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72/126)

§

"흐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도 시골이긴 한데……

턱을 괴고 버스의 창가를 바라봤다. 어째서 임소율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또 배우려 하는지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 다.

"어린데도 기특하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리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도 이제는 알았다.

그런 애를 시나리오 북으로 괜히 건드린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흐음."

그것도 잠시 내가 벼룩의 간을 빼먹은 것도 아니고 돈을 받은 적은 없으니 뭐 상관없겠지라고 합리화를 했다.

다만 앞으로 시 나리오를 쓸 때 돈에 관해서는 임소율을 빼야할 것 같았다.

항상 스스로 돌아볼 때 쓰레기 라고 생각하긴 하지 만 조금의 양심은 남아있었기 때문이 었다.

§

며칠 후.

12월의 중반을 지 나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여자친구 안 만드냐〜?,’

또 심심한건지 파티션에 팔을 걸친 우다영이 시비를 걸었다.

"여자친구 생각 읍다고."

"구래? 내 친구 소개 받아볼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만?"

어깨를 으쓱하며 못 이기는 척 물었다.

"그래서 예쁘냐? 사진은."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진짜 애가 착하고 귀엽거든?,’

"……뒤질래?"

사진을 보자마자 뱉은 한 마디에 충격을 먹은 얼굴이었다.

"아, 왜. 이쁘잖아. 애교도 많고, 현모양처 스타일이야. 남자친구한테 진짜 헌신적이고."

외모로 모든걸 판단하지는 않는다. 나도 거울을 볼 때 가끔 이 정도면 뭐 괜찮네하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으니까.

"싫어. 나는 조금 마른게 좋아."

"이 정도면 통통 정도아니야?" "……너 눈까리가 삔겨?" "내친구 욕하지마라〜."

나는 눈썹을 긁적이며 말했다.

"여튼 난 괜찮어, 여소 받을 생각 1도 없음요." "아, 진짜? 진짜 예쁜데……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 마디 거들었다.

"응, 진짜 이쁜데 내 스타일이 아닌거지."

"아쉽다아."

아쉬워 하는게 눈에 보였다.

"아니, 그리고 다시는 여소 안 해준다며."

" 그렇긴한데. 그래도.,’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는게 좀 무서웠다.

이러다가 강제로 소개팅 자리라도 잡힐까봐서 말이다.

"선배님……

임소율이 조용히 찾아와서는 내가 맡긴 PPT를 뽑아서 가져왔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자료를 보면서 찬찬히 읽어볼 때 그녀가 물었다.

"소개팅 받을 거에여?"

"응? 들었어? 아니, 안 받아."

..아...

혼자 있을 땐 항상 냉소적인 표정을 짓던 녀석이 살짝 미소를 띠었다.

아무리봐도 나한테 호감이 있는게 눈에 보였다.

우다영이 소개시켜준다는 애 보다 몇 배는 임소율이 훨씬 나았다.

"그건 왜요?"

그러고보니 내가 존댓말을 했는지 반말을 했는지 시나리오 북 때문에 자꾸 헷갈렸다.

"아뇨, 그냥 구, 궁금해서요."

궁금하다고 넘기더니 이내 다른걸 물었다.

"병문안 오신거……, 보답 해드리고 싶은데요."

전부터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확신이었다.

"밥 사준다고 한거? 에이〜, 됐어요. 동생들이랑 맛있는거 사 먹어요."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손가락이 꼬물거리는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티가 나는건 당연했기에 최대한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면 동생들하고 같이 먹죠."

’’애들도 먹고 싶어할 거 아니에요. 언니가 사준다면 좋아할텐데."

"아…. 네, 네."

날짜를 잡는건 쉬웠다.

이번 주토요일.

§

임소율.

"얘들아, 얼른 옷 입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신나서 작은 방을 뛰돌아다니는 애들을 강제로 붙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싫어어~,물차갑단 말이야시"

남동생이 칭얼댔지만 끓여서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세숫대야에 붓고서 찬물로 적당히 따뜻한 물로 만들었다.

촤악

싫어하는 애들을 붙잡고 겨우 씻긴 후에야 식은 물로 급히 준비할 수 있었다.

위이이잉.

자신의 머리를 말리기 전에 다시 애들을 붙잡고서 머리를 말려주고 옷까지 입혀줘야했다.

"우리 맛있는거 먹으러가는거야?,’

"그래, 전에 봤던 언니 친구 있지? 같이 갈거야."

"아하

애들의 옷까지 입혀놓은 후에야 겨우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평소에 하는 화장보다 좀 더 집중해서 꾸미기 시작했다.

거의 굳어 버린 마스카라를 겨우 펴서 발랐다.

있는 화장품들 중 반은 굳어버 리거나 거의 다 사용한 화장품이었다.

새거가 있긴 하지만 고급 화장품은 아니었다.

그녀의 주머니 사정으로도 살 수 있는 싼 화장품이 었다.

"나가자."

애들의 손을 잡고서 달동네를 내려갔다.

"우왕〜."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애들은 신나서 방방 뛰었다.

둘이서 보고 싶은 속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동생들까지 챙겨주는 모습도 좋았다.

§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뭘 하든간에 좋아보이기는 하지.,'

나는 이마를 긁적이며 나른하게 일어나 코트를 챙겨입었다.

"어후, 추워."

니트 안에 기모티를 덧대 입긴 했어도 찬 바람 때문에 체감상 더 추웠다.

그녀를 데리고 가려는 곳은 그렇게 유명하거나 분위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냥 도심이나 시내에 있을 법한 프렌차이즈 밥집이었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저 멀리서 임소율이 애들의 손을 꼭 붙잡고 오는게 보였다. 손을 들어 흔들자 임소율이 꾸벅 인사했다.

애기가 애기들을 이끌고 오는 모습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

"뭐 먹고싶은거 있어?,'

"전다 괜찮아요."

"그게 제일 어려운겨. 햄버거 좋아해?’,

"아…, 네.'’

햄버거라는 말에 임소율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몸을 빙글 돌렸다.

"거기 아니야."

"네? 로, 롯데리아아니에요……?"

작은 임소율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붙잡고 빙글 돌렸다.

"여기로."

"……여기요?"

골목길을 보며 임소율이 의아해했다. 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서 햄버거란 말에 기대에 찬 눈빛을 했다.

"가자."

골목길 안에도 많은 음식점들이 있었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니 2층에 수제 햄버거집이 나왔다.

"들어가자, 춥다."

"아 네 "

서、, L브 •

주말이라 그런지 온통 커플들끼리 온 듯한 느낌이었다.

"너네도햄버거 좋아하지?"

"네에이"

애들이 옹기종기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옆에서 같이 보던 그녀가 움찔했다.

"너, 너무 비싸지 않나요? 햄버거 치고••••••

"한번 먹어봐. 한번도 안와봤어?"

"네."

내가 괜한걸 물은듯 했다.

메뉴를 고르고서 벨을 눌렀다.

"쉬림프 와사비마요로 2개랑 베이컨으로 2개 주세요."

주문을 해놓고 가만히 앉아 맞은편에 앉은 임소율과 애들을 봤다.

"애들도 좋아할겨."

"아, 네."

애들도 오랜만에 외출에 신나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왔습니다."

나온 커다란 햄버거를 보고는 임소율이 눈을 크게 떴다.

"이래서 비쌌구나."

"……굳이 그런건아닌데."

가운데에 꽂힌 나무를 뽑아내고서 칼로 썰었다.

"이렇게 썰어먹으면 돼. 들고 먹는게 더 맛있긴한데. 다흘릴걸."

"네."

여전히 단답인걸 보니 날 좋아하는게 진짠지도 살짝 헷갈렸다.

"얘들아 맛있냐."

"셍!"

"네에이"

음료까지 시켜서 애들에게 주니 작은 손으로 포크를 들고 고기를 폭 하고 찍었다.

"누나, 이거 진짜 맛있다아."

"그래?"

임소율이 나를 힐끔 봤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병문안 와주신거요. 오실 줄은 몰랐어요."

"아, 그르냐."

나이프를 든 손을 저으며 건성으로 답했다.

"아프다니까 간겨, 안 아팠음 안 갔지."

"……원래 안 아프면 안 오는게 정상 아닌가요?"

I!

가끔 말문을 막히게 할 때가 있긴 했다.

"그리고 이런 곳도 처음와봐요. 그래서 감사합니 다."

"……무슨 감사를 그렇게 하냐."

덤덤하게 무표정으로 말을 하니 감사인사를 받아도 괜히 뻘쭘했다.

"슬슬 일어날까?"

밖으로 나와 걷는데 그녀의 시선이 어떤 화장품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안에 있는 화장품에 시선이 머무르는걸 보니 아마 사고싶은 모양이었다.

"화장품 떨어졌어?"

"네, 괜찮으면 올리브영 가도 괜찮을까요?"

"네가 사고 싶은거 저거 아니냐?"

"비싸서요."

그래도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니 바로 알 수 있어서 그건 좋았다.

"사줄게."

"네? 아뇨! 괜찮아요."

"그래? 알았다."

또 단호하게 알았다고 하니 어깨에 바짝 들어갔던 힘이 쭉 빠졌다.

"프핫, 알기 쉽네. 사준다 할 때 사. 밥도 네가 샀잖아. 이건 내가 사줄게."

그리고 생각보다 값이 비싸다는걸 알았다.

결제를 하고 선물을 주는데 마음이 좀 쓰렸다.

"그냥 네 처음 가져간 값으로 하자."

처녀 값이라고 친다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나중에 우다희한테 또 다르게 뜯어내면 되 니 괜찮았다.

"앗, 감사합니 다."

"그럼 이제 뭐 할거야?,’

"아…."

딱 밥을 먹는 것 까지만 생각한 듯 했다.

잠시 그녀의 반응을 보니 나하고 더 있고 싶어하는 듯 했다.

"나중에 그럼 둘이서 밥 먹자.,’

"정말요?"

임소율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고양이 같은 얼굴로 기대에 차서 올려다보는데 생각보다 애가 얼굴이 작고 귀여워서 움찔했다.

"그, 그래. 진짜로."

11-1-1  이….

내가 확답을 주니 그녀가 잘 들리지도 않게 미소를 흘렸다.

"곧 눈 올 거 같은데 얼른 들가자, 춥다.’’

"네…."

임소율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에 애들과 함께 버스를 태워보냈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애들 둘이 공수 자세를 취하고서 꾸벅 인사했다.

누가봐도 유치원에서 배운 듯한 인사였다.

"프핫! 그래, 알았다."

애들을 보내고 난 후에 버스에 올라타 멍하니 있다가 길거리에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트리를 해놓은게 보였다.

"……아,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때 혼자 궁상을 떨 생각하니 우다영이나 우다희를 한 번 불러볼까 생각했다.

산타복을 입혀놓고 하면 재밌을 것 같긴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

o’ •

그것도 좋긴한데 막상 오늘 내 앞에서 수줍어하는 임소율이 자꾸 떠올랐다.

"스읍…. 한번 해볼까."

언제나 그렇듯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작업실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의 말 : 어제 다 써놓고 업로드 하는걸 까먹었어유 TTTT 후딱 한 편 더 써서 올리겠슴당 o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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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준비를 한건 당연히 크리스마스 때 입힐 복장이었다.

"진짜 많긴 하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가 산타걸 이벤트만 검색해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쭉 나왔다.

나는 감탄을 하며 명품을 고르듯 스크롤을 내리며 눈을 좁히고 집중을 했다.

"……내가 받을 이벤트를 내가 고르는게 웃기네, 시발거."

어이가 없어서 이마를 긁적였다.

여튼 그건 그거고 일단 산타걸 복장을 추려나갔다.

"이거 괜찮네, 이것도."

고른 것들 중에 또 엄선을 해 후보지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처음엔 망사로 주문을 할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소율이한테는 안어울리지.,’

대놓고 섹스어필을 하는 망사 재질의 산타걸 복장은 우다희라면 모를까 임소율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니걸 처럼 망사가 아닌 솜처럼 복슬복슬한 재질의 복장으로 추렸다.

빨간망토처럼 원툴로 되어있는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오픈숄더에 가슴을 꽉 모아주는 산타걸.

세트로 산타 모자가 있었고 그 끝에는 귀엽고 앙증맞게 솜뭉치가 매달려 있었다.

임소율에게는 아무리봐도 이게 가장 괜찮은 옷 같았다.

거기에 더해서 사이트들을 둘러보다보니 망사로 만들어진 검정색의 속옷이 보였다.

’’안에다 이거 덧대 입으면 개꼴리긴 하겠네.’,

속옷이라고는 하지만 겨우 밑가슴만 가려주는 브래지어라 유두가 다 보이고 팬티 역시 매우 얇고 가운데가 벌어져 있어서

바로 박을 수 있는 형태였다.

반응이 오는 아래를 꾸욱 눌러 진정을 시켜주며 곧바로 주문을 해버렸다.

"이런 천때기들이 왜 이렇게 비싸냐.,'

돈이 궁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까운 느낌이 들긴 했다.

나중에 우다희를 통해 뜯어낼 시나리오도 하나 짜놓을 생각이었다.

"이제 남은건 시나리온데……

써놓은 시나리오 중에 괜찮은게 있나 싶어 찾아봤다.

"흠……,다 빼앗는 것뿐이네……

대부분 자매를 위주로 써 놓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남편 혹은 남친 앞에서 또는 몰래 하는 내용들이었다.

"세계관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메소드 연기 역시 필요하진 않았다.

포인트를 굳이 쓰지 않아도 충분히 빌드업만 잘 한다면 몰입도를 올리는건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니까."

볼을 긁적이며 대충 낙서로 끄적였다.

점차 윤곽이 잡혀가는 시나리오.

사각사각.

쓰다보니 어째서인지 평범한 로맨스 코미디가 되어가고 있었다.

If VI

내 타락한 인성이 씻겨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버스 안에서는 개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면서 왔는데 말이다.

"아니지, 애초에 이것도 쓰레기 짓이긴 하지."

능력을 사용해 사귀는 것도 아니면서 한다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긴 했다.

"스읍, 너무 스토리가 착하고 순한데."

바로 전 시나리오도 그렇고 전에 펜션에 놀러갔었던 것도 그렇고 높은 수위로 몇 번 하다보니 이런 순애가 굉장히 순해 보 였다.

수정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가 그녀의 집이 떠올랐다.

"에이, 사는 것도 각박한 애한테……. 이번엔 제대로 좀 데이트도 해주고 해야겠네.,’

선심을 쓰는 척 말을 하며 시나리오의 시놉시스를 완성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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