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4/126)

 §

 8월 중순. 

 월요일. 

  

 홍보 편집은 무난하게 되고 있었다. 

 중간에 화상회의로 진행된 중간점검에서도 만족하셨기에 이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자 옆에 있던 원유찬도 같이 하품을 했다.

 "하암…. 형님. 안 졸리십니까."

 "졸리지. 개졸린데 리얼루다가." 

 "그쵸? 아우…. 날씨도 좋고."

 밖을 보니 정말 짙푸른 하늘이라는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요즘에 짱깨놈들 미세먼지 안 보내나보네."

 "흐음…. 이러고 또 보낼 수도 있죠."

 "아예 보내라고 저주를 하지 그르냐."

 잠이라도 쫓기 위해 담배를 들고 일어났다.

 "너도 필겨?"

 "아뇨, 저는 해야할게 많아서요."

 원유찬을 두고서 밑으로 내려와 담배를 물었다. 

 치익.

 골목길 그 좁은 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우물 속 개구리의 시야처럼 좁은 하늘만이 보였다. 

 "저기요."

 "……?"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숙여 쳐다보니 웬 여자가 서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검정색의 단발과 그와 대비되게 밀가루 처럼 하얗디 하얀 얼굴.

 얼굴이 겨우 주먹하나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데 고양이처럼 눈매가 올라간 커다란 눈과 가운데에 오똑한 코 그리고 짙은 붉은색의 입술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단발만큼이나 차분한 그녀의 표정은 덤덤한듯 하면서도 차가워서 담배 피는게 싫어서 나와 싸우자는건줄 알았다.

 "불 좀 빌려줘요."

 "……."

 얼굴도 작고 아담해서 학생처럼 보이는데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근처에 회사가 있나 싶어서 곰곰히 돌려봤지만 당연히 그럴 일은 없었다.

 스윽.

 말 없이 라이터를 내밀자 그녀가 그 작은 입술로 담배를 물고는 라이터를 받아들었다. 

 "w 피시네요."

 "……."

 말이라도 걸어보려 했으나 싸늘하게 나를 힐끔 보고는 말았다. 

 "후우."

 라이터를 건네준 그녀는 말없이 내게 등을 돌린채 있었다. 

 그냥 좆같은 년이구나 정리한 후에 담배를 다 피고 꽁초를 마련한 페인트 통에 버렸다. 

 저벅저벅.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정수기로 향했다.

 "응? 이거 카누 먹어도 되는겨? 나 먹는다?"

 "아, 응, 먹어도 돼. 참. 시우야 면접 준비 좀 도와주라."

 "……?"

 커피를 타 놓고 직접 만든 스튜디오 안으로 의자와 다과를 세팅했다.

 "그 뭐지. 면접 몇 시 부턴데?"

 "한 시간 남았어, 딱."

 "구래?"

 면접관은 김우현과 유다영이었다. 

 나보고도 제안을 했었지만 일부러 거절을 했다. 

 일단 귀찮은건 딱 질색이었고 나보다는 우다영이 훨씬 사람을 잘 볼 것 같았다.

 "군필 여고생 안 된다. 군필인데 경력자로 뽑아라."

 "……신입 인턴인데 그게 말이 되냐?"

 우다영이 어이없이 보고 있었다.

 "전공자면 좋고, 최소한 자격증은 3개 이상."

 "그런 사람이 연봉 1800받고 오겠어?"

 "읭? 천팔백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신입이고 인턴이고 무경력자로 뽑을거야." 

 "……왜?"

 "돈이 없으니까지~."

 "그렇지."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볼을 긁적이게 만들었다.  

 뭐가 됐든 좆됐다는것만 기억하면 될 것 같았다.

 "천팔백이면 다 내려서 제발 군필만이라도……."

 뭐가 됐든 남자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야 막 굴리면서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일을 하는데 면접 시간이 됐는지 몇 명의 면접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넓은 회사 공간에 움찔했고 동시에 몇 자리 없는 자리에 또 움찔했다.

 "……진짜 처음 오면 여기 유령회사처럼 보이겠지?"

 "그럴걸요……."

 원유찬도 동감하는 눈치였다. 

 넓은 회색 공간에 몇 자리 없었으니 그럴법도 했다. 

 "……근데 형님."

 "응?"

 "……군필 여고생 기대하면 됩니까?"

 "왜."

 말을 하고 면접 대기자들을 보는데 전부 여성들이었다. 

 "……전공자들이라고 생각하자."

 "……그……. 전공자들이라기엔 너무 파릇파릇한 애들인데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얼굴을 살피는데 진짜 애기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어린 애들이었다. 

 그나마도 겨우 세 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한 시간 전에 봤던 담배를 빌리던 여자였다.

 "……주변 회사인줄 알았드만 아니었어?"

 "뭐가요?"

 "아니, 아까 나 한테 담배 빌리드라고. 저기 끝에."

 "아……. 좀 무섭게 생겼는데 제발 안 뽑히길……."

 기 센 여자 울렁증이 있는 원유찬이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기도에 들어갔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보통 그렇게 기도하면 저 사람 되드라."

 "……제발……."

 "연봉 천팔백이래. 그 정도면 백삼십은 나오냐 월급."

 "……그럼 더 제발……. 연봉 적고 일 많으면 바로 짼다고요…."

  

 연봉이 적고 일이 고되면 추노할 수도 있었다. 그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고된게 분명했다. 

 "……형님이 교육 하셔야 합니다."

 "……시발."

 차라리 대학 후배라면 모를까 아예 처음 부터 가르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 아팠다. 

 "내가 가르치게 생겼구만……."

 이마를 긁적이며 우리가 만든 스튜디오를 쳐다봤다.

 면접을 위해 옆에 의자를 두고 둘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이미 들어가 면접을 시작한 상태. 

 탁탁.

 해놓던 작업을 저장해놓은 상태로 옆에 앉은 원유찬을 보며 말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숙련자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겠죠?"

 "단축키부터 가르쳐야겠지?"

 다행이 가편집은 다 끝낸 상태라서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달칵.

 처음 면접을 본 사람이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다음에 걸린 시간 역시 비슷하게 20분 정도.

 "……."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이가 아까 내게 라이터를 빌렸던 아이였다. 

 정장을 입긴 했지만 피부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그저 아이처럼 보였다.

 신입생 정도로 보이는데 정장을 입으니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쟤만 아니면 좋을 것 같은데."

 제일 처음에 들어갔던 순박하게 생긴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달칵.

 면접이 끝났는지 나와서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회사 밖으로 나가는 그녀. 

 "……."

 일을 하고 있었지만 모든 이목은 스튜디오로 향해있었다. 

 클립 보드를 들고 나오는 김우현에게 곧장 다가갔다.

 내 옆으로 원유찬도 따랐다.

 "……?"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누구 뽑을겨."

 내 질문에 뒤 따라 나온 우다영과 함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화창한 하늘. 

 이젠 저녁이 되면 가을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바람이 제법 선선했다.

 물론 아직 낮에는 뜨거운 여름 같았긴 했지만 말이다.

 "누가 될건지 말은 해줘야하는거 아니여?"

 내가 묻자 김우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클립보드를 흔들어보였다.

 "아직 나도 못 정해서. 나중에 알려줄게. 당장 뽑는건 아니고, 아마 다음 달 9월부터 올거야."

 "……스읍. 아쉽네."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클립보드에 여러 메모를 해놓은걸로 봐서는 아마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가르치는 건 잘 할 수 있지?"

 "……나?"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 김우현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담배를 태우진 않는 김우현이었지만 나와 같이 얘기나 나눌겸 내려온 듯 했다.

 치익.

 "스읍, 후우."

 "가장 열정적인 애로 뽑아보려고. 배울 의지가 있는 친구로."

 "……."

 왠지는 모르지만 누군지 대충 예상이 가긴 했다. 

 "……단발은 아니지?"

 "응? 너도 딱 보였구나?"

 "……야발."

 언제나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내가 도박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사소한 불안도 다 맞추는데 무슨 도박을 하겠는가. 

 "그래…. 우리 사장님 믿고 가야지."

 "별로야?"

 "응. 좀 느낌이 쎄해서."

 "그래? 내 느낌은 아주 좋았는데?"

 그와 7년 째 친구이긴 하지만 취향까지 맞는건 아니었다. 

 내가 우다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듯이 말이다.

 담배를 쥔 손으로 볼을 긁적였다.

 "가르치다가 빡치면 욕 박아도 되지?"

 "응? 그건 네 자유지."

 자유라고 해놓고는 불안했는지 내게 물었다.

 "심하게 하진 않을거지?"

 "걔 하는거 봐서."

  

 어찌됐든간 다음 신입사원은 정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걔는 언제 오는데."

 "9월 초로 생각하고 있어. 아직 보름 좀 안 되게 남아있으니까."

 "굳이 왜?"

 "그때 세미나 있잖아. 너랑 같이 갔다와. 걔도 좀 배우는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나는 하늘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아무것도 모르는 애랑 같이 일할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많이 스며든 한숨이었다.

 §

 며칠 후. 

 편집도 어느정도 끝났고 마무리 보정에 들어갈 쯤이었다. 

 "……."

 전부 퇴근하고 남은 사무실에서 시나리오 북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쓴 작품의 수는 6개였다.

 우다영 4개, 우다희 2개. 

 솔직하게 어색해하는 우다영보다는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우다희와 하는게 섹스가 더 재밌기는 했다. 

 "흐음…. 우다영의 캐릭터가 문젠데……."

 이제는 확실하게 캐릭터를 정하고 싶었다. 

 컨셉충처럼 하면 더 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 북의 용도가 섹스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건이었다. 

 컨셉을 잡고 섹스를 할 수 있는 용도였고, 수작 혹은 그 이상을 써보고 싶은건 그 다음의 욕심이었다. 

 "캐릭터를 확실히 잡아놔야 더 꼴리게 쓸 수 있으니까는……."

 이마를 긁적여봤지만 그렇다할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다. 

 "쉽게 벌리는건 누나면 됐고……. 뭐랄까. 좀……."

 쉽게 벌리는건 이미 우다희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맛으로 즐기고 싶은데.

 사각사각.

 시나리오 북을 펼쳐놓고 옆에 컨셉들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섹스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

 [욕구불만인 친구]

 [부탁은 뭐든 들어주는 친구]

 여러개 쓰다보니 우다영과 맞는게 보이지가 않았다. 

 신발을 벗고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끼익.

 의자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컨셉들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대충 적어놓다가 두 줄로 그은 컨셉이었다.

 "흐음…, 이것도 괜찮은거 같은데……? 아! 기여, 이거네. 이거 좀 꼴리겠다."

 두 줄로 그었던 것을 새 종이에다가 적어나갔다.

 [몰래 바람을 피우는 친구]

 김우현 몰래 나와 바람을 피는 컨셉. 

 다만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스읍, 뭐야. 개꼴리잖아?"

 당연히 여기에 몇 개를 더 추가하긴 해야했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중에 영향력을 받으면 그 꼴릿한 모습을 더 즐길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그럼……, 우현이 캐릭터도 잡아야지……."

 사각.

 한 번 생각이 정리가되니 빠르게 캐릭터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친구를 믿는 남자친구]

 지금도 역시 우다영을 무조건적으로 믿는 친구였지만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나중에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것보다 좋은 생각이 나진 않았다. 

 "세 명의 캐릭터가 다 잡혔네. 스읍, 미안하다 우현아. 내가 이런 친구라. 하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치익.

 회사에 나 밖에 없기 때문에 창문만 열어놓고 담뱃불을 붙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내일이면 어차피 냄새가 빠질테니 말이다.

 만들어진 셋의 캐릭터를 흡족하게 쳐다보다가 슬슬 구상해놓은 스토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일단……, 사이 좋은 친구로 가야지."

 거기에 더해서,

 "누나랑……, 다영이 둘 다 나오면……. 자매로 가자, 원래 자매긴 한데……."

 어딘가에 있을 법한 아니, 야동에서나 볼법한 내용들을 간단하게 적어나가며 스케치를 완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사연이었다. 

 "자매랑 소꿉친구고 같이 동거하는 느낌으로 가면 딱이네……."

 실제 있을법하게 사연을 꾸며놓았다. 

 이번 촬영은 딱 6일 정도였다. 

 주말까지 빌드업을 해놓고 주말내내 촬영을 할 수 있게 시나리오를 짜두기 시작했다. 

 "캐릭터가 잡히니까 쓰기가 편하네."

 최근에는 웃을 일이 너무 많아서 행복함을 느꼈다.

 "현자들의 말이 맞네,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는게 참 와닿네."

 참 행복한 나날이었다. 

 §

 사연을 다 쓰고 이어서 소품을 준비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화장대를 구매를 했다.

 "시발, 존나 비싸네."

 안마방에 가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그 다음엔 카메라였다.

 지금 갖고 있는 카메라가 단 한 대 밖에 없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편집할 부분은 많겠지만 그거는 상관없었다.

 "카메라는 시나리오 내에서 가면 될거고."

   

 옷가지나 화장품들은 둘이 챙겨올 수 있게 시나리오에 추가를 했다. 

 내게 없는걸 가져올 수도 있도록 말이다.

 "다음엔……."

 나는 허리춤에 손을 올려놓고 질린 표정으로 시나리오 북을 봤다.

 "수기로 작성해야지. 시발."

 벌써부터 시큰거리는 손목을 탈탈 털고서 의자에 앉아 시나리오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첫 장에는 구축한 캐릭터들을 적어나갔다.

 우다희는 전과 동일하게 뭐든지 들어주는 누나.

 우다영은 몰래 바람을 피고 있는 친구. 

 이후, 사연으로는 자매가 나와 동거를 하고 나는 우다영의 남자친구인걸로. 

 "외적으로……."

 사연을 제외하고서도 캐릭터들을 최대한 적용시켜나갔다. 

 그렇게 7번째 시나리오가 로딩을 시작했다.

 [point : 3]

 [몰입도 : 99%]

 [위화감 : 1%]

 두 개의 포인트를 사용해 몰입도와 위화감에 투자한 상태였다.

 자매 덮밥을 하려다보니 아무래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람이 많으면 그 만큼 몰입도가 오르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위화감이 내려가는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나저나……."

 시나리오북을 가방에 넣고 길 옆에 정돈 되지 않은 내천에 흐르는 물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티니 블루 처럼 청량하게 맑은 하늘이었다. 

 "후우."

 담배연기를 뱉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점심을 막 지난 시간이었다. 

 "미안해~. 늦었지?"

 반쯤 타고 남은 담배를 입에 문채로 뒤를 돌아보자 우다희가 신나서 뛰어오고 있었다.

 맞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내 앞에 선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서 말했다.

 "옷 어때? 이쁘지?"

 "응? 이쁘긴 한데, 나이 어리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거에요?"

  

 전에는 어른답게 셔츠를 자주 입었었다면 요즘엔 박시한 티를 자주 입는 것 같았다.

 "조금 대학생처럼 보여~?"

 "어…, 조금요?"

 오후 반차를 내고 첫 날 부터 나온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필요한 소품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집에 있는 카메라가 단 한 대 뿐인지라 촬영을 하는데에 불편함이 있었다.

 고급진 카메라가 아니라 집에 설치할 수 있는 자그마한 카메라 몇 대를 구해놓을 생각이었다.

 "갑시다, 누나."

 "그래요~. 오랜만에 시우랑 데이트하네~."

  

 우다희가 내 옆으로 바짝 붙는데에 위화감이 없었다.

 원래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몰입도가 이미 99%로 시작하는 상황에서 나는 대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누나, 이거 남편이 보면 어떡하려고 그런데요."

 "흐응~, 그냥 동생이랑 데이트 하는거 뿐인데?"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저 남동생과 무언가를 사러 온 상황일 뿐 바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연스럽게 손을 내려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우다희도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내 옆에 바짝 붙고는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뭐뭐 사야 돼?"

 나만 알고 있는 목록이기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설치할 캠들을 둘러봤다.

 가성비를 생각해야했기 때문에 가격은 저렴하면서 화질이 좋은 캠들 위주로 살폈다. 

  

 "흐음……. 근데 가격이 너무 비싸네요."

 내가 난감해하며 이마를 긁적였다. 살 돈은 있었지만 어차피 오늘은 내 돈으로 살 게 하나도 없었다. 

 옆에 있던 우다희가 내 표정을 보고는 입술을 달싹 거리다가 말했다.

 "아니면 누나가 사줄까?"

 "아? 그래도 너무 비싸잖아요. 한 대당 십만원이 넘는데……."

 10만원은 넘어야 그나마 쓸만한 캠을 살 수 있었다.

 "몇 대 필요한데?"

 "으음…, 다섯대는 필요해서요. 괜찮아요. 누나, 한 대만 사두 돼요."

 나는 지갑을 꺼내 돈을 확인하는 척 하자 그녀가 반대편 손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누나가 사줄게. 그 정도 돈은 나도 있어~."

 "그, 그래도 거의 60만원인데……."

 "에이~. 울 남편이 돈 괜찮게 벌잖니?"

 결국 남편의 돈이었다. 그리고 그걸 내가 노리기도 했고. 

 기왕 사는거 내 돈 아끼는게 좋았다.

 몰입도에 포인트를 사용한 이유도 있었다.

 "고마워요, 누나. 진짜로……."

 내가 주눅이 든채로 눈치를 보자 우다희가 내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울 시우가 원하면 누나가 뭐든지 해줄게~. 알았지?"

 "……고마워요. 저도 누나가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드릴게요!"

 목소리의 톤을 살짝 높여서 정말 기뻐하는 리액션을 해주니 그녀가 흐뭇하게 웃었다.

 계산을 하고나와 회사가 있을 법한 곳을 쳐다봤다.

 내가 우다희의 돈을 쓰는 동안에 회사에서도 착실히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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