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소율.
2주만 지나면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꾸며놓은 것들이 보였다.
[징글벨〜]
버스 안에서 나오는 라디오에서도 크리스마스 관련된 노래들이 간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리스마스를 챙긴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시간에도 항상 일을 했었으니까.
챙기더라도 가족들끼리 소소하게 챙기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역시 별로 다를 일 없는 하루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머릿속에 남시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둘이 밥을 또 다시 먹는다면 크리스마스가 좋지 않을까.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 없었던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상상해보았다.
취익.
망상에 빠진 사이 어느덧 도착한 정류장.
버스에서 내려 회사를 향해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등을 톡하고 치며 물었다.
"저기요!"
기!
몸을 돌리니 낯선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굉장히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혹시남자친구 있으세요?"
"아뇨."
"후아…, 다행이다. 지금 출근하시는거죠?"
"네."
뭐 때문에 묻는건가 싶을 때.
"그럼 퇴근하고 저랑 저녁 같이 드실래요? 버스에서부터 봤는데 너무 제 이상형이셔서 따라서 내렸거든요."
그가 기대에 찬 눈으로 보고 있었다.
"싫어요."
물론 해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단호하게 딱 잘린 말을 그가 어떻게든 이어붙이려 애를 썼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싫어요."
옛날에는 이런 물음을 받으면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다.
자신이 연애를 하게 되면 돈을 모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건 남시우였다.
"저랑한 번 만나보고도 싫으시면 그때 거절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대로 놓치면 진짜 안 될 것 같아서요. 원래 질척이는 사 람은 아닌데……
아마 출근을 하는건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이상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임소율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다시 한 번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려 할 때 그의 뒤에서 저멀리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세상 귀찮은 듯 다가오는 남시우의 모습에 순간 얼른 숨고 싶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급하게 말했다.
"안 돼요 저 빨리 출근해야 돼요!"
얼음처럼 차가운 대답만 하던 그녀가 얼굴의 표정이 크게 바뀌며 급하게 몸을 돌려 뛰었다.
"아
홀로 남은 그만 멋쩍게 뛰어가는 임소율의 등만 바라봤다.
저벅저벅.
그런 그의 옆으로 남시우가 지나갔다.
"흐음."
눈치가 보인다. 옆에 앉은 임소율 때문이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한데 그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적인 부분이라면 대놓고 물어봤을텐데 그건 아닌 듯 했다.
"뭔데요."
"아, 아니에요."
"……고민 있으면 말해봐요. 들어드릴게요."
"그런거 아니에요.',
딱 잘라 말을 해주니 나만 뻘쭘했다.
여기서 끝나면 좋은데 자꾸 평소랑 다르게 눈치를 살피니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뭐 잘못했나 싶어서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어제 푹 자고 평범하게 출근을 했을 뿐이었다.
"……킁킁.’'
냄새가 나나 싶어 맡아봤지만 샤워도 했고 옷도 빨았다.
섬유유연제 냄새만 잘 나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뭐 어쩌라고'라는 눈빛을 보냈을텐데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스읍, 뭔데요, 자꾸 눈치 보고."
"……아침에 보셨나요."
"••••••뭘요."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돌이켜봤지만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아침이라면 시나리오 구성 때문에 멍한 상태였을테니 기억나는게 없었다.
"아뇨, 뭐 있었어요?,’
n I
내가 뭘 모르는 것 같자 갑자기 환해지는 얼굴.
"아니, 씁,뭔데. 더 궁금해지게."
"히…. 아니에요."
"……엥? 뭐여, 왜 웃는겨."
임소율이 잠시 주변 눈치를 보더니 내게 슬며시 말했다.
"크리스마스때 뭐 하세요?"
"……집에 있겠슈."
물론 임소율과.
"그, 그럼 저랑 밥 먹으실래요? 둘이…… n
o’-
이 정도면 거의 대놓고 날 좋아한다고 홍보하는거 나 다름이 없었다.
턱을 괴고서 그녀를 뚫어져라 쳐 다봤다.
" 소율씨〜."
"네?"
"저 좋아하죠?"
그 말을 하자마자 동공이 크게 떠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싹 사라지며 냉소적인 얼굴을 했다.
"아닐걸요."
평소라면 단호하게 잘랐을 말일텐데 애매하게 대답을 했다.
"그래요? 그럼 말구요."
이미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럼 됐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니 얼굴에 동요가 있었다.
얘처럼 알기 쉬운 애는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럼 크리스마스 때 둘이 같이 밥이라도 먹죠."
어차피 먹을테지만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한 주 앞으로 다가온 12월 어느 날.
"오케이, 완성."
드디어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
오랜만에 데이트 스케쥴을 짜듯 철저하게 연애하는 듯한 시나리오로 구성했다.
"기왕 연애 시나리오로 갈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컨셉은……
컨셉은 사귄지 얼마 안된 연인.
"내가 몇 번 찼지만 소율이가 대쉬해서 사귄 케이스로 하고……
몇 개의 디테일한 설정들을 추가하긴 했지만 세계관 자체는 바뀐게 없었다. 오글거리는 로코 같은 스토리였지만 이런것도 크리스마스 시즌엔 괜찮지 않을까.
정리한 시나리오를 북에 옮겨적기 시작했다.
"이건적을때마다 개빡치네.’,
하필 능력을 만들어도 북으로 만들어서 나만 고생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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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의 말 : 이번 에피는 순애 입니다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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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율.
살면서 이렇게 용기를 내본 적이 있을까.
터질 것 처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앞에 서 있는 남시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선배님 좋아해요."
"응? 갑자기? 그래, 고맙다."
그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을 해왔다.
여자가 아니라 후배 혹은 어린 동생쯤으로 보고 있는걸 그녀도 알 수 있었다.
"지금고백하는거에요."
그녀의 말에 당황하는게 보였다. 한 번도 마음을 티낸 적이 없었기에 그럴만도 했다.
"에이, 너 처럼 예쁜 애가 나를 좋아할리가 없잖아."
진심을 담아 말을 했으나 그는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진심이에요."
한 번 더 강조를 하자 그제야 그가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진심으로 고백하는거야?,’
"네."
"푸핫, 너 답다."
너 답다는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텁.
머리에 손을 올려 헝클어뜨리고는 그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네 진심에 너무 고맙고 감사한데, 지금은 여자친구 만들 생각이 없어서……, 그리고 나 그렇게 착한 놈은 아니야. 지금까 지 여자친구도 몇 있었고."
’’그건 상관없어요."
자신이 처음이기에 또 나이가 어리기에 배려를 해주는 말 처럼 들렸다.
남시우가 전에 만났던 여자들도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봤던 말 처럼 마지막에 가지는 사람이 이기는거니까.
"어, 그리고…, 아, 그래. 좀 내가 변태기도 하고."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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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같다고 하더라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 번 사랑에 빠지면 다른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정말 감당 가능하겠어? 나 그렇게 착한 놈 아니라니까 그러네.',
"자꾸 거절하지마세요."
임소율은 확답을 받기 위해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흐음…, 그, 그래. 그러면……
남시우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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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악수를 청하며 씨익 웃었다.
"그럼 오늘부터 잘 부탁해, 소율아. 고백해줘서 고맙다."
안그래도 빠르던 심장이 더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기쁜데 울컥도 하고 하늘에 붕 뜨는 기분. 모든걸 다 이뤄냈다는 그런 기쁨의 환희가 그녀를 감쌌다.
"……네.’'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한 후에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추운겨울 그의 손은 난로처럼 너무나도 따뜻해 추위마저 다 녹여주는 듯 했다.
§
막상 고백을 받아보니 이것도 나름 신선하니 재밌었다.
•'생각해보니까 고백받아보는건 처음이네."
여자한테 고백을 받아본 적이 없다보니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여튼.,’
지금까지 해왔던 시나리오에 비하면 너무 순한 맛이었다.
평범하게 연애를 하는 그런 시나리오.
출근을 하면 임소율이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보며 미세하게 웃는걸 자주 볼 수 있었다.
"퇴근하면 이 앞에 맛있는 집 있다는데 거기 가보자.', "네."
캐릭터를 바꾸지 않으니 그녀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왔다.
사귀고 있는데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단답이 자주 나오긴 했다.
퇴근한 후에 여전히 단답을 하는 임소율을 쳐다봤다.
"왜요?"
"아니, 그냥. 이뻐서." n it
대답대신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릴 뿐이었다.
스윽.
처음 그녀에게 고백을 받은 날 처럼 손을 내밀었다.
"손 잡자."
”아, 네."
내 손에 너무나도 작은 그녀의 손이 들어왔다. 너무나 아담하고 조그마한 손이었다. 깍지를 끼고서 평범하게 거리를 걸었다.
"근데 내가 왜 좋았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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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해줬으면 하는데에그럼 나랑 왜 사귀는지 나는 모르잖아."
"……좋아서요.’,
끝?
이런건 대사로 좀 넣어놓을걸 하고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어른스러워서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나이만 있었지 철은 없었거든요."
그녀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나도 철이 없는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나랑 처음 사귀는거지?"
"네, 맞아요."
남은 한 손으로 볼을 긁적였다. 막상 이런 식이 되어버리니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선배님."
"응?"
그녀가 가기로 했던 가게를 가리켰다.
"저기 맞죠?"
"어어, 그치. 가자. 아, 그리고 밖에서는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돼."
”……네, 오빠."
부끄러운건지 고개를 자꾸 옆으로 피하며 말을 했다.
애교가 많은건 아니지만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커플 셋트로 해서 시키자."
스테이크가 나오는데 임소율이 앉아서 가만히 지켜봤다.
"이런데 처음와봤어?"
"네."
"줘봐, 내가 썰어줄게."
"아…, 그…. 네…."
표현들을 하지만 그게 너무 미약해서 자세히 보는게 아니면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였다면 아마 실제로 사귀는건 힘들것 같았다.
"자, 먹어봐. 여기 가격도 괜찮고 맛있어.,’
모든 연인들이 하듯 퇴근 후 같이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눌 뿐이었다.
문제는 거의 모든 얘기를 내가 한다는 거였다.
"별로 재미없어?"
"아, 아뇨. 재밌어요."
"……티 좀내라. 나 싫어하는것 같잖어.'’
"그건 절대 아니에요. 좋아해요, 선배. 오빠."
날 좋아한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를 오롯이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확신을 갖고 있는 부분에서는 물러섬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저기 뭐냐 그럼 티 좀 내라.,’
"네, 그럴게요."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근처 카페라도 갈래?"
시간을 본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게가면……
"구래〜. 동생들이 기다리지? 그럼 내일 회사에서 보자." "네…, 다음에 같이……
임소율이 아랫입술을 물었다. 다음에 둘이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니면 크리스마스 이브 때 같이 여행이라도 갈래?" "여행이요?" "역시 힘들겠지?" "아….'’
내가 체념한듯 말을 하니 마음에 무게가 얹어진 임소율이 고개를 저었다.
"하, 하루 정도는……
"풋, 그래. 이브 때 내가 너네 집으로 갈게." "네에…."
저녁만 먹을 뿐인 데이트가 끝이 났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손을 잡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리며 내렸다.
"오, 눈이네."
내가 손을 내밀자 그 위로 눈꽃이 올라와 사르르 녹았다. 깍지를 끼고 있던 임소율의 손도 펼쳐서 손을 내밀어주었다.
"눈 예쁘지?,'
"……네."
H 왜 나만 봐. 눈을 봐야지.,’ n ri
말로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온 몸의 예민함이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취익.
눈을 뚫고 온 버스가 앞에 멈춰섰다. 그녀가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슬며시 껴안았다.
’’오늘도 재밌었어, 조심히 들어가렴."
내 품이 좋았는지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가 놓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빠."
버스에 올라탄 그녀가 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확실히 느낀건 연애를 하면 몽글거리고 애틋한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게 장점이었고 이 미친짓을 매일 해줘야하는게 단점이었다.
’’어후, 그나마 연애를 해서 결혼하면 다행이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