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26)

 §

 화창하기 그지 없는 하늘.

 맴맴~! 

 스피오! 스피오! 

 "어우, 귀아퍼."

 혹시 몰라 먼저 출근을 한 나는 우다영보다 한 타임 빠른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했다. 

 "그래도 날은 좋네."

 아침 바람은 그렇게 습하진 않았다.

 피부에 닿는 바람의 느낌은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내가 1등이여?"

 거리가 가깝다 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에 들어가니 리모델링 끝난 회사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음~, 공사 끝난 냄새."

 감상평을 낸 후에 자리에 앉았다. 

 20분 정도가 지나니 우다영이 나 다음으로 도착했다.

 "앙녕~."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었다.

 "집에서 봤는데 뭘 인사여."

 "아~. 그렇지." 

 "어쨌든 마지막 촬영이었으니까 수고했다, 다영아."

 확인을 해보기 위해 말을 툭하니 던졌고 그녀는 물었다.

 "아, 응. 고생했어, 시우야. 진짜로."

 "그래그래, 일단 돈 들어오면 그때 말해줄게."

 내가 생각한게 맞았다. 

 "이러면 수작 이상의 걸 써야겠는데?"

 시나리오에서 벗어나거나 디테일이 떨어지면 몰입도가 내려갔고, 배우의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면 위화감이 올라갔다. 

 짧은 걸 쓸 수도 있으나 그럼 평균 평작 밖에 나오지 않았다.

 띠리릭.

 이어서 들어오는 원유찬. 

 곧 9시가 다 되어갈 때 김우현이 들어왔다.

 "하위하위."

 들어오는 애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오늘도 일찍 왔네?"

 "버스타면 금방인디 뭐. 서울에서 오는 애들이 힘들지."

 본가가 다 서울인 셋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읏차, 회의 하기 전에 담배 하나만 빨고 오겄슴다~! 유찬아, 긔긔."

 "예엡."

 아침부터 햄버거를 사온 원유찬이 마지막 조각을 넘긴 후에 나를 따라 내려왔다. 

 치익.

 골목길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담배를 물었다. 

 둘이 나란히 서 있으면 가득차는 좁은 골목길을 보면서 말했다.

 "나중에 여기다 통 하나 둬야긋다, 우리가 버린거 좀 더럽네."

 일단 쓰레기통이 없어서 바닥에 던졌는데 쌓이다보니 미관상 보기 안 좋았다.

 "형님, 위에 양철통 하나 있던데."

 "에? 그게 왜 있어."

 "리모델링 공사 하셨다고 했죠?"

 "응."

 원유찬이 담뱃재를 톡톡 털며 말했다.

 "그거 하고 남은 페인트 통이 있더라고요."

 "아, 그래?"

 "씻어서 갖다놓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렇구나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그럼 지금까지만 버리고 좀 이따 내려올때 챙겨오자."

 "옙, 형님."

 다시 위로 올라가니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하고 있었다.

 "회의 할 동안만이라도 환기하자."

 김우현의 말에 그려~라고 대답하며 회의할 것들을 챙겼다.

 "조금 있다가 오후에 2차 미팅 때문에 다희 언니 온데."

 우다영도 공책을 들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그거보다는 둘이서 촬영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다 좋은데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어떤 성격인지도 몰랐기에 골치가 아팠다.

 시나리오 북은 대기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는데 당장 다음 주 부터 촬영에 들어가야했다.

 "일단 기획한거 말인데."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시작했다.

 "시티팝 감성 조금 넣고, 노을 감성도 조금 넣을겨. 사이트 가보니까 이런 컨셉들이 제법 있더라고."

 커뮤니티에 여러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둔 샘플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런식으로 할건데, 괜찮지?"

 "응, 그쪽에서도 요즘 감성 같다고 좋대."

 "……시티팝이 언제부터 요즘 감성이었냐."

  

 시덥잖은 말을 흘러 넘기며 회의는 짧게 끝났다. 

 드륵.

 회의를 끝낸 후에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시나리오 북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뭔가 최면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세뇌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능력이었다.

 쿨타임도 길어서 세상이 뒤바뀌는 그런 극적인 능력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 작은 재미를 주는 물품 정도였다. 

 "……스읍, 다른 사람이 이 능력 가졌으면 어떻게 썼을려나."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

 오후 3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편집을 하고 있을 때 우다영이 밖으로 나갔다.

 "언니 데리고 올게."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얘들아, 대답은 해줘야하는거 아니여?"

 내가 어이없이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다들 멋쩍게 웃었다.

 "일에 다들 집중하고 있구만."

 데려간다고 내려간 우다영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들어왔다.

 손에 들린 캐리어속 커피를 보며 카페를 갔다왔다는걸 알 수 있었다.

 "얘들아 커피 마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다시 일에 매진했다.

 그 사이에 김우현과 우다영, 언니는 셋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다희라…….'

 잠깐 봤던 이름. 우다영에게 언니가 있다는건 얼핏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본 적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언니 얘기를 잘 하지도 않았었기에 그냥 그런갑다 했었었다.

 힐끔 우다희를 보는데 갈색의 긴 머리와 살랑살랑 거리는 머릿결. 

 '펌을 다시 한건가?'

 저번에 본 것과 약간 다른 분위기인 것 같았다.  

 아이보리색의 블라우스 셔츠에 딱 달라붙는 청색의 스키니 진, 허리춤에는 아주 얇은 하얀색의 허리띠가 있었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우다영보다 허리가 훨씬 잘록했다.

 반면에 엉덩이가 땡땡해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오우."

 얼굴은 우다영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어른스러운 성숙한 느낌이 있었다. 

 "저쪽이 이번에 같이 촬영나갈 친구에요."

  

 김우현이 나를 향해 제스처를 했고 나는 방금 들은 것 처럼 웃으며 일어나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그래요. 반가워요."

 모델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지금 신고 있는 구두가 높은건지 키가 170은 되어 보였다.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한 번더 꾸벅 인사하자 그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뭐지 싶어서 뒤를 슬쩍 보는데 우다영도 씨익 웃어보이는 걸로 봐서는 둘이 카페에서 뭔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섹스에 관한 얘기는 죽어도 아닐 것이고 아마 내 성격이나 이런거에 관한게 아닐까 싶었다. 

 "월요일부터 바로 하면 되는거죠? 이름이……."

 "아…, 여기 명함입니다. 남시우라고 합니다."

 명함을 건네자 그녀가 웃으며 받아들었다. 

 "네, 음, 제가 지금 명함은 없고 제가 이쪽으로 연락 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사무적인 말투에 우다영은 입술을 씰룩이며 쟤가 웬일이래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현아~, 그러면 오늘 일찍 퇴근하고 같이 저녁이나 먹자, 오랜만에 같이 놀구."

 우다희가 김우현의 팔을 은근슬쩍 잡으며 말을 했고 김우현과 우다영은 익숙한지 단호하게 말했다.

 "일이 쌓여 있어서요. 누나, 그리고 아직 6시 되려면 한참 남았어요."

 김우현의 말에 우다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유부녀라고 안 놀아주는거니."

 "아~, 언니이. 얘가 사장인데 먼저 퇴근하면 어떻게 하냐구~."

 "흐응~, 아쉽네."

 얼핏 모습을 보아하니 푼수끼가 어느정도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배우생활을 해서인지 풍기는 아우라가 약간 달랐다.

 같은 핏줄인 우다영과 우다희에게서 받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듯이 말이다. 

 그래도 핏줄이라고 은근히 우다영의 푼수끼가 간간히 보이고는 했다. 

 "……."

  

 그건 그거고 일주일 동안 그녀를 데리고 나 혼자 촬영까지 할 생각을 하니 골머리가 슬슬 아파왔다. 

 우선은 어제까지 불알이 텅 빌 때까지 짜내서인지 일단 섹스에 대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현자타임이 세게 온 듯 했다. 

 "……이러고 내일이면 또 괜찮아지겠지만."

 "네?"

 옆에서 편집을 하던 원유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 혼자 촬영 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힘들어서 그래."

 "그렇죠……. 혼자서 장비를……."

 "장비는 최소화해서 가야지."

 내 얘기를 들은 원유찬이 약간은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비용을 그렇게 받았는데……."

 "원래 나랏돈이 눈먼 돈이여. 다 이렇게 받고 이렇게 일하는겨."

 말은 했지만 사실 나랏돈으로 일한건 생전 처음이라 고민이 되긴 했다. 

 "아니지, 군대에서 받은 돈도 나랏돈이잖어?"

 "음, 그렇죠?"

 "그러니까 그때 못 받은 최저시급 지금 와서 받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네."

 "……전 공익이라."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건 상관없어, 어찌됐든간에 강제로 끌고 간거 아니여."

 "그렇긴 하죠."

 원유찬과는 이상하게 대화가 잘 되는 것 같았다. 

 딱히 모난 곳도 없었고 맡은 일을 군말 없이 잘 해내고 있었다. 

 맡겨도 불안하지 않으니 딱히 불화가 생길 일도 없어서 어쩌면 더 친해진 것도 있었다. 

 "그래, 우린 화팅이나 하자."

 한편 얘기가 끝났는지 셋이서 밖으로 나갔다. 

 "뭐여, 퇴근하는겨?"

 끝자락에 선 김우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잠깐 앞에 카페 갔다가 올게."

 "아녀~, 그냥 그대로 퇴근해. 나도 일만 하고 바로 퇴근할겨."

 "하하, 금방 올게."

 말을 하고 떠난 그는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미안해……."

 "왜 혼자 오는겨."

 "아니…, 그게……."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별다른 말 대신에 그의 자리를 가리켰다.

 "메일이나 확인해, 5시 넘어도 안 오길래 그냥 네것까지 편집했어, 나랑 유찬이랑."

 "아…, 야, 야근 하려고 했는데."

 "야근은 무슨, 다영이 안 오는거 보니까 뭐, 저녁 약속 있지? 얼른가. 우리도 퇴근할겨."

  

 김우현의 성격상 진짜로 남아서 처리를 할게 눈에 보였기에 여유가 있는 나와 원유찬이 대신 일을 처리했다. 

 퇴근준비를 하며 고마워하는 김우현에게 말했다.

 "나중에 수당이나 챙겨주든지 밥이나 사든지 혀."

 "아하하. 미안하다 진짜."

 "뭐만 하면 미안하다고 하냐~. 됐슈, 이미 받은게 많아서." 

 끝말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원유찬과 나와 담배 하나를 꼬나물고 말했다.

 "오늘은 술 한 잔 하자고 안 하냐?"

 "오, 해주십니까."

 "그래, 간만에 소주나 한 잔 조지자."

 원유찬과 둘이 근처에 있는 고깃집으로 향했다. 

 치이익.

 가볍게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전에 있던 회사에서 뭔 일이 있길래 이렇게 살이찐겨?"

 원래도 살집이 있었던걸로 기억은 했지만 이렇게 뚱뚱하진 않았었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스트레스를 먹을걸로 풀었었거든요. 퇴근하면 소주랑 음식 포장해서 가고……. 맨날 그랬더니 보다시피……."

 그가 양 팔을 벌리며 자신의 몸을 보여주었다.

 "그랴? 쩝, 그래도 살은 빼는게 좋을걸. 여친은 사겨야될거 아니여."

 "에이~, 제 주제에 무슨."

 손을 저으며 소주를 들이키는데 왠지 씁쓸한 미소 같아보였다.

 "좋은 짝 생길겨."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게 아니다보니 건넨건 진심이 아닌 말 뿐인 위로였다. 

 원유찬도 그걸 알기에 그저 웃어 넘길 뿐이었다. 

 "그나저나 형님은 여자친구 안 만드십니까."

 "여친은 무슨. 지금은 딱히 관심 없어."

 "에이~, 그래도 잘 생기셨는데."

 "……와우. 엄마 말고 잘생겼다는 말은 첨 듣네. 전 여친들은 나보고 쓰레기라던데."

 원유찬이 잔에 소주를 따르며 물었다.

 "왜 그런 말을 했대요."

 "응? 양다리 걸쳐서."

 "쓰레기 맞는데요, 형님?"

 "……알아 인마. 한 잔이나 해."

 어느덧 병이 셋을 지나니 슬슬 알딸딸해졌다.

 "야~, 더 마시면 집 못 갈 거 같으니까 인나자."

 "으~. 네, 이것만 비우고 일어나죠."

 "그래그래."

 원유찬은 전에 있던 회사에서 겨우 1년 있었을 뿐인데 이제는 회사원이 다 된 느낌이었다. 

 대학생때는 그래도 풋풋하고 그저 착한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서글서글하니 능글맞아진 느낌이었다.

   

 커다래진 덩치도 한 몫을 하긴 했다.

 "계산은 내가 할게."

 "아뇨, 형님. 그래도 제가 먹자고 했는데……."

 "……그래놓고 왜 내 뒤에 서냐. 이 쉑."

 결제하고 나오자마자 바로 담배를 물었다. 

 "형님, 잘 먹었습니다."

 "돈 벌어서 갚어, 인마."

 "당연하죠."

 "하여간 말은 잘해요."

 담배를 다 피우고 택시 태워 보낸 후에 나도 뒤따라 오는 택시를 올라탔다. 

 술 때문인가 집에 와 씻고 침대에 누우니 금방 잠에 빠졌다. 

 §

 주말.

 찾아온 주말에 냄새가나는 이불과 베개를 들고 근처 빨래방으로 향했다. 

 대형 드럼통에 구겨넣고 돌린 후에 기다리는 동안 근처 카페에서 커피로 목을 축였다.

 "어우, 더워……."

 장마가 끝나니 어째 더 더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타지에서 올라와 혼자 자취를 하니 아는 사람이라고는 대학 친구들 밖에 없는데 대부분은 서울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긴 하나 준비하고 가는게 귀찮았다. 

 덥썩.

 건조까지 다 된 이불을 집어드니 뜨거웠다.

 "……." 

  

 그 상태로 밖을 걸으니 등에 땀이 금방 맺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불을 펼쳐놓고 창문을 열어 환기겸 청소기를 돌렸다.

 우왜애앵!

 귀가 아플정도로 시끄러운 청소기를 돌린 후에 노브랜드에서 산 밀대에 청소포를 씌우고 한 바퀴 쭉 돌리고나니 온 몸이 땀이었다.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 문을 닫고 에어컨을 튼 채로 소파에 누웠다. 

 "……."

 가만히 누워 있는데 무료한 느낌을 심하게 받았다.

 그렇다고 어딘가 나가기에는 너무 귀찮음을 느꼈고 그렇다고 누군가를 부르기에도 귀찮았다. 

 tv를 틀어놓은채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결국 배달 음식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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