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월급에 더해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들어왔다.
"돈 이렇게 줘도 되냐. 나중에 천천히 줘도 되는데."
계좌에 찍힌 금액을 보고 걱정어린 말을 하자 김우현이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돈 관련된건 확실하게 해야지. 그래도 네가 제일 고생했는데. 답사에 촬영에 편집에 거의 너 혼자 한거잖아."
"흠, 그렇게 따지면 더 줘 인마."
"푸핫. 여튼 고맙다."
김우현과의 돈독한 사이를 계속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
굳이 시나리오 북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성실하고 노력하는 친구다.
심지어 머리까지 좋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 하나쯤은 옆에 있는게 인생에 훨씬 도움이 됐다.
"인턴은 어때?"
"잘 따라오긴 해."
"한동안 가르치는데에 집중해줘."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애 델꼬오면 어떡하는겨."
내 핀잔에 미소만 짓는 그였다.
그러다가 자기 책상에 있는 팜플렛 하나를 내밀었다.
"……?"
"이번에 세미나가 있는데 갔다올래? 인턴 데리고."
"갑자기? 준비할건?"
"가서 그냥 듣고오면 돼. 별거 없어."
신생기업이 할 수 있는게 실제로 없기도 했다.
"그래, 그럼. 다음 주네?"
"응, 날도 선선하니까 바람도 쐴겸. 휴가야."
"……그럼 그냥 쉬는 날을 주십쇼, 사장님."
"하핫!"
웃어넘기는게 이젠 일상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내 바로 옆 자리에서 여전히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임소율이 있었다.
표현도 서툴고 표정은 얼굴에 다 드러나는 어리숙한 애였다.
"소율씨, 다음 주에 세미나 갈건데 괜찮죠?"
말과 함께 팜플렛을 건넸다.
그걸 본 그녀가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
작은 얼굴에 나를 올려다보니 확실히 귀엽긴 했다.
"대답은 해야죠~."
말을 하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었다.
"앗…, 네…."
내가 머리를 헝클어도 뭐라고 하진 않았다.
조용하게 다시 머리를 정돈할 뿐이었다.
"단발 하는 이유가 있어요?"
"……네."
"이유가 뭔데요?"
"……길면 샴푸가 많이 들어가서요."
한 번씩 더 물어봐야 대답을 해주었다.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지만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
임소율.
입사한지도 제법 시간이 지나서인지 적응이 됐다.
배워나가는게 생각보다 재밌어서 회사에 오는게 좋았다.
매일 공장에서 방진복을 입어 눈만 빼곰 내민채로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힐끔.
옆을 보는데 남시우가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엄청 열심히 하네.'
일에 집중 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공장에서 일을 하는 아줌마들이나 아저씨들에게서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워낙 커서 다들 언성을 높이고는 했다.
자신은 혼자서 일을 했기에 그들과 트러블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 끝~. 형님. 담배 고고?"
"잠만, 이것만 끝내고."
그러자 원유찬이 다가와 파티션에 팔을 걸치고 구경했다.
"오, 형님. 거의 다 끝냈네요?"
"응, 다영이한테 주면 돼."
이런 부분이 달랐다. 굉장히 친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을 할 때엔 확실하게 하는게 그게 신기했다.
"소율씨도 가실래요?"
남시우가 일어나며 묻는데 왠지 기분이 좋았다.
표현이 서투른 자신을 항상 챙기며 다니는데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다.
"……."
말없이 일어나 묵묵히 남시우의 등을 따라갔다.
'생각보다 등이 넓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옆에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윽.
다가가니 인기척을 느낀 남시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내려다봤다.
'딱 올려다볼 정도…….'
그래서 그녀도 올려다봤다.
"뭐 할 말 있어요?"
"아뇨."
시선을 옆에 있던 원유찬에게로 향했다.
덩치는 크지만 계속 점심을 같이 먹어서인가 그렇게 불편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다…….'
인턴이 아닌 정직원으로 이곳에 남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했다.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
§
남에게 쫓기듯 연습하는 임소율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진짜 유도리라고는 1도 없는 여자였다.
덕분에 실력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세미나 끝나면 슬슬 일을 맡겨볼 생각도 있었다.
일이 끝나고 밖에 나오니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고생했슴다~."
원유찬이 꾸벅 인사를 하고서 먼저 떠났다.
다음에 임소율을 쳐다보니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고 꾸벅 인사했다.
대체 저 인사를 어디서 배운건지 그것만 하고 있었다.
"소율씨도 고생했어요."
"네."
평소처럼의 대답.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려고하는데 그녀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네?"
"……고, 고생하셨어요."
"푸하핫! 네네."
내가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얼굴이 화악하고 붉어졌다.
싸가지 없는 애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상식을 먼저 정하고."
시나리오 북은 완벽하지 않았다. 마치 만들다가 멈춘 것 처럼 말이다.
등급을 매기는 것도, 영향력과 명성 같은 것도 설명하는데 불친절했다.
"캐릭터를 정하고."
그럼에도 신기하게 이 공책은 내가 적는 시나리오대로 세계를 바꿔준다.
"됐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그거면 충분했다.
실험삼아 이번엔 새로운 상식들을 추가하고 비틀었다.
임소율에 대해 모든걸 알아낼 심산이었다.
[로딩 중 : 1%]
임소율.
다강오는 가을.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점차 색이 바래가는게 보일정도였다.
청록의 잎들이 아직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쌀쌀해진 날씨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타타타닥.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을 내려가는데 오래되었기에 곳곳이 부서진 곳이 보였다.
대충 떼운 시멘트담에 붙은 배수구 통은 녹이 슬어 주황빛을 내고 있었다.
"하아,하아."
버스 시간에 늦을까봐 급하게 산중턱에 위치한 마을에서 뛰쳐내려왔다.
마을 입구에 ㅇㅆ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저 앞에서 버스가 오는게 보였다.
취익.
멈춰선 버스에 올라티니 등교를 하는 학생들과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이 섞여 가득 차 있었다.
임소율은 가녀린 몸으로 그들을 비집고 나아가 겨우 의자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았다.
덜컹.
거친 운전실력에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몸이 휘청였다.
그럼에도 제 시간에 버스를 탄 임소율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맺혔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창문 밖을 보니 어느때보다 화창한 하늘이 눈에 담겼다.
"......."
주머니에서 낡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꽃고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창문 밖 풍경을 즐겼다.
공장에 다니던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아침의 해와 저녁의 노을을 볼수 있는 지금이 좋았다.
[딩동]
[다음 정류장은.......]
이어폰 사이로 들어오는 안내방송이 들렸고 정차하자마자 내렸다.
내리면 보이는 회사의 건물.
가끔 보는 드라마에서 보이는 벽이 유리로 된 그런 번쩍이는 건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뿌듯함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문이 살짝 열러 있었다.
누군가 벌써 출근을 한건가 싶어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 몇대 없는 책상들 그리고 거기에 남시우가 서 있었다.
공장에서조차 혼자 일했던 그녀였었기에 처음으로 생긴 직장 상사이자 선배였다.
"오~,왔어요? 일찍 왔네요?"
임소율을 발견한 그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도 크게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습관에 꾸벅 인사만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아준 그가 프린트 해둔 자료를 파일철에 담아 건네주었다.
"자, 받아요, 오늘 연습할거예요."
"감사합니다."
표현이 서투른 자신에게도 한없이 잘해주는 좋은 선배였다.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요?"
그가 건네준 자료를 보는데 훅 들어오는 말에 움찔했다.
"......."
속으로는 갖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는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렇게 쳐다보면 선배 상처 입어요."
자신의 눈매 때문에 가끔 이런 오해를 입고는 했다.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죄송합니다."
"하핫! 죄송할건 없죠."
그가 손을 저으며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커피를 타온 그가 잔을 책상에 내려놓고서 말했다.
"세미나 갔다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 시작할거에요."
"아! 네...!"
연습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실전에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지금도 연습 중간에 작은 일들을 맡기고 있긴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 뿐이었다.
출근시간이 다 되자 하나둘 회사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 뿐이었다.
"아침 회의 합시다~."
김우현의 말에 테이블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원래 다 같은 대학교의 친구들이라고 들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들 편한 모습이었다.
"사이 좋은 친구도 자리를 잡았거든, 그래서 컨텐츠를 좀 더 늘려야 하는데..."
남시우의 옆자리에 앉은 임소율은 말을 하는 그를 쳐다볼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일을 할때 진지하게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녀가 평소에 생각했던 그런 어른의 모습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잠시 화장실에 들렸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요?]
아까 남시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출근할때 입기 위해 사뒀던 싸구려 셔츠와 정장치마였다.
둘이 합쳐 10만원도 넘지 않은 돈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커다란 돈이 었었다.
그런데도 예쁘다고 해주는 그를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찰싹.
화장실 안 혼자서 거울을 보며 볼을 때렸다.
"사치야."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건 사치였다.
자그마한 얼굴만큼이나 작은 손으로 볼을 꼬집었다.
"으....."
생각보다 세게 당겼는지 볼이 붉어졌다.
자신에게는 어린 동생들을 챙겨야하는 의무가 있었다.
연애를 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이 연애를 하게되면 동생들을 봐줄 사람은 늙은 할머니 뿐이었다.
"안돼."
마음을 다 잡고 화장실을 나왔다.
[몰입도 : 8%]
[위화감 : 0%]
첫 날 몰입도의 상승은 8%였다.
위화감은 1도 올라가지 않은 상태.
이정도면 성과가 괜찮았다.
첫번째로 바꾸려고 하는건 임소율의 감정이었다.
책임감.
원래 있던 책임감에 무게를 더할 뿐이었다.
처음엔 그 정도면 됐다.
아직 시나리오의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임소율.
세미나에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었다.
"준비됐어요?'
"아...,네."
대답을 하고 남시우를 보는데 정장을 입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도 면접을 볼때 그 정장을 입은채로 그를 따라갔다.
"세미나는 처음이죠?"
"네."
"저희가 가도 별거 없을거에요. 그냥 가서 교육하는거 듣고 오면 되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왠지 긴장이 됐다.
차량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해야했기에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다.
"여보세요,아,우현아.응,이제 출발해.
응, 끝나면 바로 그럼 퇴근할께."
전화를 마친 남시우가 옆에 앉아있는 임소율에게 말했다.
"끝나면 바로 퇴근하면 될거에요."
"네....."
둘이 도착한 장소는 도시 외곽에 있는 교육원이었다.
안에 먼저 도착한 인파로 인해 북적거리고 있었다.
"늘솜 스튜디오에서 나왔습니다. 네, 두명이요."
"여기 사인 해주시면 되요."
사인을 마친 그가 이름이 적힌 목걸이를 받았다.
[늘솜 스튜디오]
[팀장]
[남시우]
[늘솜 스튜디오]
[사원]
[임소율]
명찰을 보며 임소율은 심장이 두근거리는걸 느꼈다.
깔끔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사원]이라는 글자를 보니 더더욱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인턴은 원래 못 오니까, 사원으로 슬쩍 바꿔놨어요."
그의 말에 움찔했다.
[인턴]
원래 그녀의 직책이었다.
"저기....."
세미나가 시작하기 전 잠깐 대기하는 시간에 그녀가 물었다.
"사원이 되려면 어떡해야돼요.......?"
그녀의 질문에 남시우가 볼을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했다.
"음, 시험을 보고 면접을 봐야겠죠?"
"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시험과 면접이 문제였다.
"사원이 되고 싶어서요?'
".....네."
인턴은 언제 쫒겨날지 모르는 계약직이었다.
하지만 정직원이 된다면 쫒겨날 걱정도 없었고 월급도 오른다.
비록 동생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지금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생긴 목표, 꿈이었다.
"근데 시험이 조금 빡세서....... 전공자가 아니면 많이 힘들거에요."
남시우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했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 그녀에게 사원이라는 직책을 그냥 달게 해주지는 않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목표가 굉장히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는게 처음으로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제 세미나 시작하니까 자리로 가죠."
".....네"
배정된 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그럼 3회 세미나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와주신 분으로는.......]
여러 교수나 대표의 이름들이 열거되었다.
차례로 나와 촬영 기법, 편집 같은 것들을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우리는 앉아 교수들의 토론이나 자료들을 보며 기록하고 배워가는게 전부였다.
"잘 배워둬요."
"네"
임소율은 생각했다.
시작이 많이 늦춰진 상태에서 면접을 보려면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야했다.
지금 하는 토론에서 전문적인 용어를 전부 알아들을수는 없었지만 일단 기록해나갔다.
[그럼 잠시 쉬었다가 20분 뒤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쉬는 시간 동안 밖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임소율은 담배를 만지작 거리다가 아까 적었던 수첩을 들고 물었다.
"선배님.......'
"네네"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요"
"봅시다"
수첩을 보며 쭉 읽어내려가던 그가 담배를 꼬나문채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너무 야매로 가르쳤나보네요. 이건....."
막힘없이 설명을 하는 남시우를 보며 역시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임소율은 그가 설명해주는걸 빠짐없이 적어나갈때 누군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남시우 학생~"
담배를 물고 있던 남시우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머리가 희끗한 분이 정장을 입고 서 계셨다.
"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담뱃불을 바로 끈 그가 다가가 두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허허, 잘 지냈어요?"
"예, 교수님. 잘 지내셨습니까? 안 그래도 인사 드릴까 하는데 얘기하고 계시길래 잠시 바람 쐬러 나왔습니다"
"그럼요. 세미나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대학교 이후로 처음이지요?"
"그렇습니다. 원래 김우현이 오게 되어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와서 교수님을 뵙네요.
하핫!"
능글맞게 웃으며 얘기하는데 이게 어른인가 싶었다.
자신은 하라고 해도 절대 못하는 리액션들이었다.
"옆에는......."
"이번에 인턴으로 들어온 임소율씨입니다"
"오,그렇군요. 학생? 처럼 보이는데... 어느학교에 있었나요?"
대학교 얘기에 몸이 굳었다.
남시우가 그런 임소율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소율씨 꿈이 영상쪽이라고 해서 학교 말고 회사에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잘 부탁드려요~"
주름진 손을 임소율이 두손으로 잡고 짧게 목례를 했다.
"그럼 시우 학생~ 나중에 또 봅시다"
"예. 저희 스튜디오에 우현이랑 다영이랑 유찬이가 있는데 함께 교수님 찾아뵙겠습니다."
"허허, 그래요"
돌아가는 교수님의 등을 보던 임소율이 시선을 돌려서 남시우를 쳐다봤다.
"아~ 우리 대학교 교수님이에요"
"아. 네..."
선생이 아닌 교수를 보는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학교 선생님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인자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른스러운 느낌까지...
"들어가죠"
이어지는 세미나지만 임소율은 집중하지 못하고있었다.
대학교, 교수, 시험과 면접.
모든게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턴이 끝나면 그녀는 다시 여러 면접들을 보러 다녀야 할테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생활비는 오로지 그녀에게서 나오니 말이다.
아마 다시 공장에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
그녀도 사람이었다. 한번맛본 꿈의 끝에서 저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가긴 싫었다.
늘솜 스튜디오에 정직원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공장에 나쁜 기억만 있는게 아니었다. 덕분에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저금도 할수 있었다.
하지만 쳇바퀴처럼 해뜨기전에 가서 해지고 나오는 생활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끝~ 갑시다"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세미나가 끝이 났다.
남시우의 등을 쫒아가는 와중에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정직원이 되려면 시험을 봐야했고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했다.
하지만 학교, 학원에 갈 돈도 실력도 안 됫다.
"흠, 아직 시간이 이른데 저녁이라도 먹을래요?
근처에서 해결하고 흩어지죠?"
".....아"
남시우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길가에 서서 앞에 서 있는 남시우를 올려다 봤다.
".....?"
의아해하며 그녀를 내려다보는 남시우.
".......가르쳐주세요"
".......뭘요"
혼자 있던 시간이 길었던 탓에 표현하는 방법이 서투르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될것 같았다. 아주 작지만 욕심을 부려보려고 했다.
"저 정직원이 되고 싶어요. 가르쳐주세요"
"......"
역시 놀란 표정을 짓는 남시우였다.
자신에게 항상 잘 대해주고 잘 챙겨주던 선배였다.
"어...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아"
거절의사에 심장이 철렁했다. 안될거란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락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시험을 보려면 빡세게 공부해야하는데 일까지 하면서 할 시간도 없잔아요"
"할수 있어요"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면 됐다.
2배가 부족하면 그 이상을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항상 웃어주던 남시우의 정색하는 표정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따.
"대학교가 괜히 있는게 아니에요. 전공이 괜히 있는것도 아니고요. 4년동안 배우고 옵니다.
수천만원씩 들여서요."
알고잇었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일까지 하고 집에 있는 동생들까지 챙기면서?
현실적으로 무리라는거 아시죠?"
"알고 있어요. 남들보다 더 노력할수 있어요"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본능이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하아"
남이 쉬는 한숨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건 처음이었다.
".....이기적이라는거 알고는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남시우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햇다.
"막연하게 열심히 할게요, 노력할게요, 이러면 믿음이 전혀 안 생기는것도 아시죠?"
".............."
"가르쳐 줄테니 10일동안 우리 집에서 살면서 노예처럼 살으라고 하면 할수 잇겠어요?
안되죠? 그래서 안되는에요."
남시우의 말이 맞았다.
남은 몇년동안 노력한걸 겨우 짧은 시간에 이뤄낼 생각을 한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천천히 배워요. 인턴은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요. 인턴 끝나도 편집하는건 충분히 할수 있을거에요. 거기까진 가르쳐줄께요"
완벽한 선언이었다. 처음 포부조차도 동생들의 입학식을 찍어주고 싶었다엿으니 말이다.
돌아서는 남시우와의 거리가 겨우 몇 발자국 안되는데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그를 설득하지 못하면 영원히 못할거 같다는 중압감이 들었다.
"아...................."
임소율이 짧은 소리를 내고는 이를 악 물었다.
저벅저벅.
힘을 줘 앞으로 걸어가 남시우의 소매를 붙잡았다.
"저 진심이에요. 가르쳐주세요. 10일동안 뭐든 할게요"
간절함과 책임감
두개가 그녀를 걸어나가게 만들었고 그것에 감동한 남시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힘들텐데 괜찬겠어요? 제 도구로써 10일 동안 살아야할텐데"
다짐을 한 임소율의 귓가에 도구라는 단어는 들어오지 않았다.
"네, 할수 있어요"
배울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수있었다.
$$$
[몰입도 : 21%]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몰입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책임감과 간절함을 합치니 몰입도가 상승곡선을 그리며 올라갓다.
"소율씨, 집에서는 괜찮대요?"
"네. 할머니가 봐주신다고 하셨어요"
"다행이네요. 대신에 엄청 빡셀겁니다"
"......괜찮아요"
뭐든지 해낼수 있다는 굳건함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시나리오 북을 쓰면 쓸수록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익숙해지고 잇었다.
"그럼 따라오세요"
임소율을 데리고서 김우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을 하고 있던 김우현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우현아, 어젯밤에 말한거 있잖아"
"아~ 인턴교육?"
"응, 그래서 지금 가려고 하는데"
내가 바꾼 첫번째 상식.
인턴을 교육시키기 위해 직속 상사는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다.
"10일정도 사용하려고"
"그 정도로 되겠어?"
위화감이 올라가겠지만 그걸 어느정도는 컨트롤 할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인턴 교육에 100일 정도 빼낼수 있지만 그것의 10분의 1인 10일.
오히려 느끼는 입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해도 어쩔수 없지. 인원도 부족한데 시간 더 빠지면 좀 그렇잖아"
"괜히 미안하네. 힘들텐데 괜찮겠어?"
"그래도 우리 회사 첫 인턴이잖아?"
김우현에게는 여전히 신뢰를 쌓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짜놨따.
인턴교육에 100일은 필요한데 회사를 위해 희생해 10일로 줄인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여튼 갔다올게. 10일뒤에 보자"
"그래, 고생해~"
우다영과 원유찬에게도 인사를 하고서 회사를 나섰다.
"..............짐은 그걸로 돼요?"
임소율의 등에 가방이 있었는데 10일 지내기에는 부족한 듯 보였다.
"네"
"캐리어라던가 그런거 없어요?"
"네"
짐을 더 싸오고 싶어도 집에 가방이나 캐리어가 없었기에 그나마 챙겨올수 있는걸 다 챙겨온 느낌이었다.
어차피 상관없긴 했다.
"그럼 갑시다"
그렇게 나와 임소율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랏다.
취익.
버스에 가방을 꼬옥 안고 앉아있는 임소율의 얼굴은 긴장한게 티가 났다.
"긴장돼요?"
".....네"
여전히 대답이 짧았다. 긴장하면 더욱 짧아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물었다.
"그럼 소율씨는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없어요?"
"네, 한번도요"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시덥잖은 얘기를 할뿐이었다.
본격적으로 하는건 집에 들어가서였다.
띵.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고 내가 입을 다무니 정적이 흘렀다.
힐끗 그녀를 보니 작고 흰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크흠, 그럼 집 밖에서 자는 것도 처음?"
"네......."
말끝도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집 문 앞에 섰다.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에 몸을 돌려 임소율을 쳐다봣다.
"............?"
언제나처럼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임소율을 내려다봤다.
키가 컸던 자매와는 달랐다.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게 있어요"
"............"
내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도 내 의지를 내비쳤다.
"늘솜 스튜디오에 확실히 들어오고 싶은거죠?"
"네"
대답이 크진 않으나 떨림이 사라졌다.
그만큼 확고한 생각이었다.
"원래 100일 동안 가르치는거 10일로 압축해서 하는거니까. 빡세게 할거고 제 말은 무조건 적입니다. 만약, 힘들거나 제가 하는 말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면 바로 나가시면 돼요"
"......"
"하지만 다 배우고나면 늘솜 스튜디오에서 채용을 할때 확실하게 뽑힐수 잇을겁니다.
제가 장담해요"
그녀가 갖고 있는 간절함에 확신을 주었다.
임소율도 주먹을 꽉 쥐고서 대답했다.
"네"
처음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씨익 웃으며 문을 열었다.
띠리릭.
"들어가죠"
앞으로 쓸 도구로써 확실히 가르쳐놓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