? 소율씨하고 가려고 물어보는거라던데?"
왜 어울리지도 않게 스윗남을 자처하는지 의심스러웠다.
그걸 본 김우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핫! 왜에, 시우가 그럴 수도 있지. 진짜 좋아하는게 보이던데.,’
"흐음……
"나는 보기 좋던데?"
우현이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진짜 마음에 들어서 그런건가 싶기도 했다.
''소율씨 얼굴도 엄청 작고 피부도 하얗고 애기 같은데 왜 시우를 좋아하지?,’
역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젠 8년 차가 된 친구로서 이해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우리가 못 보는 장점을 찾은게 아닐까?"
언제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우현의 대답에 입을 샐쭉하게 내밀었다.
"뭔가 있는데 분명히……
그녀의 의심은 며칠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제 24살이 된 애기 같은 소율씨한테 뭘 하려는건 아닌가 하고서 지켜봤다.
"소율아, 오다가 뽑았어."
카카오 프렌즈의 인형을 뽑아와 건네는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쟤가 인형을……?"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는 전혀 달라서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인형을 사다준다던지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온다던지 하는 행위들이 었다.
''애기들 귤 좋아해? 이거 집에 갈 때 가져가."
어느 날은 귤 두 박스를 사오더 니 한 박스는 소율씨에게 주고서 다른 한 박스는 회의용 테이블에 올려놔 누구든 먹을 수 있 게 했다.
"……약을 먹었나……?"
그게 아니면 혹시 소율씨한테 최면을 당한건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쉬고 있는 시우에게 다가가 툭 쳤다.
"야, 시우야."
"왜, 뭐, 왜."
반응하는걸 보면 평소 알고 있는 그 녀석이 맞았다.
우다영이 일하고 있는 임소율을 힐끔 본 다음에 시우를 쳐다봤다.
''소율씨한테 므r 대하고 그런건 아니지?,’
''소율씨가 막 순진하니까 이용하고 그런거……아니지 ……?"
의심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니 내려다보던 시우의 표정이 변했다.
한심, 경멸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뭐야, 시우. 그 표정 뭐야, 뭐야."
''내가 쓰레기냐? 진짜 좋아해서 만나는건데."
''스읍, 그럴 애가아닌데.,’
우다영의 의심에 시우가 손을 들어 이마를 쿡 하고 찔렀다.
"앗!"
"나는 이제 바꼈어. 평화를 사랑하기로 했어."
"……뭐래."
''그래서 뭐가 불만인데, 내가 여친 생긴게 불만이여?,’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딱히 대답할게 없었다.
''소율씨한테 잘해줘."
"걱정마, 너 덕분에 막 급하거나 그러진 않어."
어떤 의미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게 뭔 소리야?"
"그런게 있어."
"아뭔데, 말해줘어. 뭔데뭔데."
궁금해서 시우의 등짝을 팍팍하고 때렸다.
"야! 우현아, 얘 좀 데리고가라, 얘 이상해.,'
"아니거든. 안 이상하거든.,'
다시 자리에 돌아온 우다영은 턱을 괴고서 일전에 일을 생각했다.
대학 시절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줬었는데 겨우 두 달도 안 되어서 헤어졌던 경험이 있었다.
관심은 없는데 관계 때문에 만난거 같다는 얘기를 친구한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거기에 그가 보여줬던 가벼운 모습에 그런 이미지가 굳어진 느낌이었다.
만약 우현이가 아니었다면 시우하고 친해질 계기나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여전히 지켜보았지만 변함없이 항상 소율이와 함께 다니고 있었다.
"……진짜 잘 챙겨주네.,'
빨대를 물고서 말을 하니 옆에서 커피를 휘휘 젓고 있던 우현이가 흐뭇하게 저 둘을 보며 말했다.
"진짜 좋아하나보다, 시우가 저러는거 처음 봤어.'’ H
"시우한테 너무 그러지마, 다영아."
다시 며칠이 지나고 3월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왔을 때에서야 겨우 둘의 관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으로는 인정을 일찍이 했지만 머리가 인정을 못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넘어간 3월.
시우와 소율씨에게 갔던 관심이 사그라지고 어느덧 회사도 자리를 잡아 안정적인 흑자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을 때였다. 아직도 밤에는 추웠지만 낮에는 봄바람이 훌쩍 다가왔음을 알리는 따스함이 있었다.
일을 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린 가게에서 맞은편에 앉은 김우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했다.
"다영아."
"응? 왜?"
음식이 언제나오나 뚫어져라 쳐 다보고 있는데 다정한 손길로 다영이 의 손을 잡은 우현이가 말했다.
"우리 결혼할래?"
"그래, 좋아.,’
음식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탓에 대답을 해놓고도 3초 정도 멍하니 있었다.
곧 질문이 머릿속에서 이해가 됐을 때 고개를 돌려 우현이를 쳐다봤다.
"……내 말 제대로 들은거 맞지? 다영아."
"어…, 어……? 결혼……?”
그녀의 대답에 우현이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회사도 안정적이고 앞으로 프로모션도 받기로 했고……. 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서. 생각보다 빠르긴 한데
그의 프로포즈에 손을 꽉 붙잡았다.
"으씨…, 우현아아〜. 프로포즈를 백반집에서 하는게 어딨어어!',
"아…, 그, 그런가?"
민망해하는 우현이를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원래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런 친구였다.
평범하지만 평범함 속에 보이는 따스함과 다정함 눈빛 속에 보이는 사랑은 그녀를 안정되게 만들었다.
오래 사귀었으니 막연하게 언젠가 결혼을 하겠지,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 고백 한다고 했었으니 몇 년은 더 있어야겠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좋아. 결혼 나랑 할거야?"
"응, 난 다영이랑 했으면 하는데."
"당연하지.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돼."
그러면서 붙잡은 손을 끌어서 두 손으로 감싸고 그 위에 턱을 얹고 헤실헤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