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5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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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같이 서점에 간다길래 쌩뚱맞긴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건 다른 것보다 쓸모있는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연출도 연출인데... 일단 기본적으로 시나리오가 재밌어야 하니까는"

또 스케일이 너무 크면 내가 일일이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간단하면서도 재밌는 시나리오들이 뭐가 있을까.

"스읍, 아니면 야설들을 좀 찾아볼걸 그랬나"

아무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건 성인쪽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올만에 책 읽어보겠네"

대충 씻고 나와 소파에 비스듬히 걸터 앉아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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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율.

주말.

처음 받은 소중한 월급으로 오랜만에 장을 봤다.

"먹고 싶은거 골라"

언니의 말에 쌍둥이 동생들은 신나서 조막만한 손으로 과자를 집어들었다.

동생들을 돌볼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자신 밖에 없었으니 자신이 힘을 내야했다.

"다 골랐으면 가자~"

헤진 장바구니를 들고서 집으로 올라갔다.

"하아... 힘들어..."

가파른 계단은 매일 올라도 힘들었다.

밤중에는 생긴게 비슷비슷해 가끔 집이 헷갈릴때도 있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 한 평 남짓한 시멘트 앞마당을 지나 들어가면 회관에 놀러가신 할머니가 차려놓은 점심이 있었다.

"애들아. 손은 씻고 먹어야지!"

먹고 싶어하는 애들의 손에서 과자를 강제로 뺏고서 손을 씻게 했다.

"힝, 언니이~ 먹구 싶단 말이야"

"씻고.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이러면 친구들이 놀려"

"정말? 

"그래, 너도. 얼른"

성별이 다른 쌍둥이지만 하는짓은 똑같았다.

항상 둘이 붙어다닌 영향이었다.

그래도 뽀득뽀득 씻는 애들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가끔 자신도 결혼을 하면 동생들처럼 귀여운 아기를 낳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치야라고 되뇌이며 포기를 하곤했다.

"......."

우울한 생각을 하는데 왜 남시우의 얼굴이 떠오르는지는 몰랐다.

고개를 젓고서 애들이 먹을 과자를 뜯어주었다.

"여기 가만히 있어"

거실겸 주방의 좁은 공간에서 지난번에 선배가 사준책을 펼쳤다.

"책값 대신에 요리를 해줘야 하니까....."

스스로 핑계를 대며 선배에게 해줄 요리를 연습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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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주말임에도 나가지도 않고서 눕거나 때로는 앉아서 책을 겨우 다 읽었다.

워낙 빠르게 읽어서 머릿속에 남는 기억도 별로 없긴 했지만 그래도 감은 잡을 수 있었다.

"흠..... 세계 멸망하는 스토리는 솔직히 에바여"

아무리 생각해도 아포칼립스 안에서 시나리오를 짤 자신이 없었다.

그런건 디테일하게 적어야 하는데 내 손이 남아나질 않을것 같았다.

"....."

책을 다 읽고 느낀 점을 간략하게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준다면 차라리 사랑과 전쟁을 볼걸 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촥.

책을 옆으로 치워놓고 낙서용으로 샀던 공책을 펼쳤다.

안에는 무수히 많은 양의 시나리오들이 휘갈기듯 적혀져 있었다.

슥, 슥.

책장을 넘기며 쓸모 있는 시나리오들을 살펴보다가 나오지도 않는 답에 고개를 저었다.

섹스만을 위해 시나리오를 쓰기도 싫었고 그렇게 쓴다고 해도 평작 이상은 나오기가 힘들었다.

그런 내 고민은 며칠이 지나고나서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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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점심시간에 회사에 손님이 찾아왔다.

"흐응~ 안녕"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우다희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임소율은 원래 그랬듯 낯설어했지만 원유찬은 이제 가볍게 얘기를 나눌 정도는 되었다.

"안녕하세요, 형부"

우다영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우다희와 함께 온 남편인 최혁은 매일 운동을 하는 건지 여전히 구릿빛의 피부와 근육 때문에 옷이 땡땡했다.

후드티를 입었음에도 다부진 체격을 감출 수는 없었다.

"....."

우다희에게 했던 짓들을 들킨다면 저 근육에 쥐어 짜질걸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긴 했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이것 좀 먹어~"

아이돌 조공용 도시락이나 촬영현장에 배급하는거라 그런건지는 몰라도 알찬 도시락이었다.

"도시락이 굉장히 화려하네요"

원유찬의 말에 우다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흐흥~ 당연하지~. 나랑 남편이랑 같이 만들었어~ 시우도 받아~"

조용히 두개를 받아들고 임소율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회사 가운데에 잇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이번 주 주말에 갈 여행에 대해 계획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나랑 남편은 조금 일찍 출발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응? 왜? 한차로 가기로 했잖아~"

언니의 말에 입을 샐쭉 내미는 우다영.

"아~ 오빠가 오랜만에 휴가를 받는거라 둘이 데이트도 좀 하구 그럴려궁~"

"우리 차 없는데....."

"도착하면 우리가 태우러 갈게~ 어때?"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떠올린다고 여행간다는걸 잊고 있었다.

우다영을 맛본게 미안해서 이번만큼은 둘이 보내줄 생각을 했었기에 더더욱 여행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런 와중에 내 시선은 우다희의 옆에 있는 최혁에게로 향했다.

"흠....."

방금 떠오른 생각이 너무 쓰레기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흠"

너무한가 싶어서 관자놀이를 긁적여보았다.

아직은 준비할게 너무 많았다.

두달동안 실험해온 것들을 정리도 해야했고 또 적어둔 시나리오들이 전부 미완성된 작품들 뿐이었다.

섹스만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지만 괜히 등급을 만들어놔서 게임처럼 깨보고 싶게 만들어놨다.

"그럼 우린 가볼게~ 맛있게 먹으렴~"

얘기가 끝이 났는지 최혁의 팔짱을 낀 그녀가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시우도~ 열심히 해~"

"넵, 가세요"

나가는 둘에게 꾸벅 인사를 해주었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기억은 일적으로 마주친 것 밖에 없었다.

여름날 촬영을 위해 일적으로 만났을 뿐인 사이.

친한 누나 동생 사이지만 옆에 남편이 있으니 티를 크게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게 맞지"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사적으로 둘이 만난적도 없었고 만날 생각도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 안에서는 어떤 관계도 될수 있었다.

동생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는 누나. 혹은 섹파, 혹은 연인.

뭐든지 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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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농에서 패딩을 꺼내 행거에 걸쳐두고 가을에 걸쳤던 아노락이나 바람막이는 그대로 들고 나가 세탁소에 한번 싹 맡겼다.

"어후, 추워"

어깨를 웅크리고서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후우"

맨발인지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저 앞으로 부부가 편한 복장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보였다.

이곳 근처에도 회사가 제법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신혼부부가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다.

아파트가 낡았어도 서울까지 가기도 용이하고 근처에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합쳐져 있다보니 그런것 같았다.

"....."

그걸 보면서 딱히 부럽지는 않았다.

결혼이라는걸 생각을 깊게 해본적도 없었고 당장 여자친구가 궁한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 연애하는것도 귀찮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썸을 타고 알아가는 단계 자체가 귀찮았다.

하늘에서 뚝하고 몇년만나 편안한 관계인 여자친구가 갑자기 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툭툭.

담뱃재를 털고서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부부와 같은 엘레베이터에 타고 나니 남자의 주머니에 여자가 같이 손을 넣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띵.

곧 엘레베이터가 열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조금 부럽기는 하네"

의심 없이 기댈수 있는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부럽기도 했다.

풀썩.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눈을 감고 곰곰히 생각했다.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일어나서 앞서 적어놨던 시나리오들을 제쳐두고서 새로이 생각해낸 것들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내용은 여전히 쓰레기 같은 것 뿐이었지만.

"어....."

새벽쯤 정리를 끝내고 시나리오북을 열었을때 하나를 발견했다.

"벌써 열번째 시나리오네?"

두달동안 즐기다보니 벌써 열번째 시나리오가 눈앞에 와 있었다.

대충 앞 부분만 적어놓은후에 쏟아지는 잠에 취해 침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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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희.

남편의 일이 바빠서 놀러가지는 못했었다.

어디가더라도 겨우 1박이었고 그나마도 일 때문에 일찍 돌아오곤 했었다.

직접 하는 사업이었기에 자리를 비울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흐응~ 오빠. 우리 오랜만에 놀러가네~"

우다희는 옆에 누운 남편의 품에 안기면 말했다.

그 말에 최혁도 사랑이 담긴 눈으로 그녀을 바라보며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니까. 동생네하고 놀러가는 것도 처음이고"

"벌써 기대된다. 그치?"

"응, 조금 긴장 되기도 하네. 괜히 나이 먹어서 실수하면 어떡하지?"

남편의 모습에 우다희가 귀엽다는 듯이 귓볼을 만지작 거리며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그런거 신경쓰는 애들도 아니구~"

처음엔 사업만 하고 구릿빛에 거칠게 생긴 남편의 대시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기 몇번이었다.

운동을 했던 사람이라 거칠기도 했었고 항상 일 때문에 땀에 젖어 있었다.

그런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다만 호감이 없었기에 끝 없이 대시하는 모습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으구. 진짜 걱정 안 해도 되는데~"

하지만 지금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연예계 활동을 더 이상 못한다는 점이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항상 일이 바쁘고 촬영 때문에 며칠 자리를 비우면 그렇게 쓸쓸해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난번에 시우와 촬영 때문에 며칠 자리를 비웟을때 덩치는 크면서 비 맞은 강아지 처럼 집에서 기다리고 잇었던 때를 잊지 못했다.

"가서 푹 쉬고 오자. 알았지?"

자신에게는 한없이 순딩순당한 남편을 토닥여주며 같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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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짬짬이 구상한 시나리오들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먼저 퇴근할게~"

정확하게 6시 차를 타기 위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에 앉아 품속에서 포스트잇을 꺼내들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 쓸 디테일들과 작은 헤프닝들이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준비할게 제법 많았다.

취익.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대감에 찬 마음으로 빠르게 집으로 걸어갔다.

"잠깐만 빌리는 거니까"

뭐 거대한 사명감이라던가 혹은 정복감이라던가 그런건 아니었다.

그저 잠깐 맛만 보고 깨끗하게 다시 돌려준다는 아주 쓰레기 같은 생각이었다.

어쨌든 쓰레기라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으니 괜찮겠지라고 되뇌이며 도착하자마자 시나리오북을 꺼내들었다.

슥, 스윽.

연필을 들고서 정성을 다해 한 글자씩 꾸욱 써나갔다.

매번 시나리오를 적을 때마다 몇장 분량을 수기로 써야했으니 손목의 부담이 여간이 아니었다.

[AM 00:08]

저녁부터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끝을 맺을수 있었다.

마지막 쯤엔 힘이 달려서 글이 엉망이었지만 경험상 이래도 적용은 됐으니 괜찮았다.

"남편에겐 미안하니까 그래도 휴가는 보내주고....."

흡족하게 미소를 짓고는 이번엔 준비할 물건들을 챙겨나갔다.

처음에 사뒀던 커플젠가와 우머나이저, 딜도를 작은 가방에 챙겼다.

"흠....."

2박3일동안 갈아입을 옷과 물건들을 챙긴후 문앞에 세워둔 후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 포인트 2개를 사용해 몰입도와 위화감에 투자를 한 상태였다.

"관계 자체를 바꿔 버렸는데..... 잘 되겠지...?"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기에 불안한 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흥분되는 느낌에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로딩 중 : 1%]

#10scenario 완벽한 부부

우다희.

처음 남시우를 본건 7년 전 동생의 친구로서였다.

22살이었던 그녀는 처음으로 운명이란걸 믿기로 했다.

서글한 웃음에 우다희, 그녀도 모르게 그에게 푹 빠져버린 계기가 되었다.

배우의 일을 하고 있음에도 우다희는 모든걸 버릴 정도로 그에게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연애를 시작했고 싸움 한 번 없었다.

그가 무엇을 요구하면 그녀는 모든걸 들어주었다.

요구 끝에 작은 미소와 칭찬에 보상을 전부 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몇 년의 연애 끝에 매달려 결혼에 골인을 했다.

결혼생활은 모든것이 달콤했고 완벽했다.

"으그그~."

오랜만에 가는 여행에 이른 아침부터 기지개를 쭉 켰다.

비록 차가운 바람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아이보리색의 니트 그 위에는 회색의 체크 코트를 걸쳤다.

아래에는 다리의 곡선이 아름답게 나올 수 있도록 진한색의 청바지를 입었다.

다칵.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서 뒤 작은 공간에 백을 놓고선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체크했다.

"오랜만에 여행이니까."

일이 바쁜 남편은 출장 때문에 현재 다른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핸들에 손을 얹은 그녀는 앞으로 있을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미소가 환하게 맺혀 있었다.

"흠, 화장도 괜찮고."

만족함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기다리고 있을 남편, 남시우에게로 향했다.

§

[몰입도 : 99%]

[위화감 : 1%]

포인트를 사용해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흠, 그나저나 될런가."

관계 자체를 바꾸어 버린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성격이나 성향, 상황을 바꾸었을 뿐 관계 자체를 바꾼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

시나리오 북을 서랍장에 고이 놓은 후에 책상을 탁탁 쳤다.

"안 되도 어쩔 수 없지."

그게 안 되더라도 이미 충분히 사기템이었고 잘 즐기고 있었다.

다만 안 된다면 조금은 아쉬울 것 같기도 했다.

가방과 캐리어를 챙겨서 나가기 전에 거울을 확인했다.

에센스로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 밑으로 검정색의 얇은 니트 그리고 위에는 체크무늬의 얇은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바지로 베이지색의 슬랙스를 입고서 한 번 더 머리를 체크했다.

"흠, 맨족."

흰색의 스니커즈를 빠르게 신고서 밖으로 나왔다.

겨우 집문을 나섰을 뿐인데 공기가 제법 찼다.

"와, 슈발."

내일이면 11월이라지만 날씨가 이렇게 미쳐도 되는건가 싶었다.

가을 따위는 이제 없어진게 아닐까.

엘레베이터에 타서 출출함에 배를 문지르는데 제법 살이 쪘는지 살이 잡혔다.

"……사는건 똑같은데 나이 먹으니까 배가 포동포동 해지네."

운동을 해야지라고 가끔 생각하긴 하지만 언제나 불발로 끝났다.

탁.

드르륵.

캐리어가 주차장을 구르며 나는 소리가 크다고 느낄 때 앞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또랑하게 들렸다.

"시우양~!"

입구쪽에 차를 세워둔 그녀가 나무 아래에서 세상 가장 환한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제대로 적용이 됐다고 확신을 하는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이제부터 남편이다.

7년이나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 가장 사랑스러운 연인이다.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나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자이자 배우자다.

그런 설정이었다.

기분 설정은 비슷했다.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들어주는. 하지만 귀여운 동생의 부탁과 사랑하는 남편의 부탁은 본질적으로 다른 법이었다.

내게 팔을 흔들며 강아지처럼 웃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 쪽 팔을 내밀자 자연스럽게 내 품에 안겼다.

"안 추웠어?"

다정한 물음에 우다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품에 안겨 내 냄새를 맡았다.

"아~, 남편 냄새~. 좋다아~."

역시 반응이 달랐다.

누나 같은 모습이 아니라 어딘가 동생 같은 느낌.

나는 그녀의 허리를 안아주고 토닥여준 후에 차로 향했다.

"다희야, 차에 짐 싣자."

"웅~, 잠깐만."

삐빅.

미니 쿠퍼의 뒤에 짐을 싣는데도 우다희는 나에게서 떨어지기가 싫었는지 내 허리에 두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짐을 다 싣고나서야 그녀를 마주보고서 나만을 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잡았다.

"부으."

잡고서 내가 내려다보니 그녀가 귀여운 미소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녀의 키가 큰 탓에 완전히 내려다보는건 아니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고 삐죽 내민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가볍게 맞췄다.

2박 3일 동안 나는 그녀의 남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연기를 선보일 시간이었다.

"나도 다희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흐흥~."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은 좋은지 교태가 섞인 웃음소리가 나왔다.

일전에는 절대 내지 않았던 소리였다.

여자란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까지 변하는구나 싶었다.

누나 컨셉도 좋지만 아내의 컨셉도 썩 괜찮았다.

"그럼갈까?"

"응~. 얼른 타, 밖에 춥지?"

차에 올라타서도 내 손을 가져가서는 자신의 손으로 문질렀다.

"손 찬 거봐……."

"……그렇게 차지는 않은데……."

말을 하다가 보이는 그녀의 코트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흐앗?!"

차가운 손에 흠칫 놀란 그녀에게서 섹시한 소리가 나왔다.

나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서 말했다.

"여기 따뜻하네."

"흐응~, 그래에?"

내 표정을 본 그녀가 핸들에 올렸던 손을 놓고서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리고는 나랑 똑같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사이도 따뜻한데."

"와우. 조금 있다가."

"푸흣, 알았어~."

임소율과 10일 동안 있다보니까 숫기 없는 표정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다희의 능글맞으면서도 색기 넘치는 표정에 아래가 빳빳하게 서버렸다.

시나리오북으로 설정을 바꿨다한들 배워버린 경험속의 본능은 그걸 캐치했다.

스윽

한 손으로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고는 끈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출장 때문에 많이 쌓여있지?"

"……크흠."

그런 설정이라지만 이렇게 진짜처럼 해주니 낯간지럽기도 했다.

"당연하지. 다희한테만 반응하는거 알잖아."

"흐응~, 거짓말인거 다 아는데~. 그래도 기분은 좋네~."

7년 동안의 관계라는 설정은 나를 대하는데에 있어서 한층 편안하게 만들었다.

부웅.

낮은 엔진음을 내며 출발한 차는 금세 도심을 빠져나가 고가도로에 올라탔다.

아침부터 많은 차들이 도로 위에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옆에 앉은 우다희의 얼굴을 보는데 집중했다.

확실히 우다영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몸매가 달랐다.

아직도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있는 탓에 앉아있음에도 배가 쏙 들어가 있었다.

"왜 그렇게 봐아…. 부끄럽게."

우다희의 모델 같은 기품 있는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그게 부끄러웠는지 볼멘소리로 말을 했다.

"이쁘잖아."

"내가 그렇게 이뻐?"

"응, 당연하지."

배우에 전문까진 아니더라도 몇 개의 쇼핑몰에서 피팅모델을 했었으니 예쁜건 당연했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최혁이 솔직하게 부럽긴 했다.

"아, 시우~."

"응?"

"조금 있다가 애들 일찍 퇴근하고 온다던데, 우리 먼저 장 보라고 하던데?"

"아, 그 정도는 뭐."

김우현과 우다영은 퇴근을 하고 올테니 도착해도 해가 다 저문 상태일 것이다.

"그럼 가기 전에 데이트 하구 가자."

"아, 맞다. 내가 알아본 곳이 있긴한데."

어딘지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찾은 곳이 몇 군데 있긴 했다.

내 말에 우다희는 감동먹은 얼굴로 나를 힐끔 쳐다봤다.

"진짜루? 어머…, 감동인데, 울 남편~!"

"당연하지, 다희랑 놀러가는건데 어떻게 건성으로 하겠어."

건성이었다. 대충 몇 번 검색해본게 전부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우다희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웅~, 진짜아. 그러니까 내가 시우를 좋아하지~."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사랑해~."

무엇보다 표현하는데에 있어서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임소율과는 전혀 다른 온도에 살짝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가다가 중간에 뭐라도 먹을까?"

아침을 굶고 나와서인지 얼마가지 않아 배가 출출했다.

"나두 배고파……."

도로에서 빠져나와 보이는 도너츠 집에서 도넛과 커피를 사들고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 가루가 떨어질까봐 손을 받치고 먹는데 진짜로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다희가 좋아하는 노래를 잔잔하게 틀어놓고서 잡담을 하며 가는데 생각보다 어색하거나 흐름이 끊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영이랑 우현이도 7년 만났다는데, 그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어."

7년 동안 연애를 하는 동생을 신기해하는 그녀에게 나도 한 마디 해주었다.

"걔들도 우리 보면서 똑같이 생각할걸."

"흥흥~, 그렇겠지?"

"아마?"

운전을 하는 그녀에게 도넛을 가볍게 잘라 입에 넣어주었다.

작은 입으로 오물거리며 나를 향해 웃어주는데 하얀 이빨이 보이며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진짜 배우는 배우구나 싶었다.

"어, 이제 바다 보인다."

그녀의 말에 시선을 옮겨 창 밖을 쳐다봤다.

오이도를 지나며 올라탄 방조제길 양 옆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시야 끝에 걸치는 이름은 모르는 섬들과 산들이 배경에 자리잡았다.

"금욜 아침이라 그런가 차는 그렇게 많이 없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서 그런지 확실히 차량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아마 점심쯤 부터 해서 차량이 끝없이 물고 늘어지겠지만.

"동생들이 많이 늦겠네……."

걱정하는 모습도 잠시 내 손에 깍지를 낀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둘이 있을 시간이 더 생기니까 좋긴해~."

"푸흣, 왜 이렇게 귀여워."

시나리오에 높은 몰입을 하고 있는 그녀를 느긋하게 쳐다보며 일부러 느끼한 말도 툭툭 던졌다.

"나는 남편꺼니까 남편한테만 귀여운거지~."

"내꺼?"

"웅, 남편은 누구꺼?"

"당연히 다희꺼~."

연인이라면 할 수 있는 오글거리는 행위들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영흥도 보인다."

대부도를 지나 끝없이 들어가다보면 영흥도와 이어진 도로가 있었다.

네온사인만 가득한 도심에 있다가 이렇게 가끔 바다를 보면 마음이 풀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카페도 아직 문을 안 열었네……."

시골길을 지나 해변가를 달리는데 대부분의 카페들은 아직 오픈 전이었다.

"찾아보니까 여기 해변이 사람이 별로 없데."

결국 카페는 나중으로 미루고서 사람 하나 없는 해변 근처에 차를 세웠다.

철썩.

밀물인지 들어오는 바다는 제법 그럴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스윽.

바다를 보는데 내 옆으로 다가온 그녀가 깍지를 끼고 자연스레 몸을 기댔다.

"바다 이쁘다. 그치?"

날씨는 쌀쌀하지만 날은 맑아서 바다가 태양에 빛나고 있었다.

"흠…, 별론데."

"아…, 정말?"

실망한듯한 말투에 우다희가 내 눈치를 살폈다.

"오늘도 실패했네, 다희보다 이쁜거 찾기가 힘들긴 해."

내 눈치를 살피던 우다희가 순간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흥항항항!"

진심으로 터졌는지 한참을 현실 웃음으로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아우웅…. 진짜아! 프흐흥~!"

코까지 먹어가며 웃던 우다희가 나를 마주보고 서서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웃어서 생긴 촉촉한 눈으로 나를 봤다.

"왜?"

내가 묻자 우다희가 가볍게 내 입술을 입술로 물고는 웃었다.

"쪽…, 흐흥…, 울 시우가 너무 이뻐서~. 내가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아웅, 나둔데~."

남편에게는 이렇게 애교가 많은 줄 몰랐다.

"아~, 오늘 여행 오길 잘했다~. 사랑햇~!"

내게 얼굴을 기댄 그녀가 허리에 팔을 두른채 몸을 흔들었다.

같이 옆으로 몸을 흔들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자기야."

"응?"

"……밑에 찌르는데? 이거 뭐야?"

다 알면서도 묻는 것 같았다.

"하고 싶어서. 그래도 밖이고 하니까……."

"풋, 숙소 들어가서 할까? 애들 오기 전에?"

물론 그것도 할거지만 기왕 밖에 나온김에 거기에 사람도 없는 김에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지금 한 발 빼고 싶은데."

"차에서 해줄까?"

나를 안은채로 입술을 살짝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혀를 내밀고서 끈적하게 바라보는데 천박하기는 커녕 분위기가 있었다.

"음…, 바다보면서 하고 싶긴한데, 일단 차로 갈까?"

"원하면 어디서든 해줄 수 있는데."

"고마워~."

안았던 손을 풀고 그녀와 함께 차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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