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소율.
며칠 전만 하더라도 퀭하게 수척해져서 온 남시우를 보고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지만 딱히 그런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시 얼굴에 화색이 돌고 괜찮아졌으니 말이다.
"오빠한테 절대 떼쓰거나 그러면 안 돼, 알았지?"
" 네에〜."
쌍둥이 남매가 해맑게 웃었다.
임소율은 나이차이가 심하게 나는 동생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녀가 꿈도 희 망도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 었다.
"근데 형은 언제 와?"
"오고 있다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밖에 추우니까. 자."
남동생의 옷매무새를 단단히 여 며주었다.
동생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누나, 언니 그 이상의 존재였다.
텅텅!
철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나보다."
임소율이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낡은 거울을 쳐다봤다.
왠지 못생겨 보이는 것 같고 그랬다.
옷이 없어 학창시절 입었던 떡볶이 코트에 안에는 트위드 원피스를 입었다.
"……하, 학생 같진 않겠지?"
23살인 그녀가 애 처럼 보일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언니이~,빨리이〜."
옆에서 빨리 문을 열라며 여동생이 재촉했다.
"아, 알았어."
낮은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서 문을 열었다.
" 안녕〜."
문 앞에 있는 남시우는 하얀색의 숏패딩과 맨투맨 평범한 청바지였다.
임소율에겐 패션 같은건 상관이 없었다. 오직 그녀의 눈엔 웃고 있는 남시우의 얼굴만이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쉬셔야하는데."
"아냐, 뭐. 집에 있으면 어차피 할 것도 없어. 얘들아〜, 안녕〜."
뒤에 쪼르르 달려나온 애들을 보며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 손으로 번쩍 둘을 안아든 그가 약간은 무거운지 버거운 얼굴을 했다.
"애, 애들이 빠, 빨리 크나보다?"
"옷도 두껍게 입어서 조금……. 무겁죠?,’
그의 귀여움에 입을 가리고서 숨죽여 웃었다.
"조금 무겁네. 자, 내려줄게."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임소율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오늘 갈 곳은 정했어?,’
"알아보려고 했는데 아는 곳이 없어서요."
"그럴 줄알았지."
"죄송해요."
이번엔 임소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내가 알아둔데 있으니까글로 가자."
"아..., 네."
정말로 알아보려고 했지만 아는 곳이 없었다.
평소에 좀 다녀볼걸 하고 후회를 해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식물원 같은거 좋아해?"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흐음. 애들도 있으니까. 놀이공원 가보려고 했는데, 비싸드라."
임소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쳐다봤다.
"놀이공원을 생각하셨어요?,’
"그래, 너도 안가봤을거아니야."
"……네."
애들의 손을 붙잡고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면서 살짝 다가온 그.
옆에서 나는 그의 냄새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중에 그럼 둘이서가볼래?,’ I!
임소율이 우뚝 멈춰서서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난색한 얼굴을 하며 손을 저었다.
’’역시 좀 그렇지? 농담이다 농담." n
"걱정마, 나랑 만나달라거나 그런거 안 할게."
오히려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걸 그는 알까?
스윽.
손을 내밀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
뒤돌아보는 그에게 까치발로 서서 말했다.
"둘이 가요.,’
"S? 그래도 돼? 괜히 나 같은 애랑 사귄다고 오해받고 그럴텐데.’'
난감해하면서도 배려하는 그의 모습에 수줍게 미소를 띠고서 말 만큼은 단호하게 말했다.
"오해 받고 싶어서요."
"••••••와우.,’
23살의 다른 또래에 비해 경험이 현저히 부족한 그녀였기에 표현을 하는 방식이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공장에서 에둘러 표현을 하면 다들 오해를 하곤 했으니 현장에서 터득한 말투였다.
취익.
식물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동생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밖을 여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대화는 이어가고 싶은데 뭘 주제로 꺼내야할지 몰랐다.
"그러게. 아, 기다려봐."
it 2”
갑자기 그가 등에 맨 가방을 열더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이번에 선물 받은거거든."
"아……
"출사해서 사진 찍는 것도 가르쳐줄게. 괜찮지?"
그와 함께하는거라면 뭐든 좋았다.
"네, 선배랑 하는거면 다 좋아요."
그리고 입 밖에 내는걸 꺼리지 않았다.
"••••••와우.,'
다시 나오는 그의 감탄사. 처음엔 왜 그러나 했는데 주변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걸 보면서 왠지 민망해졌다. 다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소율아."
"네?"
"생각보다 되게 적극적이구나.,’
今\\
역시 이유는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민망해지는건 마찬가지였다.
"선배는 여기 식물원 가본 적 있어요?"
화제를 바꾸기 위해 말을 돌렸다.
"응, 저번에 한 번 갔었지. 괜찮아보이더라고. 가족단위로 많이 오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누구랑 갔는지 궁금해졌다.
"가족분들이랑……
"음, 가족은가족이었지?"
2”
뜻을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지금은 가족이 아니라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주차장 앞에 도착하고서 내렸다.
"얘들아, 여기봐봐."
주차장에서 입구로 가려고 할 때 그가 손을 흔들었다.
"여기 서봐. 가족끼리 한장 찍어줄게."
방방 뛰며 임소율에게 붙는 애들.
사진을 찍는다니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까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네……
핸드폰으로 남긴 적은 있어도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서 본 적은 없었다.
찰칵.
"그리고소율아, 너 혼자서봐."
"저 혼자요?"
남시우가 활짝 웃으며 뒤를 가리 켰다.
"배경 이쁘잖아.',
식물원 입구 옆으로 있 새로 지은 카페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찰칵.
"선배도……
"나는 괜찮아. 너네 찍어줄려고 온거니까."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소중히 넣은 그가 다가와 어깨를 툭하고 쳤다.
"나중에 사진찍는거 가르쳐줄게 그때 잘 배워서 찍어줘."
"네."
그와 같이 있을 시간을 약속으로 잡는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다.
"가족들끼리 많이 왔네."
그의 말마따나 식물원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다.
그걸 보면서 임소율은 혼자 발칙한 상상을 했다.
'나도 선배랑 부부로 보이려나……
동생들이 많이 어리니 어쩌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수도 있었다.
과연 선배는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했다.
"무슨 생각해?"
먼저 애들을 케어하며 들어가던 그의 질문에 생각하던걸 필터링 없이 내뱉었다.
"선배랑 부부처럼 보였으면 해서요."
IV
”……왜요."
그런 생각쯤이야 할 수 있는거 아닌가 싶었다.
"……그, 혹시 말 할 때 민망하다거나 그런건 없어?" "네, 왜요. 선배랑 계속 같이 있고 싶고 그러는데……. 아……
그제야 지금까지 왜 이유도 없이 민망해졌는지 이유를 알았다.
선배의 입장에서는 대놓고 고백을 하고 있는거나 다름이 없었다.
펑하고 얼굴이 터질 것 처럼 낯이 뜨거워졌다.
"죄, 죄송해요."
"응? 죄송할건 없는데. 예쁜 소율이가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 나야."
"그럼……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남시우의 말을 황급히 끊었다.
"선배가 좋은거지 다른 사람은 생각 없어요.,’
민망한건 둘 째 치고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말해야 직성이 풀렸다.
"내가 그렇게 좋냐?"
그가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 전에도 말 했었는데요. 까먹은거 아니죠."
"까먹을리가 있냐. 흐음……, 시나리오 영향인가 뭐지."
끝에 뭐라고 중얼거 리긴 했는데 못 들었다.
"흐음, 근데 소율아. 고백이 왜 이렇게 무드가 읍냐."
기!
"그래, 원래 그런 애였지.,’
시우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잡아도 돼요?,’
내민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싫어?"
"아뇨."
덥썩.
매번 다가가지 못해 소매만 붙잡던 임소율은 손이 떠날까 황급히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그래도 확실하게 대답해줘요. 선배는 저 좋아해요?"
"으〜 " 1= •
시선을 피하는 그를 보며 새초롬하게 째려봤다.
"놀리는거에요? 아니면 진짜 마음 없는데 제 고백에 마지못해 받는거에요."
"놀리는거고 사귀자는 대답이지."
그가 싱긋 웃으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옅은 한숨을 내쉬 며 말했다.
"근데 무슨 사귀는게 이러냐. 오늘 동생들하고 같이 놀고 사진 찍는게 목적이었는데."
"아…. 그…. 제가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봐서 고백 하는 방법 몰라요."
좋아하면 그냥 고백하면 되는거 아닌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임소율이었다.
"아, 아니, 좋아하면 고백하는게 맞긴한데 뭔가……. 너무 그 뭐랄까. 스읍, 이런건 예상하지 못해서."
그 몇 달 사이에 익숙해진 시나리오 안에서는 모든게 그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였다.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풋, 뭐 상관없긴 해. 여튼."
그가 손을 잡아당기더 니 손등에 입을 맞추고서 싱긋 웃었다.
"내 여친 된거 축하해. 나도 소율이 남친된거 축하할게."
"그게 뭐에요."
"잘 부탁한다는 거지."
둘이 그러고 있을 때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생이 말했다.
"왜 자꾸 여기 서있어〜?! 안에 들어가자아!"
동생의 말에 둘이 동시에 빵하고 터졌다.
먼저 달려가는 동생들을 보는데 시우가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저녁엔 우리 둘이 놀까?"
대답 대신에 작은 고갯짓으로 대답을 웃비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의 말 : 순애를 바라시는 분들이 많길래 넣어봤& 사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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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닌 임소율의 뜬금없는 고백에 사귀게 되었으니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흐음, 우리 사귀는거 맞지?"
신나서 뛰어가는 동생들을 뒤에서 따라 걸어가며 물었다.
"네, 맞아요."
임소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봤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이 애는 참 단호하게 세상을 살아온 것 같았다.
"그러면."
나를 귀엽게 올려다보는 임소율을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잡자."
손을 내밀자 임소율이 얼굴을 붉혔다.
"읭, 고백할 땐 그렇게 상여자더 니 왜 손 잡자고 하니까 얼굴 빨개져."
"민망해서요."
역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여튼 내가 내민 손을 붙잡은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속도를 같이 해 나란히 걸었다.
내 손에 잡힌 임소율의 손은 매우 조그마해서 보호본능을 저절로 일으켰다.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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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
같이 걷던 그녀가 쌀쌀한 바람에 단발을 찰랑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맨날 고맙다고 하드라. 받은게 너무 많아서요.
23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성숙한 느낌이었다.
하기사 그럴만도 한게 그녀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었기에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달동네에서 부모 없이 어린 동생들과 할머니만이 남아 있었으니 그녀가 소녀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았을테니.
’’그렇게 고마우면 조금있다가
진지하게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녁에 볼에 뽀뽀나 해줘."
화악!
그러자 아까보다도 더 붉게 얼굴을 물들였다.
"알았어요."
와중에도 단호하게 말하는게 귀여웠다.
"카페에서 따뜻한거라도 들고 걷자. 얘들아〜. 형이 마있는거 사줄게〜. 일루와봐〜.’’
애들과 같이 카페에 들려 따뜻한 차와 커피 그리고 애들이 먹을 쿠키를 사서 나왔다.
’’여기 중앙에 동산 하나 있는데 거기가 뷰가 괜찮아/,
겨울이라 앙상한 것만 뺀다면 말이다. 우다희와 왔던 그 장소였다.
"흐음."
구석진 자리를 보며 저기서 우다희가 입으로 빨아줬던게 생각났다.
스윽.
임소율을 쳐다봤다. 만약 시나리오 없이 부탁을 한다면 과연 들어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그녀는 아직 첫 경험 조차 하지 않은 상태.
당연히 지금은 불가능했다.
"코 내밀어. 자."
임소율은 콧물이 나오는 동생들 앞에 쪼그려 앉아 가져온 티슈로 닦아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연애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새 스케치북이란 얘기였고 내가 그리는대로 그려질 거란게 가장 좋았 다.
거기에 플러스로 나에게 많은 부분을 감사해하고 있었다.
항상 일이 끝나면 시나리오를 써대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대충 윤곽이 잡혔다.
그녀를 어떤식으로 조교할지.
작은 것들 하나하나까지 도움을 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스토리라인이 그려졌다.
"얘들아, 이거 먹어봐."
코를 닦아 앙증맞은 미소를 짓는 애들을 앉혀놓고 따뜻한 음료와 쿠키를 내밀었다.
내 옆에 앉은 임소율도 차를 홀짝였다.
시나리오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이라 더 적응이 안 되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인 이후에는 더 돌아다니며 여러 사진들로 추억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